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blot③] 56g 투르비용에 12만1000달러… 조코비치 시계가 드러낸 럭셔리 스포츠워치의 간격

경량 소재·실전 장비 서사 내세웠지만 가격과 사양은 초고가 수집품 문법… 코트의 물성을 손목 위 자산으로 바꾼 상품

2026-04-17     임우경 기자
Hublot Honors Novak Djokovic’s Legacy with Big Bang Tourbillon Trilogy 사진=Hublot,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임우경기자]56g. 위블로가 공개한 ‘빅뱅 투르비용 노박 조코비치 GOAT 에디션’의 무게다. 44mm 케이스, 오토매틱 투르비용, 실제 경기에서 사용한 폴로 셔츠와 라켓을 활용한 복합소재 외장, 코트별 우승 기록을 반영한 번호 체계가 이 시계 한 점에 들어갔다. 가격은 12만1000달러다. 숫자만 놓고 보면 서로 다른 두 문법이 한 제품 안에서 맞붙는다. 하나는 경기 중 착용을 염두에 둔 경량 스포츠워치의 문법이고, 다른 하나는 초고가 기계식 복잡 시계의 문법이다. 위블로는 이번 모델에서 두 영역을 분리하지 않고 한 손목 위에 겹쳐 놓았다.

조코비치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단순한 협찬이나 기념 각인 차원을 넘어선다. 케이스와 베젤에는 조코비치가 실제 경기에서 사용한 라코스테 폴로 셔츠와 헤드 라켓을 활용한 복합소재가 적용됐다. 블루, 오렌지, 그린 세 가지 색상은 하드코트, 클레이코트, 잔디코트 우승 기록을 가리킨다. 블루 72점, 오렌지 21점, 그린 8점으로 번호를 매긴 방식도 이 기록에서 나왔다. 시계를 구성하는 표면, 색상, 번호 체계가 모두 선수의 경력과 연결돼 있다. 제품 외부에 선수 이름을 새기는 협업보다 한 단계 안쪽으로 들어간 구조다.

무브먼트 안에서도 같은 방식이 반복된다. 중심부 메인플레이트는 테니스 라켓 스트링을 형상화한 3차원 격자 구조로 설계됐다. 메인스프링 배럴 상단 로셰는 테니스공을 떠올리게 하는 모습으로 마감됐다. 베젤을 고정하는 6개의 티타늄 스크루에도 공 형상이 들어갔다. 화이트 카프스킨 스트랩에는 라켓 그립 테이프를 연상시키는 엠보싱을 넣었다. 위블로는 종목을 상징하는 요소를 다이얼 한 구석이나 케이스백 각인에 숨기지 않았다. 시계 안팎의 구조와 장식 전반으로 넓혔다. 무엇을 기념하는 제품인지 한눈에 알 수 있도록 만든 셈이다.

이 시계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수치는 가격보다 무게일 수 있다. 56g은 투르비용 시계치고 가볍다. 위블로는 고성능 폴리머 ‘티타플라스트’와 실제 경기 장비를 활용한 복합소재를 앞세워 경량성을 강조했다. 고급 기계식 시계 시장에서 무게는 오랫동안 존재감의 일부였다. 금속 케이스가 주는 밀도감, 손목 위에서 느껴지는 묵직함, 귀금속의 질량이 가격과 위상을 직감하게 만드는 방식이 익숙했다. 이번 모델은 그 반대편으로 간다. 존재감의 근거를 무게가 아니라 가벼움에서 찾는다. 손목 위 부담을 줄이는 대신 제품이 품은 서사와 구조가 존재감을 대신한다.

문제는 럭셔리 시장에서 가벼움이 언제나 곧바로 설득력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특히 12만1000달러짜리 투르비용이라면 구매자는 기계 장치의 복잡성, 외장 소재의 희소성, 브랜드의 기술력뿐 아니라 소유의 체감도 함께 산다. 이때 56g이라는 수치는 어떤 이에게는 놀라운 기술 성과로 읽히지만, 다른 이에게는 고가품 특유의 물리적 존재감이 옅어지는 지점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위블로는 이 갈림길에서 후자를 버리고 전자를 택했다. 이번 조코비치 모델은 묵직한 귀금속 시계가 아니라, 선수의 움직임을 닮은 경량 고성능 물건으로 자리매김하려는 의도가 분명하다.

사양표를 뜯어보면 긴장감은 더 뚜렷해진다. 케이스 직경은 44mm, 방수 성능은 30m, 전후면에는 화학 강화 고릴라 글라스를 썼고, 스트랩은 화이트 카프스킨과 추가 러버 조합으로 구성됐다. 여기에는 ‘경기의 언어’와 ‘수집품의 언어’가 동시에 섞여 있다. 러버 스트랩과 경량 케이스는 활동성을 가리키고, 화이트 가죽 스트랩과 투르비용, 12만1000달러의 가격은 전시성과 소장성을 가리킨다. 실제 경기 장비를 재료로 삼았다는 설정은 동적인 이미지를 만들지만, 제품이 놓이는 시장은 어디까지나 초고가 명품 시계 시장이다. 코트의 땀과 마찰, 공의 회전, 라켓 스트링의 장력은 이 시계 안에서 자산 가치와 상징 자본의 언어로 바뀐다.

