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의 시차③] 기동대 요청 진술과 늦어진 수사… 이태원참사 진상규명 청문회가 다시 묻는 책임의 빈칸

기존 수사 결론과 엇갈린 현장 증언, 법정의 판단과 사회가 묻는 책임 사이에 남은 간극

2026-03-30     박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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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N 박준식기자]13일, 10·29 이태원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청문회가 이틀 일정을 마쳤다. 마지막까지 남은 쟁점은 뚜렷했다. 현장에서는 인파 관리 인력 투입 요청이 있었다는 진술이 나왔고, 참사 뒤 정리된 기록과 기존 수사 결론 사이에서는 적지 않은 간극이 드러났다. 청문회가 끝난 뒤에도 질문이 가라앉지 않은 이유는 이미 정리된 것으로 여겨졌던 결론이 다시 흔들렸기 때문이다.

이번 청문회에서 다시 떠오른 대목은 경비기동대 요청 여부였다. 참사 직후 경찰 수뇌부와 특별수사본부는 용산경찰서의 공식적인 기동대 지원 요청이 없었다는 취지로 정리해 왔다. 그런데 청문회에서는 다른 진술이 나왔다. 당시 현장 실무자들은 인파 관리를 위해 서울청에 기동대 투입을 여러 차례 요청했다고 증언했다. 구두 전달과 메신저 보고가 있었다는 설명도 이어졌다. 기존 수사 결론과 배치되는 대목이다.

이 충돌은 책임의 방향을 다시 가르게 한다. 참사 예방 실패를 따질 때 기동대 요청 여부는 지휘선의 판단을 짚는 핵심 쟁점이기 때문이다. 현장 판단 미흡에 무게를 둔 기존 설명과 달리, 상급 기관이 요청을 알고도 다른 판단을 했다는 정황이 확인되면 수사의 초점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청문회가 이 문제를 다시 전면에 올린 이유도 여기에 있다. 참사 이전의 경고와 요청이 실제로 어느 선까지 올라갔는지, 그 선에서 어떤 판단이 이뤄졌는지를 다시 따져야 한다는 요구가 커졌다.

참사 뒤 기록과 진술의 차이도 함께 드러났다. 청문회에서는 당시 보고와 전달 경로, 참사 직후 작성된 문건, 내부 설명이 얼마나 일치하는지를 둘러싼 공방이 이어졌다. 일부 증언은 기존 수사 기록과 어긋났고, 일부는 참사 뒤 조직 내부에서 어떤 설명이 공유됐는지 다시 확인할 필요성을 남겼다. 수사기관이 이미 결론을 정리했더라도, 그 결론이 어떤 자료와 어떤 진술 위에 세워졌는지 다시 들여다봐야 할 이유가 여기서 생긴다.

이상민 답변 중 윤셕열, 직접 신문 "잘못 말씀하신 것 같아서" ...문서 사후 결재할 수 있어" 사진=2025 02.11  헌법재판소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대형 참사 수사가 반복해서 부딪히는 한계도 이번 청문회에서 다시 드러났다. 수사는 형사처벌이 가능한 행위를 좁혀 본다. 누가 어떤 시각에 어떤 보고를 받았는지, 누가 어떤 지시를 했는지, 그 판단이 형법상 과실과 어떻게 이어지는지가 우선 기준이 된다. 반면 유가족과 시민사회가 묻는 것은 다르다. 왜 위험 신호가 누적됐는데도 국가는 움직이지 않았는지, 왜 여러 기관이 동시에 현장을 보고도 재난 대응 체계가 제대로 전환되지 않았는지를 묻는다. 법정이 다루는 책임과 사회가 체감하는 책임이 어긋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고위직 책임 문제는 이 간극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대목이다. 현장 실무자는 구체적인 행위와 판단이 기록으로 남는다. 반면 지휘선 위로 올라갈수록 책임은 관리와 감독의 문제로 바뀐다. 보고를 받았는지, 구체적인 예견 가능성이 있었는지, 직접 지시 의무가 있었는지를 따지는 순간 형사책임의 문턱은 높아진다. 대형 참사 뒤 수사가 이어져도 최종 결론이 시민에게 충분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일이 반복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현장에서 본 시스템의 붕괴가 법정에서는 개별 행위의 단편으로 남기 쉽기 때문이다.

기관별로 흩어진 대응 구조도 같은 문제를 키운다. 참사 대응은 행정안전부, 지자체, 경찰, 소방이 함께 움직여야 하는 구조다. 그러나 조사와 수사가 시작되면 각 기관은 자기 기록과 자기 권한을 앞세운다. 구청은 경찰 대응을, 경찰은 보고 체계를, 중앙은 현장 판단을 말한다. 그 사이에서 전체 시스템이 왜 멈췄는지는 뒤로 밀린다. 이번 청문회에서도 각 기관은 당시 상황과 조치를 설명했지만, 설명들이 한 줄의 시간표로 매끄럽게 이어지지는 않았다. 빠진 보고와 엇갈린 진술, 서로 다른 기록 해석이 그대로 남았다.

수사의 더딘 공개도 의문을 키우고 있다. 2025년 7월 출범한 검경 합동수사팀은 참사의 원인과 구조 활동, 대응의 적정성 전반을 다시 들여다보겠다고 했다. 그런데 2026년 3월 청문회가 끝난 뒤에도 중간 결과는 뚜렷하게 제시되지 않았다. 유가족 측은 청문회에서 새로 제기된 의혹과 추가 수사 과제를 반영하라고 촉구했다. 청문회가 새로운 질문을 던졌는데도 수사가 그 질문을 얼마나 받아안고 있는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3월 청문회가 남긴 것은 새로운 결론보다 다시 확인된 빈칸이었다. 기동대 요청은 실제로 어디까지 전달됐는가. 참사 직후의 기록은 어떤 과정을 거쳐 정리됐는가. 기존 수사 결론은 그 기록과 진술을 충분히 반영했는가. 국가는 왜 반복해서 책임의 문턱 앞에서 멈추는가. 이 질문이 남아 있는 한, 이태원참사는 지나간 사건으로만 남기 어렵다.

청문회가 다시 연 것은 사건의 문이 아니라 기록의 문이었다. 이미 끝났다고 여겨졌던 수사와 설명을 다시 시간표 위에 올려놓고, 빠진 보고와 엇갈린 진술, 남겨진 책임을 다시 읽게 했다. 참사가 벌어진 시간과 국가가 책임을 인정하는 시간 사이의 거리, 현장이 겪은 붕괴와 제도가 기록한 결론 사이의 거리가 여전히 남아 있다는 점도 함께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