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d Trend] 베를린에서 만나는 사찰음식…'K-푸드 외교'의 새 전선을 열다

주독일한국문화원, 4월 14~15일 한국 불교 사찰음식 강연·체험 행사 개최 '투어링 K-아츠' 사업의 유럽 순회 일환

2026-04-10     임우경 기자
주독일한국문화원, ‘한국 불교 사찰음식 강연’ 개최 /사진=문화체육관광부,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임우경기자] 한국 불교의 전통 식문화가 독일 베를린에서 현지인과 직접 마주한다. 주독일한국문화원(원장 양상근)은 오는 4월 14일(화)과 15일(수) 이틀에 걸쳐 베를린에서 한국 불교 사찰음식을 소개하는 특별 강연 및 체험 행사를 개최한다. 고기·오신채를 일절 배제하고 제철 식재료와 절제된 조리법으로 구성된 사찰음식은 최근 유럽 내 비건·식물성 식단 트렌드와 맞닿아 있어, 이번 행사는 단순한 문화 소개를 넘어 한국 음식 외교의 새로운 지평으로 주목된다.

투어링 K-아츠는 한국의 예술·문화 콘텐츠를 해외 한국문화원 네트워크를 통해 순회 형식으로 전파하는 사업 /사진=문화체육관광부,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투어링 K-아츠'와 유럽 순회 전략

이번 행사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이 후원하는 '투어링 K-아츠(Touring K-Arts)' 사업의 일환으로 기획됐다. 투어링 K-아츠는 한국의 예술·문화 콘텐츠를 해외 한국문화원 네트워크를 통해 순회 형식으로 전파하는 사업으로, 이번 사찰음식 프로그램은 주스웨덴한국문화원을 시작으로 유럽 지역을 순차적으로 돌며 진행되고 있다. 한국불교문화사업단(단장 일화스님)과의 협업을 통해 기획된 이 프로그램은 음식을 매개로 한국 불교문화와 자연 친화적 식문화를 유럽 현지인과 직접 공유하는 것을 핵심 목표로 삼고 있다.

문화외교의 관점에서 이 사업 구조는 주목할 만하다. 정부 주도의 후원과 전문 종교문화 기관의 콘텐츠 역량, 그리고 현지 문화원의 네트워크가 결합된 다층적 추진 체계는 단발성 이벤트가 아닌 지속 가능한 문화 브랜딩 전략으로 설계돼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한식 홍보 방식과 차별화된다.

행사의 강연자는 대전 영선사 주지이자 사찰음식 전문가인 법송스님이다. /사진=문화체육관광부,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법송스님, 사찰음식의 철학을 전하는 장인

이번 행사의 강연자는 대전 영선사 주지이자 사찰음식 전문가인 법송스님이다. 스님은 한국불교문화사업단의 사찰음식 교육 프로그램은 물론, 프랑스와 영국의 르 꼬르동 블루(Le Cordon Bleu) 등 세계적인 요리 교육기관에서도 강의를 진행해온 경력을 보유하고 있다. 르 꼬르동 블루는 전 세계 수천 명의 전문 셰프를 배출한 세계 최고 권위의 요리 교육기관 중 하나로, 법송스님이 이 무대에서 사찰음식을 소개해온 이력은 국제 요리계에서의 사찰음식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법송스님의 철학은 제철 식재료의 활용과 조리의 절제에 있다. 인공 조미료나 육류·오신채 없이도 깊은 맛과 영양을 구현하는 사찰음식은 현대 서구 식문화가 주목하는 '마이크로바이옴', '저자극 식단', '마인드풀 이팅(mindful eating)' 등의 개념과 본질적으로 맞닿아 있어 현지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내기에 적합한 콘텐츠로 평가된다.

. 발우공양은 승려들이 발우(바리때)를 사용해 음식을 받고, 먹고, 씻는 과정을 일련의 의례로 행하는 전통 식사법 /사진=문화체육관광부,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발우공양 체험부터 조리 시연까지

행사 첫째 날인 14일에는 한국 불교의 전통 식사 의례인 발우공양 체험 프로그램이 하루 2회 운영된다. 발우공양은 승려들이 발우(바리때)를 사용해 음식을 받고, 먹고, 씻는 과정을 일련의 의례로 행하는 전통 식사법으로, 음식 낭비 없이 그릇 씻은 물까지 마시는 철저한 절제의 문화를 담고 있다. 참가자들은 콩밥, 무배추된장국, 잡채, 아스파라거스 들깨무침, 무장아찌 등 실제 사찰음식을 직접 맛보며 한국 불교 식문화의 정수를 체험하게 된다.

