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작품소장하기⑤]경매장 밖의 피카소: 비공개 거래의 기술
초고가 경매 이탈 현상 역이용. 갤러리 프라이빗 딜을 통한 합리적 구매 가능성. 경매를 벗어나자, 가격은 제자리를 찾았다 비공개 거래가 일상이 된 시장에서 개인 컬렉터가 유리해진 이유 2부: 어디서, 무엇을 살 것인가? (실전 전략편)
[KtN 박준식기자]피카소 작품을 산다는 말은 오랫동안 경매장을 전제로 했다. 공개된 장소에서 경쟁이 붙고, 낙찰가가 뉴스가 되는 구조 속에서 피카소의 가격은 만들어졌다. 가격은 숫자로 증명됐고, 그 숫자는 다시 다음 거래의 기준이 됐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실제 거래의 중심을 따라가 보면, 이 공식은 더 이상 성립하지 않는다. 피카소 시장의 무게중심은 이미 경매장 밖으로 이동했다.
2019년까지 경매장은 가격 형성의 핵심 공간이었다. 공개 경쟁이 붙을수록 작품의 가치는 강화됐고, 기록은 곧 신뢰로 작동했다. 이 구조에서는 조용한 거래가 설 자리가 많지 않았다. 비공개 거래는 예외였고, 공개 가격이 없는 작품은 설명이 부족하다고 여겨졌다.
2020년 팬데믹은 이 구조를 강제로 멈춰 세웠다. 오프라인 경매가 중단되면서 공개 경쟁의 무대가 사라졌고, 거래는 다른 경로를 찾기 시작했다. 갤러리 간 직거래, 개인 중개, 프라이빗 세일이 늘어났다. 중요한 변화는 경매가 재개된 이후에도 이 흐름이 되돌아가지 않았다는 점이다. 한 번 조용한 거래를 경험한 시장은 공개 경쟁의 필요성을 다시 묻기 시작했다.
2021년과 2022년, 초고가 기록이 쏟아지던 시기에도 비공개 거래는 줄지 않았다. 겉으로는 경매가 다시 중심이 된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역할 분담이 이뤄졌다. 기록을 만들 필요가 있는 일부 작품만 공개 경매에 나왔고, 상당수의 피카소 판화와 에디션은 경매 밖에서 움직였다. 공개 시장은 상징을 담당했고, 비공개 시장은 가격을 관리했다.
2023년 이후 조정 국면에 들어서면서 이 분리는 더욱 분명해졌다. 초고가 작품은 공개 경매에서 자취를 감췄고, 판화와 에디션 역시 굳이 경매에 나올 이유가 없어졌다. 이미 충분한 거래 이력과 가격대가 형성된 작품은 조용한 거래가 더 효율적이다. 경매를 거치면 가격 변동성이 커지고, 불필요한 기대가 덧붙는다. 비공개 거래는 이런 요소를 제거한다.
비공개 거래의 핵심은 경쟁의 제거다. 경쟁이 없으면 가격은 급격히 오르지 않는다. 대신 시장 평균에 가까운 지점에서 합의된다. 개인 컬렉터에게 이 구조는 분명히 유리하다. 기록을 만들 필요도 없고, 타인의 호가에 반응할 이유도 없다. 필요한 것은 작품의 성격과 그동안의 거래 흐름을 이해하는 일이다.
이 구조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가 STS 피카소 작품 리스트 중 No.4 〈Galerie Jorgen, l’Atelier〉다.
전후 시기의 작업실을 담은 이 작품은 상징적이지만 과장되지 않는다. 국제 시장에서 오랫동안 반복 거래돼 왔고, 가격 변동은 완만했다. 특정 시기에 급등하거나 급락한 이력이 없다. 이런 성격의 작품은 경매보다 비공개 거래에서 더 자연스럽게 가격이 형성된다. 설명이 필요 없고, 경쟁을 유도할 이유도 없다.
같은 맥락에서 No.3 〈L’atelier de Cannes〉 역시 비공개 거래에 적합한 기준점이다.
피카소의 성숙기를 상징하는 이미지지만, 대형 회화처럼 부담스럽지 않다. 반복 유통을 통해 이미 시장에서 성격이 규정돼 있다. 이런 작품은 공개 경쟁 없이도 충분히 거래된다. 오히려 조용한 환경에서 가격이 더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비공개 거래가 늘어난 또 하나의 이유는 정보 환경의 변화다. 과거에는 경매가 가격 정보를 독점했다. 이제는 최근 거래 사례와 가격 흐름을 비교적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가격은 이미 설명돼 있다. 굳이 공개 경쟁을 통해 다시 증명할 필요가 없다. 이 변화는 비공개 거래를 폐쇄적인 선택이 아니라 합리적인 선택으로 바꿔 놓았다.
현재의 비공개 거래는 과거와 성격이 다르다. 정보는 열려 있고, 가격은 비교 가능하다. 다만 거래 과정이 조용할 뿐이다. 이 조용함이 가격을 안정시킨다. 기록을 만들지 않는 대신, 변동성을 줄인다. 개인 컬렉터에게는 이 점이 결정적인 장점이다.
지금의 피카소 시장에서 경매는 선택지 중 하나일 뿐이다.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은 아니다. 특히 3천만 원 전후의 예산으로 판화와 에디션을 고려하는 경우라면, 비공개 거래는 오히려 기본 경로에 가깝다. 작품의 성격과 거래 이력을 이해한 뒤 조용히 결정하는 방식이 더 합리적이다.
파블로 피카소의 판화와 에디션은 이런 거래 구조에 잘 맞는다. 기록이 없어도 설명되고, 경쟁이 없어도 거래된다. 시장이 불안정할수록 이런 성격은 더 큰 힘을 발휘한다.
경매장 밖에서 가격은 제자리를 찾는다. 기대도, 과장도 줄어든다. 남는 것은 작품과 그동안 쌓인 거래의 흔적이다. 지금의 피카소 시장은 바로 이 지점에 와 있다. 비공개 거래는 숨겨진 길이 아니다. 이미 가장 많이 사용되는 길이다. 그리고 개인 컬렉터에게는 그 길이 가장 안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