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트렌드⑤] 병원을 더 지을 것인가, 화면을 더 열 것인가…의료 접근성의 다음 승부는 ‘확장 순서’에 달렸다
맥킨지 2026년 2월 보고서는 증설보다 재배치를 먼저 보라고 했다 새 건물과 새 병상보다 가상진료와 역할 재설계가 앞설 때 병원 수익과 진료 속도가 함께 달라진다
[KtN 정석헌기자]병원이 막히기 시작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해법은 대개 비슷하다. 진료실을 더 만들고, 병상을 늘리고, 인력을 더 채우는 방식이다. 눈에 보이는 부족이 뚜렷할수록 이런 판단은 더 힘을 얻는다. 실제로 외래 대기와 수술 지연, 입원 적체가 겹치면 공간을 넓히는 쪽이 가장 분명한 해법처럼 보인다. 그러나 병원 운영은 그렇게 단순하게 움직이지 않는다. 같은 병원 안에서도 어떤 과는 진료실이 모자라고, 어떤 과는 사람 손이 더 부족하고, 또 어떤 곳은 공간보다 일정표와 역할 배치가 더 큰 병목이 된다. 겉으로는 모두 ‘용량 부족’처럼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문제의 자리는 제각각이다. 의료 접근성을 둘러싼 다음 경쟁이 단순한 증설 경쟁으로 흘러가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026년 2월 나온 맥킨지 보고서 ‘Solving the healthcare access challenge’는 이 대목을 꽤 단호하게 짚었다. 접근성 확대는 실제 용량을 키우는 문제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앞서 이미 가진 자원을 어떻게 다시 쓰느냐의 문제라고 봤다. 보고서는 실제 용량 확장 수단을 크게 사람과 공간, 두 갈래로 나눴다. 사람은 의사와 임상 인력, 공간은 물리적 진료 공간과 가상 환경이다. 중요한 대목은 그다음 문장에 있다. 진료 모델 재설계와 환자별 예약 최적화가 먼저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실제 용량 확대부터 서두르면, 접근성을 넓히는 대신 기존 비효율을 더 크게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용량 확장은 자본도 많이 들고 사람도 많이 필요한 과제이기 때문에, 앞선 두 단계가 정리되지 않으면 순매출은 늘어도 운영 마진은 오히려 나빠질 수 있다고 보고서는 봤다.
이 경고는 병원 현장의 상식과 부딪히는 면이 있다. 병원은 늘 눈앞의 병목부터 해소하려 한다. 외래가 밀리면 진료실을 더 열고, 수술 대기가 길어지면 수술실과 회복실, 병상을 더 고민한다. 물론 이런 선택이 필요한 시점은 분명히 있다. 다만 모든 문제를 공간 부족으로만 보면 해법도 비싸지고 늦어진다. 진료실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준비가 덜 된 방문이 반복돼 외래 한 칸의 가치가 낮아질 수도 있고, 병상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퇴원 뒤 추적관리 체계가 약해 재입원이 늘어날 수도 있다. 수술실이 부족한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전문의 시간이 수술 전후 관리와 문서 업무에 너무 많이 묶여 있을 수도 있다. 병원 바깥에서는 모두 ‘증설’처럼 보이는 문제라도, 병원 안에서는 종종 ‘재배치’로 풀 수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맥킨지 보고서가 물리적 확장보다 먼저 진료 모델과 수요 계획을 강조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보고서는 병원의 성장 계획이 현재 환자군과 목표 환자군의 임상적 필요, 그리고 소비자 선호를 함께 반영해야 한다고 정리했다. 다시 말해, 누구를 더 많이 볼 것인지부터 분명해야 한다는 뜻이다. 중증·고난도 환자가 늘어날 병원이라면 수술과 입원, 다학제 진료를 받칠 구조가 우선이다. 반대로 비교적 복잡도가 낮고 디지털 수용성이 높은 환자 비중이 크다면, 새 부지를 찾기보다 가상진료 투자를 앞세우는 편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고 보고서는 봤다. 