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blot②] 위블로는 왜 조코비치 셔츠를 시계에 넣었나… 럭셔리 워치가 스포츠를 소비하는 방식
기록·소재·선수 서사를 한 제품에 묶은 협업 전략… 전통적 명품 시계 문법보다 브랜드 캐릭터를 앞세운 위블로식 해석
[KtN 임우경기자]노박 조코비치의 경기용 폴로 셔츠와 라켓이 시계 케이스와 베젤로 들어간 순간, 이 제품은 단순한 선수 기념판의 범주를 벗어났다. 위블로가 선보인 ‘빅뱅 투르비용 노박 조코비치 GOAT 에디션’은 투르비용, 복합소재, 코트별 우승 기록, 실제 경기 장비라는 서로 다른 층위를 하나의 상품 안에 겹쳐 놓는다. 시계 제조 기술만으로 설명하기 어렵고, 스포츠 마케팅만으로도 다 담기지 않는다. 하이엔드 시계가 스포츠 스타의 기록과 물질성을 어떤 방식으로 소비하고 재구성하는지 보여주는 사례에 가깝다.
명품 시계 업계에서 스포츠 선수 협업은 낯선 일이 아니다. 브랜드들은 오래전부터 선수 이름을 시계 다이얼에 올리고, 우승 연도나 등번호를 각인하고, 국적이나 종목을 연상시키는 색을 입혀 왔다. 대개는 상징의 차원에 머물렀다. 선수 개인의 서사를 디자인 포인트로 요약하고, 시계는 본래의 제품 구조를 유지한 채 일부 요소만 바꾸는 방식이었다. 이번 위블로 모델은 출발점부터 다르다. 조코비치가 실제 경기에서 쓴 셔츠와 라켓을 재료로 가져와 외장에 반영했다. 선수의 이름이나 이미지가 아니라 선수의 ‘사용 흔적’을 제품의 표면으로 옮긴 것이다. 협업의 밀도가 더 깊어졌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 방식은 위블로라는 브랜드의 오랜 전략과도 맞닿아 있다. 위블로는 전통적인 스위스 명품 시계 브랜드 가운데서도 이질적인 재료의 결합과 강한 시각적 자극을 전면에 내세워 온 곳이다. 귀금속과 세라믹, 카본, 사파이어, 컬러 소재를 적극적으로 섞어 왔고, 축구·농구·예술·패션과의 협업도 거침없이 진행해 왔다. ‘융합’과 ‘충돌’ 자체를 브랜드의 정체성으로 만든 셈이다. 조코비치 시계 역시 같은 문법 위에 서 있다. 오트 오를로제리의 상징인 투르비용과 실제 경기 장비를 섞고, 정교한 기계 구조와 테니스 굿즈에 가까운 형상을 한 화면 안에 포개 놓는다. 낯섦 자체가 메시지가 되는 구조다.
제품의 시각 언어는 직설적이다. 블루, 오렌지, 그린으로 나뉜 외장은 코트 종류를 즉각 떠올리게 한다. 메인플레이트는 라켓 스트링을 닮은 3차원 격자 구조로 설계됐고, 메인스프링 배럴 상단은 테니스공을 연상시키는 모습으로 마감됐다. 베젤 스크루까지 공 형상을 따랐다. 시계를 보는 순간 무엇을 기념하는 제품인지 설명이 따로 필요하지 않다. 위블로가 여기서 택한 길은 은유보다 직유에 가깝다. 전통적인 고급 시계가 종종 추상과 절제를 통해 상징을 숨긴다면, 이번 모델은 종목의 표식을 전면으로 끌어낸다.
이 선택은 호불호가 갈릴 수밖에 없다. 시계 수집 시장에는 여전히 절제된 다이얼, 오래 봐도 질리지 않는 비례감, 특정 시대를 넘어서는 디자인을 중시하는 수요가 두텁다. 그런 시각에서 보면 테니스공 배럴, 스트링 구조 플레이트, 코트 색상 외장은 지나치게 직접적일 수 있다. 반대로 스포츠 스타와의 협업 모델에서 구매자가 원하는 것은 바로 그 직접성일 수도 있다. 조코비치의 기록과 경기 장면을 멀리 돌려 말하지 않고 제품 안에 노골적으로 새겨 넣는 방식이 더 강한 소유 경험을 만들기 때문이다. 누가 봐도 조코비치 시계라는 사실이 즉시 드러나는 것이 상품성으로 작동하는 시장이다.
실제 경기 장비를 재료로 썼다는 설정도 같은 층위에서 읽힌다. 이 장치는 기능적 우위만을 위한 선택이라기보다 서사의 밀도를 높이기 위한 선택에 가깝다. 소비자는 금속과 유리, 톱니바퀴만 사는 것이 아니라 조코비치의 시간과 경기, 우승의 기억이 스며든 물건을 산다고 느끼게 된다. 명품 산업이 반복해 온 서사화 전략이 여기서도 작동한다. 다만 이번에는 서사를 문구나 광고 영상이 아니라 물질로 바꿔 넣었다는 점이 다르다. 경기용 셔츠와 라켓이라는 실물을 분해해 시계 표면에 배치함으로써 “이 제품은 선수와 닿아 있다”는 감각을 더 강하게 만든다.