메뉴 구성에서도 세심한 기획력이 엿보인다. 아스파라거스 들깨무침은 현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유럽산 식재료에 한국의 들깨라는 전통 재료를 결합한 메뉴로, '낯선 음식'이 아닌 '친숙한 재료의 새로운 조합'으로 현지인의 진입 장벽을 낮추는 전략적 선택으로 읽힌다.

둘째 날인 15일에는 사찰음식의 철학과 특징에 관한 강연과 조리 시연이 이어진다. 강된장과 아스파라거스 들깨무침 조리 시연을 통해 참가자들은 사찰음식이 단순한 '채식 요리'가 아니라 수행과 자연 철학이 담긴 문화적 실천임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행사에 참가하는 모든 이들에게는 한국 불교문화 기념품과 사찰음식·템플스테이 관련 홍보물도 제공된다.

한국 사찰음식 프로그램 메뉴 /사진=문화체육관광부,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왜 지금 사찰음식인가

이번 행사는 한국 문화 외교의 흐름 속에서 몇 가지 중요한 정책적 함의를 지닌다.

첫째, K-콘텐츠의 다변화 전략이다. 방탄소년단(BTS)과 드라마·영화로 촉발된 한류의 외연이 음악·영상에서 음식·라이프스타일로 확장되는 국면에서, 사찰음식은 '정신문화'와 '식문화'를 동시에 전달할 수 있는 복합 콘텐츠로 기능한다. 단순한 레시피 이상의 철학적 메시지를 담은 콘텐츠는 서구 지식층과 문화 소비자 계층의 심층적 관심을 이끌어내기에 유리하다.

둘째, 유럽의 식문화 트렌드와의 정합성이다. 유럽 전역에서 비건·식물성 식단에 대한 수요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독일은 유럽 내 비건 시장 규모 1~2위를 다투는 국가다. 이 시장에서 사찰음식은 단순한 '외국 음식 체험'이 아니라 지속가능성·동물권·건강이라는 현지인의 가치관과 공명하는 콘텐츠로 포지셔닝될 수 있다. 이는 콘텐츠의 수용 가능성(acceptability)을 높이는 동시에 경제적 파급력으로 이어질 수 있는 지점이다.

셋째, 템플스테이 연계 관광 자원으로서의 잠재력이다. 홍보자료에 템플스테이 관련 정보가 포함된다는 점은 이번 행사가 단기 이벤트가 아닌, 방한 동기를 창출하는 관광 마케팅의 성격도 겸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사찰음식 체험이 템플스테이 참여로 이어지는 경로를 개척하는 것은 외래관광객 유치라는 정책 목표와도 연결된다.

"한국 음식을 먹어라"는 강요 대신 "당신의 재료로 우리의 철학을 보여주겠다"는 문화적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하다. /사진=문화체육관광부,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강점과 보완 가능성

이번 행사의 가장 큰 강점은 '체험'을 중심에 둔 설계다. 강연과 시식, 조리 시연을 유기적으로 결합함으로써 지적 이해와 감각적 경험을 동시에 제공하는 방식은 문화 전달의 효율성을 높인다. 법송스님이라는 국제적 경력을 갖춘 전문가의 직접 참여는 콘텐츠의 신뢰도와 완성도를 담보한다.

현지 식재료(아스파라거스)를 사찰음식 기법으로 조리하는 메뉴 구성 역시 문화 교류의 일방향성을 탈피한 유연한 접근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는 "한국 음식을 먹어라"는 강요 대신 "당신의 재료로 우리의 철학을 보여주겠다"는 문화적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하다.

다만, 이틀이라는 짧은 행사 기간과 1회성 시연 방식은 지속적 효과의 한계를 내포한다. 향후 현지 요리학교나 비건 레스토랑, 명상 커뮤니티 등과 연계한 협업 프로그램이나, 디지털 아카이빙을 통한 콘텐츠 확산 전략이 병행된다면 행사의 파급력은 한층 강화될 수 있을 것이다. '투어링' 방식이 순회를 통한 양적 확장을 추구한다면, 이제는 각 거점에서의 심화 네트워크 구축이라는 질적 심화 전략도 병행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양상근 문화원장은 "자연과 절제의 가치를 담은 한국 사찰음식을 독일 현지인에게 소개하고, 음식에 담긴 한국 불교문화의 정신을 함께 나누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앞으로도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한식과 한국 전통문화를 유럽에 알리는 데 힘쓰겠다"고 밝혔다.

베를린 행사는 단순한 음식 소개를 넘어, 한국 전통문화가 서구 사회와 접속하는 방식의 성숙도를 보여주는 사례다. K-컬처의 물결이 표피적 열기를 지나 문화적 깊이를 증명해야 하는 단계에서, 수천 년의 철학을 담은 사찰음식은 그 역할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콘텐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