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작품소장하기③]100만 달러 대신 5만 달러 이하를 주목하라

가격대별 분화 분석. 에디션과 판화 시장이 어떻게 당신의 예산 안으로 들어왔는가. 100만 달러를 접고, 5만 달러를 본다 가격대가 갈라진 시장에서 ‘현실적인 피카소’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1부: 지금이 피카소를 살 타이밍인가? (시장 환경편)

2026-02-05     박준식 기자
Picasso / 피카소 Portraits Imaginaires Ⅰ (상상의 초상화).  사진=에스티에스그룹 & 꾸바아트센터,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박준식기자]미술 시장에서 가격은 오랫동안 위계였다. 비쌀수록 중심에 있었고, 싸질수록 주변으로 밀려났다. 피카소 시장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몇 점의 초고가 작품이 전체 시장의 얼굴처럼 소비됐고, 그 아래의 거래는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2023년 이후 이 구조는 분명하게 바뀌었다. 가격대는 갈라졌고, 시장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지금의 피카소 시장을 이해하려면 100만 달러가 아니라 5만 달러를 봐야 한다.

2019년까지 피카소 시장의 시선은 늘 위를 향해 있었다. 경매 뉴스의 중심은 최고가 기록이었고, 작품의 가치는 숫자로 요약됐다. 판화와 에디션은 존재했지만, 주목의 대상은 아니었다. 개인 컬렉터가 접근할 수 있는 가격대의 작품은 시장의 변두리에 머물렀다. 피카소는 여전히 ‘먼 이름’이었다.

2020년 팬데믹은 이 시선을 아래로 끌어내렸다. 고가 작품의 출품이 멈추자, 시장은 다른 선택지를 찾아야 했다. 온라인 경매가 본격화되면서 소형 작품과 에디션이 전면에 등장했다. 이때부터 가격대의 역할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가격은 더 이상 위계를 의미하지 않았다. 거래 가능성을 의미하기 시작했다.

2021년과 2022년의 과열 국면에서도 이 변화의 조짐은 사라지지 않았다. 초고가 기록이 연달아 나왔지만, 동시에 중저가 거래도 크게 늘었다. 시장은 겉으로는 하나처럼 보였지만, 내부에서는 이미 분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고가 시장과 중저가 시장은 같은 논리로 움직이지 않았다.

2023년 이후 조정 국면에 들어서면서 이 분화는 분명해졌다. 100만 달러 이상 작품은 경매장에서 거의 사라졌다. 기록은 줄었고, 헤드라인도 조용해졌다. 그러나 거래 자체는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5만 달러 이하, 혹은 그 인근 가격대에서 거래가 크게 늘었다. 이 구간은 현재 피카소 시장에서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는 영역이다.

이 가격대가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하다. 접근 가능하고, 반복 가능하다. 급등을 기대하지 않아도 되고, 급락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시장이 불안정할수록 이런 가격대의 의미는 커진다. 피카소 판화와 포쇼아가 다시 선택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Picasso SKETCHBOOK 최초 공개 예정, 에스티에스그룹 & 꾸바아트센터. 사진=에스티에스그룹 & 꾸바아트센터,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STS 피카소 작품 리스트를 보면 이 흐름은 더 분명해진다. 예를 들어 No.5 〈Portraits Imaginaires Ⅰ〉과 No.6 〈Portraits Imaginaires Ⅲ〉는 비교적 큰 사이즈의 판화이며, 이미지의 밀도도 높다. 그러나 이 작품들이 시장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초고가와는 거리가 멀다. 반복 제작된 에디션으로서 오랫동안 국제 시장에서 거래돼 왔고, 가격대는 비교적 안정적으로 형성돼 있다. 이 시리즈는 입문용 판화로 자주 언급되지만, 실제로는 단순한 입문을 넘어 시장의 기준점 역할을 한다.

Picasso SKETCHBOOK 최초 공개 예정, 에스티에스그룹 & 꾸바아트센터. 사진=에스티에스그룹 & 꾸바아트센터,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이 작품들의 중요한 특징은 ‘잘 팔린다’는 점이 아니라 ‘계속 팔린다’는 점이다. 거래가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여러 시장을 오가며 반복된다. 이런 성격은 지금의 시장에서 결정적인 장점이다. 고가 작품처럼 특정 시기를 기다릴 필요가 없고, 시장의 분위기에 따라 잠적하지도 않는다.

포쇼아 작품군은 이 가격대 분화를 더욱 분명하게 보여준다. STS 리스트의 No.8 〈PIERROT ET ARLEQUIN〉, No.9 〈Seated Woman with a Mandolin〉, 그리고 1955년 제작된 다수의 포쇼아 작품들은 공통된 구조를 갖는다.

Picasso SKETCHBOOK 최초 공개 예정, 에스티에스그룹 & 꾸바아트센터. 사진=에스티에스그룹 & 꾸바아트센터,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이 작품들은 크기가 크지 않고, 가격도 비교적 낮게 형성돼 있다. 그러나 이미지의 완성도는 결코 가볍지 않다. 피카소의 주요 도상이 응축돼 있고, 포쇼아 특유의 색감이 분명하다. 무엇보다 이 작품들은 오랫동안 같은 가격대에서 거래돼 왔다. 과열기에도 크게 오르지 않았고, 조정기에도 크게 떨어지지 않았다.

Picasso SKETCHBOOK 최초 공개 예정, 에스티에스그룹 & 꾸바아트센터. 사진=에스티에스그룹 & 꾸바아트센터,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이 점은 가격대 분화의 핵심을 보여준다. 고가 시장은 상징을 담당한다. 기록과 헤드라인을 만든다. 그러나 중저가 시장은 유통을 담당한다. 거래를 이어 가고, 시장을 실제로 움직인다. 지금의 피카소 시장에서 중심은 후자에 가깝다. 100만 달러는 상징으로 남았고, 5천 달러가 시장을 굴린다.

이 구조는 개인 컬렉터에게 유리하다. 100만 달러 시장은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다. 작품도, 타이밍도 제한적이다. 반면 5천 달러 전후의 시장은 선택지가 넓다. 작품의 성격, 크기, 도상을 비교할 수 있고, 자신의 생활 공간에 맞는 선택이 가능하다. 소장은 이 지점에서 비로소 현실이 된다.

중요한 것은 이 가격대가 ‘저가’가 아니라 ‘기능적인 가격대’라는 점이다. 이 구간의 작품들은 시장에서 역할을 갖는다. 거래를 이어 주고, 기준점을 제공한다. 시장이 불안정할수록 이런 역할은 더 중요해진다. 피카소 판화와 포쇼아는 이 역할을 오랫동안 수행해 왔다.

지금의 피카소 시장을 바라볼 때, 더 이상 위만 볼 필요는 없다. 오히려 아래를 봐야 한다. 거래가 어디에서 일어나고 있는지, 어떤 가격대가 실제로 움직이고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데이터는 이미 답을 내놓고 있다. 시장은 5만 달러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피카소를 소장한다는 선택은 더 이상 기록을 쫓는 일이 아니다. 구조를 읽고, 가격대를 이해하는 일이다. 100만 달러를 포기하는 순간, 선택지는 오히려 넓어진다. 지금의 시장은 그런 역설 위에 서 있다.

가격대가 갈라진 시장에서 살아남는 작품은 분명하다. 너무 비싸지도 않고, 너무 가볍지도 않다. 반복 거래가 가능하고, 이미지가 안정적이다. 지금 피카소 시장의 중심은 이 조용한 가격대에 있다. 그리고 이 가격대는 개인 컬렉터에게 가장 열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