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트렌드②] 명의 한 사람으로는 더 못 버틴다…병원이 ‘팀 진료’로 갈아타는 이유

맥킨지 보고서가 짚은 의료 접근성 해법의 중심은 역할 재배치였다 전문의는 고난도 판단에 남기고, 수술 전후 관리와 만성질환 추적은 팀으로 나눌 때 병원 흐름이 달라진다

2026-03-13     정석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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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N 정석헌기자]큰 병원일수록 유명한 의사 한 사람의 이름은 강력하다. 환자는 그 이름을 믿고 먼 길을 오고, 병원은 그 이름으로 신뢰를 얻는다. 오랜 시간 한국 의료를 떠받친 것도 결국 사람의 숙련과 평판이었다. 그러나 진료 수요가 더 많아지고 환자 상태가 더 복잡해진 지금, 한 사람의 역량만으로 병원 전체의 막힌 흐름을 풀 수 있는 단계는 이미 지나가고 있다. 외래는 밀리고, 수술 일정은 늦어지고, 의료진은 지친다. 같은 의사에게 더 많은 환자를 붙이는 방식으로는 이 악순환이 풀리지 않는다. 의료 접근성을 넓히는 해법은 의사를 더 쥐어짜는 데 있지 않고, 의사 한 사람에게 몰린 역할을 다시 나누는 데 있다.

2026년 2월 맥킨지 보고서가 짚은 대목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 의료 접근성 문제를 푸는 첫 단계는 병상 증설이나 새 건물보다 진료 모델을 다시 짜는 일이라는 것이다. 보고서는 의사 일정의 10%에서 30%가 꼭 그렇게 운영하지 않아도 되는 방문으로 채워져 있다고 봤다. 준비가 덜 된 채 잡힌 방문, 다른 직역이 맡아도 되는 추적관리, 굳이 전문과 외래까지 오지 않아도 되는 일정이 적지 않다는 뜻이다. 여기에 더해 2025년 의사 설문에서 응답자들은 환자 진료 시간 가운데 평균 42%는 다른 팀원이 맡을 수 있다고 답했다. 이 수치는 단순한 인건비 절감의 논리가 아니다. 가장 비싸고 가장 희소한 의사 시간을 정말 의사가 해야 하는 일로 돌려놓으라는 신호에 가깝다.

‘팀 진료’라는 말은 한국 의료 현장에서도 낯설지 않다. 다만 현실에서는 같은 말을 두고도 서로 다른 장면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누군가는 의사의 권한을 다른 직역에 넘기는 논쟁으로 받아들이고, 누군가는 행정인력을 더 붙이는 운영 개편 정도로 생각한다. 실제 병원 운영에서 팀 진료는 그보다 훨씬 구체적이다. 환자 상태를 기준으로 진료 구간을 나누고, 구간마다 가장 적절한 사람을 배치하는 일에 가깝다. 처음 진단을 내리고 치료 방향을 결정하는 순간, 합병증 위험이 높아 판단이 무거운 순간, 수술 여부를 갈라야 하는 순간은 전문의가 오래 붙들어야 한다. 반면 수술 전 설명의 일부, 회복기 추적, 복약 점검, 생활 습관 상담, 문서 정리, 재진 일정 조정, 검사 준비 확인 같은 일은 다른 팀이 더 체계적으로 맡을 수 있다. 병원은 그동안 서로 성격이 다른 이런 일들을 한 사람 시간표 안에 함께 넣어 왔다. 진료가 늦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수술실을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외과 의사에게 가장 중요한 자산은 결국 수술실에서 쓰는 시간이다. 그런데 수술 전후의 상당한 관리 업무가 같은 의사의 외래와 일정표에 함께 묶여 있으면, 정작 수술실에 쓸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든다. 맥킨지 보고서는 상급실무인력이나 다른 팀원이 수술 전후 관리를 더 맡으면 외과 의사가 수술 시간을 늘릴 수 있고, 그만큼 전체 환자의 수술 접근성도 넓어진다고 봤다. 한국 대형병원에서 흔히 보는 장면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수술을 기다리는 환자는 많은데 외래 진료실에서는 수술 전 설명, 수술 뒤 경과 확인, 약 조정, 문서 작성까지 한 의사가 다 떠안는다. 수술을 가장 많이 해야 하는 사람이 정작 수술 외 업무에 시간을 뺏기는 셈이다. 팀 진료는 이 비효율을 건드린다. 수술대에 올라야 할 시간을 진료실 뒤편 잡무가 잠식하지 못하게 하는 방식이다.

