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uty and the Bag③] 의류보다 가방… 구찌가 다시 핸드백을 앞세운 이유
경기 둔화 국면에서 다시 커진 액세서리 비중 질리오와 보르세토 한꺼번에 내세워 매출 축 다시 세우는 구찌
[KtN 박인경기자]구찌가 ‘Beauty and the Bag’ 캠페인에서 가장 먼저 꺼낸 품목은 의류가 아니라 가방이었다. 케이트 모스가 든 보르세토, 에밀리 라타이코프스키가 멘 질리오가 광고의 중심에 놓였다. 긴 손잡이와 골드톤 호스빗, 큰 토트의 부피, GG 캔버스와 웹 스트라이프가 반복해서 나온다. 구찌가 이번 시즌 어디에 힘을 싣는지 보여주는 장면이다. 의류보다 핸드백이다.
최근 몇 년 동안 럭셔리 브랜드를 둘러싼 경쟁은 런웨이와 의류, 브랜드 이미지 변화 쪽에 더 많이 쏠렸다. 시장이 둔해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브랜드들은 다시 손에 잡히는 품목으로 돌아간다. 대부분의 하우스에서 그 품목은 액세서리, 그중에서도 핸드백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핸드백은 브랜드 상징을 압축하기 쉽고, 시즌이 바뀌어도 비교적 오래 팔 수 있다. 색상과 소재, 크기를 바꿔 계속 늘리기도 쉽다. 의류보다 매출 구조를 세우기에 유리한 품목이다.
핸드백은 브랜드를 설명하기도 쉽다. 구찌라면 호스빗과 웹 스트라이프, GG 캔버스 같은 재료를 한 제품 안에 묶을 수 있다. 손잡이와 금속 장식, 표면 무늬, 형태만으로도 브랜드를 알아보게 만들 수 있다. 의류는 전체 착장과 체형, 계절, 유행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 반면 가방은 한 점만으로도 존재감이 분명하다. 사진 한 장 안에서도 눈에 띄고, 거리에서도 바로 보인다. 브랜드 입장에서 핸드백이 여전히 강한 이유다.
시즌 수명도 다르다. 레디투웨어는 한 철이 지나면 힘이 빠지는 경우가 많다. 실루엣과 색, 스타일링 분위기가 빠르게 바뀌기 때문이다. 핸드백은 그보다 오래 버틴다. 잘 팔리는 형태 하나를 잡으면 소재와 색상, 크기를 바꿔 몇 시즌이고 이어갈 수 있다. 브랜드가 마케팅 비용을 한 제품군에 집중하기도 쉽다. 새 가방을 내놓을 때마다 “아이콘”이라는 말을 붙이는 이유도 결국 여기로 모인다. 오래 파는 제품을 만들고 싶다는 뜻이다.
구찌가 질리오와 보르세토를 함께 꺼낸 것도 그런 계산과 멀지 않다. 질리오는 큰 토트형 백이다. 수납 공간이 넓고, GG 캔버스와 데님, 짙은 갈색 가죽처럼 소재도 여러 갈래로 나뉜다. 출근과 이동, 데일리 사용 같은 수요를 붙잡기 좋다. 보르세토는 보스턴백에 가깝다. 길게 뽑은 손잡이와 골드톤 호스빗, 브라운 스웨이드와 블랙 레더, 샌드 GG 캔버스처럼 형태와 소재 차이가 분명하다. 실용보다 취향과 형태를 먼저 보는 손님에게 설명하기 쉬운 가방이다.
구찌는 서로 다른 손님을 한꺼번에 불렀다. 질리오는 많이 들어가는 가방을 찾는 손님에게 말을 건다. 보르세토는 손잡이와 장식, 윤곽이 먼저 보이는 가방을 찾는 손님에게 맞춰졌다. 하나는 일상 수요를, 다른 하나는 취향 소비를 겨냥한 셈이다. 브랜드 입장에서는 이런 구성이 안정적이다. 신규 고객과 기존 고객을 함께 붙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처음 사는 손님은 대개 쓰임과 범용성을 먼저 보고, 이미 여러 개 가진 손님은 형태와 장식, 취향의 선명함을 더 따지게 된다.