같은 ‘확장’이라도 어느 병원은 새 병동이 먼저일 수 있고, 어느 병원은 화면이 먼저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가상진료를 둘러싼 보고서의 시선은 현실적이다. 무조건 모든 진료를 비대면으로 돌리자는 식이 아니다. 오히려 어떤 진료는 화면이 더 잘 맞고, 어떤 진료는 반드시 대면이어야 한다는 점을 전제로 한다. 보고서는 동기식 가상진료, 곧 화상·음성 진료와 비동기식 가상진료, 예를 들어 의료진 간 전자 자문이 모두 용량 확대 수단이 될 수 있다고 봤다. 여기서 눈길을 끄는 수치가 하나 나온다. 2025년 설문에 응답한 의사들은 가상진료를 통해 대면진료보다 시간당 평균 18% 더 많은 환자를 볼 수 있다고 답했다. 병원 입장에서 이 수치는 단순한 생산성 수치가 아니다. 같은 한 시간 안에 더 많은 환자를 처리할 수 있다는 뜻이면서, 물리적 진료실의 부담을 일부 덜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가상진료의 힘은 단순히 빠르다는 데 있지 않다. 어떤 환자에게는 병원까지 이동하는 시간과 대기 자체가 치료 장벽이 된다. 만성질환 재진, 복약 점검, 경과 확인, 검사 결과 설명처럼 대면의 필요가 절대적이지 않은 구간에서는 가상진료가 더 적절할 수 있다. 특히 병원이 반나절이나 하루 단위로 전용 가상진료 세션을 따로 두면, 기존 진료실과 분리된 흐름으로 운영할 수 있어 자본 부담도 줄어든다고 보고서는 봤다. 전통적인 외래실 한 칸을 더 늘리는 방식과 달리, 화면을 통해 움직이는 진료는 공간 제약을 덜 받는다. 같은 인력이더라도 일정 구조를 달리하면 더 많은 환자를 제때 볼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결국 병원에 필요한 것은 무조건 더 큰 건물이 아니라, 지금의 자원을 어디에 묶고 어디를 풀어 줄지에 대한 더 정교한 판단이다.
다만 가상진료가 병원의 모든 병목을 풀어 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환자군의 성격과 제도 환경을 잘못 읽으면 새로운 혼선을 낳을 수 있다. 초진의 상당수, 중증도 판단이 필요한 장면, 신체진찰이 중요한 영역, 응급성과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는 대면의 가치가 여전히 압도적이다. 병원은 무엇을 화면으로 옮길 수 있는지보다, 무엇은 끝까지 현장에 남겨야 하는지를 더 엄밀하게 가려야 한다. 이 구분이 흐리면 가상진료는 접근성을 넓히는 수단이 아니라, 재방문과 중복 방문을 늘리는 경로가 될 수도 있다. 결국 핵심은 비대면과 대면 중 어느 쪽이 더 선진적인가가 아니다. 환자 상태와 진료 목적에 따라 어떤 방식이 가장 알맞은지를 선별하는 능력이다.
보고서가 가상진료를 ‘확장 수단’으로 분류한 것도 그래서 중요하다. 가상진료는 진료의 질을 희생하며 값싸게 환자를 처리하는 보조 수단이 아니라, 적절한 환자군에 맞게 배치할 경우 실제 의료 용량을 넓히는 방법이라는 뜻이다. 이때 조건이 붙는다. 진료 모델 재설계와 환자 선호 반영이 앞서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미 앞선 편들에서 살펴본 것처럼, 병원은 먼저 어떤 환자를 누가 볼지 다시 짜야 하고, 그 경로를 환자가 납득할 수 있도록 예약과 설명 체계를 손봐야 한다. 이 과정 없이 가상진료만 늘리면 병원은 화면 앞에서도 같은 비효율을 반복하게 된다. 잘못 연결된 환자가 잘못된 시간에 잘못된 통로로 들어오면, 그 뒤는 대면이든 비대면이든 다시 꼬인다.
인력 확장도 마찬가지다. 보고서는 새 부지가 필요한 경우에도 단순히 의사 수를 먼저 늘리는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봤다. 어떤 경우에는 전체 용량을 두세 배로 키우는 계획을 세워도, 실제로 더 많이 필요한 것은 전문의가 아니라 상급실무인력, 간호, 케어 매니지먼트, 기술 인력일 수 있다고 적었다. 이 대목은 매우 중요하다. 병원은 흔히 접근성 문제를 ‘의사 부족’으로 표현하지만, 실제 운영은 의사만으로 굴러가지 않는다. 수술 전후 관리, 퇴원 계획, 추적관리, 검사 준비, 예약 조정, 환자 안내, 장비 운용까지 포함하면 병원의 흐름은 다층적 인력 구조 위에 놓여 있다. 그러므로 접근성을 넓히는 데 필요한 인력 확장은 의사 숫자를 늘리는 일과 같지 않다. 어떤 병원은 의사보다 간호와 코디네이션 인력이 더 부족할 수 있고, 어떤 병원은 기술 인력이 병목일 수 있다. 성장 전략이 사람의 구성을 먼저 따져야 하는 이유다.
