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 금빛 혼문 '케데헌' 이재 드레스, 대한제국 황실 대례복에서 왔다
무궁화·금빛 장식 담았다…이재 오스카 드레스에 담긴 한국 ‘골든’만 화제 아니었다…이재 드레스, 대한제국 모티브 눈길
[KtN 신미희기자] 아카데미 무대에 오른 ‘케이팝 데몬 헌터스’ 보컬 이재가 대한제국 황실 대례복에서 출발한 드레스를 입고 ‘골든’을 부르며 한국적 이미지와 무대 미학을 함께 올렸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장편 애니메이션상과 주제가상을 받던 날, 무대 위에서도 한국적인 장면이 또렷하게 남았다. 15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돌비 극장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작품은 2관왕에 올랐고, 현장에서는 대표곡 ‘골든’ 무대도 펼쳐졌다.
■ 시상식장에 울린 ‘골든’, 한국적 이미지로 채운 무대
이날 무대에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 속 걸그룹 헌트릭스의 보컬을 맡은 이재와 누나, 아미가 올랐다. 공연은 한국 전통 악기 연주와 무용을 앞세워 작품의 뿌리가 된 한국 민속과 문화적 영감을 먼저 펼쳐 보인 뒤, 세 사람이 등장해 ‘골든’을 잇는 방식으로 짜였다. 황금빛 물결을 연상시키는 연출과 헐리우두 배우들의 응원봉이 더해지면서 애니메이션의 세계관, K팝 공연 문화, 한국 전통 이미지가 세계의 중심에 섰다.
이 무대는 수상작의 대표곡을 부르는 자리에 머물지 않았다. 영화가 끌어온 한국적 감각을 시상식 한복판에 다시 세운 장면에 가까웠다. 노래와 퍼포먼스, 무대 장치가 한 방향으로 묶이면서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무엇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는지 화면만으로도 읽히는 무대가 됐다.
■ 이재가 입은 흰 드레스, 대한제국 황실 대례복에서 출발
무대 위에서 특히 시선을 모은 것은 이재의 의상이었다. 새하얀 바탕에 금색 문양을 얹은 이 드레스는 최근 블랙핑크 멤버 제니와 한국을 상징하는 협업 의상을 제작한 곳으로 알려진 디자이너 브랜드 ‘르쥬’(LEJE)가 맞춤 제작한 옷이다.
르쥬는 시상식 다음 날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드레스 사진과 영상을 공개하며, 이번 오스카 무대를 위해 제작된 이재의 의상이 대한제국 황실 대례복에서 시작됐다고 밝혔다.
브랜드는 이 옷을 헌트릭스에서 선보였던 제복의 흐름을 잇는 또 하나의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동시에 ‘골든’이 말하는 빛나는 순간을 시각적으로 풀어내기 위한 시도이며, 전통의 시간과 현대적 감각을 연결하려는 디자인 철학 속에서 완성된 작업이라고 덧붙였다. 황실 복식의 인상과 무대 의상의 문법을 한 벌 안에 겹쳐 넣은 셈이다.
■ 무궁화와 당초문, 금빛 장식에 담긴 상징
의상 중심에는 한국의 국화인 무궁화가 놓였다. 수없이 피고 지면서도 다시 피어나는 꽃의 성질을 영원과 끈기, 사라지지 않는 생명의 상징으로 풀었다. 그 주변에는 생명의 흐름과 번영을 뜻하는 당초문을 이어 배치해 무궁화가 지닌 영원의 뜻을 넓혔다.
흰색 바탕은 백의민족의 이미지를 끌어왔고, 금동 장식은 고대 한국의 금관을 떠올리게 한다. 이 장식은 작품 속 헌트릭스 루미가 지닌 ‘빛’의 상징을 무대 위에서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장치이기도 하다. 모든 금속 장식은 전통 방식으로 제작됐고, 한국 금속 공예 장인의 손을 거쳐 하나씩 완성됐다. 문양과 색, 공예와 상징이 한 방향으로 묶이며 드레스 한 벌이 하나의 서사처럼 읽히게 됐다.
■ 전통 복식의 재현보다 현대 무대 언어에 가까웠다
이번 의상이 더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히 화려해서만은 아니다. 최근 글로벌 시상식과 공연 무대에서는 한복의 형태를 그대로 재현하기보다 문양과 색, 금속 장식, 실루엣 일부를 현대복 안으로 옮겨오는 방식이 더 자주 보인다. 전통을 박제된 복식으로 세우기보다 현재의 무대 언어 안에서 다시 입히는 흐름이다.
이재의 드레스도 그 연장선에 놓여 있다. 대한제국 황실 대례복을 그대로 옮긴 옷이 아니라, 그 인상과 상징을 현대적인 공연 의상 안으로 풀어낸 사례에 가깝다. 형태를 복제하는 대신 상징과 질감, 장인 기술을 지금의 무대 문법으로 번역한 작업이라는 점에서 더 또렷하게 남는다.
■ ‘케데헌’이 실어 나른 것은 노래만이 아니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이번 시상식에서 남긴 장면은 두 갈래였다. 하나는 ‘골든’이 울려 퍼진 무대가 작품의 에너지를 현실의 시상식으로 끌어온 일이다. 다른 하나는 그 노래가 불린 무대에서 한국적 문양과 복식 이미지, 공예 감각까지 함께 세계 시청자 앞에 올라갔다는 점이다.
이재의 드레스는 한 벌의 무대복으로 끝나지 않았다. 황실 대례복의 인상, 무궁화의 상징, 금속 공예의 질감, 현대 무대 의상이 한데 묶이면서 한국을 설명하는 또 다른 방식이 됐다. 긴 설명보다 한 장면이 더 오래 남는 시대에, 이번 무대는 한국적 이미지를 보여주는 방식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 분명하게 보여줬다.
이번 무대는 K콘텐츠가 음악과 영화 수상에 그치지 않고 복식과 문양, 장인 기술까지 함께 실어 나르는 단계에 들어섰다는 점을 보여준다. 한국적인 요소를 전면에 내세우되 옛 형식을 그대로 복제하지 않고 현대 무대 문화 안에서 다시 디자인하는 방식도 더 또렷해졌다. 앞으로는 누가 상을 받았는지만큼 어떤 이미지와 상징으로 한국을 보여주느냐도 글로벌 무대의 경쟁력이 될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