핸드백은 상품군 확장도 쉽다. 같은 형태라도 캔버스, 데님, 레더로 나눌 수 있고, 색상과 크기를 바꾸며 계속 가지를 칠 수 있다. 질리오와 보르세토처럼 성격이 다른 모델을 한꺼번에 세우면 더 그렇다. 큰 토트와 보스턴백이 먼저 깔리고, 그 위에 소재와 색상, 가격대를 얹을 수 있다. 럭셔리 브랜드들이 경기 둔화 국면에서 핸드백을 더 세게 미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 제품군 안에서 폭을 넓히기 쉽고, 여러 가격대를 촘촘하게 세울 수 있다.
가격을 지키는 데도 핸드백은 유리하다. 브랜드 헤리티지와 금속 하드웨어, 장인성, 아카이브 모티프는 모두 가격표를 받치는 재료가 된다. 질리오는 플로렌스와 백합을 붙였고, 보르세토는 호스빗과 디아만테를 붙였다. 단순한 유행 상품이 아니라 오래 들 수 있는 가방처럼 보이게 만드는 방식이다. 이런 설명이 붙을수록 소비자는 “비싸다”보다 “오래 갈 것 같다”는 쪽으로 생각하기 쉽다. 브랜드가 원하는 것도 그 지점이다.
불안한 경기에서는 소비자도 물건을 다르게 고른다. 의류처럼 한 철 입고 지나갈 물건보다 오래 들 수 있는 쪽으로 시선이 간다. 명품 가방이 늘 투자 자산처럼 움직인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최소한 브랜드들은 그렇게 설명하려 한다. 오래된 상징과 클래식한 형태, 유행을 덜 타는 색상과 소재를 앞세우는 이유도 여기 있다. 시간이 지나도 가치가 쉽게 꺾이지 않을 것 같은 인상을 만드는 일이다. 구찌가 GG 캔버스와 디아만테, 호스빗, 웹 스트라이프를 다시 세게 꺼낸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그렇다고 이번 전략을 과장할 필요는 없다. 구찌가 완전히 새로운 길을 낸 것은 아니다. 럭셔리 업계는 시장이 흔들릴 때마다 아카이브와 액세서리로 돌아가곤 했다. 익숙한 기호를 다시 꺼내고, 설명하기 쉬운 형태를 앞세우고, 오래 팔 수 있는 제품을 키우는 방식이다. 구찌도 그 공식을 따랐다. 질리오와 보르세토는 완전히 낯선 형태가 아니다. 큰 토트와 보스턴백이라는 익숙한 틀 위에 구찌의 오래된 재료를 다시 얹은 쪽에 가깝다.
광고가 만든 분위기와 실제 판매가 늘 같은 속도로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 케이트 모스와 라타이코프스키를 앞세운 캠페인은 초반 화제를 끌기 쉽다. 다만 모델 이름이 빠르게 퍼지는 동안 제품명은 늦게 남을 수도 있다. 질리오와 보르세토가 진짜 상품명으로 자리 잡으려면 광고 바깥의 장면이 더 중요하다. 매장 진열, 셀러브리티 착용, 거리 사진, 잡지 화보, 소재와 색상 확장이 뒤따라야 한다. 광고 한 편만으로 아이콘 백이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생활 속 사용 장면도 따로 증명해야 한다. 질리오는 크고 많이 들어가는 대신 부피와 무게가 부담이 될 수 있다. 보르세토는 손잡이와 금속 장식, 윤곽이 또렷한 대신 모든 차림에 쉽게 붙는 형태는 아닐 수 있다. 매장에서는 결국 무게와 수납, 가격과 범용성 같은 질문이 나온다. 광고가 만든 분위기보다 손에 들었을 때의 감각이 더 오래 남는 법이다.
그래도 구찌가 이번 시즌 무엇을 먼저 세우려 하는지는 분명하다. 핸드백은 브랜드 상징을 압축하기 쉽고, 경기가 둔할 때도 비교적 버티는 품목이다. 질리오와 보르세토는 각자 맡은 자리가 다르다. 하나는 일상 수요를 붙잡고, 다른 하나는 취향 소비를 자극한다. 구찌는 오래된 자산을 다시 꺼내 두 갈래 손님 앞에 놓았다. 의류보다 가방을 먼저 세운 이유도 거기서 찾을 수 있다. 브랜드는 지금 가장 설명하기 쉬운 품목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