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트렌드②] “샤테크는 옛말, 이제는 아카이브 테크”… 마감 직전 8,000만 달러 넘긴 갈리아노 셋업이 드러낸 하이퍼 리세일 시장

감가상각보다 희소성이 앞서는 아카이브 거래 패션 한 벌이 소비재를 넘어 보유 자산으로 읽히는 시장의 변곡점

2026-03-31     박인경 기자
“명예 김씨?”…킴 카다시안, 광복절 태극기 사진으로 한국을 흔들다  사진=2025 08.16  킴 카다시안 트위터 갈무리 / 편집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박인경기자]패션 시장에서 오래된 옷의 자리가 달라지고 있다. 한때 명품 소비는 새 시즌 제품을 먼저 사는 경쟁에 가까웠다. 지금 초고가 시장에서는 흐름이 달라졌다. 생산이 끝난 옷, 다시 만들 수 없는 컬렉션, 디자이너의 이름과 시대가 또렷한 피스에 자금이 몰린다. 킴 카다시안이 자선 경매에 내놓은 1995년 존 갈리아노 셋업이 마감 직전 8,000만 달러를 넘는 최고 입찰가를 기록했다는 보도는 달라진 시장 분위기를 압축해서 보여준다. 최신 유행의 승부가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서 공급이 사라진 옷의 가치가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는지 드러낸 장면이다.

관심이 쏠린 이유는 단순히 비싼 가격표가 아니었다. 경매에 나온 옷은 존 갈리아노 1995년 가을·겨울 레디투웨어 컬렉션의 검은 재킷과 새틴 스커트 세트다. 2025년 10월 드라마 ‘올스 페어’ 로스앤젤레스 프레스 이벤트에서 카다시안이 입었던 의상이고, 판매 수익은 여성 대상 무료 법률 지원으로 연결되는 구조다. 디자이너의 역사, 셀러브리티의 착용 이력, 자선 목적이 한 벌 안에 겹쳐 있다. 시장이 반응한 까닭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값비싼 원단이나 화려한 장식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가격이 형성될 때는 언제나 맥락이 붙는다. 이번 거래에는 패션사적 희소성과 현재의 대중적 화제, 공익 목적이 동시에 붙었다.

경제적으로 보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대목은 공급 구조다. 일반 명품은 가격이 아무리 높아도 브랜드가 다시 생산하면 공급이 이어진다. 아카이브 패션은 다르다. 1995년 컬렉션은 이미 과거가 됐고, 같은 시기 같은 맥락의 런웨이 피스는 새로 만들어낼 수 없다. 시장에 남아 있는 수량이 제한적이고, 소유자가 내놓지 않으면 거래 자체가 열리지 않는다. 공급이 거의 멈춘 상태에서 수요가 붙으면 가격은 기존 의류 시장의 논리에서 멀어진다. 새 제품의 가격표가 아니라, 드물게 열리는 매물의 순간 가격이 된다. 아카이브 시장이 예외적으로 큰 숫자를 만드는 이유도 생산원가보다 공급 중단의 시간이 더 중요하게 작동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샤테크’와는 결이 갈린다. 샤넬 백이나 일부 인기 명품이 리셀 시장에서 웃돈을 붙여 거래된다고 해도, 기본 구조는 브랜드의 현재 상품 시장과 이어져 있다. 시즌 변화와 가격 인상, 브랜드 정책이 중고 가격에 영향을 준다. 반면 갈리아노의 1995년 컬렉션 같은 아카이브 피스는 현재 브랜드의 가격 정책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이미 생산 라인 밖으로 사라진 물건이고, 거래의 기준도 매장 가격이 아니라 희소성과 이력이다. 최근 초고가 시장에서 아카이브가 따로 움직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소비자는 더 이상 “정가보다 얼마나 올랐는가”만 보지 않는다. “다시 구할 수 있는가, 누가 입었는가, 어떤 장면을 거쳤는가”를 함께 본다. 시장이 새 상품 리셀에서 아카이브 보유 경쟁으로 이동하는 조짐도 이런 구조 위에서 나타난다.

가격 형성 방식도 미술 시장과 닮아간다. 작품 거래에서는 소유 이력, 전시 이력, 작가의 위치가 중요하다. 패션 아카이브도 비슷한 길로 들어섰다. 1995년 존 갈리아노의 작업이라는 1차 가치 위에, 킴 카다시안의 착용 이력이라는 2차 가치가 붙고, 여성 법률 지원 자선 경매라는 공적 맥락이 더해지면서 단순 의류를 넘어서는 가격대가 형성된다. 패션 한 벌이 ‘누가 만들었는가’에서 끝나지 않고 ‘누가 입었는가’, ‘어떤 목적 아래 시장에 나왔는가’까지 품게 되면 거래 대상의 성격이 달라진다. 옷장에 걸어두는 개인 소장품이면서 동시에 다시 유통 가능한 기록물, 전시 가능한 문화 자산, 재판매 가능한 희소 상품으로 바뀐다.

이런 변화는 패션의 감가상각 개념도 흔든다. 의류는 원래 입는 순간 가치가 떨어지는 소비재에 가까웠다. 사용 흔적이 생기고, 유행이 지나고, 보관 상태에 따라 가격이 낮아지는 구조였다. 초고가 아카이브 시장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인다. 시간이 지나면서 공급이 사라지고, 역사적 평가가 쌓이고, 유명인의 착용 이력까지 붙으면 사용 사실이 오히려 가격의 일부가 되기도 한다. 카다시안이 직접 입었다는 정보가 대표적이다. 보통 중고 의류라면 감가 요인이 될 수 있는 착용 이력이 아카이브 시장에서는 희소한 추가 기록으로 읽힌다. 누가 입었는지가 분명할수록 대체 가능성은 더 낮아진다. 대체 가능성이 낮을수록 가격은 더 쉽게 뛰어오른다.

