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트렌드①] 상파울루 중심가에 걸린 한국 민화 100여 점…문화원과 쇼핑몰 잇는 전시 실험
브라질 상파울루서 4월 26일까지 특별전 전통 민화부터 궁중회화·병풍까지 100여 명 작가 참여 문화원과 상업공간을 한 동선으로 묶어 한국 전통회화의 접점을 넓혔다
[KtN 박준식기자]브라질 상파울루 중심가에서 한국 민화를 만나는 일이 낯선 풍경만은 아니게 됐다. 한류를 좇아 한국 음식과 음악, 드라마를 찾는 흐름은 이미 브라질 대도시 곳곳에 자리를 잡았다. 다만 전통회화가 상업시설과 공공 전시공간을 함께 쓰며 도시의 일상 동선 안으로 들어온 경우는 흔치 않았다. 주브라질한국문화원과 Shopping Center 3가 마련한 특별전 ‘민화로 떠나는 여정 – 두 공간, 하나의 경험’은 바로 그 지점에서 눈길을 끈다. 전시는 지난 3월 8일 문을 열었고 4월 26일까지 이어진다. 공동 주최는 민화 전문 월간지 ‘월간 민화’가 맡았다.
전시의 외형은 분명하다. 작가 100여 명이 참여했고, 출품작도 100여 점에 이른다. 조선시대 민화의 형식과 색채를 따르는 작품부터 전통 양식을 바탕에 두고 현대적 화면 감각을 더한 작업, 궁중회화, 병풍 형식의 대작까지 폭이 넓다. 규모도 작지 않다. 다만 이번 전시를 설명할 때 더 먼저 짚어야 할 대목은 숫자보다 배치 방식이다. 전시장은 문화원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 상파울루 중심가 쇼핑몰과 문화원 두 곳에 나뉘어 놓였다. 관람객은 두 공간을 오가며 전시를 이어서 보게 된다. 기획 의도도 여기에 맞춰져 있다. 한 장소에 작품을 모아 걸기보다 성격이 다른 공간을 묶어 관람 경험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문화원은 한국 전통예술의 맥락을 설명하기에 적합한 장소다. 반면 쇼핑몰은 설명보다 시선이 먼저 움직이는 곳이다. 전시를 찾아온 관람객보다 우연히 지나치는 방문객이 더 많다. 이번 전시는 바로 그 차이를 활용했다. 문화원에서는 전통회화를 차분히 들여다볼 수 있고, 쇼핑몰에서는 생활 동선 속에서 민화를 먼저 마주치게 된다. 공공 문화공간과 상업공간을 한 묶음으로 쓰는 방식은 해외 한국문화 행사에서도 자주 보이는 형식은 아니다. 한국 전통미술을 이미 알고 있는 사람보다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도 전시가 닿도록 설계했다는 점에서 실험적 성격이 있다.
상파울루라는 도시가 지닌 성격도 이 전시에 무게를 더한다. 상파울루는 남미 최대 경제도시 가운데 하나이자 상업과 금융, 패션, 문화가 촘촘히 맞물린 곳이다. 유동 인구가 많은 중심가 쇼핑몰에서 어떤 전시가 보인다는 사실은 곧 어떤 문화가 도시의 시야 안으로 들어왔는가를 보여준다. 그런 장소에 한국 민화가 들어섰다는 사실은 단순한 해외 순회전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한국 전통회화가 박물관 안의 유물이나 기념행사성 볼거리에 머무르지 않고, 도시 생활의 한 장면으로 배치됐기 때문이다. 물론 전통예술이 상업공간에 놓였다고 해서 곧바로 대중적 정착으로 이어진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관람의 문턱을 낮추는 방식으로는 분명 효과적인 선택으로 읽힌다.
출품작 구성을 들여다보면 전시가 민화를 좁게 정의하지 않으려 했다는 점도 보인다. 까치호랑이, 책가도, 화조도처럼 익숙한 도상이 민화의 대표 이미지로 소비되는 경우가 많지만, 이번 전시는 그런 몇 가지 상징에만 기대지 않는다. 조선시대 민화의 미감을 비교적 충실히 따르는 작업과 현재의 조형 감각을 더한 작업을 함께 놓고, 궁중회화까지 범주 안에 들였다. 전통회화를 하나의 정답으로 고정해 보여주기보다 화면의 결이 어떻게 이어지고 달라졌는지 보여주려는 구성에 가깝다. 한국 안에서도 민화는 이미 오래된 회화 양식이면서 동시에 동시대 작가들이 새로 다루는 장르가 됐다. 이번 전시는 그런 현실을 해외 전시장으로 옮겨 놓은 사례로 볼 수 있다.
