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문화①] 대통령은 왜 영화관으로 갔나

빛의 혁명으로 들어선 정부의 첫 문화 장면…제주 4·3 영화 ‘내 이름은’ 상영관에서 드러난 새 권력의 거리 연단 아닌 객석, 초청 인사 아닌 시민 165명…이재명정부 정치문화는 극장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2026-04-17     박준식 기자

 

[KtN 박준식기자] 4월 15일 저녁 서울 용산 CGV 상영관에 이재명 대통령과 김혜경 여사가 들어섰다. 이날 상영된 작품은 제주 4·3을 다룬 영화 ‘내 이름은’이었다. 대통령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신청한 일반 관객 165명도 같은 상영관에 앉았다. 상영 전후에는 관객과 악수가 이어졌고, 사진 촬영 요청도 쏟아졌다. 영화가 끝난 뒤에는 정지영 감독과 배우들의 무대인사가 진행됐다. 대통령 부부는 엔딩 크레딧까지 자리를 지켰다.

4월 15일 저녁 서울 용산 CGV 상영관에 이재명 대통령과 김혜경 여사가 들어섰다. 이날 상영된 작품은 제주 4·3을 다룬 영화 ‘내 이름은’이었다. 대통령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신청한 일반 관객 165명도 같은 상영관에 앉았다.  사진=2026. 04.17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용산의 한 극장에서 펼쳐진 이 장면은 문화 일정 한 줄로 넘길 성질이 아니었다. 대통령 부부의 관람 사실만 놓고 보면 흔한 공식 일정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날 상영관 안에 겹쳐진 요소는 분명했다. 제주 4·3이라는 역사적 의제, 시민이 힘을 보탠 영화라는 제작 배경, 일반 관객과 한 공간에 앉은 대통령 부부의 동선, 상영관 안팎에서 이어진 접촉의 장면이 한꺼번에 포개졌다. 이재명정부 출범 뒤 처음 또렷하게 포착된 문화 장면은 새 정부가 권력의 거리를 어디에 둘 것인지 보여주는 풍경에 가까웠다.

내 이름(My Name) 사진=영화, 내 이름(My Name) 스틸,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대통령의 공연장 방문이나 전시 관람이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역대 정부에서도 문화 일정은 있었다. 차이는 장면이 만들어지는 방식에 있다. 이전의 문화 일정이 권력의 취향이나 격려의 형식으로 소비됐다면, 지금의 문화 일정은 그 자체로 정치문화의 성격을 드러내는 무대로 읽힌다. 어느 장소를 택했는지, 누구를 같은 공간에 들였는지, 무엇을 함께 봤는지가 모두 메시지가 된다. 상영관의 좌석 배치와 입장 장면, 관객과의 접촉 방식까지 정치적 의미를 띠는 시대다.

‘내 이름은’은 정지영 감독이 연출한 작품이다. 염혜란, 신우빈, 최준우, 박지빈, 김규리 등이 출연한다. 영화는 1949년 제주와 1998년을 오가며 제주 4·3의 상처를 개인과 가족의 기억 속으로 끌어들인다. 국가폭력이라는 거대한 비극을 추상적 구호로 밀어붙이기보다, 이름과 기억, 모자의 삶을 따라가며 보여주는 방식이다. 역사적 사건을 생활의 시간 안으로 옮겨 놓은 작품이라는 점에서, 대통령이 이 영화를 선택한 장면은 문화 일정 이상의 무게를 갖게 됐다.

이재명 대통령, 영화 '내 이름은' 관람. 사진=청와대,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제작 방식도 상징을 키웠다. 이 영화는 시민 참여로 제작 기반을 다진 작품이다. 시민이 힘을 보탠 영화를 대통령 부부가 시민과 함께 보는 장면이 만들어진 셈이다. 광장의 힘으로 정권교체를 이뤄낸 뒤 출범한 정부의 첫 문화 장면이 시민 참여의 서사를 품은 영화에서 나왔다는 점은 가볍지 않다. 빛의 혁명으로 불린 정치 변화가 제도권으로 옮겨온 뒤에도, 권력은 여전히 시민과의 거리에서 자신의 정당성을 확인받으려 한다는 인상을 남긴다.

이재명정부의 정치문화가 눈에 띄는 이유도 여기 있다. 권력은 자신을 높이는 방식보다 낮추는 방식으로 장면을 만든다. 연단보다 객석, 초청 인사 중심의 폐쇄적 행사보다 공개 신청을 거친 시민 동석, 긴 연설보다 접촉의 풍경이 먼저 나온다. 4월 15일 용산 CGV 상영관에서 가장 먼저 포착된 것은 발언문이 아니라 동선이었다. 대통령 부부가 일반 관객과 같은 공간에 들어가고, 악수를 나누고, 사진을 함께 찍고, 무대인사를 지켜보는 장면이 먼저 퍼졌다. 새 정부의 권력이 어디에 서려 하는지를 말보다 빨리 드러낸 그림이었다.

이재명 대통령, 영화 '내 이름은' 관람. 사진=청와대,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이 장면은 우연한 친근함으로 보기 어렵다. 광장의 정치가 제도로 옮겨온 뒤 권력이 스스로를 보여주는 방식이 달라졌다는 사실과 맞물린다. 시민이 만들어낸 변화의 결과로 탄생한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누구와 함께 있는가’로 자신을 설명할 수밖에 없다. 상영관 안의 대통령 부부는 권력의 상징이라기보다 시민과 함께 장면을 구성하는 한 요소로 놓였다. 정치적 메시지가 연설문 안에서만 생산되던 때와는 다른 풍경이다.

