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칼럼] 2026년, 가장 빠른 시대에 미술은 왜 가장 느린 언어를 선택했을까

홍형표의 '홍마미복'전이 투영한 ‘초격차 사회’의 역설과 안식의 미학

2026-01-26     임민정 기자
홍형표의 '홍마미복'. ‘고봉밥’과 ‘호박’이라는 소박한 상징을 통해 기술의 정점에 선 2026년, 잊혀진 인간의 온기를 조용히 되묻는다. /사진= 홍형표 作--인생의 관계성 91.0X91.0cm(50호) -Mixed-media on canvas 2022 /뤄니갤러리 K trendy NEWS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임민정기자] 2026년 병오년(丙午年)의 아침은 인공지능이 설계한 최적화된 알고리즘과 함께 시작된다. 모든 것이 데이터로 치환되고, 0.1초의 지연조차 허용하지 않는 ‘초격차 사회’의 정점. 인류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질주하는 이 시대에, 역설적으로 대중은 가장 느리고 아날로그적인 언어를 구사하는 미술관으로 향하고 있다.

이 기묘한 시대적 역설을 가장 선명하게 포착한 현장이 바로 서울 중구와 서초동 뤄니갤러리에서 동시 개최 중인 홍형표 작가의 개인전 '홍마미복(紅馬米福)'이다. 작가는 적토마의 기세로 도약해야 한다는 강박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초광속의 기술’ 대신, 쌀알 하나하나를 손으로 빚어 올린 지독하게 느린 ‘고봉밥’ 한 그릇을 내민다. 이는 단순한 전시를 넘어, 2026년 대한민국이 마주한 ‘속도의 피로’에 대한 예술적 선언이다.

작가는 적토마의 기세로 도약해야 한다는 강박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초광속의 기술’ 대신, 쌀알 하나하나를 손으로 빚어 올린 지독하게 느린 ‘고봉밥’ 한 그릇을 내민다. /사진=뤄니갤러리,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나노 사회’의 고독을 치유하는 ‘초밀착’의 온기

2026년 코리아 트렌드의 핵심은 파편화된 ‘나노 사회’다.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 쪼개진 개인들은 물리적 풍요 속에서도 유례없는 정서적 빈곤을 겪는다. 홍형표의 작업 세계를 지배하는 핵심 키워드인 ‘고봉밥’은 바로 이 지점을 정조준한다.

그의 고봉밥은 단순한 정물의 재현이 아니다. 30년 넘게 한국화의 필력을 다져온 작가는 테라코타와 아크릴을 운용해 쌀알 하나하나를 입체적으로 세워 올렸다. 기계라면 단 몇 초 만에 찍어낼 형상을, 작가는 고집스럽게 손으로 밀고 닦으며 ‘시간의 층위’를 쌓아 올린다.

이 지독히 느린 공정(工程)은 ‘나노 사회’의 고독한 개인들에게 ‘조건 없는 지지’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보낸다. 밥알 사이사이 새겨진 경구와 명언들은 ‘말씀은 곧 기원이다’라는 작가의 철학을 증명한다. 이는 2026년을 전후해 확산되고 있는 정서적 안정과 심리적 위안을 중시하는 소비 트렌드와 맞닿아 있다. 불확실한 일상 속에서 소비자들은 단순한 기능이나 소유를 넘어, 삶에 긍정적인 기운과 균형이 깃들기를 바라는 감정적 효용을 물건에 투사한다. 이 같은 흐름 속에서 예술 작품의 소유는 감상의 차원을 넘어, 내 삶을 지탱해 주는 상징적 존재이자 현대인에게 영혼의 허기를 달래는 ‘심리적 안전기지’로 기능한다.

 

 

홍형표의 ‘호박’ 연작은 이 시대적 가치를 예술적으로 형상화한다.  /사진=뤄니갤러리,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회복 탄력성’의 서사, 시련을 자산으로 치환하다

최근 비즈니스와 자기계발 분야를 관통하는 화두는 단연 ‘회복 탄력성(Resilience)’이다. 홍형표의 ‘호박’ 연작은 이 시대적 가치를 예술적으로 형상화한다. 그의 호박은 매끈하지 않다. 울퉁불퉁하고 투박한 표면은 모진 풍파를 온몸으로 받아낸 시련의 기록이자, 느린 성장의 흔적이다.