만성질환 관리에서도 같은 원리가 적용된다. 안정적으로 조절되는 고혈압이나 당뇨 환자가 상급종합병원 세부 전문과 외래를 계속 차지하고 있으면, 더 급하고 복잡한 환자는 대기열 뒤로 밀린다. 보고서는 안정적이고 복잡하지 않은 고혈압 환자는 일차의료 의사가 계속 관리할 수 있다고 적었다. 그러면 심장내과는 더 예민하고 더 급한 환자에게 시간을 내줄 수 있다. 이 구조가 자리 잡으면 환자가 손해를 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필요한 사람에게 더 빠른 전문 진료가 돌아간다. 문제는 한국 의료에서 이 당연한 흐름이 자주 막힌다는 점이다. 환자는 상급병원을 더 믿고, 병원은 유명 교수 외래를 접점으로 환자를 붙들려 한다. 회송과 공동관리가 제도와 신뢰의 뒷받침을 충분히 받지 못하면, 전문과 외래는 결국 ‘정말 필요한 환자’와 ‘굳이 여기까지 오지 않아도 되는 환자’를 함께 안게 된다.

팀 진료가 제대로 굴러가려면 단순히 일을 나누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무엇보다 진료의 기준이 분명해야 한다. 환자를 상태별로 분류하지 않은 채 역할만 기계적으로 넘기면 오히려 혼선이 커진다. 어떤 환자는 처음부터 전문과로 바로 가야 하고, 어떤 환자는 일차의료에서 충분히 볼 수 있으며, 어떤 환자는 두 체계가 함께 관리해야 한다. 증상만이 아니라 질환의 안정도, 합병증 위험, 복약 상태, 사회적 취약성까지 살펴 경로를 짜야 한다. 이 분류가 정교하지 않으면 팀 진료는 효율이 아니라 불안으로 받아들여진다. 환자에게는 ‘돌려보냈다’는 인상이 남고, 의료진에게는 ‘책임만 흩어졌다’는 불만이 쌓인다. 팀 진료의 성패는 사람을 많이 붙이는 데 있지 않고, 누구를 어떤 경로로 보낼지 선명하게 가르는 데 있다.

이 지점에서 병원은 대개 두 가지 벽과 마주한다. 하나는 직역 간 역할 경계이고, 다른 하나는 환자 신뢰다. 역할 경계는 제도와 현장 관행이 뒤엉킨 문제다. 어디까지를 누가 맡을 수 있는지, 최종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지, 어떤 기록과 지시 체계로 움직일 것인지가 정리되지 않으면 팀 진료는 오래가지 못한다. 하루하루 바쁜 현장에서는 애매한 구조가 가장 먼저 무너진다. 누가 해도 되는 일은 결국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일이 되기 쉽고, 반대로 누구나 조금씩 손대는 일은 정작 가장 숙련된 사람의 시간을 계속 잡아먹는다. 그래서 팀 진료는 사람을 더 뽑는 문제이기 전에 업무를 다시 정의하는 문제다. 각 직군이 하루 동안 무엇을 맡고, 무엇은 맡지 않으며, 문제가 생기면 어떤 경로로 다시 전문의 판단으로 올라오는지 명료하게 그려야 한다.