병풍 형식의 대형 작품 3점을 내건 점도 눈에 띈다. 병풍은 한 폭짜리 액자 그림과는 다른 감각을 만든다. 그림을 보는 동시에 공간을 마주하게 한다. 폭마다 화면이 이어지면서 관람객의 시선도 자연스럽게 좌우로 움직인다. 생활 공간과 회화가 분리되지 않았던 전통의 쓰임새도 드러난다. 해외 관람객에게는 한국 전통회화의 물성을 전달하는 장치가 될 수 있다. 민화가 상징과 문양 중심의 평면 이미지로만 소비되지 않고, 실제 공간과 관계를 맺던 시각문화였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다만 병풍은 설치 방식에 따라 인상이 크게 달라지는 만큼 현장 연출의 완성도가 중요하다. 전시 의도를 살리려면 작품 자체뿐 아니라 놓이는 자리의 밀도도 함께 따라줘야 한다.
개막식에는 현지 문화예술 관계자와 언론, 인플루언서 등 약 70명이 참석했다. 현지 매체와 온라인 콘텐츠 생산자를 초청하는 방식은 낯설지 않다. 전시 홍보를 위해 필요한 절차이기도 하다. 다만 민화는 사진과 짧은 영상 안에서도 시각적 인상이 비교적 또렷하게 남는 장르다. 호랑이와 까치, 책과 꽃, 강한 색면과 문양은 화면에 담겼을 때도 식별력이 높다. 전시 현장을 찾은 현지 언론과 콘텐츠 제작자들이 어떤 작품을 먼저 포착하고 어떤 맥락으로 소개하느냐에 따라 민화에 대한 첫 인상도 달라질 수 있다. 해외 전시에서 초기 노출 방식이 중요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
전시를 큐레이팅한 유정서 대표는 브라질에서 열리는 첫 민화 전시인 만큼 작품의 우열을 가리기보다 한국 현대 민화의 다양한 면모를 보여주는 데 중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이 발언은 전시의 장점과 한계를 함께 드러낸다. 장점부터 보자면, 특정 작풍이나 특정 도상만 앞세우지 않고 민화의 폭을 보여주려 했다는 점이다. 전통 민화, 현대 민화, 궁중회화를 함께 두면 한국 전통회화의 결을 넓게 전달할 수 있다. 반대로 범위가 넓어질수록 전시의 초점이 흐려질 가능성도 있다. 민화에 익숙하지 않은 관람객에게는 장르 구분이 모호하게 다가올 수 있어서다. 전시가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데 성공하려면 작품 배열과 설명의 밀도가 이를 충분히 뒷받침해야 한다.
브라질을 위해 별도로 제작한 손현정 작가의 ‘Vamos ser amigos!(친구하자)’는 이번 전시의 현지 지향성을 가장 분명하게 드러내는 작품이다. 한국 전통 민화의 요소 위에 브라질 축구 이미지를 겹쳐 놓았다. 꽃신에는 운동화 끈이 더해졌고, 축구공에는 단청 무늬가 들어갔다. 배경에는 전통 문양이 깔렸다. 브라질 관람객에게 익숙한 상징을 끌어와 낯선 회화 양식의 진입 장벽을 낮추려는 의도가 읽힌다. 해외 전시에서 현지 상징을 차용하는 방식은 자칫 피상적인 장식으로 흐르기 쉽다. 관건은 전통 이미지와 현지 소재가 얼마나 자연스럽게 맞물리느냐에 있다. 보도자료에 적힌 현장 반응만으로 성과를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전시가 브라질이라는 장소성을 의식하고 구성됐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전시장 바깥 프로그램도 적지 않다. 유정서 대표와 김민 동덕여대 겸임교수, 송창수 동덕여대 민화학과 교수가 브라질을 찾아 ESPM 대학과 USP 대학에서 특별 강연을 진행했고, 개막식과 문화원 현장에서는 일반 관람객과 문화예술 관계자를 상대로 워크숍도 열었다. 전시가 작품 감상에서 끝나지 않도록 학술과 체험을 함께 얹은 셈이다. 해외 문화행사에서 강연과 워크숍은 흔한 부대행사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성격이 다르다. 전시는 눈으로 지나가지만, 강연과 체험은 관람객을 머물게 한다. 낯선 장르일수록 설명과 체험의 비중이 중요해진다. 민화처럼 상징 체계와 역사적 맥락이 겹쳐 있는 장르는 더 그렇다.
대학 강연이 열린 장소도 가볍게 볼 대목은 아니다. ESPM과 USP는 브라질에서 각각 문화산업과 학술 연구의 접점이 두터운 교육기관으로 꼽힌다. 한국 민화와 한국미술사를 주제로 강연이 마련됐다는 사실은 전시가 단순 소개 행사를 넘어 학술적 관심과 만나는 단계로 들어섰다는 뜻이기도 하다. 물론 몇 차례 강연이 곧바로 연구 확산이나 교육과정 편입으로 이어진다고 볼 수는 없다. 다만 한류가 대중문화 소비에 머무르지 않고 전통예술과 미술사 영역으로 번지는 징후로는 읽을 수 있다. 한국문화를 다루는 브라질 내 접점이 공연과 영상 콘텐츠에서 시각예술과 교육 프로그램으로 넓어지는 과정 가운데 이번 전시가 놓여 있다고 보는 편이 타당하다.