이 지점에서 대학병원과 의원의 전략은 분명히 갈린다. 대학병원은 중증·고난도·입원 중심 구조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지탱하느냐가 핵심이다. 따라서 대학병원에서의 확장은 단순한 외래실 증설보다 병상 회전율, 수술실 활용도, 전원과 회송, 퇴원 뒤 추적관리 체계와 더 깊이 연결된다. 예를 들어 수술 전후 관리를 팀으로 나누고, 퇴원 뒤 일부 경과 관찰을 가상진료와 원격 모니터링으로 보완하면 병상은 더 빨리 돌고 재입원 위험도 관리할 수 있다. 외래의 일정 일부를 전용 가상진료 세션으로 분리하면, 대면 외래는 더 복잡하고 더 급한 환자에게 집중할 수 있다. 대학병원의 가상진료는 편의 서비스라기보다 중증도 관리의 연장선에 놓일 가능성이 크다.
반면 의원은 훨씬 다른 그림을 그릴 수 있다. 의원의 강점은 접근성 그 자체다. 동네에 있고, 자주 볼 수 있고, 비교적 빠르게 연결된다. 따라서 의원급에서의 확장 전략은 거대한 자본 투자보다 운영 효율과 연속성 관리에 무게가 실릴 수밖에 없다. 만성질환 재진, 검사 결과 안내, 복약 확인, 생활 습관 상담, 노쇼 관리, 주기적 추적 같은 영역은 의원이 가상진료와 디지털 접점을 잘 붙일수록 효과가 빨리 날 가능성이 크다. 보고서가 디지털 선호가 높은 저복잡도 환자군을 상대하는 조직이라면 새 부지보다 가상진료 투자를 우선할 수 있다고 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의원에게 화면은 건물을 대신하는 도구가 아니라, 원래 가까웠던 관계를 더 촘촘하게 이어 주는 도구가 될 수 있다.
한국 의료 현실에서 이 논의는 더 복잡한 함의를 갖는다. 비대면진료 제도는 여전히 규제와 허용 범위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초진과 재진의 구분, 질환 특성, 의료취약지 여부 같은 조건에 따라 실제 활용 폭이 달라진다. 따라서 병원과 의원은 기술 가능성만이 아니라 제도 조건까지 함께 읽어야 한다. 다만 큰 흐름만 놓고 보면 방향은 분명하다. 의료 접근성을 넓히는 수단이 반드시 새 건물과 새 병동이어야 할 이유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같은 자원으로도 일정 구조를 바꾸고, 환자군을 다시 나누고, 화면과 현장을 섞어 쓰면 더 많은 환자에게 더 빠르게 닿을 수 있는 길이 열리고 있다. 앞으로의 경쟁은 누가 더 크게 짓느냐보다, 누가 더 영리하게 섞어 쓰느냐로 옮겨갈 가능성이 크다.
보고서가 특히 경계한 것은 ‘가장 쉬워 보이는 해법부터 시작하는’ 관성이다. 실제 용량 확대는 눈에 보이고 설명하기도 쉽다. 새 병동, 새 센터, 새 장비는 경영진과 지역사회 모두에게 분명한 신호를 준다. 반면 진료 모델 재설계나 예약 경로 최적화, 역할 재배치는 성과가 보여도 겉으로는 덜 화려하다. 그러나 보고서의 순서는 다르다. 먼저 낭비를 줄이고, 그다음 진료 모델을 바꾸고, 환자 선호를 운영에 심고, 그래도 부족한 자리에 실제 용량을 더하라는 것이다. 그 순서가 맞을 때 병원은 같은 투자로 더 큰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반대로 순서가 뒤집히면 새 건물은 금세 차고, 새 병상은 금세 막히고, 병원은 더 큰 비용을 안은 채 같은 병목을 반복할 가능성이 높다.
병원의 미래를 가르는 것은 결국 확장의 크기가 아니라 확장의 문법일지 모른다. 누구를 더 많이 볼 것인지, 어떤 진료는 화면으로 옮기고 어떤 진료는 끝까지 현장에 둘 것인지, 어느 직군을 얼마나 더 늘려야 하는지, 물리적 공간을 열기 전에 어떤 역할과 일정부터 바꿔야 하는지에 대한 판단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 맥킨지 보고서는 접근성 확대를 단순한 증설 사업으로 보지 않았다. 이미 있는 시간을 다시 나누고, 이미 있는 인력을 다시 배치하고, 그 위에 필요한 용량을 올리는 순서의 문제로 봤다. 병원을 더 지을 것인가, 화면을 더 열 것인가를 가르는 기준도 결국 여기에 있다. 더 늦게, 더 비싸게, 더 많이 짓는 병원보다 먼저 흐름을 고치고 나서 필요한 만큼만 넓히는 병원이 앞으로 더 오래 버틸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