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트렌드②] 손으로 빚은 100년의 미학, 폴란드 애니메이션의 ‘예술적 근본’을 묻다
스타레비츠의 곤충 영화부터 ‘러빙 빈센트’의 유화까지... 스톱모션·인형극에 깃든 ‘장인정신’, 첨단 디지털 기술과 만나 세계적 학풍 완성
[KtN 홍은희기자]폴란드 애니메이션의 역사는 스튜디오 설비보다 먼저 손의 감각에서 출발했다. 곤충의 다리를 조금씩 옮기고, 인형의 팔을 한 칸씩 들어 올리고, 그림 한 장 한 장에 표정을 새기는 방식이 오랫동안 폴란드 애니메이션의 바탕이 됐다. 오늘날 폴란드가 유럽의 VFX 제작 거점으로 거론되는 배경에도 그런 시간이 쌓여 있다. 값싼 제작비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다. 폴란드 애니메이션은 처음부터 속도보다 질감, 대량 생산보다 작가적 개성을 중시하는 흐름 속에서 자라났다.
출발점은 20세기 초다. 폴란드 출신의 브와디스와프 스타레비츠는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의 선구자로 불린다. 1912년 발표한 단편 ‘예쁜 루카니다’는 폴란드 최초의 애니메이션으로 기록된다. 곤충 표본에 생명을 불어넣듯 움직임을 만들어낸 작품은 초기 영화사에서 보기 드문 장면을 남겼다. 스타레비츠는 이후 프랑스 파리에서 장편 애니메이션 ‘여우 이야기’를 제작했고, 독일 베를린에서 음향 작업을 마친 뒤 1937년 작품을 공개했다. 제작 시기로 보면 월트 디즈니의 ‘백설공주와 일곱 난장이’보다 앞선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거론된다. 폴란드 애니메이션이 시작부터 주변부에 머문 장르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1930년대에는 전위예술 애니메이션도 나왔다. 스테판 테머슨과 프란치셱 테머슨 부부가 만든 ‘약국’은 폴란드 애니메이션이 어린이용 오락물에 머물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움직임과 화면 구성 자체를 실험 대상으로 삼는 작업이 이미 이 시기에 나왔다. 애니메이션을 하나의 독립된 예술 형식으로 다루는 분위기가 일찍 자리 잡았다는 뜻이다.
전쟁 이후 폴란드 애니메이션은 폐허 위에서 다시 몸을 세웠다. 1947년 제논 바실렙스키가 발표한 어린이 단편 ‘크라쿠스 왕 아래서’는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다. 같은 시기 국영 스튜디오가 세워졌고, 텔레비전과 영화용 애니메이션 제작이 본격화됐다. 1950년대와 1960년대 폴란드 애니메이션은 오락과 교육, 실험과 풍자를 함께 품었다. 화면은 단순했지만 발상은 대담했고, 짧은 러닝타임 안에서도 정치적 우회와 시각적 실험이 살아 있었다. 폴란드에서 애니메이션은 어린이용 부속 장르가 아니라 독자적인 표현 형식으로 다뤄졌다.
폴란드 애니메이션이 자기 이름을 더 넓게 알린 시기는 1960년대 이후다. 어린이용 TV 애니메이션 ‘볼렉과 롤렉’은 1962년부터 24년 동안 방영됐다. 키 큰 형과 호기심 많은 동생이 숲과 바다, 사막과 우주를 오가는 이야기다. 대사가 거의 없고 그림체가 단순해 언어 장벽을 크게 타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80여 개국에 수출됐다. ‘렉시오’도 비슷한 길을 걸었다. 폴란드 애니메이션은 예술영화의 전통만 가진 나라가 아니라, 일찍부터 해외 시청자가 받아들일 수 있는 화면 문법을 익힌 나라였다. 1960년대와 1970년대 수출 실적이 빠르게 늘어난 배경도 여기에 있다.
