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hiaparelli④] 런던과 할리우드로 넓어진 스키아파렐리, 메이페어 살롱에서 영화 의상까지
1930년대 영국 사교계와 미국 스크린을 오간 스키아파렐리의 확장기
[KtN 임우경기자]런던 빅토리아 앤 앨버트 박물관(V&A) ‘스키아파렐리: 패션, 예술이 되다’ 전시에서 런던과 할리우드로 이어지는 구역은 엘사 스키아파렐리의 또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초현실주의 협업으로 잘 알려진 디자이너였지만, 스키아파렐리는 파리 안에만 머문 인물이 아니었다. 1930년대 런던 메이페어 살롱과 미국 영화 의상 작업을 통해 활동 반경을 넓혔고, 그 과정에서 스키아파렐리라는 이름도 더 넓은 시장으로 퍼져 나갔다.
1933년 문을 연 런던 메이페어 살롱은 그 흐름의 출발점 가운데 하나다. 파리에서 시작한 스키아파렐리의 작업이 영국 상류사회와 만난 장소이기도 했다. V&A 전시는 이 시기를 단순한 해외 진출로 다루지 않는다. 파리에서 익힌 전위적 감각이 영국식 사교 문화와 어떻게 맞물렸는지, 또 그것이 런던의 고객층 안에서 어떤 방식으로 받아들여졌는지를 의상과 자료를 통해 보여준다.
그 구역에서 먼저 눈에 들어오는 옷 가운데 하나는 오이스터 컬러 웨딩드레스다. 얼핏 보면 차분한 예복에 가깝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소재 선택에서부터 스키아파렐리다운 발상이 드러난다. 고급 맞춤복에 흔히 쓰이지 않던 레이온을 사용해 굴 껍질을 떠올리게 하는 표면감을 만들었다. 전통적인 결혼 예복의 문법을 따르면서도 소재와 질감에서는 다른 방향을 택한 옷이다. 전시가 이 드레스를 런던 맥락에서 강조한 이유도 분명하다. 영국 고객층을 상대하면서도 스키아파렐리는 보수적인 취향에 그대로 맞추지 않았다.
런던 시기의 작업에서는 테일러링도 함께 눈에 띈다. 영국 시장을 겨냥한 재킷과 수트, 외투에는 파리식 장식성과 영국식 절제가 함께 들어 있다. 몸을 날렵하게 정리한 선, 과장되지 않으면서도 쉽게 잊히지 않는 디테일, 기능과 표면이 맞물리는 방식이 그렇다. 영국 사교계 인사들이 입은 의상 자료를 보고 있으면 스키아파렐리가 단순히 화려한 쿠튀르를 수출한 것이 아니라, 현지 취향에 맞는 언어를 따로 만들었다는 점이 드러난다.
활동 반경은 곧 미국으로 이어졌다. 할리우드는 스키아파렐리에게 더 큰 무대였다. 배우 한 사람의 이미지가 곧 대중문화의 표준처럼 소비되던 시기였고, 영화 의상은 디자이너의 미감을 가장 넓게 퍼뜨릴 수 있는 통로였다. 전시장에 놓인 이브닝드레스와 코트, 무대용 의상들은 스키아파렐리가 영화 산업을 단순한 협업처가 아니라 자신의 미학을 확장하는 장으로 활용했다는 점을 보여준다.
마를렌 디트리히를 위한 작업은 그 가운데서도 자주 거론된다. 각이 살아 있는 어깨선과 길게 떨어지는 실루엣, 여성복 안에 남성복식의 긴장감을 끌어들이는 방식이 디트리히의 이미지와 잘 맞아떨어졌다. 스키아파렐리의 옷은 디트리히에게 단순한 무대 의상이 아니라 대중 앞에서 자신의 태도를 선명하게 만드는 도구에 가까웠다. 여성성과 권위, 장식성과 절제가 한 벌 안에서 동시에 읽히는 점도 그 시기 작업의 특징이다.
메 웨스트와의 관계는 또 다른 결을 보여준다. 스키아파렐리는 파리에 있으면서도 할리우드 스타의 몸과 이미지를 정확히 의복으로 옮기려 했다. 메 웨스트의 석고 마네킹 일화는 이 시기 작업이 얼마나 스타의 신체와 대중적 이미지를 정교하게 다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자주 인용된다. 전시에 나온 드레스와 향수 관련 자료를 함께 보면, 스키아파렐리가 배우의 몸을 단지 옷걸이로 본 것이 아니라 하나의 시각적 형상으로 다뤘다는 점이 드러난다.
향수 ‘쇼킹’의 병 디자인 역시 그 연장선에 놓인다. 여성의 몸을 형상화한 병은 스키아파렐리가 패션과 향수, 상품과 이미지 사이 경계를 유연하게 넘나들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옷에서 끝나는 하우스가 아니라, 시각적 기호와 브랜드 이미지를 함께 설계하는 메종으로 움직였다는 뜻이기도 하다. 런던과 할리우드 시기를 다룬 전시 구역이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스키아파렐리의 확장은 단순히 판매 지역을 넓힌 일이 아니라, 하우스의 이미지를 복수의 매체로 밀어 넣는 과정이었다.
쇼윈도와 디스플레이 자료도 그 흐름을 뒷받침한다. 당시 스키아파렐리 매장은 옷을 진열하는 장소에 머물지 않았다. 마네킹과 소도구, 배경 장치를 활용해 거리 한복판에 하나의 장면을 만들었다. V&A가 재현한 윈도우 디스플레이 관련 구역에서는 스키아파렐리가 매장을 시각적 무대로 다뤘다는 점이 잘 드러난다. 오늘날 플래그십 스토어와 브랜드 디스플레이 전략을 떠올리게 하는 부분이지만, 당시 기준으로 보면 상당히 앞선 감각이었다.
전쟁기 자료가 놓인 부분에서는 스키아파렐리의 작업이 시대 변화에 어떻게 반응했는지도 읽힌다. 실용성이 강조된 코트와 점프수트, 상황에 맞는 기능을 더한 옷들은 전쟁 전후의 긴장 속에서 나온 결과물이다. 초현실주의 이미지와 화려한 장식으로 기억되는 디자이너였지만, 스키아파렐리는 현실의 조건이 바뀌면 옷의 쓰임도 달라져야 한다는 점을 놓치지 않았다. 이 전시가 런던과 할리우드, 전쟁기 의상을 한 흐름 안에 넣은 이유도 바로 그 점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전시 후반부의 다니엘 로즈베리 작업과 비교하면, 오늘날 스키아파렐리가 다시 셀러브리티와 레드카펫 중심에 선 배경도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엘사가 런던 사교계와 할리우드 스타를 통해 하우스의 이미지를 넓혔다면, 로즈베리는 오늘의 배우와 가수, 시상식 무대를 통해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다. 방식은 달라졌지만 스타의 이미지와 하우스의 상징을 연결하는 구조 자체는 낯설지 않다.
이번 전시에서 런던과 할리우드 구역이 남기는 인상은 분명하다. 스키아파렐리는 초현실주의 미술과 가까웠던 디자이너이면서 동시에 시장과 매체를 읽을 줄 아는 인물이기도 했다. 메이페어 살롱, 영화 의상, 향수병, 쇼윈도 디스플레이는 모두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스키아파렐리는 자신의 미학을 옷 한 벌 안에만 두지 않았고, 고객과 도시, 무대와 스크린까지 확장했다. 1930년대 런던과 할리우드는 그 확장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 공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