[미디어 트렌드③] 기술보다 기준, 알고리즘보다 판단

JTBC 전환이 드러낸 ‘사람 중심 미디어’의 한계와 가능성

2026-01-04     박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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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N 박준식기자]JTBC 전진배 총괄 체제가 의미하는 또 하나의 변화는 기술을 대하는 태도다. 인공지능과 플랫폼이 미디어 산업의 전면으로 올라온 시점에서, JTBC는 기술을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판단의 기준을 앞에 두는 방식을 택했다. 이는 유행과 속도를 좇는 전략과는 결이 다르다. 기술을 거부하는 선택도 아니고, 기술에 기대는 방식도 아니다. 기술을 관리 대상으로 두는 접근에 가깝다.

미디어 산업에서 인공지능은 이미 일상이 됐다. 기사 초안 작성, 영상 편집, 추천 알고리즘, 광고 타기팅까지 자동화가 빠르게 확산됐다. 이 흐름에서 다수의 미디어는 효율과 속도를 앞세웠다. 인력은 줄이고, 생산량은 늘리는 방식이었다. 결과는 양면적이다. 비용은 줄었지만, 콘텐츠의 질과 브랜드 신뢰는 동시에 흔들렸다. 판단의 주체가 불분명해진 지점에서 책임 역시 흐려졌다.

JTBC의 선택은 이 흐름과 일정한 거리를 둔다. 보도 책임자가 방송사업군 전체를 총괄하는 구조는, 최종 판단을 사람에게 남겨두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데이터와 알고리즘은 참고 자료로 활용하되, 편성·보도·콘텐츠 방향을 결정하는 기준은 인간의 판단에 둔다는 뜻이다. 이는 효율성 측면에서는 불리할 수 있다. 자동화에 비해 속도는 느리고, 비용은 더 든다. 그러나 기준이 명확해진다는 장점은 분명하다.

보도 영역에서 이 차이는 더욱 뚜렷하다. 알고리즘은 반응이 큰 이슈를 우선한다. 클릭과 체류 시간은 중요 지표다. 그러나 공익성과 중요도는 항상 반응 수치와 일치하지 않는다. JTBC가 보도를 경영의 중심에 둔 구조는 이 간극을 제도적으로 관리하겠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반응이 아니라 판단을 기준으로 삼는 체계다. 이는 보도의 무게를 유지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트래픽 경쟁에서는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이재명 대통령, 페이커에 체육훈장 청룡장…e스포츠 첫 1등급  사진=2026. 01. jtbc 영상  갈무리 02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콘텐츠와 예능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다. 플랫폼 환경에서는 자극적인 소재와 빠른 전개가 유리하다. 알고리즘은 즉각적인 반응을 선호한다. 반면 기준을 앞세운 제작은 속도를 늦춘다. 사전 검토가 늘어나고, 리스크 점검 과정이 길어진다. 이 구조는 실패 확률을 낮출 수는 있으나, 히트 확률을 높인다고 보기는 어렵다. JTBC 전환의 성격은 확장보다 관리에 가깝다.

인공지능 활용에서도 같은 기조가 읽힌다. 자동 생성 콘텐츠를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제작 지원과 편집 보조 수단으로 활용하는 방식이다. 이는 기자와 제작자의 역할을 대체하기보다는 보조하는 구조다. 생산량 확대보다는 판단의 질을 유지하는 데 초점이 맞춰진다. 다만 이 방식은 단기적으로 눈에 띄는 성과를 만들기 어렵다. 비용 절감 효과도 제한적이다. 기술 도입의 목적을 효율이 아닌 기준 유지에 둔 선택이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조직의 부담이 커진다. 판단 중심 구조는 개인에게 책임을 집중시킨다. 총괄 체제에서 보도의 기준은 곧 경영 판단으로 이어진다. 성공하면 방향성이 명확해지지만, 실패하면 책임 역시 분산되지 않는다. 기술 중심 구조가 책임을 흐리는 대신 조직을 보호하는 역할을 해왔다면, 사람 중심 구조는 정반대의 긴장을 만든다. 기준을 세운 만큼 설명 책임도 따라온다.

중앙그룹의 기조 역시 이 선택과 맞닿아 있다. 홍정도 중앙그룹 부회장은 인공지능 기반 혁신을 강조하면서도 언론의 중심은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반복했다. 기술을 도입하되, 판단의 주체는 인간이어야 한다는 방향이다. 이는 그룹 차원에서 리스크를 관리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자동화가 불러올 수 있는 신뢰 훼손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접근이다.

“마지막 작품이 될 수도” 84세 김혜자, 손석구를 선택한 이유...‘천국보다 아름다운’ 사진=2025 04.18 JTBC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다만 이 선택이 항상 옳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미디어 산업은 속도와 규모의 경쟁이기도 하다. 기준 중심 운영은 시장 점유율 확대에 불리할 수 있다. 특히 디지털 영역에서는 느린 판단이 곧 기회 상실로 이어진다. JTBC의 구조는 빠른 실험과 반복에는 적합하지 않다. 대신 실패 확률을 낮추는 방향으로 설계돼 있다. 성장과 안정 중 어디에 무게를 둘 것인지에 대한 분명한 선택이 드러난다.

JTBC 전환의 핵심은 기술 활용 여부가 아니다. 기술을 어떤 위치에 두느냐의 문제다. 전진배 총괄 체제는 기술을 전면에 세우지 않았다. 판단의 보조 수단으로 배치했다. 이는 현재 미디어 산업에서 흔치 않은 선택이다. 효율과 속도 대신 기준과 책임을 앞세운 구조다. 이 방식은 단기 성과보다는 장기 신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 선택이 성공으로 이어질지 여부는 아직 정리되지 않았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JTBC는 기술 경쟁의 한복판에서 다른 길을 택했다. 알고리즘보다 판단을, 자동화보다 기준을 앞세운 선택이다. 이 선택이 미디어 산업 전반에 어떤 의미로 남을지는, 시간이 아니라 결과가 말해줄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