Hublot Honors Novak Djokovic’s Legacy with Big Bang Tourbillon Trilogy 사진=Hublot,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30m 방수라는 숫자도 이 제품의 성격을 또렷하게 드러낸다. 일반적인 복잡 기계식 시계에서는 낯선 사양이 아니지만, ‘조코비치가 실제 경기 중 착용할 수 있는 시계’라는 이미지와 겹치면 다른 해석이 생긴다. 스포츠워치라는 말이 시장에서 쓰일 때 대개는 내충격성, 방수, 현장 사용성, 거친 환경에 대한 대응력이 함께 연상된다. 반면 초고가 투르비용에서는 정밀 기계 장치와 마감, 희소성, 브랜드 상징성이 먼저 떠오른다. 위블로의 조코비치 시계는 이 두 범주를 억지로 하나로 묶는다. 스포츠 시계처럼 말하지만, 소비 구조는 수집품에 가깝다. 경기 장비의 흔적을 담았지만, 구매 결정은 실전 장비를 고르는 방식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번호 체계 역시 실용재보다 상징재의 속성을 강화한다. 블루 72점, 오렌지 21점, 그린 8점은 코트별 우승 기록을 반영한 숫자다. 다만 위블로는 이를 닫힌 한정판으로 묶지 않았다. 조코비치가 앞으로 우승을 더하면 해당 코트 색상에 맞춰 새 번호의 시계를 추가 생산하겠다고 밝혔다. 출시 시점의 기록이 제품 번호를 정하지만, 선수의 다음 승리가 나오면 숫자는 다시 움직인다. 이는 일반적인 시계의 생산 논리라기보다 스포츠 스타의 커리어를 실시간으로 따라가는 기념 상품의 논리에 가깝다. 제품은 완결된 공예품이면서 동시에 아직 끝나지 않은 선수 기록의 일부가 된다.

여기서 럭셔리 스포츠워치 시장의 오래된 질문이 다시 떠오른다. 스포츠를 닮은 명품 시계는 어디까지가 장비이고, 어디서부터가 상징물인가. 조코비치 시계는 이 질문에 정면으로 답하지 않는다. 대신 두 층위를 동시에 끌어안는다. 경기에서 나온 실물 재료를 썼고, 가볍게 만들었고, 종목의 형태를 무브먼트 구조와 장식에 반복 반영했다. 동시에 가격과 생산 방식, 구매층, 수집 구조는 일반적인 스포츠 장비와 완전히 다른 궤도에 놓여 있다. 경기 현장에서 출발한 물질이 명품 소비 체계 안으로 이동하는 과정을 압축해 보여주는 물건이다.

브랜드 전략 차원에서 보면 위블로다운 선택이기도 하다. 위블로는 전통적 명품 시계의 절제와 익명성을 강조하기보다, 강한 캐릭터와 즉각적인 인지성, 이질적 소재의 결합, 대중문화와 스포츠의 상징을 전면에 내세워 왔다. 조코비치 모델에서도 그 성향은 달라지지 않았다. 테니스를 연상시키는 표식은 곳곳에 드러나고, 실제 경기 장비 사용 사실은 제품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핵심 문장으로 배치된다. “누구의 시계인가”와 “무엇을 기념하는가”가 숨겨지지 않는다. 브랜드가 오랫동안 구축해 온 방식대로, 알아보는 사람만 알아보는 고급감보다 한눈에 드러나는 정체성을 택한 셈이다.

구매자 층도 자연히 좁고 선명해진다. 이 시계는 시간을 보기 위한 도구를 찾는 소비자나 전통적 드레스 워치 수집가를 주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조코비치라는 이름이 지닌 스포츠 상징성, 위블로라는 브랜드가 주는 과감한 이미지, 실제 경기 장비가 들어갔다는 서사, 코트별 우승 기록을 반영한 번호 체계에 의미를 두는 이들이 주된 수요층이 될 가능성이 높다. 제품의 핵심 가치는 소재 과학과 기계식 기술만으로 닫히지 않는다. “조코비치의 기록을 손목 위에 올린다”는 감각이 가격의 상당 부분을 구성한다.

리셀 시장에서도 관전 포인트는 분명하다. 블루 72점, 오렌지 21점, 그린 8점이라는 초기 번호 체계가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조코비치의 추가 우승으로 후속 번호가 붙을 경우 초기 생산분의 상징성이 어떻게 재해석될지, 하드·클레이·잔디 가운데 어느 코트 색상이 더 강한 선호를 얻을지가 변수다. 단순한 수량 경쟁이 아니라 선수 커리어의 진행 방향이 제품 가치 해석에 개입하는 구조다. 같은 브랜드, 같은 모델군 안에서도 경기 결과에 따라 상징 자본의 무게가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이다.

밀라노에서 공개된 이 시계는 조코비치의 101번째 우승까지를 반영해 출발했다. 다음 우승이 나오면 같은 구조 안에서 새로운 번호가 생긴다. 손목 위 제품 하나가 선수의 다음 경기 결과를 기다리는 셈이다. 위블로가 이번 모델로 드러낸 것은 단지 경량 투르비용의 기술이 아니다. 스포츠의 물성, 기록의 숫자, 럭셔리 시장의 가격 체계, 수집가의 기대, 브랜드의 과감한 연출 방식이 한 지점에서 어떻게 만나는지를 보여줬다. 56g과 12만1000달러 사이의 간격이 곧 이 시계의 정체성이다. 코트에서 나온 물건이 명품 시계가 되는 과정, 경기의 흔적이 자산이 되는 과정을 위블로는 이번 조코비치 모델에 그대로 담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