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가전 트렌드③] 아이 있는 집에서 더 빨리 퍼졌다…AI 가전 수요, 가사와 돌봄 부담 따라 갈렸다

유아동 자녀 가구 이용 경험률 63.8%, 미혼 나홀로 32.3%…프리미엄 수용도는 커플·무자녀, 유아동 자녀 가구가 높아

2026-03-26     박채빈 기자
Samsung To Debut New Home Audio Ecosystem at CES 2026. 사진=Samsung,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박채빈기자]AI 가전 시장은 모든 집으로 같은 속도로 퍼지지 않았다. 누가 더 빨리 들였는지, 누가 더 자주 쓰는지, 누가 더 비싼 값을 감수할 의향이 있는지를 나눠 보면 방향이 또렷해진다. 가사와 돌봄 부담이 큰 가구일수록 AI 가전을 더 빨리 받아들였고, 실제 사용 비중도 높았다. 혼자 사는 가구에서는 있으면 편리한 기능에 가까웠지만, 아이가 있는 집에서는 생활 부담을 덜어주는 제품에 가까웠다. AI 가전 수요를 움직인 힘은 새 기술에 대한 호기심보다 집안일과 돌봄에 들어가는 시간과 노동이었다.

오픈서베이 ‘AI 가전 트렌드 리포트 2026’에 따르면 AI 가전을 한 번이라도 써본 비율은 유아동 자녀 가구가 63.8%로 가장 높았다. 커플·무자녀 가구는 57.9%였다. 반면 미혼 나홀로 가구는 32.3%에 그쳤다. 유아동 자녀 가구와 미혼 나홀로 가구 사이에는 이용 경험률이 두 배 가까이 벌어졌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비율도 같은 순서였다. 유아동 자녀 가구는 58.0%, 커플·무자녀 가구는 50.7%로 절반을 넘겼다. 미혼 나홀로 가구는 25.8%였다. AI 가전 보급이 생활 단계와 무관하게 고르게 퍼진 것이 아니라, 집안일과 돌봄 수요가 많은 가구를 따라 먼저 넓어졌다는 뜻이다.

수치가 보여주는 장면은 단순하다. 집안일이 많고 손이 많이 가는 집일수록 자동화와 맞춤 제어 기능의 체감 가치가 더 크다. 유아동 자녀 가구는 빨래와 청소, 식사 준비와 정리, 실내 환경 관리까지 여러 일이 동시에 겹친다. 시간을 쪼개 써야 하고, 같은 작업을 하루에도 여러 번 반복하게 된다. 이런 생활 구조에서는 세탁 코스를 알아서 조정하거나, 사용 패턴에 맞춰 작동 방식을 바꾸거나, 손이 덜 가게 해주는 기능이 단순한 편의가 아니라 생활 부담을 낮추는 장치가 된다. 같은 냉장고와 세탁기, 같은 청소기라도 어느 집에서는 부가 기능이지만, 어느 집에서는 시간을 아껴주는 핵심 기능이 되는 이유다.

제품군별 흐름도 생활 부담의 크기와 맞물려 있다. 자녀가 있는 가구에서는 생활가전 이용이 두드러졌다. 세탁기와 건조기, 청소기처럼 반복적인 집안일과 바로 연결되는 제품에서 이용 비중이 높았다. 아이가 있는 집에서는 빨래 양이 많고 청소 빈도도 잦다. 실내 온도와 공기 질 관리에도 더 신경을 쓰게 된다. 세탁물 상태를 감지해 코스를 조정하는 기능, 실내 환경에 맞춰 운전을 바꾸는 기능, 스스로 움직이며 청소를 수행하는 기능은 바로 체감되는 편의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반복 노동이 많은 가구일수록 AI 기능이 생활 안으로 더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배경이다.