환자 신뢰는 더 까다롭다. 병원 밖에서 환자가 체감하는 현실은 매우 단순하다. 아프면 가장 잘 보는 의사를 만나고 싶다는 것이다. 병원은 효율을 말하지만, 환자는 안심을 먼저 찾는다. 이 간극을 무시하면 팀 진료는 시작부터 벽에 부딪힌다. 실제로 환자 입장에서는 의사가 아니라 다른 팀원이 자신을 자주 보게 되는 순간, 진료의 질이 낮아지는 것 아니냐는 불안을 느끼기 쉽다. 그래서 병원이 해야 할 일은 ‘굳이 교수 안 봐도 된다’고 밀어붙이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처음 한 번은 환자가 신뢰하는 의사가 진료 흐름을 설명하고, 이후 어떤 팀원이 어떤 구간을 맡는지 납득시켜야 한다. 맥킨지 보고서도 환자 선택을 막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임상적으로는 다른 경로가 더 적절하더라도 환자가 이해하고 동의하는 과정이 따라야 한다는 뜻이다. 효율은 설명이 빠진 자리에서 오래 유지되지 않는다.

병원 내부 문화도 큰 변수다. 오랜 시간 한국 병원은 전문의 한 사람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구조에 익숙했다. 외래 일정, 입원 판단, 검사 지시, 퇴원 설명, 추적관리, 보호자 상담까지 한 사람 이름 아래에서 움직였다. 이 구조는 책임소재가 분명하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수요가 커질수록 병목도 함께 키웠다. 진료실 문 앞에 환자가 길게 줄을 서는 동안, 의사는 차트 작성과 각종 승인 업무에 시간을 쓰고, 수술방은 다음 순서를 기다린다. 팀 진료로 전환한다는 것은 결국 병원의 권력 구조와 일상 리듬을 함께 건드린다는 뜻이다. 일부 업무를 떼어 내는 일은 실무 조정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누가 병원의 시간을 지배하느냐”를 바꾸는 일에 가깝다. 변화가 현장에서 늘 마찰을 낳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기술은 이런 전환의 속도를 높일 수 있지만, 구조를 대신하지는 못한다. 보고서가 AI 서기, 인바스켓 관리, 약 리필, 방문 전 계획, 사전 승인, 의뢰 관리 같은 도구를 강조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기술이 진료를 대신해서가 아니라, 팀 진료가 돌아갈 토대를 깔아 주기 때문이다. 의사가 임상 시간의 11%를 차트 작성과 문서화에 쓰고, 간호 인력 역시 적지 않은 시간을 비대면 업무와 조정 업무에 쓴다면, 그 시간을 줄여 주는 도구는 곧 접근성 개선 수단이 된다. 진료 전 필요한 검사와 기록이 빠짐없이 준비되면 외래 한 칸의 가치가 높아지고, 반복되는 메시지와 약 처방 연장 요청이 적절히 분류되면 의사와 간호사는 더 중요한 판단에 집중할 수 있다. 기술은 결국 팀 진료의 빈틈을 메우는 장치다. 역할을 다시 짠 병원일수록 기술 도입 효과가 크게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반대로 구조는 그대로 둔 채 도구만 들여오면 병원은 더 빠르게 같은 비효율을 반복하게 된다.

대학병원과 의원의 팀 진료는 같은 이름 아래에서도 결이 다르다. 대학병원에서 팀 진료의 목적은 중증과 고난도 진료에 전문의를 붙들어 두는 데 있다. 외래를 아무리 잘 굴려도 결국 대학병원의 핵심 자산은 수술과 입원, 고난도 처치와 다학제 판단이다. 그러므로 수술 전후 관리, 치료 경과 설명, 일부 추적진료, 회송 판단, 생활지도, 서류 처리 가운데 상당 부분을 팀으로 나눌수록 대학병원은 본래 맡아야 할 역할에 더 가까워진다. 반면 의원에서 팀 진료의 핵심은 운영 효율과 만성질환 관리다. 같은 환자를 더 자주, 더 짧고, 더 끊김 없이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 예약 관리, 노쇼 감소, 검사 결과 안내, 복약 점검, 생활 습관 상담, 주기적 재진 유도 같은 일은 의사 혼자보다 팀이 맡을 때 훨씬 촘촘해질 수 있다. 대학병원이 중증도 관리의 관점에서 팀 진료를 필요로 한다면, 의원은 지속관리의 관점에서 팀 진료를 필요로 한다고 할 수 있다.

