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ison Margiela①] 상하이 조선소 런웨이, 금 간 드레스와 가면이 먼저 나왔다

2026-04-02     김동희 기자
Maison Margiela FW26 Brings a Parisian Flea Market to a Shanghai Shipyard. 사진=Maison Margiela,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김동희기자]상하이 조선소 안쪽에 런웨이가 길게 놓였다. 철제 구조물과 콘크리트 바닥 사이로 첫 모델이 걸어 나왔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얼굴이었다. 흰 가면 표면에 금이 가 있었고, 발목까지 내려온 긴 드레스에도 같은 균열이 이어졌다. 깨진 도자기 조각을 다시 이어 붙여 몸에 감아 놓은 듯한 차림이었다. 뒤이어 나온 짙은 남색 가운은 어깨를 깊게 드러낸 채 크게 부풀었다. 젖은 쇳덩이 같은 광택이 천 전체에 번졌고, 허리 아래로 내려가며 부피를 더 키웠다. 상하이에서 공개된 메종 마르지엘라 2026 가을·겨울 컬렉션은 첫 장면부터 재단선보다 겉면이 먼저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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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무대는 글렌 마틴스가 하우스를 맡은 뒤 처음 연 큰 런웨이였다. 메종 마르지엘라는 기성복과 아티저널을 한 무대에 세웠다. 검은 턱시도와 회색 바지, 얇은 시스루 드레스와 부푼 이브닝웨어, 가죽과 직물을 이은 팬츠, 몸을 감아 올린 천이 한 줄로 이어졌다. 남성복과 여성복, 낮의 옷과 밤의 옷, 재킷과 드레스가 한자리에서 섞였지만 무대의 중심은 반듯한 기성복으로 기울지 않았다. 갈라지고 벗겨지고 부푼 겉면이 쇼의 공기를 끝까지 붙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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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자주 눈에 걸린 것은 표면의 상처였다. 흰 드레스는 깨진 도자기처럼 갈라져 있었고, 다른 룩에는 낡은 직물을 뜯어낸 자국 같은 얼룩이 남아 있었다. 천은 반듯하게 떨어지지 않았다. 한쪽으로 몰리고, 몸 바깥으로 밀려나고, 부풀어 오르며 형태를 바꿨다. 예전 마르지엘라를 떠올리게 하던 어긋난 봉제선과 뒤집힌 구조가 아주 없어진 것은 아니다. 다만 상하이에서는 눈길이 옷 안쪽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안에 숨어 있던 것이 겉으로 올라왔다. 이번 시즌 메종 마르지엘라는 재단보다 표면을 앞에 세웠다.

마스크도 흐름을 더 세게 밀어 올렸다. 검은 알갱이로 덮은 얼굴, 석고가 부서진 듯 갈라진 얼굴, 천을 비틀어 감은 머리가 잇달아 나왔다. 표정은 끝까지 드러나지 않았다. 얼굴이 지워지자 사람보다 옷감이 먼저 보였다. 누가 입었는지보다 무엇으로 덮였는지가 먼저 남았다. 메종 마르지엘라가 오랫동안 붙들어 온 익명성도 상하이 무대에서 다시 올라왔다. 얼굴만 가리는 데서 그치지 않고 몸 전체를 하나의 물건처럼 보이게 하는 장면이 이어졌다. 검은 턱시도 위에 거친 가면이 얹히자 정장 차림은 의식용 복장처럼 바뀌었고, 축 처진 갈색 상의와 회색 바지, 흰 주름 드레스 아래 이어진 장갑과 부츠도 같은 결 안에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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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를 따라가다 보면 낡은 벽지, 해진 소파, 밤늦은 벼룩시장 같은 장면이 겹쳐 보인다. 오래된 실내 장식 천을 뜯어낸 듯한 흔적, 바랜 무늬가 남은 드레스, 오랫동안 손을 탄 직물의 결이 반복됐다. 반듯하고 말끔한 럭셔리보다 시간을 오래 버틴 물건, 손상과 수선의 흔적이 더 자주 눈에 남았다. 글렌 마틴스는 메종 마르지엘라가 쌓아 온 낡음과 파손, 복원과 익명성의 언어를 버리지 않았다. 대신 더 크고 거칠게 밀어냈다. 상하이 무대는 설명보다 감촉이 먼저 남는 자리였다. 무엇을 뜻하는지 따지기 전에 어떤 표면인지부터 눈에 들어왔다.

