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첫 일정 ‘재중 한국인 간담회’…이재명 대통령 “한중관계 복원, 현장 목소리로 다듬겠다”
고탁희 회장 “개척자이자 가교…교민의 인고를 어루만진 위로” 환영…재외선거·다문화 자녀 교육·유학생 진로 지원 건의 잇따라
[KtN 임우경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2026년 1월 4일 중국 베이징에서 국빈방문 첫 일정으로 ‘재중 한국인 간담회’를 열고 재중 동포사회와 마주 앉았다. 재중 한인사회 대표, 경제인, 문화·교육계 인사, 유학생 등 각계 인사 300여 명이 참석했다. 대형 외교 일정의 첫 장면을 재외국민 간담회로 배치한 점은 이번 방중의 성격을 ‘관계 복원’과 ‘민생형 실용외교’로 묶어 보여주는 상징적 장치로 읽힌다.
행사는 국민의례로 문을 열었다. 현장에는 교민사회 대표 조직을 이끄는 고탁희 중국한인회총연합회장이 환영사를 맡았다. 고 회장은 “재중 교민은 개척자이자 가교, 한중 공동 성장의 주체”라고 규정하며, “대통령과의 만남이 한중관계 개선을 기다리며 인고의 세월을 견뎌 온 기업과 교민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위로와 희망의 응원”이라고 말했다. 교민사회의 역할을 ‘생활 현장에서 축적된 민간외교’로 재정의한 발언이다. 한중관계가 흔들릴 때마다 가장 먼저 충격을 흡수해 온 당사자가 교민사회라는 점을 전면에 세웠다.
이 대통령은 인사말에서 “오랜 기간 후퇴해 있던 한중 관계를 전면 복원한 건 최대 성과이자 큰 보람”이라며 “현장에서 최선을 다해 함께해 준 덕”이라고 감사를 전했다. 이어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관계를 정상으로 복구해 더 깊고 넓은 발전으로 나아가는 출발점”을 강조했다. 국빈방문을 ‘행사’가 아니라 ‘복원 작업’으로 규정한 대목이 눈에 띈다. 정치적 수사보다 ‘정상화’ ‘복구’ 같은 행정 언어가 반복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발언의 무게중심은 교민사회가 체감하는 ‘손에 잡히는 불편’으로 이동했다. 이 대통령은 재외선거 투표 환경을 거론하며 개선 의지를 밝혔다. 중국의 지리적 특성과 교민 분포를 감안하면 투표소 접근성은 단순 편의 문제가 아니라 주권 행사 자체의 물리적 조건이 된다. 재외선거가 원칙적으로 보장돼도, 이동 비용과 시간 부담이 사실상의 장벽으로 작동해 온 현실을 정면으로 건드린 셈이다.
만찬이 시작된 뒤에는 예정에 없던 즉석 타운홀 미팅이 이어졌다. 현장에서 손을 든 참석자들의 제안이 줄을 이었다. 이나연 재외동포신문 기자는 “8년 만의 대통령 방중이 한중 관계 회복의 전환점이 되길 바란다”고 했고, 배승동 재중 한중다문화협의회 의장은 재외 다문화자녀를 위한 한국어·문화교육 지원과 은퇴 후 귀국 정착 지원을 건의했다. 이승준 북경총한국유학생회연합 회장은 중국 내 취업비자 발급 문턱이 높아진 현실을 전하며 연수·실무·취업을 잇는 공동 인재양성 체계를 제안했다.
건의의 결은 한 방향으로 모였다. 교민사회가 요구한 것은 ‘거창한 선언’이 아니라 ‘생활에 닿는 제도’였다. 다문화 자녀의 언어·정체성 교육, 유학생 진로 경로, 귀국 정착 지원은 모두 외교 의제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교육·노동·복지·행정이 교차하는 생활정책이다. 재외국민 정책은 외교부만의 과제가 아니라 정부 전체의 운영능력을 가늠하는 지표라는 점이 현장에서 다시 확인됐다.
이 대통령은 마무리 발언에서 재외공관을 통한 민원 일괄 접수와 검토 방침을 밝혔다. 여러 나라 교민 간담회에서 비슷한 요구가 반복된다는 취지의 언급도 곁들였다. 현장 의견을 ‘상담’으로 끝내지 않고 ‘행정 프로세스’로 옮기겠다는 메시지다. “국민 세금으로 일하는 공직자의 책무” “국민의 행복이 대통령의 의무”라는 표현은 현장 요구를 국정의 언어로 끌어올리는 역할을 했다.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는 장면도 있었다. “10살 딸이 잠은 잘 주무시는지 궁금해한다”는 참석자 발언에 이 대통령이 “잠은 충분히 잔다고 전해달라”고 답해 웃음이 터졌다. 외교 현장에서 이런 생활 대화가 갖는 의미는 작지 않다. 국가의 대표와 교민사회 사이 거리를 줄여 ‘상징 정치’보다 ‘관계 정치’를 부각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간담회 말미 문화공연에서는 북경한인소년소녀합창단이 ‘Let’s make peace’와 ‘나는 나비’를 합창했다. 평화와 성장, 정체성과 미래를 잇는 선곡은 행사 메시지와 자연스럽게 맞물렸다. ‘관계 복원’이라는 큰 주제는 외교 문서에서 시작되지만, 체감은 결국 사람과 생활에서 완성된다는 점을 보여주는 마무리였다.
이번 간담회는 재중 교민사회가 지나온 후퇴의 시간을 국가가 공식적으로 받아들이고, 관계 복원의 방향을 현장의 목소리로 확인하는 자리였다. 재외선거 접근성, 다문화 자녀 교육, 유학생의 진로 문제는 거창한 의제가 아니라 일상의 조건이다. 이러한 요구가 제도와 행정으로 옮겨질 때 ‘복원’은 말이 아니라 체감으로 드러난다. 베이징 첫 일정은 한중관계의 변화를 선언하기보다, 그 변화가 어디에서 시작돼야 하는지를 분명히 보여줬다. 교민사회가 견뎌온 시간은 숫자가 아니라 삶의 무게로 남아 있다. 그 무게를 덜어내는 방식으로 관계는 비로소 움직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