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hiaparelli⑥] 어깨선과 허리선이 바꾼 여성복, 스키아파렐리 실루엣의 힘

1930년대 테일러링부터 현대 쿠튀르까지, 구조적인 선으로 읽는 메종의 여성상

2026-04-03     임우경 기자
The V&A Announces "Schiaparelli: Fashion Becomes Art,” the First UK Exhibition Devoted to the Historic Maison. 사진=V&A Announces "Schiaparelli,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임우경기자]런던 빅토리아 앤 앨버트 박물관(V&A) ‘스키아파렐리: 패션, 예술이 되다’ 전시에서 런던과 영화 의상으로 이어지는 구역에 서면 분위기가 달라진다. 초현실주의 이미지와 자수, 장식이 앞섰던 자리와 달리 재킷과 코트, 수트의 선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어깨는 넓고 곧게 뻗었고, 허리선은 분명하다. 부드럽게 흐르는 드레스와는 다른 긴장이 마네킹 위에 남아 있다. 스키아파렐리가 여성복의 실루엣을 어떻게 다뤘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스키아파렐리의 재킷에서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어깨선이다. 1930년대 작업에는 어깨를 분명하게 세운 옷들이 적지 않다. 둥글고 부드러운 선보다 각이 살아 있는 실루엣이 많고, 상반신의 부피를 또렷하게 만드는 방식이 반복된다. 오늘날 익숙한 파워 숄더의 계보를 곧바로 끌어다 붙이기는 어렵지만, 여성복에서 어깨가 차지하는 비중을 분명하게 키운 사례라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당시 여성복의 변화와도 맞물리는 흐름이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여성의 사회 활동이 넓어지면서 복식 역시 달라지고 있었다. 움직이기 어렵고 장식이 많은 옷에서 벗어나 활동성과 실용성을 갖춘 복식이 늘어났고, 재킷과 수트, 스포츠웨어가 점점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다. 스키아파렐리는 여기에 자신의 방식으로 응답했다. 단순히 편한 옷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구조적인 선과 강한 표면감을 더해 여성복에 다른 인상을 부여했다.

전시장에 나온 재킷들을 보면 그 차이가 더 분명하다. 허리는 잘록하게 정리되지만 전체 선은 약해 보이지 않는다. 가슴선과 어깨선은 건축적으로 올라가고, 포켓과 단추, 여밈의 배치도 전체 실루엣을 단단하게 보이게 만든다. 몸의 곡선을 따르기만 하는 옷이 아니라 몸 바깥에 또 하나의 구조를 세우는 옷에 가깝다. 스키아파렐리가 테일러링을 장식의 반대편에 두지 않았다는 점도 여기서 읽힌다. 그녀에게 구조는 기능이면서 동시에 이미지였다.

The V&A Announces "Schiaparelli: Fashion Becomes Art,” the First UK Exhibition Devoted to the Historic Maison. 사진=V&A Announces "Schiaparelli,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영국 시장과 할리우드 시기를 다룬 구역에 이런 옷이 많이 남아 있는 것도 자연스럽다. 런던 메이페어 살롱을 통해 스키아파렐리는 영국식 재단과 사교복의 문법을 가까이 다뤘고, 영화 의상 작업을 통해서는 멀리서도 분명하게 읽히는 실루엣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다. 무대와 스크린에서는 세부 장식보다도 먼저 전체 형상이 보인다. 어깨선과 허리선, 코트의 길이, 재킷의 앞여밈이 곧 인물의 인상을 만든다. 스키아파렐리의 테일러링이 강하게 남는 이유도 그런 시각 환경과 무관하지 않다.

마를렌 디트리히와 연결되는 작업들은 이 점을 더 또렷하게 보여준다. 디트리히가 입은 수트와 코트에는 여성복 안에 남성복식의 긴장감을 끌어들이는 요소가 있다. 길게 뻗는 선, 절제된 장식, 또렷한 어깨가 그렇다. 그렇다고 남성복을 그대로 옮긴 것은 아니다. 허리의 곡선과 신체선은 남아 있고, 실루엣 전체는 여성복으로 읽힌다. 남성복과 여성복의 경계를 흐리면서도 어느 한쪽으로 단순히 기울지 않는 방식이다.

