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hiaparelli①] 런던 V&A에 들어선 스키아파렐리 100년, 영국 첫 회고전 개막
엘사 스키아파렐리의 초현실주의 실험부터 다니엘 로즈베리의 현대 쿠튀르까지 400여 점 전시
[KtN 임우경기자]런던 사우스켄싱턴의 빅토리아 앤 앨버트 박물관(V&A) 세인즈버리 갤러리에 스키아파렐리 100년이 들어섰다. 지난 28일 개막한 ‘스키아파렐리: 패션, 예술이 되다(Schiaparelli: Fashion Becomes Art)’는 영국에서 처음 열리는 메종 스키아파렐리 회고전이다. 1920년대 엘사 스키아파렐리의 출발부터 현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다니엘 로즈베리의 쿠튀르까지 의상과 드로잉, 주얼리, 아카이브 자료 400여 점이 전시장에 놓였다.
프랑스 쿠튀르 하우스의 역사를 런던이 먼저 대규모로 묶어냈다는 점도 눈에 띈다. V&A는 파리의 작업만 가져오지 않았다. 1933년 스키아파렐리가 메이페어에 살롱을 열고 영국 사교계와 무대 의상계에 남긴 흔적까지 전시 구성에 포함했다. 파리의 전위, 런던의 사교 문화, 할리우드의 무대와 스크린이 한 공간에서 이어진다.
전시는 메종의 연대기를 단순히 늘어놓는 방식이 아니다. 100벌이 넘는 의상과 50점 안팎의 예술 작품이 네 갈래 흐름으로 나뉘어 놓였고, 관람객은 엘사 스키아파렐리의 초기 실험에서 초현실주의 협업, 런던과 영화 의상으로 넓어진 활동, 다니엘 로즈베리가 이어가는 현재까지 차례로 보게 된다. 옷과 회화, 드로잉, 소도구, 사진 자료가 같은 맥락 안에 배치돼 있어 패션사만이 아니라 20세기 시각문화의 일부로 읽히는 구성이 많다.
초기 구역에는 1927년 트롱프뢰유 보타이 니트가 놓였다. 평면의 뜨개 조직으로 리본이 묶인 것처럼 보이게 만든 이 니트는 스키아파렐리 출발기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몸에 맞춘 단정한 일상복 위에 착시와 농담을 얹는 방식은 당시 파리 패션계에서 드문 시도였다. 스키아파렐리는 이 작업을 통해 데이웨어를 단순한 실용복에서 벗어나게 했다. 옷감과 재단만으로 설명되던 여성복에 시각적 장난과 지적 유희를 들여놓은 셈이다.
엘사 스키아파렐리의 옷은 처음부터 단정한 우아함보다 충돌과 낯섦에 가까웠다. 지퍼는 감추는 부속이 아니라 드러내는 장식이 됐고, 단추와 자수, 프린트는 기능보다 발상을 앞세웠다. 리본은 실제 장식이 아니라 착시로 바뀌고, 몸은 의복 안에 가려지는 대신 의복 표면에서 다시 드러났다. 살바도르 달리, 장 콕토, 맨 레이 같은 예술가들이 그녀 주변에 모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패션이 몸을 치장하는 기술에 머물지 않고 상상력의 매체가 될 수 있다는 판단이 스키아파렐리 작업에는 일찍부터 깔려 있었다.
전시 중심부에는 스키아파렐리와 초현실주의 예술가들의 협업이 모였다. 1937년 ‘랍스터 드레스’, 1938년 ‘스켈레톤 드레스’, 장 콕토의 드로잉을 자수로 옮긴 의상들이 대표 출품작으로 배치됐고, 곁에는 달리와 콕토의 작업이 함께 걸렸다. 옷 한 벌을 공예품처럼 따로 떼어 보여주기보다 당시 미술과 패션이 같은 시대 감각 속에서 어떻게 얽혀 움직였는지를 드러내는 배열이다.