Kim Kardashian’s Archival 1995 John Galliano Set Reaches $80 Million USD at Auction. 사진=Kim Kardashian,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보존 논란이 동시에 따라붙는 이유도 경제 논리와 무관하지 않다. 판매 설명에 따르면 문제의 스커트는 원래 빈티지 사이즈 42였고, 카다시안 착용을 위해 미국 사이즈 0에 맞춰 수선됐다. 보존 관점에서는 감점 요소다. 원형 훼손이 발생하면 패션사 자료로서의 완전성이 낮아질 수 있다. 그런데 시장은 전혀 다른 식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수선과 착용이 새로운 이력을 만들고, 그 이력이 유명인의 이름과 결합하면서 오히려 거래 가치를 높인다는 시선이다. 박물관식 보존 논리와 시장식 가치 평가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대목이다. 어느 한쪽만 옳다고 말하기 어렵지만, 분명한 사실은 가격이 더 이상 원형 보존 여부 하나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현재의 아카이브 시장은 보존 상태, 디자이너의 위상, 착용 이력, 화제성, 판매 목적을 한꺼번에 값으로 환산한다.

초양극화 시장의 단면도 선명하게 드러난다. 경기 둔화기에는 중간 가격대 소비가 가장 먼저 흔들리는 경우가 많다. 반면 최상위 자산가가 참여하는 거래는 다른 리듬으로 움직인다. 가격이 높을수록 오히려 진입 장벽이 명확해지고, 진입 장벽이 명확할수록 상징성은 더 커진다. 아카이브 패션이 초고가 시장에서 힘을 얻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세상에 몇 벌 남지 않은 옷, 다시 생산되지 않는 컬렉션, 이름값이 이미 검증된 디자이너의 작품, 대중적 주목도가 높은 착용 이력이 겹치면 거래는 일반 소비가 아니라 자산 배분에 가까워진다. 주식이나 부동산처럼 현금흐름을 만드는 자산은 아니어도, 희소성과 재판매 가능성, 전시 가치, 사회적 위신을 묶어 평가받는 상징 자산으로는 충분히 기능한다.

다만 여기서 조심해야 할 대목도 있다. 마감 직전 최고 입찰가가 8,000만 달러를 넘겼다는 사실과, 실제 최종 낙찰가 및 거래 성사 여부는 같은 말이 아니다. 숫자가 주는 충격이 큰 만큼 시장 전체를 성급하게 일반화하기도 쉽다. 모든 빈티지가 같은 방식으로 거래되는 것도 아니고, 모든 아카이브 피스가 자산처럼 취급되는 것도 아니다. 초고가 거래는 언제나 예외적 조건이 겹칠 때 나온다. 존 갈리아노라는 이름, 1995년 컬렉션이라는 시기성, 킴 카다시안의 착용 이력, 자선 경매라는 공익 목적이 한꺼번에 만난 경우는 흔치 않다. 이번 사례는 전체 시장 평균을 보여준다기보다, 시장 최상단에서 어떤 요소가 가격을 밀어 올리는지 보여주는 사례에 가깝다.

그럼에도 패션 시장 전략에는 분명한 시사점이 남는다. 럭셔리 브랜드가 새 제품만으로 미래를 설계하던 단계는 지나가고 있다. 과거 컬렉션의 정리와 보존, 아카이브 공개 방식, 역사적 피스의 유통 관리도 브랜드 가치의 일부가 된다. 오래된 옷이 브랜드의 뿌리이자 다시 현금화될 수 있는 자산으로 인식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경매 하우스와 리셀 플랫폼, 셀러브리티 클로짓 비즈니스가 한꺼번에 커지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신제품 판매와 별개로, 이미 존재하는 과거의 옷을 다시 시장으로 끌어내는 통로가 돈이 되는 구조다.

소비자의 심리도 달라졌다. 과거에는 최신 제품을 먼저 손에 넣는 일이 부의 과시에 가까웠다면, 지금 초고가 시장에서는 ‘누구나 살 수 없는 과거의 물건’을 보유하는 일이 더 강한 신호가 된다. 희소성의 방향이 미래보다 과거로 옮겨가는 셈이다. 생산 예정 제품은 결국 더 풀릴 수 있지만, 1995년 런웨이 피스는 시간이 갈수록 남은 수량이 줄어든다. 적게 남을수록 소유의 의미는 커지고, 소유의 의미가 커질수록 가격은 다시 오른다. 아카이브 테크라는 말이 낯설지 않게 들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브랜드 정가 인상에 기대는 리셀을 넘어, 공급이 끊긴 과거의 피스를 장기 보유 자산처럼 바라보는 시선이 커지고 있다.

이번 갈리아노 셋업 경매는 패션 시장이 어디까지 변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옷 한 벌이 소비재, 수집품, 문화 자산, 자선 플랫폼, 상징 자산 역할을 동시에 맡는다. 가격은 원단과 봉제만으로 설명되지 않고, 역사와 착용 이력, 판매 목적, 사회적 명분까지 함께 반영된다. 최근 초고가 리세일 시장에서 벌어지는 일도 같은 흐름 안에 있다. 오래된 옷은 낡은 물건이 아니라, 다시 거래되는 현재의 자산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