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정치⑤] ‘모두의 AI’를 말한 두 나라, 기술동맹은 어떻게 생활이 되는가

싱가포르 AI 서밋이 남긴 국가 전략의 방향 대통령 세일즈외교

2026-03-03     임우경 기자

 

[KtN 임우경기자]싱가포르에서 열린 ‘한-싱 AI 커넥트 서밋’은 정상회담의 연장선이면서도 결이 달랐다. 회담장이 정부와 정부의 공간이었다면, 이 자리는 기업과 연구자, 청년 혁신가가 모인 현장이었다. 외교 문장이 아니라 산업의 언어가 오갔다. 그럼에도 이 장면은 이번 국빈 방문 전체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열쇠가 된다. 문화로 문을 열고 제도로 틀을 세웠다면, AI 서밋은 그 틀 안에 무엇을 채울지 보여준 자리였다.

이재명 대통령은 모두 발언에서 인공지능을 “문명사적 전환의 중심”이라고 규정했다. 산업 구조와 일자리, 일상까지 바꾸는 핵심 동력이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표현은 익숙하지만, 이번 방문에서 눈에 띄는 점은 기술 담론이 외교의 한복판으로 들어왔다는 사실이다. 안보와 통상, 에너지 협력과 나란히 AI가 자리 잡았다. 기술은 더 이상 부속 의제가 아니다. 국가 전략의 전면에 놓였다.

양국은 ‘AI 협력 프레임워크’ 체결을 추진하기로 했다. 피지컬 AI 기반 산업 혁신, 실생활 적용 확대, 공동연구와 투자 확대가 핵심이다. 공공안전 분야 인공지능 및 디지털 기술 협력 MOU, 지식재산 강화 협력 MOU도 함께 체결됐다. 이는 단순한 기술 교류가 아니라 제도와 규범을 포함한 협력이다. 연구와 산업, 행정 서비스가 동시에 움직여야 실질이 생긴다.

특히 눈길을 끈 대목은 2030년까지 싱가포르에 3억 달러 규모의 글로벌 모펀드를 조성하겠다는 구상이다. 한국 벤처 생태계와 싱가포르 금융 허브가 연결되는 구조다. 자본은 기술을 가속한다. 스타트업이 국경을 넘어 성장하려면 투자와 네트워크가 필수다. 이번 구상은 양국의 AI 기업이 동남아 시장과 글로벌 시장을 동시에 겨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싱가포르는 인공지능 정책과 데이터 활용에서 빠르게 움직여온 나라다. 도시 전체를 실험장처럼 활용하며 디지털 행정을 확장해 왔다. 한국은 반도체와 통신 인프라, 제조 역량을 바탕으로 AI 산업을 키워왔다. 두 나라의 결합은 상호 보완적이다. 한쪽은 금융과 글로벌 네트워크, 다른 한쪽은 산업 기반과 기술 인력을 갖췄다. 협력의 여지가 크다.

그러나 기술동맹은 선언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인재 교류와 공동 연구, 표준 정립, 데이터 규범까지 이어져야 한다. 이 대통령은 내년부터 국제 공동연구와 인재 교류를 본격화하겠다고 밝혔다. 기업과 대학, 스타트업이 참여하는 ‘인공지능 얼라이언스’도 출범했다. 이는 정부 간 합의를 산업 현장으로 끌어내리는 장치다.

이번 방문에서 흥미로운 지점은 ‘모두의 AI’라는 표현이다. 특정 기업이나 집단의 전유물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혜택을 누리는 구조를 지향한다는 뜻이다. 싱가포르 역시 사람을 중심에 둔 포용적 AI 정책을 강조해왔다. 기술 발전이 불평등을 심화시키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문제는 양국 모두에게 과제다.

 

공공안전 분야 AI 협력은 그 상징적 사례다. 치안과 행정 서비스에 인공지능을 도입하면 효율성은 높아질 수 있다. 동시에 개인정보 보호와 윤리 문제도 뒤따른다. 양국이 지식재산과 디지털 기술 협력 MOU를 체결한 배경에는 이러한 고민이 깔려 있다. 기술 경쟁은 빠르지만, 신뢰를 잃으면 지속되기 어렵다.

AI 서밋은 기업인과 연구자, 청년 혁신가가 함께 모인 자리였다. 이는 외교의 주체가 정부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뜻이다. 기술동맹은 현장에서 구현된다. 연구실과 창업 공간, 데이터 센터에서 성과가 나와야 한다. 국빈 방문이 산업 현장과 연결될 때, 외교는 선언을 넘어 동력이 된다.

이번 싱가포르 방문을 관통하는 흐름은 분명하다. 문화로 신뢰를 쌓고, 제도로 틀을 만들고, 기술과 자본으로 미래를 설계하는 방식이다. AI 서밋은 그 마지막 단계에 해당한다. 문화적 친숙함이 기업과 연구자의 교류를 촉진하고, 제도적 합의가 투자와 연구를 뒷받침한다.

기술은 차갑지만, 그 기술을 움직이는 것은 사람이다. 사람은 신뢰 속에서 협력한다. 싱가포르에서의 AI 서밋은 양국이 기술 경쟁의 시대에도 신뢰를 전제로 한 협력을 선택했음을 보여준다.

앞으로의 과제는 분명하다. 모펀드가 실제 투자로 이어지는지, 공동연구가 특허와 제품으로 결실을 맺는지, 공공 분야 AI 협력이 시민의 삶을 개선하는지 지켜봐야 한다. 외교의 성과는 현장에서 검증된다.

그럼에도 이번 방문이 남긴 방향은 분명하다. 인공지능을 외교의 중심 의제로 끌어올리고, 문화와 제도, 자본을 엮어 기술동맹의 틀을 세웠다. ‘모두의 AI’를 말한 두 나라는 이제 그 말을 실천으로 증명해야 한다. 싱가포르에서 시작된 이 협력이 생활의 변화로 이어질 수 있을지, 다음 장면은 현장에서 열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