예술영화의 계보도 따로 이어졌다. 즈빅니에프 릅친스키의 ‘탱고’는 1983년 아카데미 단편 애니메이션상을 받았다. 한정된 공간 안에 수많은 인물의 움직임을 중첩시키는 방식으로 일상의 혼란과 질서를 동시에 보여준 작품이다. 폴란드 애니메이션이 기술적 정교함과 개념적 밀도를 함께 밀어 올릴 수 있다는 사실을 국제무대에서 확인한 순간이었다. 폴란드 애니메이션이 오랫동안 ‘학풍’이라는 말로 설명돼온 배경도 여기에 있다. 특정 회사의 스타일이라기보다, 작가와 학교와 스튜디오가 함께 만든 시각적 문법이 있었다는 뜻이다.
1990년대 이후 컴퓨터 그래픽이 제작 현장에 본격적으로 들어오면서 폴란드 애니메이션도 변화를 맞았다. 다만 새 기술이 들어왔다고 해서 손기술의 자리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폴란드는 3D와 디지털 후반작업을 빠르게 받아들이면서도, 오래된 작화 감각과 모형 제작의 감각을 함께 남겼다. 토마시 바긴스키의 3D 애니메이션 ‘대성당’이 아카데미 후보에 오른 일, 마렉 스크로베츠키가 인형 스톱모션과 3D 그래픽을 섞은 ‘이크티스: 예수 물고기’를 내놓은 일은 변화의 방향을 잘 보여준다. 폴란드 애니메이션은 아날로그와 디지털 사이에서 한쪽을 버리는 대신 둘을 포개는 방식을 택했다.
2017년 공개된 ‘러빙 빈센트’는 그런 흐름이 가장 또렷하게 드러난 작품이다. 폴란드 제작사 브레이크스루 필름스와 영국 트레이드마크 필름스가 함께 만든 장편 애니메이션은 모든 프레임을 유화로 직접 그렸다. 7년에 걸쳐 화가 100여 명이 캔버스 6만5000장에 그림을 남겼다. 작품은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상 후보에 올랐고, 유럽영화상과 안시 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 관객상을 받았다. 제작비 550만 달러로 전 세계 흥행 4400만 달러를 기록했다. 중요한 점은 흥행 규모 자체보다 방식에 있다. 디지털 시대 한복판에서 회화의 물성과 붓질의 흔적을 영화의 시간으로 바꾸는 작업이 상업적으로도 통했다는 사실이다.
폴란드 애니메이션의 미학은 여기서 또렷해진다. 손으로 만드는 방식이 기술 이전의 낡은 공정으로 밀려난 적이 없었다. 인형극과 스톱모션, 오려내기, 작화, 회화가 새로운 도구와 충돌하기보다 서로를 밀어 올리는 재료로 남았다. 그래서 폴란드 애니메이션을 보면 화면의 질감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매끈하게 정리된 디지털 이미지보다 손의 흔적과 재료의 결이 살아 있다. 폴란드 애니메이션이 세계 시장에서 독자적인 자리를 지키는 이유도 그 감각에 있다.
오늘 폴란드가 VFX와 애니메이션 제작 거점으로 거론되는 배경에는 오래된 산업사가 아니라 오래된 미학사가 놓여 있다. 폴란드 애니메이션은 유럽의 저비용 제작지라는 말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스타레비츠의 곤충 영화에서 시작된 움직임의 감각, 국영 스튜디오 시절 다져진 작가주의 전통, ‘볼렉과 롤렉’과 ‘렉시오’가 증명한 수출형 문법, ‘탱고’가 보여준 예술적 밀도, ‘러빙 빈센트’가 입증한 회화적 집념이 한 줄로 이어져 있다. 손으로 만든 시간의 두께가 폴란드 애니메이션의 경쟁력으로 남아 있는 셈이다.
한국 콘텐츠 업계에 주는 시사점도 가볍지 않다. 기술만 빠르게 들여온다고 제작 문화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랫동안 축적한 감각과 작법, 학교와 스튜디오가 공유하는 화면 문법이 있어야 새 기술도 자기 색을 얻는다. 폴란드 애니메이션이 보여주는 힘은 바로 그 축적에 있다. 손기술의 전통을 지운 뒤 디지털로 옮겨간 산업이 아니라, 손기술 위에 디지털을 올려놓은 산업이라는 점이다. 유럽의 여러 제작 거점 가운데 폴란드가 유독 별도의 이름으로 불리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