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외교③] 드럼이 만든 외교의 장면…형식을 넘어 관계의 온도를 바꾸다

2026-01-14     박준식 기자
이재명 대통령. 사진=KTV이매진 갈무리,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박준식기자]이재명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의 나라현 정상회담이 남긴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공동언론발표 이후에 연출됐다. 회담 결과나 합의 문구가 아니라, 사전에 공개되지 않았던 짧은 환담 자리에서였다. 외교 무대에서 보기 드문 장면은 이번 순방의 성격을 상징적으로 드러냈다.

환담이 이어지던 회담장 한편에 드럼 세트가 등장했다. 일본의 대표적인 악기 브랜드 펄 드럼이었다. 양 정상은 푸른색 유니폼을 함께 착용하고 나란히 드럼 앞에 앉았다. 공식 의전과 거리감이 지배하던 정상회담장의 공기는 이 순간부터 달라졌다. 두 정상은 즉석에서 드럼 스틱을 잡고 합주를 시작했다.

연주곡으로 선택된 곡은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골든’과 방탄소년단의 ‘다이너마이트’였다. 특정 국가의 전통 음악이나 클래식이 아닌, 동시대 대중문화가 외교 무대에 올라온 셈이다. 일본 측이 이 이벤트를 준비한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양 정상의 개인적 친밀감과 세대적 공감대를 자연스럽게 보여주겠다는 의도였다.

이 대통령은 연주를 마친 뒤 “오늘 평생의 로망을 이뤘다. 어릴 적부터 드럼을 치는 것이 소원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다카이치 총리는 이 대통령에게 즉석에서 드럼 연주 방법을 설명하며 합주를 이끌었다. 두 정상의 역할은 분명히 나뉘었지만, 위계나 격식보다는 호흡과 리듬이 중심이 됐다.

이날 이벤트의 마무리 역시 상징적이었다. 다카이치 총리는 이 대통령에게 드럼 스틱을 선물했고, 양 정상은 각각 스틱에 서명한 뒤 서로 교환했다. 단순한 기념품 교환이 아니라, 공동의 경험을 남기는 방식이었다. 이날 착용한 유니폼에는 양국 국기와 정상의 영문 이름이 새겨졌다. 예기치 못한 장면이었지만, 준비와 메시지는 치밀했다.

외교 무대에서 문화 이벤트는 종종 연출된다. 그러나 이번 ‘드럼 외교’는 통상적인 공연 관람이나 사진 촬영과는 성격이 달랐다. 정상이 관객이 아니라 참여자가 됐고, 문화가 장식이 아니라 소통의 수단으로 작동했다. 일본 정부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양국 정상의 호흡을 가장 직관적으로 보여준 장면”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이재명 대통령. 사진=KTV이매진 갈무리,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이 장면이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한 화제성 때문만은 아니다. 이번 정상회담이 ‘새로운 60년’을 이야기하는 자리였다는 점에서, 드럼 합주는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 한일 관계는 오랜 기간 과거사와 안보, 경제 현안을 둘러싼 긴장 속에서 움직여 왔다. 공식 문서와 합의문은 늘 있었지만, 관계의 온도는 쉽게 오르내렸다.

나라현에서의 드럼 합주는 그 온도를 낮추거나 높이려는 계산된 제스처라기보다, 관계의 결을 바꾸려는 시도로 읽힌다. 대립과 조율의 언어 대신, 함께 리듬을 맞추는 경험을 공유함으로써 관계의 다른 층위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외교적 신뢰는 종종 문서보다 경험에서 만들어진다.

특히 이번 이벤트가 일본 측의 제안으로 준비됐다는 점은 의미가 있다. 다카이치 총리가 자신의 정치적 기반이자 고향인 나라에서, 사전에 공개하지 않은 문화 이벤트를 마련했다는 사실은 한일 관계에 대한 일본 측의 접근 방식을 보여준다. 형식적 안정 관리가 아니라, 관계 개선에 대한 주도적 메시지다.

 

이재명 정부 외교의 특징도 이 장면에서 읽힌다. 이 대통령은 문화적 요소를 외교의 주변부가 아니라, 중요한 소통 수단으로 활용하는 데 익숙하다. 이번 드럼 합주 역시 즉흥적으로 보이지만, 외교 메시지의 연장선에 있었다. 공동언론발표에서 제시된 포괄 협력과 실무 중심 접근이 인간적 신뢰와 결합될 때, 외교는 보다 안정적인 기반을 갖게 된다.

물론 이러한 장면 하나로 한일 관계의 구조적 문제가 해소되지는 않는다. 과거사, 경제 갈등, 안보 현안은 여전히 복잡하고 민감하다. 그러나 외교는 문제 해결의 기술이면서 동시에 관계 관리의 예술이다. 나라현에서 연출된 드럼 외교는 그 예술의 한 장면에 해당한다.

이번 일본 순방 1일차는 정책과 상징이 교차한 하루였다. 낮에는 포괄 협력과 실무 논의가 오갔고, 밤에는 드럼 소리가 울렸다. 공식 합의와 비공식 교감이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졌다. 이재명 정부가 한일 외교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방향 역시 이 두 축 위에 놓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