한국 의료가 특히 주목해야 할 지점은 ‘좋은 의사에게 몰리는 구조’와 ‘좋은 시스템을 믿지 못하는 구조’가 동시에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환자는 유명한 한 사람의 진료를 가장 안전한 선택으로 여긴다. 병원도 그 믿음을 이용해 환자를 끌어온다. 그러나 그렇게 모인 환자가 많아질수록, 정작 그 한 사람은 자신의 숙련이 가장 필요한 곳에 시간을 쓰기 어려워진다. 외래는 더 길어지고, 수술은 더 밀리고, 설명은 더 짧아진다. 결국 시스템이 한 사람의 명성을 갉아먹는 구조가 된다. 팀 진료는 명의를 대체하는 모델이 아니다. 명의의 시간을 보호하는 모델에 가깝다. 명의가 꼭 해야 할 판단과 처치에 더 오래 남도록 병원 전체가 뒷받침하는 방식이다. 이 관점이 자리 잡지 않으면 팀 진료 논의는 늘 ‘누가 누구 일을 가져가느냐’는 좁은 충돌로 끝나고 만다.

현장에서는 변화의 조건도 분명하다. 첫째, 역할 정의가 세밀해야 한다. 막연히 일부 업무를 다른 팀에 넘긴다는 수준으로는 오래가지 못한다. 어떤 환자군을 누구에게 먼저 연결할지, 어떤 상황이 되면 다시 전문의 판단으로 올릴지, 환자 설명은 누가 맡고 기록은 누가 마감할지까지 정교해야 한다. 둘째, 교육과 재훈련이 따라야 한다. 병원은 늘 바쁜 조직이어서 새로운 체계를 도입해도 예전 습관으로 되돌아가기 쉽다. 한 번의 공지로는 구조가 바뀌지 않는다. 보고서도 변화가 자리 잡으려면 일상 업무와 흐름을 세밀하게 다시 정리하고 재훈련해야 한다고 봤다. 셋째, 리더십이 필요하다. 팀 진료는 임상과 운영, 인사와 디지털이 함께 움직여야 가능한 일이라 어느 한 부서의 열정만으로는 지속되기 어렵다. 넷째, 환자 설명이 앞서야 한다. 팀 진료가 ‘축소 진료’가 아니라 더 빠르고 더 알맞은 진료라는 확신을 주지 못하면 현장의 저항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병원이 결국 바꿔야 하는 것은 진료의 형식이 아니라 진료의 질서다. 누가 더 많은 환자를 보느냐보다, 어떤 사람이 어떤 환자를 맡을 때 가장 큰 가치가 생기느냐를 따져야 한다. 의사 한 사람이 모든 구간을 붙들고 있는 구조는 오랫동안 익숙했지만, 지금의 수요와 복잡도를 감당하기에는 너무 비싸고 너무 느리다. 반대로 역할을 세분화하고, 전문의 시간을 고난도 판단과 처치에 집중시키고, 수술 전후 관리와 만성질환 추적, 설명과 조정, 문서와 흐름 관리의 상당 부분을 팀으로 나누면 병원은 같은 자원으로도 더 많은 환자를 더 제때 볼 수 있다. ‘팀 진료’라는 말이 자칫 추상적으로 들리기 쉬운 까닭은 병원마다 이름만 있고 구조는 다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방향은 분명하다. 접근성을 넓히는 길은 의사를 더 소진시키는 데 있지 않고, 의사를 가장 필요한 자리에 남게 하는 데 있다. 병원이 팀으로 움직이기 시작할 때 비로소 명의 한 사람의 시간이 병원 전체의 시간으로 바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