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가전 트렌드②] 반신반의하며 샀는데 벌써 절반이 쓴다…TV·냉장고부터 넓어진 AI 가전

생활가전 이용률 51.0%, 주방가전 39.1%…“기대보다 만족” 응답 1년 새 큰 폭 상승

2026-03-25     박채빈 기자
Samsung To Debut New Home Audio Ecosystem at CES 2026. 사진=Samsung,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박채빈기자]오픈서베이 ‘AI 가전 트렌드 리포트 2026’에 따르면 생활가전 AI 이용률은 51.0%, 주방가전 AI 이용률은 39.1%였다. 개인정보 유출과 오작동을 걱정하는 소비자가 늘었는데도 AI 기능은 냉장고와 TV, 세탁기와 에어컨 같은 대형 가전을 중심으로 빠르게 퍼졌다. 아직 일부 소비자만 쓰는 기능이라고 보기 어려운 단계다. 집 안 핵심 제품군에서는 이미 AI 경험이 절반 안팎까지 올라왔다.

생활가전 쪽에서는 TV가 가장 앞섰다. AI 생활가전 경험 제품 가운데 TV가 40.1%로 가장 높았다. 세탁기 35.9%, 에어컨 34.9%, 청소기 33.0%도 뒤를 이었다. 가족이 함께 오래 쓰는 제품, 하루 사용 시간이 긴 제품, 반복 조작이 많은 제품에 AI 기능이 먼저 자리 잡았다는 뜻이다. 추천과 화질 조정, 음성 인식 기능이 붙은 TV, 사용 패턴에 따라 코스를 조정하는 세탁기, 실내 환경에 맞춰 운전을 바꾸는 에어컨, 공간 정보를 반영하는 청소기가 빠르게 퍼진 배경도 여기에 있다. 소비자는 낯선 기계보다 원래 익숙한 제품에서 먼저 AI를 받아들였다.

주방가전에서는 냉장고가 중심이었다. AI 주방가전 경험 제품 가운데 냉장고가 49.5%로 가장 높았다. 주방가전 AI 경험자 두 명 중 한 명꼴로 냉장고를 꼽은 셈이다. 식재료 관리와 보관 상태 확인, 사용 패턴에 맞춘 기능 조정처럼 눈에 띄지 않는 기능이 냉장고 안으로 먼저 들어왔다. 주방은 집 안에서도 반복 노동이 많은 공간이다. 하루에도 여러 번 문을 여닫고, 식재료를 꺼내고 넣고, 보관 상태를 확인하는 작업이 쌓인다. AI 경험이 냉장고에서 먼저 넓어진 흐름은 그래서 자연스럽다. 한 번만 쓰는 기능보다 매일 반복되는 동선에서 효용이 생기는 기능이 보급을 끌었다.

보급 속도를 이끈 축이 로봇이나 새로운 기기가 아니라 기존 대형 가전이라는 점도 눈에 띈다. AI 가전 확산은 미래형 제품의 등장보다 TV와 냉장고, 세탁기와 에어컨 같은 익숙한 제품의 변화로 먼저 진행됐다. 소비자가 체감한 AI는 거실과 주방, 세탁실에서 시작됐다. 생활 중심 공간에 놓인 제품부터 기능이 붙었고, 그 기능은 별도 학습보다 반복 사용 속에서 익숙해졌다. 설명을 듣고 감탄하는 기술이 아니라, 매일 쓰다 보니 자연스럽게 쓰게 되는 기술에 가깝다.

사용 후 만족도도 뚜렷하게 올랐다. AI 주방가전 경험자 가운데 ‘기대보다 더 만족스러웠다’는 응답은 30.2%였다. 지난해보다 8.4%포인트 상승한 수치다. AI 생활가전에서도 같은 응답이 30.2%였고 상승 폭은 9.1%포인트였다. 기대보다 못했다는 반응보다 기대 이상이었다는 반응이 더 빠르게 늘어난 셈이다. 제품 홍보 문구만 앞선 것이 아니라 실제 사용 편의가 어느 정도 확인됐다는 뜻으로 읽힌다.

만족도가 오른 이유는 거창한 기술보다 반복적인 수고를 덜어주는 데 있다. TV에서는 시청 환경을 맞춰주고, 세탁기에서는 코스 선택 부담을 줄이고, 에어컨에서는 온도 조절 빈도를 낮추고, 냉장고에서는 보관과 관리 부담을 덜어주는 식이다. 가전은 매일 쓰는 물건이다. 사용자가 크게 놀라는 기능보다 손이 덜 가는 기능이 더 오래 남는다. 한 번 신기한 기능보다 매일 번거로움을 줄이는 기능이 만족도를 만든다. AI 가전 만족도가 오르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경험자와 비경험자 사이의 기대감 차이도 컸다. AI 가전 경험자의 기대감은 88.0%였다. 비경험자 기대감 76.4%보다 높았다. 한 번 써본 사람일수록 다음 구매에서 AI 기능을 더 자연스럽게 고려할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며 제품을 샀더라도, 반복 사용으로 익숙해진 기능은 다음 구매 때 기본 조건처럼 자리 잡기 쉽다. 스마트폰 시장에서 나타났던 경험 효과가 가전에서도 나타나기 시작한 셈이다.