제주 4·3이라는 의제를 극장에서 다시 불러낸 점도 중요하다. 이 사건은 오랫동안 추념식과 기념사, 진상 규명과 명예 회복의 언어 속에서 다뤄졌다. 국가가 기억해야 할 역사라는 점은 분명했지만, 그 기억은 주로 의례의 공간 안에서 호명됐다. 4월 15일 용산 CGV 상영관은 그 형식을 바꿔 놓았다. 추념식장이 아니라 극장에서, 대통령과 일반 관객이 같은 작품을 보는 방식으로 4·3이 다시 현재로 들어왔다. 역사 의제가 문화의 언어를 타고 생활 공간으로 이동한 것이다.

내 이름(My Name) 사진=영화, 내 이름(My Name) 스틸,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이 흐름은 지금 한국 사회의 정치문화와도 맞닿아 있다. 정치는 더 이상 국회 본회의장이나 기자회견장, 청와대 영빈관 같은 제도적 공간에서만 소비되지 않는다. 시장과 공장, 체육관과 공연장, 영화관과 광장이 모두 정치가 모습을 드러내는 무대가 됐다. 시민이 일상적으로 드나드는 장소에서 권력의 태도와 감각이 읽히고, 그 장면이 다시 기사와 영상, 사진으로 퍼진다. 생활 공간은 곧 정치적 경험의 공간이 됐다. 영화관 역시 예외가 아니다.

특히 영화관은 공감의 언어를 만들기에 유리한 장소다. 추모와 기억, 상처와 화해 같은 주제는 단상 위 연설보다 상영관의 어둠 속에서 더 넓게 퍼질 수 있다. 관객은 훈시를 듣는 청중이 아니라 같은 이야기를 보는 사람으로 자리 잡고, 대통령도 명령하는 권력이 아니라 같은 장면을 지켜본 사람으로 배치된다. 이재명정부가 첫 문화 장면으로 이런 공간을 택한 것은 우연한 동선이라기보다, 새 정부가 권력의 표정을 어떤 방식으로 보여줄 것인지 드러낸 선택으로 읽힌다.

내 이름(My Name) 사진=영화, 내 이름(My Name) 스틸,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실제로 이날 상영관 안팎의 풍경은 권위보다 접촉에 가까웠다. 관객의 연호가 이어졌고, 제주어 인사도 나왔다. 상영 뒤에는 무대인사가 이어졌고, 단체사진과 셀카 촬영도 이뤄졌다. 행사 전체를 지배한 것은 엄숙한 의전의 분위기보다 현장 안의 움직임이었다. 대통령 부부가 어디에 앉았는지, 누구와 손을 맞잡았는지, 어떤 표정으로 극장을 나섰는지가 기사와 화면에 남았다. 정치가 자신의 메시지를 설명의 문장보다 장면의 형식으로 풀어내는 방식이 더 선명해진 셈이다.

미디어 환경도 이런 흐름을 뒷받침한다. 긴 발언문보다 몇 초짜리 영상과 한 장의 사진이 더 빨리 퍼지고 더 오래 남는다. 정책 설명은 해석을 필요로 하지만, 악수와 객석 동석, 단체사진은 보는 순간 의미가 전달된다. 지금의 정치문화는 설명의 경쟁보다 장면의 경쟁에 더 가깝다. 상영관 안에서 만들어진 권력의 거리, 시민과의 접촉, 역사영화를 선택한 맥락은 짧은 영상과 사진 몇 장으로도 압축된다. 정치가 문화 공간을 찾는 데에는 이런 유통 구조도 깊게 작용한다.

그렇다고 이런 장면을 이미지 정치로만 축소해서 볼 수도 없다. 빛의 혁명으로 불린 시민의 집단적 경험은 정치의 언어를 이미 바꿔 놓았다. 거리와 광장에서 표출된 요구는 제도정치로 번역되면서도 여전히 생활 속 접촉과 참여, 동석의 형식을 요구한다. 시민은 이제 높고 닫힌 권력보다 가까이 있고 함께 있는 권력을 더 예민하게 본다. 대통령이 영화관으로 가고, 시민과 같은 공간에 앉고, 상영관 안팎에서 몸을 섞는 장면이 의미를 갖는 배경도 바로 여기에 있다.

 

출범 초기의 정부일수록 이런 장면의 무게는 더 크다. 정책과 제도는 시간을 두고 평가받지만, 정권의 첫인상은 장소와 동선, 표정과 태도에서 먼저 만들어진다. 4월 15일 용산 CGV는 그런 점에서 이재명정부 출범 국면을 비춘 하나의 프레임이었다. 시민이 힘을 보탠 역사영화, 일반 관객 165명과 같은 상영관에 앉은 대통령 부부, 상영관 안팎에서 이어진 악수와 사진 촬영이 한 화면 안에 들어왔다. 새 정부는 그 장면을 통해 권력의 높이보다 권력의 거리를 먼저 보여줬다.

남는 대목도 분명하다. 이재명정부의 첫 문화 장면은 추념식장이 아니라 극장에서 나왔다. 시민이 만든 영화, 시민과 함께한 관람, 역사 의제를 생활 공간으로 끌어온 배치가 동시에 작동했다. 광장에서 제도로 옮겨온 정치가 여전히 시민과의 거리를 자신의 정당성으로 삼고 있다는 사실, 역사 의제가 문화의 형식 속에서 다시 현재형으로 호출되고 있다는 사실이 그 상영관 안에 함께 들어 있었다. 용산 CGV의 어두운 객석은 영화 한 편이 상영된 공간이면서, 새 정부의 정치문화가 처음 또렷하게 모습을 드러낸 무대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