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지컬AI⑦] 자유시장의 종언, 자본은 이제 정치의 언어를 듣는다
가격은 사라지고, 권력만이 가치를 만든다
[KtN 최기형기자] 2026년을 향한 세계 경제의 분위기는 분명하다. 시장이 스스로 균형을 찾는다는 믿음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가격은 수요와 공급이 아니라 정책과 권력에 의해 결정된다. 자본은 기업의 실적보다 정부의 의도를 먼저 해석한다. 자유시장경제가 오랫동안 유지해 온 기본 질서는 급격히 흔들리고 있다.
지난주 미국에서 연달아 나온 조치들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중앙은행을 우회한 대규모 모기지 증권 매입을 통한 금리 통제, 지정학적 압박을 동반한 에너지 가격 관리, 기업의 자본 배분에 대한 직접 개입. 개별 정책으로 보면 이례적이지만, 흐름으로 보면 일관된다. 시장에 맡기지 않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시장의 가격 기능이 멈춘 자리
자유시장경제의 핵심은 가격 기능이었다. 가격은 희소성을 반영하고, 자본은 그 신호를 따라 움직였다. 그러나 지금 시장에서 가격은 더 이상 정보를 담지 않는다. 금리는 정책 목표에 맞춰 고정되고, 에너지는 외교와 안보의 수단으로 활용된다. 기업의 주가는 실적보다 규제 방향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 변화는 단기간의 위기 대응이 아니다. 구조적 전환에 가깝다. 시장이 불안정해질수록 정부는 더 강하게 개입한다. 개입이 반복될수록 시장의 자율성은 줄어든다. 이 악순환은 이미 여러 국가에서 확인됐다. 미국 역시 예외가 아니다.
국가자본주의로의 급격한 이동
지금 전개되는 변화는 흔히 말하는 경기 부양이나 산업 정책의 범주를 넘어선다. 자본과 산업을 국가가 직접 설계하고 통제하는 체제로 이동하고 있다. 이른바 국가자본주의다. 민간의 의사결정 영역에 정치가 깊숙이 들어온다.
기업의 자사주 매입을 제한하고 투자를 유도하는 정책은 그 단면이다. 표면적으로는 성장 촉진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기업의 자본 사용을 국가 목표에 맞추겠다는 의미다. 시장의 자율적 판단보다 정책 우선순위가 앞선다.
AI·피지컬 AI와 정치의 결합
이 변화는 AI와 피지컬 AI의 확산과 맞물리며 더욱 강해진다. AI는 생산성과 효율을 높이는 기술이지만, 동시에 국가 경쟁력의 핵심 수단이 됐다. 반도체, 에너지, 로봇, 인프라는 모두 안보와 직결된다. 이 영역에서 시장 논리는 빠르게 후퇴한다.
피지컬 AI가 작동하는 산업은 특히 그렇다. 로봇과 자율 장비, 에너지 시스템은 국가 차원의 통제가 쉬운 영역이다. 공장과 광산, 전력망은 국경을 넘기 어렵다. 정부는 이 영역을 전략 자산으로 인식한다. 민간 기업의 자유로운 확장은 자연스럽게 제약을 받는다.
투자 환경의 근본적 변화
이제 투자 환경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는 기술도 실적도 아니다. 정책 방향이다. 금리와 환율, 에너지 가격이 시장 논리로 움직이지 않으면, 전통적 분석 도구는 힘을 잃는다. 재무제표보다 정책 문서가 더 중요해진다.
이 환경에서는 과거의 분산 투자 논리도 흔들린다. 같은 산업이라도 국가에 따라 전혀 다른 규칙이 적용된다. 글로벌 기업의 경쟁력은 기술력이 아니라, 정치적 정렬과 외교적 위치에 의해 좌우된다.
자유시장의 언어가 바뀌었다
자유시장경제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언어가 바뀌었다. 과거의 언어가 가격과 경쟁이었다면, 현재의 언어는 정책과 권력이다. 시장 참여자들은 이 언어를 해석해야 한다. 이를 외면하면 시장을 이해할 수 없다.
AI와 피지컬 AI는 이 전환을 가속한다. 기술이 강력해질수록, 국가는 그 기술을 통제하려 한다. 효율이 높아질수록, 통제의 유혹도 커진다. 지금 벌어지는 변화는 기술 발전의 부산물이다.
새로운 게임의 규칙
투자자와 기업 모두 새로운 게임의 규칙을 받아들여야 한다. 가격 신호만으로 판단하는 시대는 끝났다. 정치와 정책, 국가 전략을 읽지 못하면 방향을 잡기 어렵다. 이는 비관이 아니라 현실 인식이다.
자유시장경제의 종언이라는 표현은 과장처럼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의 변화는 분명하다. 시장은 더 이상 중립적인 공간이 아니다. 권력이 개입하는 장이 됐다. 이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혼란은 줄어든다.
AI가 산업을 바꾸고, 피지컬 AI가 현실을 움직이며, 국가는 그 흐름을 통제하려 한다. 이 세 가지가 맞물린 지금의 세계는 과거와 다른 질서 위에 서 있다. 이제 자본은 숫자보다 의도를 읽는다. 그 의도를 읽는 능력이 생존을 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