다만 만족도 상승이 곧바로 신뢰 상승으로 이어진 것은 아니었다. AI 가전 경험자의 우려감은 55.4%였다. 지난해 47.5%보다 7.9%포인트 높아졌다. 비경험자 우려 증가 폭보다 더 큰 변화다. 써본 사람이 더 안심하는 흐름이 아니라, 써본 사람이 더 많이 따져보기 시작한 흐름에 가깝다. 기능이 편리하다는 사실과 데이터 수집이나 통제 문제를 신뢰한다는 판단은 별개라는 뜻이다.

경험자 우려가 더 커진 배경도 어렵지 않게 읽힌다. 생활가전과 주방가전은 하루 종일 생활과 맞닿아 있다. TV는 시청 습관과 연결되고, 냉장고는 식재료 소비 패턴과 맞물리고, 세탁기와 청소기는 생활 리듬을 반영한다. 연결 기능과 앱 연동이 많아질수록 사용 편의는 올라가지만, 그만큼 내 생활 정보가 어디까지 반영되는지 떠올릴 기회도 늘어난다. 기술 효용을 실제로 확인한 사람일수록 기술이 생활 안으로 얼마나 깊게 들어오는지도 함께 실감하게 된다. 만족과 우려가 동시에 오르는 이유다.

시장 분위기를 여기서 잘못 읽으면 안 된다. 이용률이 올라가고 만족도도 뛰었으니 보안 우려는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잦아들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올해 수치는 정반대 장면을 보여준다. 소비자는 이미 AI를 쓰고 있고, 써본 뒤 편리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같은 소비자가 더 많이 걱정하기도 한다. 사용 경험이 신뢰를 자동으로 만들지 않았다는 얘기다. 기능 완성도만 높이면 시장이 풀릴 것이라는 낙관론이 그대로 통하지 않는 이유다.

기업이 봐야 할 대목도 여기에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무엇을 더 할 수 있는가”만 설명하는 방식이 아니다. “어디까지 연결되는가”, “어떤 정보가 처리되는가”, “사용자가 어떤 범위까지 끌 수 있는가”를 함께 설명해야 한다. 이용률 51.0%는 더 이상 일부 소비자만 AI 가전을 쓰는 시장이 아니라는 뜻이다. 절반 가까운 소비자가 이미 경험한 시장에서는 성능 자랑보다 사용 조건과 통제 방식, 보안 구조가 더 직접적인 판단 기준이 된다. 제품 소개 방식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대형 가전을 중심으로 보급이 빨라졌다는 점은 시장에 기회이면서 동시에 부담이다. 기회인 이유는 이미 생활 동선 안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부담인 이유는 생활 동선 안으로 들어온 기술일수록 더 엄격한 평가를 받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앱은 삭제하면 끝나지만 냉장고와 세탁기, TV는 한 번 사면 오래 쓴다. 집 안에서 매일 마주치는 기계에 대한 불안은 더 천천히, 더 오래 남는다. 가전업계가 기능 경쟁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생활가전과 주방가전에서 동시에 확인된 만족도 상승은 분명한 신호다. AI 기능은 이미 일부 제품에서 생활 편의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TV와 냉장고가 보급을 끌고, 세탁기와 에어컨, 청소기가 뒤를 받치면서 시장 저변도 넓어졌다. 그러나 절반을 넘긴 이용률이 곧 무조건적인 신뢰를 뜻하지는 않는다. 소비자는 이미 써봤고, 편리함도 인정했다. 남은 질문은 기술이 아니라 생활 쪽에 있다. 얼마나 자연스럽게 녹아드는지, 얼마나 오래 안심하고 쓸 수 있는지, 사용자가 어디까지 통제할 수 있는지가 다음 경쟁을 가를 가능성이 크다.

올해 AI 가전 시장을 보여주는 장면은 분명하다. 반신반의하며 샀는데, 막상 집 안에 들어오자 빠르게 일상으로 퍼졌다. TV와 냉장고, 세탁기와 에어컨이 그 흐름을 이끌었다. 만족도는 올라갔다. 그러나 경계심도 함께 커졌다. 보급 확대와 신뢰 확보가 따로 움직이는 시장이 된 셈이다. AI 가전이 집 안 표준으로 자리 잡으려면 절반의 이용률 다음 숫자가 필요하다. 더 높은 판매량보다 먼저, 안심하고 오래 쓸 수 있다는 확신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