스키아파렐리의 작업이 흥미로운 이유는 구조적인 테일러링이 초현실주의적 감각과 끊어져 있지 않다는 점이다. 넓은 어깨와 조여진 허리, 강한 직선은 현실적인 복식 언어에 속하지만, 같은 전시 안에서는 해부학적 장식과 착시, 기이한 단추와 자수와도 이어진다. 단단한 재킷과 기묘한 브로치, 구조적인 코트와 초현실주의 프린트가 한 하우스 안에서 함께 나온다. 스키아파렐리의 여성복은 실용복과 상상력의 옷이 분리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다른 결을 갖는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스켈레톤 드레스’도 다시 보인다. 흔히 초현실주의 협업의 대표작으로만 다뤄지지만, 몸의 구조를 바깥으로 끌어낸다는 점에서는 실루엣에 대한 스키아파렐리의 관심과도 맞닿아 있다. 몸을 감추는 대신 몸의 안쪽 구조를 드러내고, 신체를 따라가면서도 신체 바깥에 다른 선을 만드는 방식이 그렇다. 재킷의 어깨선과 드레스의 해부학적 장식은 서로 다른 옷 같지만, 몸을 새로 보이게 만든다는 점에서는 같은 방향을 향한다.

The V&A Announces "Schiaparelli: Fashion Becomes Art,” the First UK Exhibition Devoted to the Historic Maison. 사진=V&A Announces "Schiaparelli,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전시장에 함께 놓인 새장 모티프나 자물쇠 장식도 비슷하다. 그것들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몸과 사회적 규범의 관계를 비트는 표식처럼 읽힌다. 스키아파렐리는 여성복을 순응의 복식으로 두기보다, 그 안에 늘 낯선 이미지 하나를 밀어 넣었다. 그 낯섦은 꼭 과장된 드레스에서만 나오지 않는다. 잘 재단된 재킷과 코트 안에서도 충분히 작동한다.

후반부의 다니엘 로즈베리 작업과 나란히 보면 연결선은 더 뚜렷하다. 로즈베리는 구조적인 어깨와 허리, 과장된 볼륨, 코르셋을 활용해 신체를 다시 조형한다. 최근 스키아파렐리 쿠튀르에서 자주 보이는 좁은 허리와 크게 부푼 스커트, 금속처럼 단단한 상반신 장식은 몸을 부드럽게 감싸기보다 하나의 형상으로 세워 보이게 만든다. 1930년대 스키아파렐리가 재킷과 코트에서 보여준 구조적 관심이 오늘에는 더 큰 스케일로 돌아온 셈이다.

아리아나 그란데나 두아 리파가 입은 최근 스키아파렐리 룩도 그런 맥락 안에서 읽힌다. 몸의 선을 그대로 따르기보다 허리와 가슴, 어깨의 비례를 다시 조정하고, 표면 장식으로 시선을 집중시킨다. 실루엣은 단순히 몸에 맞는 외곽선이 아니라 하우스의 인상을 만드는 가장 빠른 장치가 된다. 스키아파렐리의 옷이 멀리서도 한눈에 들어오는 이유도 여기 있다.

이번 전시에서 테일러링과 구조적인 실루엣 구역이 남기는 인상은 분명하다. 스키아파렐리는 장식과 초현실주의 이미지로만 기억되는 디자이너가 아니었다. 여성복의 선과 부피, 어깨와 허리의 관계를 집요하게 다룬 사람이기도 했다. 그 결과 나온 재킷과 코트, 수트는 단정한 복식이면서도 쉽게 잊히지 않는 형상을 남긴다. 스키아파렐리의 여성복은 부드럽게 흐르는 옷보다 분명한 구조를 택할 때가 많았고, 그 선택은 오늘 메종의 쿠튀르까지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