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트렌드②] 바닥 덮은 팬츠, 짧아진 재킷… HYKE FW26이 다시 짠 겨울 옷의 비례

2026-04-01     박인경 기자
HYKE FW26 Marries Archival Utility With Feminine Edge. 사진=Jun Okada,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박인경기자]허리 위에서 끝난 재킷 아래로 셔츠 자락이 한 겹 더 내려왔고, 그 밑으로는 발등을 덮은 바지가 바닥 가까이까지 흘렀다. HYKE 2026 가을·겨울 컬렉션은 첫 착장부터 길이의 순서를 바꿔 놓았다. 상의는 짧아졌고, 하의는 길어졌다. 재킷과 셔츠, 코트와 팬츠가 한 벌씩 지나갈수록 이번 시즌이 손댄 자리는 분명해졌다. 장식이나 색이 아니라 비례였다.

와이드 팬츠는 이미 낯선 옷이 아니다. 몇 시즌째 런웨이와 매장, 거리에서 반복해 보였다. 그런데 HYKE가 이번 시즌 내놓은 바지는 익숙한 와이드 팬츠보다 한 단계 더 길고 넓었다. 허벅지부터 통이 크게 벌어졌고, 밑단은 신발 위에서 멈추지 않았다. 발등을 덮은 채 아래로 고이듯 내려왔다. 모델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다리의 선보다 천의 면적이 먼저 움직였다. 화면 아래쪽이 넓게 흔들리면서 착장 전체의 인상도 달라졌다. 몸을 따라가는 바지라기보다, 하체 전체를 하나의 큰 선으로 묶는 바지에 가까웠다.

이 길이는 단순히 과장된 효과만 노린 선택으로 보이지 않았다. 바지 밑단이 길어지면 옷의 중심도 아래로 내려간다. 걸음은 느리게 보이고, 착장은 한층 무거운 밀도를 갖게 된다. 발목을 드러내며 경쾌하게 끝나는 바지와는 결이 다르다. 이번 시즌 HYKE의 바지는 속도를 늦추고 화면을 넓혔다. 모델이 한 번 지나갈 때 남는 인상도 짧은 스냅 사진보다 긴 움직임 쪽에 가까웠다. 멈춰 선 모습보다 걸을 때 더 또렷한 옷이었다.

HYKE FW26 Marries Archival Utility With Feminine Edge. 사진=Jun Okada,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바지가 여기까지 길어질 수 있었던 것은 상의 길이를 과감하게 줄였기 때문이다. HYKE는 이번 시즌 재킷과 톱을 허리 위에서 끊었다. 상체를 길게 눌러 내리지 않고 위로 접어 올리는 방식이었다. 그 아래로 셔츠 자락이나 이너가 다시 길게 내려오면서 상하 길이가 한 번 더 갈렸다. 시선은 재킷 끝선에서 잠깐 멈췄다가 셔츠와 바지 쪽으로 다시 떨어졌다. 긴 하의가 화면을 끌고 가되, 상체까지 무겁게 잠기지는 않았다. 이번 시즌 실루엣의 핵심은 넓은 바지 하나가 아니라, 짧은 상의와 긴 하의를 맞붙인 이 길이의 대비에 있었다.

재킷은 짧아졌다고 해서 가벼워지지 않았다. 몸판은 간결하게 정리했지만 어깨와 소매, 앞판의 윤곽은 또렷했다. 워크웨어와 군복에서 온 재킷들이 원래 지닌 긴장도 그대로 남아 있었다. HYKE는 포켓이나 부속을 과하게 부풀려 기능복의 인상을 앞세우지 않았다. 대신 짧아진 길이와 단단한 상체만으로 옷의 표정을 바꿨다. 익숙한 형태의 재킷인데도 실제로는 전혀 다른 인상으로 읽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겉옷도 같은 흐름 안에서 움직였다. 크롭트 재킷은 상체를 날카롭게 끊었고, 코트와 패딩 아우터는 부피를 남긴 채 아래로 떨어졌다. 그런데 큰 옷이 계속 이어졌는데도 런웨이는 번져 보이지 않았다. HYKE가 볼륨을 한꺼번에 키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깨와 등, 소매처럼 부피가 필요한 자리는 살리고, 몸판과 밑단처럼 정리해야 할 자리는 눌렀다. 덕분에 외투는 분명히 큰데, 사람이 옷에 먹히는 느낌은 적었다. 겨울 옷의 무게를 살리면서도 실루엣의 선은 끝까지 놓치지 않았다.

HYKE FW26 Marries Archival Utility With Feminine Edge. 사진=Jun Okada,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길어진 팬츠와 짧아진 재킷 사이에 셔츠 자락을 끼워 넣은 레이어링도 눈에 남았다. 재킷 아래로 흰 셔츠가 한 겹 더 보이고, 그 아래에서 팬츠가 다시 길게 내려오는 식이다. 길이가 한 번에 끝나지 않고 층층이 나뉘면서 착장에 숨통이 생겼다. 테일러링의 단정함은 유지하면서도 답답한 느낌은 줄어들었다. 군복이나 작업복에서 온 단단한 옷들 사이에 셔츠 한 겹이 들어가면 화면이 부드러워지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HYKE는 이번 시즌 그 차이를 크게 떠들지 않고 조용하게 쌓아 올렸다.

