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①] 거장의 손이 머문 52년의 기록… 피카소 소장 스크랩북이 열리다

1904년 청색 시대부터 1956년 말년 작업까지, 한 권에 눌러앉은 피카소의 작업 시간 종이 위 유화와 연필선, 캔버스와 스케치가 함께 남긴 피카소 작업의 원형

2026-03-31     박준식 기자
Picasso in Daegu: Picasso & The Great Masters. 사진=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박준식기자]갈색 가죽 표지에는 ‘SCRAP BOOK’이라는 글자가 남아 있다. 책등은 여러 차례 보강한 흔적이 뚜렷하고, 종이 가장자리는 오래 넘긴 책에서나 볼 법한 결을 품고 있다. 피카소를 둘러싼 수많은 해설과 명성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한 권의 책이 견뎌 온 시간이다. 2026년 3월 6일부터 8월 31일까지 대구 동구 바라크나눔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피카소 인 대구: 피카소와 세계 마스터피스’ 특별전도 바로 거기서 출발한다. 벽을 채운 완성작보다 먼저 낡은 스크랩북이 앞에 서고, 관객은 그 책을 통해 피카소의 작업이 남긴 긴 시간을 거꾸로 더듬게 된다.

작품 목록이 가리키는 시간의 폭은 길다. 1903~1904년 ‘늙은 기타 리스트’가 첫머리에 놓였고, 1904년 ‘거리의 노인’과 ‘과부 여성’, 1918년 ‘노예의 이미지’, 1930년 ‘사랑에 빠진 여자들’, 1940년 ‘세 여자와 황소’, 1946년 ‘앉아서 성경 읽기’와 ‘평화의 비둘기’, 1953년 ‘팔로마의 초상’, 1956년 ‘기타’, ‘새들이 노래하는 소리’, ‘꽃병을 든 정물화’가 뒤를 잇는다. 1904년부터 1956년까지 52년에 걸친 작업이 한 권의 책을 중심으로 이어져 있다. 어느 한 시기의 양식만 떼어 세운 배열이 아니다. 젊은 시절의 인물상과 전후의 상징, 가족을 향한 시선과 말년의 정물이 한 줄로 놓였다. 피카소를 한 번의 혁신이나 한 시기의 유행으로 압축하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서 드러난다.

목록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스크랩북의 성격은 한층 또렷해진다. 재료가 한쪽으로 기울어 있지 않다. ‘늙은 기타 리스트’는 종이 위 연필, ‘과부 여성’은 종이 위 유화, ‘세 여자와 황소’는 종이 위 색연필 스케치, ‘팔로마의 초상’은 종이 위 유화, ‘기타’ 역시 종이 위 유화다. 반면 ‘거리의 노인’, ‘새들이 노래하는 소리’, ‘꽃병을 든 정물화’는 캔버스 위 유화로 적혀 있다. 종이와 캔버스, 연필과 유화가 한 사람의 시간 안에서 번갈아 놓인다. 화가의 손이 어느 표면에 먼저 닿았는지, 어떤 재료로 생각을 밀어붙였는지가 작품 목록 자체에 남아 있다. 피카소를 캔버스의 화가로만 읽는 습관은 여기서 한 번 멈춘다. 종이 위에서 먼저 시작된 판단과 망설임, 빠른 손놀림과 생략의 감각이 피카소 작업의 한 축을 이룬다는 사실이 분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Picasso in Daegu: Picasso & The Great Masters. 사진=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1904년 작품으로 시선을 옮기면 출발점이 보인다. ‘거리의 노인’과 ‘과부 여성’이라는 제목에는 당시 피카소가 붙들었던 인물의 방향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화려한 장식이나 승리의 장면 대신, 삶의 무게를 품은 사람의 얼굴이 먼저 들어온다. 청색 시대라는 이름은 나중에 붙은 미술사적 분류다. 작업의 출발점에는 먼저 인물이 있었다. 오래 버틴 사람의 몸, 가난과 고독을 견딘 사람의 표정, 화면 앞에 서는 인간의 무게가 있었다. ‘거리의 노인’이 캔버스 위 유화이고 ‘과부 여성’이 종이 위 유화라는 점도 흥미롭다. 같은 해의 작업이 다른 표면 위에 남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피카소의 손은 이미 한 방향으로만 움직이지 않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피카소를 거장으로 만든 것은 거창한 선언이 아니라 이런 반복과 전환의 축적이었다.

청년 피카소의 작업을 떠올릴 때 많은 사람이 청색 시대를 먼저 말한다. 그러나 화면을 실제로 붙드는 힘은 색채의 이름보다 인물의 자리에서 나온다. ‘거리의 노인’과 ‘과부 여성’에는 가난과 상실이라는 사정이 배경처럼 깔려 있지만, 화면을 버티게 하는 것은 슬픔을 설명하는 문장이 아니다. 몸의 자세와 얼굴의 구조, 화면을 눌러 앉히는 시선이다. 인물 하나를 붙들고 오래 바라보는 힘은 훗날 피카소가 어떤 방향으로 형식을 바꾸든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형태를 해체하고 다시 세우는 작업이 가능했던 것도 결국 인물과 사물을 끝까지 보는 눈이 먼저 있었기 때문이다.

1940년의 ‘세 여자와 황소’에 이르면 화면의 긴장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인다. 색연필 스케치라는 재료 표기부터 눈길을 끈다. 스케치는 종종 완성작의 예비 단계로 취급되지만, 피카소에게는 정반대일 때가 많다. 종이 위에서 더 직접적이고 더 노골적인 판단이 드러난다. ‘세 여자와 황소’에는 인물과 동물, 구조와 상징이 한꺼번에 들어 있다. 황소는 피카소가 오랫동안 붙든 형상이다. 힘과 폭력, 생명력과 긴장을 함께 품은 존재였다. 세 여인과 황소가 맞붙는 장면은 설명보다 선이 먼저 밀고 나간다. 화면은 정리된 결론보다 충돌의 과정에 가깝고, 바로 그런 자리에서 피카소 특유의 구성 감각이 드러난다. 종이 위에 남은 스케치 한 장이 결코 가벼운 자료로 읽히지 않는 이유다.

