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작품소장하기⑧]위기에 강한 도상: '비둘기'를 사야 하는 이유

불확실한 시장에서 상징성이 강한 이미지가 갖는 가격 방어력. 위기에는 도상이 남는다 불확실한 시장에서 ‘비둘기’가 가격을 지켜온 이유 3부: 실패하지 않는 컬렉팅의 원칙 (리스크 관리편)

2026-02-10     박준식 기자
사진=에스티에스그룹 & 꾸바아트센터,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박준식기자]미술 시장이 흔들릴 때 가장 먼저 변하는 것은 취향이다. 과열기에는 강한 이미지가 선택되고, 조정기에는 자극이 사라진다. 최근 몇 년의 흐름을 돌아보면 이 변화는 반복됐다. 가격이 흔들릴수록 시장은 복잡한 서사를 피하고, 설명이 필요 없는 이미지를 찾았다. 이때 다시 힘을 얻는 것이 도상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비둘기가 있다.

2019년까지 시장은 실험에 관대했다. 낯선 형식, 공격적인 메시지, 과도한 해석이 가격으로 이어졌다. 이미지의 강도가 곧 경쟁력이었다. 그러나 2020년 이후 상황은 달라졌다. 불확실성이 커지자 시장은 직관적인 이미지를 선호하기 시작했다. 화면을 보는 순간 이해되는 도상, 문화권을 넘어 같은 의미로 읽히는 이미지가 선택됐다.

2021년과 2022년의 과열 국면에서도 이 경향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기록이 쏟아지는 와중에도 고가 거래에서는 설명이 덜 필요한 이미지가 선호됐다. 가격이 높아질수록 도상은 단순해졌다. 이는 취향의 후퇴가 아니라 위험 회피였다. 많은 돈이 오갈수록 해석의 여지는 줄어든다.

2023년 이후 조정 국면에 들어서면서 도상의 역할은 더 분명해졌다. 실험적인 이미지는 빠르게 사라졌고, 검증된 상징이 다시 전면에 등장했다. 평화, 인물, 정물 같은 보편적 이미지가 거래를 이어 갔다. 시장은 더 이상 새로운 메시지를 요구하지 않았다. 이해 가능한 이미지를 통해 가격을 방어하려 했다.

이 흐름을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작품이 STS 피카소 작품 리스트 중 No.1 〈The Rainbow Dove〉다.

Picasso / 피카소The Rainbow Dove (무지개 비둘기). 사진=에스티에스그룹 & 꾸바아트센터,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이 작품은 ‘무지개 비둘기’라는 이름 그대로 평화를 상징한다. 정치적 맥락을 넘어, 전 세계 어디서나 같은 방식으로 읽힌다. 설명이 필요 없고, 거부감도 적다. 이런 성격은 시장에서 결정적인 장점으로 작용한다. 과열기에도 급등하지 않았고, 조정기에도 급락하지 않았다. 가격은 조용히 유지됐고, 거래는 멈추지 않았다.

비둘기 도상의 힘은 바로 여기에 있다. 의미가 명확할수록 해석의 분산이 줄어든다. 해석이 줄어들수록 가격은 안정된다. 개인 컬렉터에게 이 안정성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작품을 걸어두고 시간이 지나도 설명이 필요 없고, 시장 상황이 바뀌어도 이미지의 의미는 변하지 않는다.

도상의 힘은 비둘기에서만 나타나지 않는다. 같은 리스트에 포함된 No.25 〈GATTO CHE ADDENTA UN UCCELLO〉 역시 상징적이다.

Picasso / 피카소GATTO CHE ADDENTA UN UCCELLO 새를 물고 있는 고양이. 사진=에스티에스그룹 & 꾸바아트센터,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이 작품은 고양이가 새를 물고 있는 장면을 담고 있다. 서사는 단순하지만 강하다. 생존과 긴장이라는 보편적 상황이 즉각적으로 전달된다. 이 작품 역시 해석의 폭이 넓지 않다. 그래서 가격은 과장되지 않고, 거래는 이어진다. 도상이 강한 작품이 위기에 강한 이유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다.

이 두 작품은 서로 다른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시장에서 수행하는 역할은 같다. 설명이 필요 없고, 의미가 고정돼 있으며, 반복 거래가 가능하다. 이런 조건은 불확실한 시장에서 가장 강력한 방어 장치가 된다. 유행이 사라져도 도상은 남는다.

컨템퍼러리 시장에서 많은 이미지가 빠르게 소비되는 이유는 의미가 과잉되기 때문이다. 해석이 많을수록 가격은 기대에 의존한다. 기대가 꺼지면 가격은 흔들린다. 반면 도상 중심의 작품은 기대보다 축적된 거래에 의존한다. 가격은 흥분하지 않고, 거래는 지속된다.

지금의 시장은 다시 이 기본으로 돌아가고 있다. 화려한 서사보다 안정적인 이미지, 새로운 메시지보다 검증된 상징이 선택된다. 이는 보수화가 아니라 현실화다. 시장이 넓어질수록 공통분모는 중요해진다. 도상은 그 공통분모를 제공한다.

파블로 피카소가 남긴 수많은 이미지 중에서도 비둘기가 반복해서 선택되는 이유는 분명하다. 평화라는 상징은 시대를 타지 않는다. 위기에는 더 강해진다. 시장이 흔들릴수록, 이 단순한 도상은 오히려 힘을 얻는다.

개인 컬렉터에게 이 점은 명확한 기준이 된다. 지금처럼 불확실성이 큰 시기에는 메시지가 강한 작품보다 의미가 고정된 작품이 안전하다. 비둘기는 장식이 아니다. 시장이 선택해 온 방어 장치다.

위기는 언제나 지나간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어떤 이미지가 남았는지는 기록으로 남는다. 지난 수십 년의 거래 흐름은 한 가지를 말해준다. 시장이 흔들릴수록, 결국 도상이 남는다. 그리고 그 도상의 맨 앞에 비둘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