강한 장면은 분명했다. 금 간 흰 드레스, 젖은 쇳빛 가운, 거칠게 닳은 외피, 얼굴을 지운 가면은 첫 장면부터 쇼의 분위기를 또렷하게 만들었다. 메종 마르지엘라가 가진 낡고 파손된 미감도 상하이 무대에서는 더 거칠고 크게 드러났다. 이전보다 소리 없이 스며드는 옷은 줄고, 보는 순간 압박을 주는 옷은 늘었다. 글렌 마틴스가 메종 마르지엘라를 어디로 끌고 가는지는 그 점에서 먼저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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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냥 밀어줄 수만 있는 무대는 아니었다. 강한 룩이 이어질수록 옷은 사람에게서 멀어졌다. 금이 간 드레스와 굳은 표면, 얼굴과 몸의 경계를 흐리는 가면은 쇼의 장면을 만들기에는 충분했지만, 사람이 입고 살아가는 옷의 자리와는 점점 멀어졌다. 기성복과 아티저널을 함께 세웠다고 하지만 둘 사이 간격이 좁아졌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재킷과 바지, 얇은 드레스가 중간을 받치기는 했지만 전체 무대는 끝내 조형이 강한 옷이 끌고 갔다. 기성복이 무대의 중심으로 들어왔다기보다, 아티저널이 만든 공기 속에 함께 놓인 편이 더 가까웠다.

글렌 마틴스의 이름이 다시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단번에 눈을 붙드는 힘은 분명하다. 상하이 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메종 마르지엘라가 오래 지켜 온 결까지 밀어내는 것 아니냐는 의문도 남는다. 예전 마르지엘라에는 조용한 긴장감이 있었다. 반듯한 옷처럼 보이다가도 어딘가 틀어져 있었고, 말이 적은데도 불편한 기운이 남았다. 상하이 무대는 먼저 소리를 높여 시선을 붙드는 쪽에 가까웠다. 차분하게 버티는 옷보다 바로 눈에 들어오는 겉면이 앞에 섰다. 확장인지 희석인지 당장 단정할 수는 없다. 상하이에서 드러난 방향 하나는 또렷했다. 메종 마르지엘라는 지금 옷의 속보다 겉면을 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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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라는 장소도 그냥 넘길 수 없다. 이번 일정은 쇼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상하이를 시작으로 베이징, 청두, 선전으로 이어지는 전시 프로젝트가 함께 묶였다. 런웨이와 전시, 아카이브 공개를 하나의 흐름으로 엮은 셈이다. 파리 밖 첫 런웨이를 상하이에 둔 선택도 같은 맥락에서 봐야 한다. 하우스는 이번 무대를 시즌 발표에만 쓰지 않았다. 중국에서 브랜드의 존재감을 다시 세우는 첫 장면으로 썼다. 오래된 코드인 아티저널, 익명성, 타비, 비앙케토를 네 도시 안에 다시 펼치는 방식도 같은 흐름 안에 있다. 옷 몇 벌을 내놓는 데서 끝내지 않고, 하우스의 세계 전체를 도시 안으로 들여놓으려는 시도다.

상하이 조선소에 남은 장면은 분명했다. 봉제선보다 껍질이 앞에 섰고, 얼굴보다 가면이 먼저 보였다. 기성복과 아티저널을 한 줄에 세웠지만 런웨이의 기억을 붙든 것은 갈라진 표면과 과장된 외피였다. 글렌 마틴스 체제의 메종 마르지엘라는 상하이에서 그렇게 첫 장을 열었다. 친절한 쇼는 아니었다. 쉽게 입힐 옷도 많지 않았다. 대신 어디에 힘을 싣고 있는지는 분명했다. 구조보다 흔적, 사람보다 표면, 안쪽보다 겉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