Picasso in Daegu: Picasso & The Great Masters. 사진=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1946년으로 가면 공기가 다시 달라진다. ‘앉아서 성경 읽기’와 ‘평화의 비둘기’가 같은 해의 작업으로 나란히 놓여 있다. 제목만 놓고 봐도 방향은 갈라진다. 한쪽에는 정적인 인물의 자세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시대의 상징이 있다. 전쟁 직후의 유럽이 남긴 긴장과 평화에 대한 열망은 피카소 작업에서도 여러 방식으로 나타났다. 성경을 읽는 인물의 고요와 비둘기의 상징은 서로 다른 성격을 지녔지만, 한 시기의 피카소 안에서는 함께 존재했다. 사적인 장면과 공적인 상징, 개인의 시선과 시대의 기호가 한 책 안에서 어깨를 맞댄다. 피카소의 시간이 한 줄로만 흐르지 않았다는 사실도 여기서 드러난다. 인간의 일상과 역사적 공기가 같은 화가의 손을 통과하며 서로 다른 화면으로 남았다.

1953년 ‘팔로마의 초상’은 분위기를 다시 가깝게 끌어당긴다. 딸의 이름이 작품 제목에 직접 들어 있다. 미술사 속 피카소를 말할 때는 혁신과 파격, 해체와 재구성 같은 말이 먼저 따라붙는다. ‘팔로마의 초상’ 앞에서는 그런 말들이 잠시 물러난다. 가족을 바라보는 눈, 가까운 존재를 향한 시선, 사적인 시간이 먼저 들어온다. 피카소의 작업을 거대한 실험의 역사로만 읽으면 놓치기 쉬운 자리가 바로 여기다. 가족을 향한 시선은 피카소를 더 인간적인 얼굴로 되돌려 놓는다. 화면을 장악하는 힘은 여전하지만, 긴장만으로 밀어붙이지 않는다. 가까운 사람을 향한 시선이 화면에 스며들면서 피카소의 작업은 다른 온도를 얻는다.

1956년의 ‘기타’, ‘새들이 노래하는 소리’, ‘꽃병을 든 정물화’는 후반부를 묶는 작품들이다. 악기와 새, 정물은 초창기 인물상과 다른 호흡을 품고 있다. 손의 움직임은 더 가벼워졌고, 화면은 더 경제적으로 정리된다. 오래 그린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생략과 압축의 감각이 여기서 또렷해진다. 무엇을 더할 것인가보다 무엇을 남길 것인가가 중요해진다. 초기 작업에서 짙게 눌리던 무게는 이 시기에 이르러 다른 종류의 밀도로 바뀐다. 장면을 가득 채우지 않고도 화면을 버티게 하는 힘, 짧은 선과 간명한 구조로도 대상을 붙잡는 힘이 살아난다. 말년의 피카소를 자유라고 부를 수 있다면, 그 자유는 막연한 해방감보다 숙련의 깊이에 더 가깝다. 오래 실험한 손이어서 더 적게 남길 수 있었고, 오래 버틴 화가여서 더 짧은 선으로도 화면을 세울 수 있었다.

Picasso in Daegu: Picasso & The Great Masters. 사진=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스크랩북이 품고 있는 값어치는 바로 그런 변화의 시간을 한 권 안에 눌러 담고 있다는 데 있다. 미술관 벽에 걸린 단일 작품만으로는 포착하기 어려운 리듬이 책의 배열 안에서는 보인다. 1904년 인물상에서 시작된 시선이 1940년대의 구조와 상징으로 이동하고, 1953년 가족의 얼굴을 지나 1956년 악기와 새, 정물로 건너간다. 피카소의 시간은 한 번의 비약으로 완성되지 않았다. 인물과 상징, 사적 기록과 공적 이미지, 종이와 캔버스가 서로 겹치며 쌓인 결과였다. 스크랩북은 바로 그 축적의 증거다.

피카소를 둘러싼 신화는 오래전부터 굳어져 있었다. 입체주의의 창시자, 20세기 현대미술의 거장, 끝없는 실험의 화가라는 이름은 이미 충분히 알려져 있다. 스크랩북 한 권이 새삼 중요한 이유는 거창한 명칭을 덧붙여서가 아니다. 명성이 만들어지기 이전과 이후를 한꺼번에 보여주기 때문이다. 낡은 책의 표지와 책등, 종이 위 연필과 유화, 여러 시기의 작품이 뒤섞인 배열은 피카소를 결과가 아니라 과정의 시간으로 읽게 만든다. 캔버스 앞에서 완성된 피카소가 아니라, 종이 앞에서 망설이고 밀어붙이며 화면을 세운 피카소가 더 가까이 나온다.

갈색 표지에 눌어붙은 세월과 52년에 걸친 작품의 흐름은 한 가지 사실을 또렷하게 남긴다. 피카소의 작업은 한 번의 혁신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수없이 그리고 고치고 버리고 다시 남기는 시간 속에서 자라났다. 스크랩북은 그 시간을 품은 책이다. 명작의 뒤편에 있었던 종이와 선, 마모와 축적의 시간이 한 장 한 장 남아 있다. 피카소를 다시 읽는 일은 결국 그런 자리에서 시작된다. 거장의 이름을 반복하는 일보다, 거장의 손이 지나간 시간을 따라가는 일이 먼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