색은 낮게 눌렀다. 검정과 회색, 카키, 베이지, 흰빛이 감도는 옅은 색이 런웨이 전반을 붙들었다. 눈에 확 들어오는 선명한 색을 앞세우지 않으니, 길이와 원단의 표면이 더 먼저 보였다. 어떤 옷은 매끈했고, 어떤 옷은 눌린 듯 건조했으며, 어떤 옷은 섬유의 결이 바깥으로 살아 있었다. 멀리서 보면 짧은 상의와 긴 하의의 차이가 먼저 읽혔고, 가까이 다가가면 원단의 밀도와 결이 보였다. HYKE가 이번 시즌 화면을 만든 방식은 색의 충돌보다 길이와 표면의 차이에 가까웠다.

니트와 겨울 소재도 이 흐름을 받쳤다. 짜임이 굵은 니트와 표면감이 살아 있는 옷이 단단한 외투 사이사이에 들어오자 화면의 온도는 조금 올라갔다. 그렇다고 분위기가 풀리지는 않았다. HYKE는 끝내 장식 쪽으로 기울지 않았다. 프릴이나 과한 장식을 넣는 대신 짜임과 섬유의 결, 겹쳐 입는 방식으로 겨울 옷의 맛을 살렸다. 차갑고 단단한 룩이 이어지는 가운데도 컬렉션이 메마르지 않았던 이유다.

소재를 다루는 방식도 이번 시즌 실루엣을 떠받쳤다. 이렇게 길고 넓은 팬츠는 원단 선택이 틀어지면 금세 힘을 잃는다. 너무 무르면 밑단이 늘어지고, 너무 뻣뻣하면 바지가 통째로 굳어 버린다. HYKE는 부드럽게 움직이는 팬츠와 단단한 상의를 함께 놓으며 그 중간을 맞췄다. 바지는 길게 흐르되 주저앉지 않았고, 재킷은 짧게 올라가되 빈약해 보이지 않았다. 부드러운 하의와 힘 있는 상의가 맞물리면서 길이 차이가 더 또렷하게 살아났다.

HYKE FW26 Marries Archival Utility With Feminine Edge. 사진=Jun Okada,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이번 시즌 런웨이를 두고 단순히 오버사이즈 유행이라고 말하면 반쪽만 본 셈이다. 큰 옷을 크게 입는 데서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HYKE는 어디를 줄이고 어디를 늘일지 분명하게 정했다. 상체는 짧고 단단하게 끊고, 하체는 길고 넓게 밀어 내고, 외투는 부피를 남기되 번지지 않게 다듬었다. 그래서 이번 시즌의 와이드 실루엣은 느슨한 옷차림이라기보다, 겨울 옷의 길이와 무게를 다시 계산한 결과에 가깝다.

시장 흐름으로 봐도 타이밍이 맞아떨어진다. 최근 몇 시즌 사이 바지와 코트, 셔츠의 길이와 폭을 다시 키우는 움직임은 분명해졌다. 몸을 곧바로 드러내는 슬림 실루엣보다는 체형을 한 번 감싸고 다시 정리하는 옷으로 수요가 옮겨가고 있다. 편한 옷을 찾는 흐름도 있고, 단정하되 빡빡하지 않은 옷을 찾는 흐름도 있다. HYKE는 여기서 무난한 중간 지점을 택하지 않았다. 넓고 긴 바지를 끝까지 밀고, 짧은 상의로 균형을 맞추는 쪽을 골랐다. 이번 시즌의 룩들이 한 번 보고도 오래 남는 이유다.

물론 만만한 옷은 아니다. 바닥 가까이 내려온 팬츠는 신발과 밑단의 간격을 세심하게 맞춰야 하고, 짧아진 상의는 전체 비례를 크게 탄다. 잘못 입으면 옷이 커 보이기만 할 수 있다. HYKE는 그런 위험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경계 가까이까지 가서 길이와 폭을 밀어붙였다. 그래서 이번 시즌 옷은 누구에게나 손쉬운 옷이라기보다, 실루엣 자체를 각인시키는 옷에 가깝다. 바로 그 점이 HYKE가 다른 브랜드보다 한 발 더 나간 자리다.

결국 HYKE FW26에서 바닥을 덮은 팬츠는 장식이 아니라 중심이었다. 짧은 재킷과 길게 내려온 셔츠 자락, 넓은 하의와 부피 있는 외투가 한 줄로 이어지며 이번 시즌의 화면을 만들었다. 몸의 선을 따라가는 대신 몸 바깥의 선을 다시 짜는 방식이었다. 2026년 가을·겨울 시즌을 돌아볼 때 긴 팬츠와 짧은 상의의 조합은 여러 브랜드에서 반복해 보게 되겠지만, 그 흐름을 가장 분명한 길이로 밀어 붙인 장면 가운데 하나는 HYKE 런웨이로 남게 될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