주방가전에서는 냉장고가 가장 넓게 쓰였다. 냉장고는 거의 모든 가구에서 이용 비중이 높았지만, 자녀가 있는 가구에서는 냉장고뿐 아니라 식기세척기와 정수기처럼 가사 보조 성격이 강한 제품 이용도 함께 올라가는 흐름이 나타났다. 식사 준비와 정리, 위생 관리 부담이 큰 집일수록 주방가전에서도 AI 기능의 필요가 더 뚜렷하게 드러난다는 뜻이다. 주방은 집 안에서도 노동이 가장 자주 쌓이는 공간 가운데 하나다. 메뉴를 정하고, 재료를 관리하고, 조리하고, 치우는 일이 매일 반복된다. AI 기능이 먼저 선택된 제품이 취향형 기기보다 생활형 기기에 가까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가구 형태별 차이를 더 들여다보면 AI 가전의 의미 자체가 다르게 붙고 있다는 점도 보인다. 미혼 나홀로 가구에는 개인화와 원격 제어, 간편 조작 같은 요소가 더 직접적인 장점이 될 수 있다. 혼자 사는 집에서는 생활 동선이 단순하고 가사량도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필요한 순간에 편하게 쓰는 기능, 취향에 맞춘 기능, 공간 효율과 연결되는 기능이 더 크게 느껴질 수 있다. 반면 커플·무자녀 가구와 유아동 자녀 가구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시간을 절약하고, 반복 작업을 덜고, 손이 많이 가는 일을 줄여주는 기능이 더 직접적인 구매 이유가 된다. 같은 AI 기능이라도 어느 가구에는 선택형 편의이고, 어느 가구에는 생활 효율을 끌어올리는 장치가 된다.

가격에 대한 태도도 비슷한 방향으로 움직였다. 전체적으로 보면 AI 기능이 붙었다는 이유만으로 더 비싼 값을 기꺼이 내겠다는 응답은 높지 않았다. 시장 전체로는 아직 가격 프리미엄을 널리 받아들이는 단계라고 보기 어렵다. 그런데 가구별로 나누면 결이 달라진다. “비싸더라도 구매하겠다”는 응답은 커플·무자녀 가구가 10.5%로 가장 높았고, 유아동 자녀 가구가 10.1%로 뒤를 이었다. 같은 가격이라면 AI 제품을 사겠다는 응답은 여러 가구에서 넓게 나타났지만, 추가 비용까지 감수하겠다는 태도는 생활 부담이 큰 가구에서 상대적으로 높았다.

시장 입장에서 이 차이는 작지 않다. 모든 소비자가 AI 기능의 가격 프리미엄을 같은 기준으로 판단하지 않는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제조사 입장에서는 “AI가 붙었다”는 설명만으로 값을 올리기 어렵다. 대신 어느 가구에 어떤 효용을 주느냐가 더 중요해진다. 혼자 사는 가구에 프리미엄을 설득하려면 개인화와 취향, 간편한 연결성이 더 중요할 수 있다. 반면 커플·무자녀 가구나 유아동 자녀 가구에는 집안일 절감, 생활 리듬 관리, 돌봄 부담 완화가 훨씬 직접적인 언어가 된다. 프리미엄이 성립하는 지점도 생활 부담을 얼마나 덜어주느냐와 가까워진다.

그래서 AI 가전 시장을 기술 중심으로만 읽으면 실제 수요층을 놓치기 쉽다. 제품 설명에서는 보통 연산 성능, 센서, 연결성, 자동화 기능이 앞에 놓인다. 하지만 소비자가 구매를 결정하는 순간에는 질문이 더 생활 쪽으로 이동한다. 빨래 시간을 얼마나 줄여주는지, 청소 횟수를 얼마나 덜 신경 쓰게 하는지, 식사 준비와 정리 부담을 얼마나 줄여주는지, 집 안 관리 리듬을 얼마나 가볍게 만드는지가 더 중요해진다. 기술은 결국 생활 안에서 평가받는다. AI 가전도 예외가 아니다. 시장을 넓히는 힘이 새로운 기술 그 자체보다 생활의 피로를 줄이는 데서 나온다면, 수요층 분석도 생활 단계와 노동 강도를 기준으로 다시 짜야 한다.

이 변화는 마케팅 전략에도 바로 연결된다. 같은 제품을 두고도 누구에게 어떻게 설명하느냐에 따라 반응이 달라질 수 있다. 유아동 자녀 가구에는 세탁, 청소, 식사 준비와 정리, 실내 환경 관리처럼 매일 반복되는 부담을 얼마나 줄이는지 보여주는 메시지가 먼저 와야 한다. 커플·무자녀 가구에는 퇴근 뒤 시간을 덜 쓰게 해주는 생활 효율, 둘이 함께 사는 집에서 생기는 집안일 분담 부담을 줄여주는 방식이 더 유효할 수 있다. 미혼 나홀로 가구에는 꼭 필요한 순간의 편의, 공간 효율, 간단한 조작, 취향형 기능이 더 설득력 있게 들릴 수 있다. 같은 AI라도 가구 형태에 따라 언어가 달라져야 한다는 얘기다.

