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트렌드③] 바르샤바에서 우쯔까지... 글로벌 OTT가 ‘픽’한 폴란드 강소 스튜디오의 힘
넷플릭스·애플TV 잇는 글로벌 제작 허브... ‘대기업 1곳’ 대신 ‘전문 스튜디오 다수’의 유연한 생태계가 경쟁력, 국제 공동제작 경험이 자산
[KtN 홍은희기자]폴란드 애니메이션 시장에는 미국처럼 시장을 움켜쥔 초대형 제작사가 없다. 바르샤바, 우쯔, 크라쿠프, 그단스크에 자리 잡은 제작사들이 맡은 분야를 나눠 일한다. 바르샤바에서는 3D와 VFX 작업이 많고, 우쯔에서는 스톱모션과 인형극 작업이 이어진다. 크라쿠프와 그단스크에서는 어린이용 시리즈와 단편 작업이 꾸준히 나온다. 폴란드 애니메이션은 회사 하나가 끌고 가는 시장이 아니라, 도시마다 다른 작업장이 나눠 움직이는 시장이다.
바르샤바에서는 플라티지 이미지 이름이 먼저 나온다. 1997년 설립된 플라티지 이미지는 게임 ‘더 위쳐’ 시리즈 시네마틱과 ‘사이버펑크 2077’ 트레일러 작업으로 이름을 알렸다. 넷플릭스 프로젝트에도 참여했다. 영화, 게임, 광고를 오가며 3D와 VFX 작업을 맡아왔다. 폴란드 디지털 영상 제작 역량을 보여주는 대표 회사로 꼽히는 이유다.
우쯔에서는 세마포르가 빠지지 않는다. 1947년 국영 기업으로 출발한 세마포르는 스톱모션과 인형극 작업으로 이름을 남겼다. 2006년 ‘피터와 늑대’로 아카데미 단편 애니메이션상을 받았다. 우쯔 작업장은 폴란드 애니메이션을 디지털 기술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천과 나무, 철사와 세트, 조명과 인형을 다루는 수작업 기술이 아직도 제작 현장에 남아 있다.
애니문과 GS 애니메이션, 휴먼 아크, 렛코, 플랫 풋 필름스, 브레이크스루 필름스 같은 회사들도 꾸준히 이름이 나온다. 애니문은 어린이용 애니메이션과 TV 시리즈를 만들어왔다. GS 애니메이션은 2D 시리즈와 단편 작업으로 알려져 있다. ‘바샤’는 폴란드 어린이 콘텐츠 시장에서 자주 거론되는 작품이다. 휴먼 아크는 영화와 방송, 광고, 게임 분야를 오가며 3D와 VFX 작업을 맡는다. 브레이크스루 필름스는 ‘러빙 빈센트’로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다. 회사 규모는 크지 않지만 맡은 작업은 선명하다.
폴란드 제작사들이 오래전부터 해외 시장을 먼저 본 이유는 내수 규모와도 맞닿아 있다. 폴란드 안에서만 편성하고 배급해서는 제작사를 오래 끌고 가기 어렵다. 공동제작, 해외 판권 판매, 서비스 용역이 자연스럽게 일감의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됐다. 미국 대형 스튜디오처럼 캐릭터 상품과 테마파크, 대규모 프랜차이즈 사업으로 수익을 내는 방식과는 결이 다르다. 폴란드 제작사들은 공동제작 계약과 공공 기금, 판권 판매를 바탕으로 작업을 이어왔다.
국제 프로젝트 참여 이력도 적지 않다. ‘러빙 빈센트’는 영국과의 공동제작으로 완성됐다. 넷플릭스와 애플TV 프로젝트에도 폴란드 제작사들이 참여했다. 광고와 게임 시네마틱, 실사 후반작업까지 합치면 폴란드 제작사들이 손대는 분야는 애니메이션 한 갈래에 머물지 않는다. 유럽 안에서 폴란드가 제작 거점으로 자주 언급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장편 애니메이션, 시리즈, 광고, 게임 영상, VFX 작업이 한 시장 안에서 이어진다.
학교와 방송, 영화제도 제작 현장을 받친다. 우쯔 영화학교와 크라쿠프 예술대학, 우쯔 예술대학은 인력을 길러낸다. 공영방송 TVP는 어린이 채널을 운영하며 애니메이션 편성과 제작을 이어간다. 포즈난의 애니메이터 페스티벌, 크라쿠프의 에티우다 앤 아니마, 우쯔의 스톱트릭 같은 영화제는 작품 발표와 거래, 네트워크가 이뤄지는 자리다. 제작사는 따로 놀지 않는다. 학교와 방송, 영화제가 함께 얽혀 돌아간다.
한국 콘텐츠 업계가 폴란드를 눈여겨보는 이유도 분명하다. 한국은 웹툰과 게임, 영유아 콘텐츠처럼 강한 IP를 갖고 있다. 폴란드는 공동제작 경험과 후반작업 역량, 유럽 시장 네트워크를 쌓아왔다. 작품 성격에 따라 파트너를 고를 수 있다는 점도 눈에 띈다. 어린이용 2D 시리즈라면 해당 분야 경험이 많은 제작사를 찾으면 된다. 시네마틱과 VFX 비중이 큰 프로젝트라면 바르샤바의 디지털 제작사가 먼저 검토 대상에 오른다. 수작업 감각이 중요한 작품이라면 우쯔의 스톱모션 작업장이 먼저 거론된다.
폴란드 애니메이션 시장의 모습은 분명하다. 초대형 제작사 한 곳이 판을 짜는 시장이 아니다. 여러 제작사가 프로젝트마다 역할을 나눠 맡고, 도시마다 쌓인 기술이 서로 다른 작업으로 이어진다. 바르샤바의 3D와 VFX, 우쯔의 스톱모션, 크라쿠프와 그단스크의 2D와 어린이용 시리즈가 함께 돌아간다. 글로벌 OTT와 국제 공동제작 시장이 폴란드를 찾는 이유도 그 축적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