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로 여는 대운 ①] “밥 먹었니?” 그 다정한 문안, 캔버스에 쌓아 올린 ‘한국적 축원’의 미학

2026 병오년(丙午年) 벽두, 홍형표 작가가 건네는 고봉밥의 위로… 결핍의 시대를 치유하는 ‘정(情)’의 연대기

2026-01-25     임민정 기자
홍형표 작가가 고봉밥에 새긴 축원의 미학 /사진=홍형표 作미생예찬53.0X45.5cm(10호) Mixed-media on canvas 2025, 뤄니갤러리 K trendy NEWS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임민정기자] 2026년 병오년(丙午年), 60년 만에 돌아온 ‘붉은 말’의 해가 밝았다. 역동적인 적토마의 기운이 온 세상을 휘감으며 저마다 ‘도약’과 ‘성공’을 부르짖는 이때,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오히려 가장 낮고 따뜻한 목소리로 말을 건네는 전시가 있다. 뤄니갤러리에서 개최 중인 홍형표 작가의 초대전 '홍마미복(紅馬米福)'이다.

이번 기획 시리즈 1편에서는 전업 작가이자 교육자로 평생을 ‘한국적 정서’ 탐구에 매진해 온 홍형표 작가의 ‘고봉밥’ 연작을 통해, 2026년 우리 사회가 회복해야 할 본질적인 가치와 ‘축원 예술’이 지닌 힘을 심층 조명한다.

/사진=홍형표作미생예찬 162.2X130.3cm(100호) Mixed-media on canvas 2025, 뤄니갤러리 K trendy NEWS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밥그릇에 담긴 ‘하늘’, 한국인의 DNA를 깨우다

“밥은 하늘이다.” 시인 김지하가 노래했던 이 한 문장은 한국인에게 밥이 지니는 근원적 무게를 관통한다. 홍형표의 작업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그의 캔버스 위에는 투박한 사발 위로 쌀알이 흘러넘칠 듯 쌓인 ‘고봉밥’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과거 우리 어머니들이 자식의 밥그릇을 꾹꾹 눌러 담던 행위는 단순한 배고픔의 해결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식의 앞날이 평탄하기를, 굶주리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가장 간절한 ‘기도’였다. 홍 작가는 이 지극히 한국적인 풍경을 현대 회화의 문법으로 소환한다.

그의 고봉밥은 매끈한 평면이 아니다. 테라코타 기법을 차용해 쌀알 하나하나의 질감을 입체적으로 살려냈다. 관람객은 작품 앞에 서는 순간, 시각을 넘어 촉각적인 풍요로움을 경험한다. 전후(戰後) 빈곤의 시대를 지나 풍요의 시대를 살고 있음에도 여전히 ‘마음의 허기’를 느끼는 현대인들에게, 그의 고봉밥은 “당신은 이미 충분히 사랑받고 있으며, 당신의 삶은 이토록 가득 차 있다”는 정서적 포만감을 선사한다.

사진=홍형표作미생예찬 145.5X112.1cm(80호) Mixed-media on canvas 2024. 뤄니갤러리 K trendy NEWS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말씀’이 기원이 되는 순간, 밥알에 새긴 긍정의 철학

홍형표 작가의 고봉밥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쌀알 사이사이로 무수히 많은 글자가 새겨져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는 작가의 독특한 작업 태도인 ‘말씀은 곧 기원이다’라는 철학의 발현이다.

작가는 평소 법정 스님이나 도올 김용옥 등 이 시대의 스승들이 남긴 경구와 명언들을 가슴에 새기고, 이를 수행하듯 작품 속에 녹여낸다. 밥알처럼 차곡차곡 쌓인 긍정의 문장들은 감상자에게 단순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을 넘어, 하나의 ‘에너지’로 작용한다.

미술평론가 김종근은 그를 가리켜 “우리의 가슴을 흔들고 적시게 하는 따뜻한 작가”라고 평했다. 30년 넘게 서예와 문인화, 한국화의 경계를 넘나들며 쌓아온 필력이 아크릴과 테라코타라는 현대적 재료와 만나 ‘읽는 그림’이라는 독창적인 양식을 구축한 것이다. 이는 정보를 소비하는 시대에 ‘사유하는 예술’의 가치를 환기한다.

박선아 뤄니갤러리 관장은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작가님의 작품은 ‘밥 먹었니?’라는 안부 인사처럼 다정한 위로를 건넨다”고 말했다.

2026 병오년, ‘적토마’의 기세와 ‘고봉밥’의 안식

2026년은 병(丙)이 상징하는 붉은색과 오(午)가 상징하는 말의 기운이 만나는 해다. 사회 전반적으로 속도감이 느껴지고 변화의 폭이 클 것으로 예상되는 해이기도 하다. 이러한 시기에 뤄니갤러리가 홍형표 작가를 선택한 이유는 명확하다. 뜨겁게 달리는 말에게도 돌아와 쉴 수 있는 ‘마구간’과 든든한 ‘여물’이 필요하듯, 치열한 삶을 사는 현대인들에게 영혼의 안식처를 제공하겠다는 의지다.

박선아 뤄니갤러리 관장은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작가님의 작품은 ‘밥 먹었니?’라는 안부 인사처럼 다정한 위로를 건넨다”고 말했다. VIP 오프닝 현장에서 관람객들은 고봉밥 작품 앞에서 한참을 머물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고 전했다. 그것은 작품이 지닌 ‘선한 영향력’이 관람객의 내면 깊숙이 자리한 그리움과 맞닿았기 때문일 것이다.

홍형표 작가는 “함께 먹고 함께 살아갈 때 복은 서로에게 흘러 비로소 아름다움으로 돌아온다”고 강조한다.

나눔의 미학, ‘정(情)’의 연대를 제안하다

홍형표의 고봉밥은 ‘개인의 복’에 머무르지 않는다. 작가는 “함께 먹고 함께 살아갈 때 복은 서로에게 흘러 비로소 아름다움으로 돌아온다”고 강조한다. 한 솥의 밥을 나누며 공동체가 되었던 우리의 ‘식구(食口)’ 문화를 예술을 통해 복원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는 파편화된 개인주의가 극에 달한 2026년 현재, 우리 사회에 던지는 묵직한 화두다. 나만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게 밥 한 그릇의 온기를 전할 수 있는 여유. 그것이 바로 홍 작가가 말하는 ‘진정한 대운(大運)’의 시작이다.

뤄니갤러리 중구점과 서초점에서 동시에 펼쳐지는 이번 '홍마미복' 전시는 오는 2월 21일까지 이어진다. 2026년이라는 새로운 도약의 시간을 앞두고 마음이 조급해진다면, 잠시 시간을 내어 홍형표의 밥그릇 앞에 서보길 권한다.

그곳에는 당신의 지친 어깨를 다독이는 작가의 인자한 미소와, 세상을 향해 꾹꾹 눌러 담은 뜨거운 축원의 마음이 서려 있다. 붉은 말이 힘차게 달리기 위해서는 먼저 속을 든든히 채워야 하는 법이다. 당신의 2026년이 홍형표의 고봉밥처럼 따뜻하고 풍요롭기를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