시장 확산 순서 역시 이 관점에서 다시 읽을 필요가 있다. AI 가전은 모든 집을 한꺼번에 바꾸는 기술이 아니었다. 손이 많이 가는 생활부터, 반복 노동이 많은 공간부터, 시간을 더 절실하게 아껴야 하는 가구부터 먼저 파고들었다. 이용 경험률 63.8%를 기록한 유아동 자녀 가구는 바로 그 흐름을 보여준다. 소비자가 먼저 반응한 것은 화려한 미래보다 눈앞의 노동이었다. 빨래와 청소, 식사 준비와 정리, 실내 환경 관리처럼 매일 반복되는 일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다면 AI 기능에 더 높은 값을 매길 수 있다는 뜻이다.

AI 가전 수요를 ‘돌봄과 가사의 경제성’으로 읽는 시각도 여기서 나온다. 세탁기와 건조기, 청소기, 냉장고 같은 제품은 원래도 집안일 시간을 줄여주는 역할을 해왔다. AI 기능이 붙으면서 달라진 점은 작동 방식이 더 세밀하게 생활 패턴에 맞춰지고, 사용자가 일일이 판단하거나 조작해야 하는 순간이 줄어든다는 데 있다. 노동 강도를 낮추는 방식이 단순한 기계화에서 생활 맞춤형 자동화로 옮겨간 셈이다. 소비자가 체감하는 가치는 기술의 새로움보다 노동 강도 감소에 가깝다. 그래서 아이가 있는 집이나 생활 부담이 큰 가구에서 반응이 더 빠르게 나온다.

기업 입장에서 핵심 수요층이 분명해졌다는 점은 기회이기도 하고 숙제이기도 하다. 기회인 이유는 구매 가능성이 높은 집단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유아동 자녀 가구와 커플·무자녀 가구는 이용률도 높고, 가격 프리미엄 수용 가능성도 상대적으로 높다. 숙제인 이유는 같은 방식의 메시지로는 시장을 넓히기 어렵기 때문이다. 모든 소비자에게 “더 똑똑해졌다”고 말하는 시대는 지났다. 어떤 집의 어떤 노동을 줄여주는지, 얼마나 시간을 아껴주는지, 어느 순간에 손이 덜 가는지를 더 세밀하게 설명해야 한다.

이번 조사에서 확인된 변화는 단순한 제품 선호도 차원이 아니다. AI 가전이 집집마다 같은 이유로 팔리지 않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아이가 있는 집에서는 반복적인 집안일과 돌봄 부담을 줄이는 쪽으로, 커플 가구에서는 시간과 노동을 덜 쓰게 하는 쪽으로, 혼자 사는 가구에서는 선택형 편의 기능 쪽으로 의미가 갈렸다. 시장을 실제로 끌고 가는 수요층도 생활 부담이 큰 가구에서 먼저 형성됐다. AI 가전 시장이 커지는 속도를 보려면 판매량만 볼 일이 아니라, 어느 집에서 어떤 이유로 먼저 반응하는지 함께 봐야 한다.

결국 올해 AI 가전 시장이 보여준 장면은 분명하다. 새 기술을 가장 먼저 받아들인 쪽은 기술에 민감한 사람이 아니라 생활 부담이 큰 가구였다. 아이가 있는 집에서는 이미 필수에 가까운 생활 보조 장치로 받아들여지는 제품이 늘고 있다. 커플·무자녀 가구에서도 시간 절약 효과가 구매 이유로 자리 잡고 있다. 혼자 사는 가구와 비교하면 수요의 결이 다르다. AI 가전 시장의 다음 경쟁은 성능 수치만으로 갈리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누구의 시간을 줄여주는지, 어느 노동을 덜어주는지, 어느 가구의 생활 리듬에 맞는지가 더 중요해지고 있다. 가전이 더 똑똑해졌다는 말보다, 집안일을 얼마나 덜 힘들게 만들었는지가 시장을 가르는 문장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