가격이 12만1000달러라는 점을 감안하면, 위블로가 겨냥한 수요층도 분명해진다. 일반적인 스포츠 팬이 접근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그렇다고 전통 드레스 워치 중심의 보수적 수집가만을 노린 제품으로 보기도 어렵다. 이 시계는 고가 소비재 시장 안에서도 자기 정체성을 과시하고 싶은 구매자, 스포츠 아이콘과의 연결을 소유 형태로 확인하고 싶은 구매자, 전통보다 캐릭터와 희소한 서사를 더 중요하게 보는 구매자 쪽에 가깝다. 명품 시계가 시간을 측정하는 도구이자 공예품이라는 지위를 넘어, 소유자의 취향과 문화 자본을 드러내는 표식으로 기능하는 시장을 정면으로 겨냥한 셈이다.
번호 운영 방식은 이번 모델의 성격을 더 선명하게 보여준다. 블루 72점, 오렌지 21점, 그린 8점은 조코비치의 코트별 우승 기록을 반영한 숫자다. 그러나 제품은 보통의 고정형 한정판처럼 닫혀 있지 않다. 조코비치가 앞으로 우승을 추가하면 해당 코트 색상에 맞춰 새 번호의 시계를 더 만드는 구조다. 선수의 커리어가 진행형인 만큼 제품도 함께 열려 있다. 이미 완성된 역사에 경의를 표하는 기념품이라기보다, 아직 끝나지 않은 기록 경쟁에 동행하는 상품 구조다. 스포츠 스타를 박제된 전설로 다루지 않고 현재 움직이는 서사로 다루려는 계산이 읽힌다.
이 운영 방식은 스포츠와 럭셔리의 결합이 갖는 장점과 한계를 동시에 드러낸다. 선수의 기록이 늘어나면 제품 서사도 함께 확장된다. 반면 제품이 고정된 형태로 영원히 완결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숫자의 의미는 출시 순간에 한 번 정해지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음 우승이 나올 때마다 다시 읽힌다. 시계 자체의 미학과 공예적 완성도만으로 가치가 닫히는 것이 아니라, 선수의 다음 경기 결과가 제품 의미의 일부가 된다. 하이엔드 워치가 스포츠 스타와 강하게 결합할수록 시계는 독립된 공예품이라기보다 커리어의 파생물로 읽힐 가능성이 커진다.
사양 역시 이중적인 성격을 드러낸다. 56g 경량 케이스, 테니스 요소를 반영한 구조, 추가 러버 스트랩은 역동적인 스포츠 이미지를 지향한다. 동시에 투르비용이라는 복잡 기계식 구조, 12만1000달러라는 가격, 수집품으로서의 위상은 일상적 스포츠 장비와는 다른 결을 만든다. 실제 경기 장비에서 출발했지만, 도착점은 어디까지나 초고가 명품 시계 시장이다. 코트에서 쓰인 셔츠와 라켓은 시계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기능보다 상징이 앞서는 재료가 된다. 스포츠의 물성이 럭셔리의 언어로 번역되는 과정이라고 할 만하다.
위블로가 여기서 얻는 것은 분명하다. 브랜드는 다시 한 번 자신들이 전통적 명품 시계 문법의 바깥에서 움직이는 플레이어라는 사실을 확인한다. 무게감 있는 역사와 절제된 표현을 앞세우는 대신, 대중이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상징과 강한 시각 언어로 시장을 흔든다. 조코비치 역시 단순한 앰배서더가 아니라 소재와 구조, 생산 체계까지 흔적을 남기는 공동 창작자의 위치에 가까워진다. 브랜드와 선수가 서로의 이미지를 빌리는 수준을 넘어, 서로의 정체성을 제품 안에서 섞어낸 결과다.
시장 반응은 결국 두 갈래로 갈릴 가능성이 크다. 한쪽에서는 실제 경기 장비를 활용한 발상, 선수 기록을 생산 방식에 묶어 놓은 설계, 종목 요소를 무브먼트와 외장 전반에 밀어 넣은 실행력이 높게 평가될 수 있다. 다른 한쪽에서는 과도하게 직접적인 상징, 협업 서사에 대한 높은 의존도, 전통적 시계 미학과 다른 표현 방식에 피로감을 느낄 수 있다. 다만 위블로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만장일치의 호평이 아닐 수 있다. 브랜드를 둘러싼 찬반 자체가 존재감을 키우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위블로는 오랫동안 그 전략으로 성장해 왔다.
조코비치의 다음 우승이 나오면 이 시계의 숫자도 다시 움직인다. 그때 추가되는 한 점은 단순한 생산 수량이 아니라, 선수 기록과 명품 시계 산업이 연결되는 방식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사건이 될 가능성이 크다. 위블로가 이번 모델로 보여준 것은 투르비용 한 점의 기술보다 더 넓다. 스포츠 스타의 시간, 경기 장비의 물질성, 럭셔리 브랜드의 서사 전략이 어떤 방식으로 하나의 상품 안에서 결합하는지가 이 시계에 압축돼 있다. 조코비치 시계는 기록을 기념하는 물건이면서, 동시에 기록이 상품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물건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