작가는 이 굴곡이야말로 황금빛 결실을 맺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임을 강조한다. “험난한 시간을 견디며 성장하는 호박은 실패를 거쳐 성공에 이르는 우리네 인생의 서사”라는 작가의 설명은, 무한 경쟁의 속도전에서 밀려날까 두려워하는 이들에게 조용한 응원을 건넨다.

호박 주위를 유영하는 오방새와 화려하게 피어난 호박꽃은 ‘대운(大運)’이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님을 말해준다. 2026년 병오년의 붉은 말이 대지를 박차고 나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순간의 속도’가 아니라, 시련을 결실로 바꾸는 ‘인내의 철학’이다. 이는 2026년의 리더들이 갖춰야 할 종목인 ‘지속 가능한 번영’의 핵심 원리와도 완벽히 부합한다.

오프닝 현장에서 울려 퍼진 윤지우 연주자의 해금의 깊은 선율과 “화환 대신 마음으로만 받겠다”는 클린 전시 선언은 본질에 집중하고자 하는 수준 높은 관람 문화를 상징한다.  /사진=뤄니갤러리,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경험의 밀도’가 빚어낸 예술적 안식처

2026년 공간 트렌드의 핵심은 ‘경험의 밀도’다. 디지털 공간이 줄 수 없는 물리적 실재감과 안식. 뤄니갤러리 박선아 관장은 중구 강북점의 역사성과 서초점의 현대성을 잇는 동시 개최를 통해, 예술이 일상과 어떻게 결합할 수 있는지 그 해답을 제시한다.

오프닝 현장에서 울려 퍼진 해금의 깊은 선율과 “화환 대신 마음으로만 받겠다”는 클린 전시 선언은 본질에 집중하고자 하는 수준 높은 관람 문화를 상징한다. 뤄니갤러리는 단순한 전시장(Exhibition Hall)을 넘어, 각박한 도심 속에서 바쁜 하루를 잠시 멈추고 내면을 들여다보게 하는 ‘영혼의 마구간’ 역할을 자처한다.

예술을 ‘보는 것’에서 ‘사유하는 것’으로 전환시키는 이러한 공간 경영은, 2026년 오프라인 플랫폼이 살아남기 위한 필수 전략인 ‘하이퍼-로컬(Hyper-local) 안식처’의 전형을 보여준다. 물리적 공간이 주는 밀도 높은 경험은 디지털이 대체할 수 없는 2026년 최고의 사치재가 되었다.

적토마의 속도로 질주하는 이 시대에 홍형표 작가의 작품이 건네는 질문은 명확하다. “가장 빠른 시대, 당신의 영혼은 지금 안녕한가.” /사진=뤄니갤러리,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당신의 2026년은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예술은 때로 날카로운 비판이 되기도 하지만, 홍형표의 작품은 가장 따뜻한 위로가 된다. 2026년이라는 거대한 운의 파도 앞에서 우리가 갖춰야 할 첫 번째 덕목은 비움이 아니라, 내 영혼을 든든하게 채우는 ‘긍정의 언어’와 ‘정(情)의 회복’이다.

적토마의 속도로 질주하는 이 시대에 홍형표 작가의 작품이 건네는 질문은 명확하다. “가장 빠른 시대, 당신의 영혼은 지금 안녕한가.” 뤄니갤러리에서 마주하는 고봉밥 한 그릇이 당신의 병오년을 황금빛 번영으로 이끄는 진정한 대운의 시작이 되길 바란다.

예술로 읽어낸 2026년의 트렌드는 선명하다. 우리가 다시 일어설 힘은 첨단 기술이나 데이터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기, 그리고 나를 긍정하는 축원의 마음에서 나온다는 사실이다. 질주를 멈추고 잠시 이 '예술적 안식처'에 들러 신년의 기운을 가득 채워보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