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트렌드④] 제작비 30% 현금 환급... 폴란드는 어떻게 글로벌 제작사를 유혹하나

2019년 도입된 ‘파격 인센티브’, 연간 400억 원 규모 지원... 한국 기업엔 기회이자 도전, 현지 파트너십이 성공의 열쇠

2026-03-28     홍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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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N 홍은희기자]폴란드가 해외 제작사를 끌어들이는 방식은 분명하다. 예술 전통이나 인력만 내세우지 않는다. 제작비를 돌려준다. 2019년부터 시행한 시청각 제작 프로젝트 재정 지원 제도가 폴란드 콘텐츠 정책의 중심에 있다. 폴란드 안에서 쓴 제작비의 30%를 현금으로 환급하는 방식이다. 사업은 폴란드 영화진흥원(PISF)이 맡고 있다. 연간 예산은 1억800만 즈워티, 우리 돈 약 400억 원 수준이다.

애니메이션에는 별도 몫도 있다. 전체 예산 가운데 최소 10%를 애니메이션 프로젝트에 배정한다. 실사 영화와 드라마에 밀려 지원 순위가 뒤로 밀리는 구조가 아니라는 뜻이다. 지원 한도도 적지 않다. 프로젝트 한 건당 최대 1500만 즈워티, 신청자 한 곳당 연간 최대 2000만 즈워티까지 받을 수 있다. 다만 폴란드 안에서 쓴 비용 가운데 지원 대상으로 인정되는 금액은 전체 제작비의 80%까지만 잡힌다. 제작비를 어떻게 나누고 어디에서 집행할지 처음부터 세밀하게 짜야 하는 이유다.

문턱은 낮지 않다. 신청자는 폴란드 영토 안에 등록 사무실을 둔 제작자나 기업이어야 한다. 극장 상영, 방송 송출, 국제영화제 상영이나 수상 경력을 가진 제작자 또는 그런 제작자를 고용한 회사여야 한다. 프로젝트 계약도 미리 성사돼 있거나 합의된 상태여야 한다. 장편 애니메이션은 러닝타임 60분 이상, 제작비 100만 즈워티 이상이 기준이다. 애니메이션 시리즈는 에피소드당 최소 10분, 시즌 전체 50분 이상, 제작비 100만 즈워티 이상이어야 한다. 제작 서비스만 맡는 회사라면 기준 제작비는 50만 즈워티로 내려간다.

심사도 형식만 보지 않는다. 지원금은 100점 만점 평가에서 51점 이상을 받아야 지급된다. 폴란드 또는 유럽 문화유산 활용 여부, 폴란드 안에서 이뤄지는 촬영과 제작 일정, 현지 아티스트와 제작진 참여 비중, 폴란드 영상 인프라 활용 정도가 주요 평가 항목에 들어간다. 폴란드 안에서 돈만 쓰고 끝나는 프로젝트보다 현지 산업과 실제로 맞물리는 프로젝트에 점수를 주겠다는 설계다.

한국 제작사 입장에서 가장 먼저 걸리는 대목은 실무다. 신청서는 폴란드어로 써야 하고, 관련 서류도 폴란드어 공증 번역을 거쳐야 한다. 준비 기간도 짧지 않다. 프로젝트 개시 1년 전 신청이 원칙이다. 제도만 보고 단독으로 들어가기 쉽지 않은 이유가 여기 있다. 한국 제작사가 폴란드 지원 제도를 활용하려면 현지 제작사와 손잡는 방식이 사실상 가장 현실적이다.

현지 파트너십이 중요한 까닭도 분명하다. 폴란드에는 영화진흥원 외에도 애니메이션 제작자 협회와 국립 영상문화센터 같은 기관이 있다. 현지 스튜디오와 공동제작 계약을 맺으면 행정 절차를 줄일 수 있고, 심사에서도 유리한 조건을 만들 수 있다. 현지 인력 참여와 제작 인프라 활용 비중을 높이기 쉬워지기 때문이다. 지원 제도는 열려 있지만, 실제 진입 경로는 현지 네트워크를 통과하는 방식에 가깝다.

초기 단계 제작사라면 ‘자격 요건 확인서’도 살펴볼 만하다. 본 지원 사업의 요건을 충족한다는 확인서를 사전 제작 단계에서 받아두는 제도다. 제작비 조달이 끝나지 않은 회사라도 투자자나 공동제작 파트너를 만날 때 활용할 수 있다. 연중 발급 신청이 가능하다는 점도 실무에서는 쓸모가 있다. 지원금을 바로 받는 제도는 아니지만, 프로젝트 신뢰도를 높이는 서류로는 가치가 있다.

폴란드 지원 제도의 뜻은 분명하다. 해외 제작사를 부르는 데서 멈추지 않고, 현지 제작과 고용, 인프라 활용까지 함께 묶어내겠다는 정책이다. 애니메이션 예산을 따로 떼어둔 점도 같은 흐름에 있다. 폴란드는 예술 전통만 가진 나라로 남지 않겠다는 쪽에 가깝다. 손기술과 작가주의 전통 위에 제도까지 올려놓고, 유럽 제작 거점이라는 자리를 넓히고 있다.

한국 콘텐츠 업계에 폴란드가 눈에 들어오는 이유도 여기 있다. 웹툰과 게임, 애니메이션 IP를 쥔 한국 제작사 입장에서는 제작비 부담을 낮추면서 유럽 안쪽에서 공동제작과 유통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 다만 지원 제도를 만능 열쇠처럼 볼 수는 없다. 언어, 행정, 심사 기준, 준비 기간까지 넘어야 할 문턱이 적지 않다. 폴란드 지원 제도는 기회가 큰 만큼 준비도 많이 요구하는 제도다. 성공 여부는 제도 자체보다 현지 파트너를 얼마나 잘 고르고, 제작 구조를 얼마나 치밀하게 짜느냐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