‘랍스터 드레스’는 지금 봐도 낯설다. 흰 실크 위에 커다란 붉은 랍스터가 내려앉은 이 의상은 우아한 이브닝드레스의 문법 위에 일상적이지 않은 이미지를 얹는다. 고급 쿠튀르의 표면에 불편하고도 우스꽝스러운 상징을 밀어 넣는 방식이 한눈에 들어온다. 달리의 ‘랍스터 전화기’와 나란히 놓인 장면에서는 스키아파렐리의 옷이 미술의 주변부가 아니라 동시대 시각문화 한가운데 놓여 있었다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스켈레톤 드레스’가 놓인 자리에서는 엘사의 실험이 더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드레스 표면에 솟아오른 갈비뼈와 척추, 골반 형태는 몸을 감추는 옷의 관습을 뒤집는다. 의복은 피부 바깥을 감싸지만 스키아파렐리는 그 바깥쪽에 몸 안의 구조를 꺼내놓았다. 장 콕토와 주고받은 선과 형상의 감각도 그 주변에서 또렷하다. 옷은 장식품이 아니라 몸의 이미지를 다시 그리는 매체가 된다.
런던 관객에게는 메이페어 살롱과 영화 의상으로 이어지는 구역도 흥미롭다. 1933년 문을 연 런던 살롱, 영국 사교계와 무대 의상계, 미국 영화 산업으로 이어지는 스키아파렐리의 활동 반경이 한데 묶였다. 메 웨스트를 위해 만든 의상, 마를렌 디트리히가 즐겨 입은 테일러링, 실험적 소재로 만든 웨딩드레스가 그 흐름을 잇는다. 파리 쿠튀르 하우스의 역사를 다루면서도 이 전시가 런던 전시일 수 있는 이유가 그 구역에 모여 있다.
전시 디자인도 과장 없이 작품을 받치는 쪽에 가깝다. 검은 벽체와 낮은 조명 아래 놓인 초기 의상들은 조각처럼 서 있고, 밝은 배경 앞에 세운 드레스 군은 실루엣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회화와 드로잉, 인형과 소도구, 의상이 한 케이스 안에 함께 들어간 장면에서는 살롱과 무대, 박물관의 경계가 옅어진다. 엘사 스키아파렐리의 작업이 처음부터 여러 장르를 넘나들었다는 점을 전시 공간이 비교적 차분하게 받쳐준다.
후반부는 다니엘 로즈베리 체제의 스키아파렐리로 이어진다. 2019년 하우스를 맡은 뒤 로즈베리는 스키아파렐리라는 이름을 다시 레드카펫 중심부로 끌어올렸다. 금빛 장식, 과장된 신체 비례, 해부학적 장식, 보석처럼 빛나는 표면이 최근 쿠튀르 피스에 반복해서 등장한다. 엘사가 남긴 상징을 그대로 복제하기보다 오늘의 이미지 산업에 맞게 키운 결과로 읽힌다.
전시장에는 최근 대중문화 속에서 널리 알려진 의상들도 포함됐다. 두아 리파가 입은 현대판 ‘스켈레톤’ 드레스, 아리아나 그란데의 시상식 드레스, 2024년 쿠튀르 쇼에서 화제가 된 ‘로봇 베이비’가 마지막 구역을 채운다. 스마트폰 화면과 SNS를 통해 소비된 장면들이 박물관 안으로 들어오면서 스키아파렐리는 1930년대 초현실주의의 유산에만 머물지 않는다. 현대 셀러브리티 문화와 결합한 하우스의 현재 위치가 이 구간에서 정리된다.
이번 회고전은 메종 스키아파렐리의 역사를 연대기로 훑는 데 그치지 않는다. 엘사 스키아파렐리가 시작한 실험이 런던과 할리우드, 박물관과 레드카펫을 지나 지금까지 어떻게 이어졌는지 한자리에서 확인하게 한다. 옷 한 벌의 실루엣과 표면, 장식과 재료가 시대 감각과 어떻게 맞물렸는지를 보여주는 전시이기도 하다. V&A가 영국 첫 회고전의 무대로 나선 배경도 여기에 있다. 스키아파렐리의 역사는 패션사 내부에만 머물지 않고 20세기 시각문화 전반과 닿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