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트렌드①] 바닥을 덮은 바지, 허리 위에서 멈춘 재킷… HYKE FW26의 겨울 옷은 길이부터 달라졌다

2026-03-31     박인경 기자
HYKE FW26 Marries Archival Utility With Feminine Edge. 사진=Jun Okada,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박인경기자]검은 커튼 앞에 첫 모델이 섰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재킷 길이였다. 옷은 허리 위에서 짧게 끊겼고, 바지는 발등을 덮은 채 바닥 가까이까지 내려왔다. 상의는 짧고 하의는 길었다. HYKE가 2026 가을·겨울 컬렉션에서 손댄 곳은 분명했다. 장식보다 길이였고, 디테일보다는 실루엣이었다.

이번 시즌 런웨이에는 군복과 작업복, 아웃도어 아우터의 자취가 곳곳에 남았다. 포켓 달린 재킷과 플랩, 단단한 어깨선, 공기를 머금은 패딩, 거친 옷에서 온 듯한 바깥선이 잇따라 나왔다. 그런데 옷의 인상은 거칠지 않았다. 오래된 제복을 그대로 되살린 자리가 아니라, 낡은 옷의 뼈대만 남기고 길이와 폭을 새로 짠 자리였다. HYKE는 이번에도 원형을 요란하게 설명하지 않았다. 대신 옷의 균형부터 바꿨다.

가장 강하게 남는 것은 바지다. 요즘 런웨이에 와이드 팬츠가 흔하다고 해도 HYKE의 바지는 한눈에 더 길고 더 넓었다. 통은 허벅지부터 크게 열렸고, 밑단은 신발을 거의 덮었다. 모델이 걸을 때마다 선보다 면적이 먼저 움직였다. 바지가 화면 아래를 넓게 차지하니, 상의는 더 짧아 보였다. HYKE는 이 대비를 끝까지 밀었다. 상체는 접어 올리고, 하체는 바닥 쪽으로 끌어내렸다. 그래서 착장은 단번에 달라졌다. 단정한 겨울 옷이라기보다 길이가 만든 새로운 겨울 옷에 가까웠다.

HYKE FW26 Marries Archival Utility With Feminine Edge. 사진=Jun Okada,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재킷은 짧아졌다고 해서 가벼워지지 않았다. 몸판은 간결하게 잘랐지만 어깨와 소매는 힘을 남겼다. 앞섶과 칼라, 포켓 자리도 흐리지 않았다. 워크웨어나 군복에서 온 옷이 원래 갖고 있던 긴장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는 뜻이다. HYKE는 이번 시즌에 군복 디테일을 크게 떠들지 않았다. 포켓 수를 늘리거나 부속을 과하게 달아 장비처럼 보이게 만들지도 않았다. 대신 짧아진 길이와 단단한 상체만으로 옷의 표정을 바꿨다. 익숙한 재킷인데도 입으면 전혀 다른 옷처럼 보이게 한 셈이다.

아우터는 그보다 더 분명했다. 플라이트 재킷을 닮은 옷과 묵직한 코트, 패딩 아우터가 차례로 지나갔지만 런웨이는 답답하지 않았다. HYKE는 부피를 한꺼번에 키우지 않았다. 어깨와 등, 소매에는 볼륨을 남기고 몸판과 밑단은 깔끔하게 정리했다. 그래서 옷은 크지만 번져 보이지 않았다. 겨울 외투답게 단단한데, 걸음은 둔하지 않았다. 바로 이 대목에서 이번 시즌의 성격이 드러난다. 기능복의 구조를 빌려왔지만, 런웨이에 올린 옷은 야외복이 아니라 도시에 맞춘 겨울 옷이었다.

색은 더 낮게 눌렀다. 검정과 회색, 카키, 베이지, 흰빛이 도는 옅은 색이 런웨이를 붙잡았다. 시선을 끄는 선명한 색은 거의 없었다. HYKE는 이번에도 색보다 표면으로 변화를 냈다. 어떤 옷은 매끈했고, 어떤 옷은 거칠었고, 어떤 옷은 눌린 듯 건조했다. 멀리서 보면 길이 차이가 먼저 들어오고, 가까이 다가가면 원단의 결이 눈에 걸렸다. 화려한 장식 없이도 옷이 심심하지 않았던 이유다. 눈에 띄는 것은 적었지만 비어 보이진 않았다.

HYKE FW26 Marries Archival Utility With Feminine Edge. 사진=Jun Okada,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니트와 겨울 소재가 들어오면서 화면의 온도도 조금 바뀌었다. 단단한 외투와 넓은 바지가 이어지는 흐름 사이에 짜임이 굵은 니트와 표면감이 살아 있는 옷이 들어서자 숨이 한 번 고였다. 그렇다고 분위기가 흐트러지지는 않았다. HYKE는 끝내 장식으로 빠지지 않았다. 프릴이나 큰 장식 대신 짜임과 섬유의 결, 겹쳐 입는 방식으로 변화를 줬다. 겨울 옷의 맛을 살리되, 컬렉션 전체의 긴장을 놓지 않은 구성이다.