주브라질한국문화원이 이번 전시를 통해 드러낸 방향도 분명하다. 문화원은 2013년 상파울루에 설립된 뒤 공연과 영화, 전시, 강좌를 통해 브라질 안에서 한국문화를 소개해 왔다.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프로그램을 꾸준히 운영해 온 기관이기에 민화처럼 다소 낯선 장르도 현지 관객에게 내놓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이번 전시를 문화교류의 성과로만 받아들이는 데서 멈출 필요는 없다. 오히려 지금 더 중요한 대목은 한국 전통미술이 해외에서 어떤 방식으로 소개돼야 하는지를 가늠하는 데 있다. 문화원 내부에만 머물면 설명은 충분해도 관객층이 제한되기 쉽고, 상업공간에만 놓이면 맥락이 약해질 수 있다. 이번 전시는 바로 그 사이를 잇는 방식을 택했다.
김철홍 주브라질한국문화원장은 두 공간을 하나의 전시 흐름으로 연결해 다양한 관람객이 자연스럽게 전시를 경험하도록 한 것이 이번 기획의 중심이라고 밝혔다. 발언의 무게는 과장 없이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전통예술의 해외 전시는 대개 두 방향 가운데 하나를 택한다. 전문성을 높여 맥락을 충실히 설명하거나, 문턱을 낮춰 대중 접근성을 끌어올리거나 하는 식이다. 이번 전시는 두 방향을 함께 붙잡으려 했다. 문화원은 설명의 밀도를 맡고, 쇼핑몰은 접근성을 맡는다. 의도는 분명하지만 성패는 결국 관람객이 두 공간을 실제로 오가느냐, 그리고 두 장소가 각각 어떤 인상과 이해를 남기느냐에 달려 있다.
상파울루 전시를 지나치게 앞서 평가할 필요는 없다. 해외에서 한국 전통예술 전시가 열렸다는 사실만으로 문화적 성과를 크게 부풀리는 태도는 저널리즘의 거리 감각과는 맞지 않는다. 아직 확인해야 할 대목도 많다. 현지 관람객이 어느 정도로 유입됐는지, 쇼핑몰과 문화원을 잇는 동선이 실제로 작동했는지, 전시가 끝난 뒤 민화에 대한 관심이 어떤 방식으로 남을지는 시간을 두고 봐야 한다. 그럼에도 이번 전시가 주목할 만한 이유는 분명하다. 한국 전통회화를 브라질 도심의 일상 공간 안에 배치했고, 감상과 설명, 체험을 한 줄기로 묶으려 했다는 점이다. 홍보 문구를 걷어내고 보더라도, 형식 면에서는 충분히 들여다볼 만한 시도다.
전시가 놓인 시점도 무심히 넘길 일은 아니다. 브라질에서 한류는 더 이상 낯선 외부 유행이 아니다. K팝과 드라마, 음식, 뷰티를 거치며 일정한 수요층을 만들었다. 이제 관심은 전통문화와 시각예술로도 번지고 있다. 다만 대중문화와 달리 전통회화는 언어와 맥락 설명 없이는 쉽게 닿기 어려운 분야다. 그래서 더더욱 전시 형식이 중요하다. 무엇을 걸었는가만큼 어디에 걸었는가, 어떻게 설명했는가가 성패를 가른다. 상파울루의 이번 전시는 바로 그 문제를 정면에서 다룬 사례다. 문화원에만 머무르지 않았고, 쇼핑몰에만 기대지도 않았다. 두 장소를 묶어 관람의 문턱과 이해의 밀도를 함께 조절하려 했다.
민화는 원래 생활 가까이에 있던 그림이었다. 책과 꽃, 새와 짐승, 길상과 염원을 담은 상징이 집 안의 벽과 병풍, 가구 주변에 놓였다. 그런 그림이 오늘 상파울루의 쇼핑몰과 문화원으로 들어간 장면은 낯설면서도 묘하게 어울린다. 전통회화를 제단 위에 올려놓듯 대하기보다 생활 공간 안으로 다시 들여놓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물론 해외의 상업공간과 조선시대 생활 공간을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 다만 민화가 원래 지녔던 생활성과 장식성, 상징성이라는 측면에서는 지금의 전시 환경과 맞닿는 부분이 있다. 이번 전시가 새삼 흥미로운 까닭도 여기에 있다.
이번 상파울루 전시는 한 문장으로 정리된다. 한국 민화를 브라질 도심의 두 공간에 나눠 걸고, 그 사이를 관람객이 직접 오가게 만든 전시다. 설명만 앞세우지도 않았고, 구경거리로만 소비되게 두지도 않으려 했다. 전통회화를 생활 공간 가까이 끌어당기면서도 강연과 워크숍으로 맥락을 보충했다. 그 기획이 얼마나 오래 남을 성과로 이어질지는 아직 단정할 수 없다. 다만 한국 전통미술이 해외 도시 한복판에서 어떤 방식으로 관객을 만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사례라는 점만은 남는다. 상파울루 도심에서 민화는 지금 전시장 벽면에만 걸린 것이 아니라, 도시의 일상 동선 안으로 한 걸음 들어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