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트렌드③] ‘전기 먹는 하마’에서 전력망 보조 자원으로… 데이터센터, 지역 전력과 공존 모색

수요반응·현장 저장장치로 전력 부담 낮추는 운영 확산 배터리는 비상전원 넘어 계통 유연성 높이는 자산으로 데이터센터 인허가의 새 변수는 전력 소비량보다 ‘전력 기여 방식’

2026-03-30     김 규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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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N 김 규운기자]데이터센터는 오랫동안 지역 전력망에 부담을 주는 시설로 인식돼 왔다. 전력 수요가 큰 데다 24시간 가동이 기본이어서, 신규 부지 선정과 인허가 과정에서도 주민 반발과 전력망 수용 문제가 반복됐다. 그러나 인공지능 확산으로 전력 수요가 급증한 최근에는 데이터센터를 단순한 대형 소비처가 아니라 전력망 운영에 일부 기여할 수 있는 자원으로 활용하려는 움직임도 커지고 있다.

변화의 출발점은 전력망의 현실이다. 데이터센터 수요는 빠르게 늘고 있지만 송전망과 변전설비 확충 속도는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전력회사와 계통 운영기관은 데이터센터에 전기를 더 많이 공급하는 문제만이 아니라, 피크 시간대에 부하를 얼마나 줄일 수 있는지, 현장 저장장치와 비상전원을 통해 계통 부담을 얼마나 낮출 수 있는지까지 함께 보기 시작했다.

실제 미국에서는 데이터센터를 전력망 유연성 자원으로 활용하는 논의가 빨라지고 있다. 전력 수요가 몰릴 때 일부 부하를 줄이거나 시간을 옮기는 수요반응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데이터센터 업계는 그동안 서비스 중단 위험 때문에 이런 방식에 소극적이었지만, 최근에는 전력망 사정이 빠듯해지면서 빅테크와 전력회사가 직접 협력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데이터센터 운영을 완전히 멈추는 방식이 아니라, 업무 일부를 다른 지역으로 옮기거나 현장 배터리와 예비전원을 활용해 계통 부담을 낮추는 방식이 검토되고 있다.

구글은 최근 미국 5개 전력회사와 데이터센터 전력 사용을 피크 시간대에 줄일 수 있도록 하는 계약을 맺었다. 회사 측은 최대 1기가와트 규모의 전력 사용 감축 여력을 제공할 수 있다고 밝혔다. 데이터센터가 전력망에서 전기를 끌어다 쓰기만 하는 시설이 아니라, 전력 수급이 빠듯한 시간에는 수요를 조정하는 대형 자원으로 기능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배터리의 역할도 달라지고 있다. 과거 데이터센터 배터리는 정전 때 잠시 전력을 공급하는 무정전전원장치 성격이 강했다. 지금은 현장 에너지저장장치를 통해 피크 시간대 구매 전력을 줄이고, 전력 품질을 안정시키며, 필요할 경우 수요반응 프로그램과 연계하는 방향으로 쓰임새가 넓어지고 있다. 비상 상황에만 대기하던 설비가 평상시에도 전력비와 계통 부담을 함께 관리하는 운영 자산으로 바뀌고 있는 셈이다.

이런 흐름은 배터리 시장 성장 전망과도 맞물린다. 시장조사업체 IDTechEx는 데이터센터를 포함한 상업용·산업용 배터리 에너지저장장치 시장이 2036년 210억달러 규모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여기에는 단순한 백업 전원 수요만이 아니라, 전력망 대응과 현장 전력관리 수요가 함께 반영돼 있다. 데이터센터가 저장장치를 비용 항목으로만 보던 단계에서 벗어나, 운영 안정성과 전력 조달 전략을 함께 묶는 자산으로 보는 흐름이 시장을 키우는 배경으로 읽힌다.

다만 데이터센터가 곧바로 지역 전력망의 해결사로 바뀐다고 보기에는 이르다. 대형 데이터센터는 여전히 막대한 전력을 필요로 하고, 잘못 설계되면 지역 전력망과 주민 부담을 더 키울 수도 있다. 수요반응 역시 서버 가동과 고객 서비스에 영향을 주지 않는 범위에서 제한적으로만 가능하다. 업계가 말하는 ‘공존’은 전력 소비 자체를 없애는 개념이 아니라, 저장장치와 운영 기술을 통해 소비 패턴을 더 유연하게 만드는 데 가깝다.

핵심은 데이터센터 인허가와 운영 기준이 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총 전력 수요와 부지 규모가 우선이었다면, 이제는 계통 연결 시점, 현장 발전·저장 설비 보유 여부, 피크 시간대 대응 능력까지 함께 따지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전기를 얼마나 많이 쓰는지만이 아니라, 전력망이 어려울 때 얼마나 협조할 수 있는지가 사업 추진의 현실 조건이 되고 있는 것이다.

데이터센터의 다음 경쟁력은 서버 밀도나 반도체 조달 능력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충분한 전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일과 함께, 지역 전력망과 충돌하지 않는 운영 모델을 갖추는 일이 중요해졌다. AI 시대 데이터센터는 더 많은 전기를 쓰는 시설이면서 동시에 그 전기를 어떻게 나눠 쓰고 조절할지 보여줘야 하는 시설이 됐다. 전력 소비시설이라는 낙인을 지우려면, 지역 사회와 전력망이 체감할 수 있는 수준의 기여 방식을 먼저 증명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