소재를 다루는 방식도 눈여겨볼 만했다. 이번 시즌 옷은 기능성 원단만으로 밀어붙이지 않았다. 울과 패딩, 니트와 다운, 단단한 표면과 부드러운 표면이 번갈아 나왔다. 바람과 추위를 견디는 옷의 문법은 분명한데, 결과는 차갑기만 한 기능복이 아니었다. 손에 닿는 감촉과 몸을 감싸는 부피를 함께 살렸기 때문이다. HYKE는 겨울 옷을 만들면서도 기술의 말보다 착용의 감각 쪽에 더 가까이 붙었다. 그래서 이번 시즌의 유틸리티는 장비처럼 보이지 않고 생활복처럼 남는다.

에디 바우어 협업도 그 흐름을 더 깊게 만들었다. 협업이라고 해서 이름을 앞세우지 않았다. 다운 아우터의 구조와 오래된 아웃도어 아카이브의 자취는 살아 있었지만, 길이와 색, 마감의 인상은 HYKE 쪽으로 정리돼 있었다. 그래서 협업 피스는 따로 튀지 않았다. 런웨이 전체에 자연스럽게 스며들며 이번 시즌의 무게를 한층 더 눌렀다. 아웃도어 브랜드의 옷이 들어왔는데도 화면이 갑자기 거칠어지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HYKE는 협업 상대의 역사를 빌리되, 자기 옷의 문장 안에서만 움직이게 했다.

HYKE FW26 Marries Archival Utility With Feminine Edge. 사진=Jun Okada,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이번 시즌 HYKE를 두고 밀리터리라고만 부르면 절반만 본 셈이다. 군복의 흔적은 분명하지만, 먼저 남는 것은 군복이 아니라 옷의 선이다. 허리 위에서 끊긴 재킷, 바닥을 덮은 바지, 단단한 어깨, 넓은 하체, 눌린 색과 무거운 표면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오래된 옷에서 가져온 것은 상징이 아니라 구조였다. HYKE는 그 구조를 지금의 몸과 움직임에 맞게 다시 다뤘다. 그래서 이번 컬렉션은 과거의 옷을 설명하는 자리가 아니라, 과거의 옷을 지금 다시 입히는 방식에 가까웠다.

시장 흐름과 맞물려 보는 재미도 있다. 최근 몇 시즌 사이 패션 시장에는 크게 두 갈래 수요가 동시에 커졌다. 하나는 로고와 장식에 지친 소비자가 찾는 조용한 옷이다. 다른 하나는 계절 변화와 생활 리듬에 맞출 수 있는 기능성 옷이다. 문제는 그 둘이 늘 한자리에 모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조용한 옷은 자주 심심했고, 기능성 옷은 자주 장비처럼 보였다. HYKE는 이번 시즌 그 틈을 파고들었다. 기능은 겉으로 소리치지 않게 숨기고, 대신 길이와 비례로 새 맛을 냈다. 그래서 실용을 말하면서도 투박하지 않고, 얌전한데도 약하지 않은 옷이 나왔다.

물론 쉬운 옷은 아니다. 짧은 상의와 극단적으로 긴 하의의 대비는 체형을 타고, 넓은 팬츠와 부피 있는 아우터는 신발과 이너, 전체 길이 조절까지 손이 간다. 누구나 납득할 만한 옷이지만 누구에게나 만만한 옷은 아니다. HYKE는 이번 시즌에 그 어려움을 피하지 않았다. 무난한 실루엣으로 물러서지 않고 자기식 길이와 폭을 끝까지 밀었다. 그래서 이번 시즌 옷은 친절함보다 완성도 쪽에 더 가깝다. 쉽게 소비되기보다 오래 눈에 남는 룩이 많다.

결국 HYKE FW26은 겨울 옷의 길이를 다시 정리한 컬렉션으로 읽힌다. 군복과 작업복, 아웃도어 아우터는 출발점으로 남아 있지만, 런웨이에 오른 결과물은 더 이상 현장의 옷이 아니다. 기능은 포켓의 숫자나 장비 같은 부속으로 드러나지 않고, 길이와 구조, 보온과 부피, 겹쳐 입는 방식 안으로 들어갔다. 허리 위에서 끊긴 재킷과 바닥을 덮은 바지, 눌린 색과 두터운 표면은 이번 시즌을 설명하는 가장 또렷한 장면이었다. HYKE는 오래된 옷을 그대로 되살리지 않았다. 오래된 옷의 뼈대를 가져와 지금의 겨울 옷으로 다시 세웠다. 이번 시즌의 성패는 그 손질이 얼마나 설득력 있게 보이느냐에 달려 있었고, 런웨이는 그 답을 비교적 분명하게 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