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문화②] 권력은 왜 자꾸 시민 곁으로 내려오나
악수와 셀카, 공개신청과 동석…이재명정부 출범 장면에서 선명해진 ‘가까운 권력’의 문법 연단의 높이보다 접촉의 거리, 발언의 무게보다 현장의 체온…대한민국 정치문화가 바뀌고 있다
[KtN 박준식기자]4월 15일 서울 용산 CGV 상영관 앞에서는 대통령 부부를 향한 관객들의 요청이 이어졌다. 악수가 오갔고, 사진 촬영도 이어졌다. 대통령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신청한 일반 관객 165명은 같은 상영관에 들어가 영화 ‘내 이름은’을 함께 봤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대통령 부부는 관객들 사이에 남았다. 극장을 나서는 길목에서는 시민들과 셀카를 찍는 장면까지 나왔다.
불과 몇 해 전만 해도 대통령의 동선은 이런 풍경과 거리가 있었다. 통제된 공간, 제한된 인원, 정해진 순서가 먼저 떠올랐다. 권력은 멀리 있었고, 시민은 그 장면을 밖에서 지켜보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 한국 정치에서 반복해서 등장하는 장면은 다르다. 대통령은 군중 앞 연단보다 사람들 사이로 들어가고, 메시지는 긴 연설문보다 악수와 사진, 동석의 풍경으로 먼저 퍼진다. 이재명정부 출범 뒤 처음 또렷하게 포착된 문화 장면도 그 문법 위에 놓여 있었다.
정치에서 ‘가까움’은 오래전부터 중요한 자산이었다. 다만 예전의 가까움이 선거철 유세장 인사나 시장 방문의 제스처에 가까웠다면, 최근의 가까움은 훨씬 세밀하고 촘촘하게 연출된다. 공개 신청을 받아 일반 관객을 들이고, 같은 상영관에 앉고, 상영 전후 악수와 사진 촬영을 하고, 현장 분위기까지 그대로 퍼뜨리는 방식이다. 시민과 권력의 거리가 짧아졌다는 사실만이 아니라, 짧아진 그 거리 자체가 하나의 메시지로 소비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 변화는 이재명정부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정치 전체가 이미 그런 흐름 속에 들어와 있다. 정당 대표와 대통령 후보, 지방자치단체장까지 모두 ‘가까운 정치인’의 이미지를 경쟁적으로 만든다. 시장 골목에서 국밥을 먹고, 퇴근길 시민과 셀카를 찍고, 스포츠 경기장과 공연장, 영화관 같은 생활 공간에 들어간다. 예전의 권력이 엄숙함과 절제를 통해 자신을 유지했다면, 지금의 권력은 친근함과 접촉을 통해 정당성을 키우려 한다. 권위의 언어가 약해진 자리를 친밀함의 장면이 채우는 셈이다.
이재명정부 출범 국면에서 이런 흐름이 더 크게 읽히는 데에는 배경이 있다. 정권교체의 과정 자체가 광장과 시민 참여의 경험 위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거리의 집회와 온라인의 여론, 생활 공간 곳곳에서 터져 나온 정치적 열기가 제도권 권력교체로 이어진 경험은 권력의 표정도 바꿔 놓았다. 높은 자리에서 설명하는 정부보다 시민 곁에서 호흡하는 정부, 닫힌 행사보다 열린 장면을 만드는 정부가 더 설득력을 얻는 환경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재명정부가 출범 직후부터 권력의 거리를 어떻게 배치할 것인지 민감하게 다룰 수밖에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용산 CGV 상영관에서 나온 장면은 그 배치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일반 관객 165명과 같은 공간, 시민이 힘을 보탠 영화라는 배경, 상영관 안팎에서 이어진 악수와 사진 촬영이 한 자리에 들어왔다. 대통령은 단상 위 연사가 아니라 객석 안 관람객처럼 놓였다. 대통령실이 전달한 의미도 긴 정책 메시지가 아니라 함께 본 영화, 함께한 관객, 함께한 기억에 가까웠다. 권력이 자신을 설명하는 방식에서 ‘동석’이 얼마나 중요해졌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동석은 단순한 물리적 배치가 아니다. 누가 누구와 같은 공간에 있었는가, 누가 같은 장면을 봤는가, 누가 같은 시간을 보냈는가는 오늘의 정치에서 상징이 된다. 대통령이 시민과 같은 극장 의자에 앉는 장면은 대통령이 시민 속으로 들어갔다는 인상을 만든다. 실제 접촉 시간이 길지 않아도, 그 장면은 강한 정치적 효과를 낸다. 권력은 멀리 있지 않고, 같은 공기를 마시며 같은 화면을 보는 존재처럼 보인다. 지금 정치가 가장 즐겨 쓰는 친밀감의 기술 가운데 하나다.
악수와 셀카는 그 기술을 완성하는 도구다. 악수는 짧지만 가장 오래된 접촉의 상징이다. 셀카는 더 직접적이다. 권력과 시민이 같은 프레임에 들어가는 순간, 정치적 경험은 개인의 휴대전화 안으로 들어간다. 예전에는 대통령을 멀리서 찍은 사진을 보는 데 그쳤다면, 지금은 시민이 직접 대통령과 한 장면 안에 들어가 자기 이미지로 소유한다. 이 변화는 작지 않다. 권력의 장면이 국가의 기록물에서 개인의 콘텐츠로 옮겨가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가 자꾸 시민 곁으로 내려오는 까닭도 결국 여기에 닿아 있다. 시민은 더 이상 일방적으로 메시지를 받는 존재에 머물지 않는다. 직접 찍고, 올리고, 공유하고, 해석한다. 정치인의 현장 일정은 이제 기사 한 꼭지로 끝나지 않는다. 현장 사진, 짧은 영상, 개인 계정의 후기, 팬처럼 소비하는 지지층의 재가공을 거쳐 훨씬 넓게 퍼진다. 이런 환경에서 권력의 친밀한 장면은 단숨에 확산될 수 있는 강력한 자산이 된다. 연설문보다 한 장의 셀카가 더 넓게 퍼지는 시대다.
정치가 문화 공간을 자주 택하는 이유도 비슷하다. 영화관, 공연장, 스포츠 경기장, 전시장은 원래 시민이 일상적으로 드나드는 장소다. 경직된 의전 공간보다 체온이 높고, 통제된 행사장보다 감정이 잘 움직인다. 그 공간에 권력이 들어가면 메시지는 곧바로 부드러워진다. 영화관에서는 기억과 공감이, 공연장에서는 흥분과 연대가, 경기장에서는 응원과 에너지가 붙는다. 권력은 그런 정서를 빌려 자기 이미지를 재구성한다. 이재명정부가 첫 문화 장면을 영화관에서 만들었다는 사실도 그런 흐름 안에서 읽힌다.
그렇다고 ‘가까운 권력’이 곧바로 좋은 정치로 이어진다고 보기는 어렵다. 가까워 보이는 것과 실제로 가까운 것은 다른 문제다. 동석과 악수, 셀카는 거리감을 줄이는 데 효과적이지만, 시민이 권력의 의사결정에 더 깊이 참여한다는 뜻은 아니다. 공개 신청으로 관객을 뽑고, 같은 상영관에 앉고, 사진을 함께 찍는 장면은 강력한 상징이지만, 그것이 곧 권력의 개방성 전부를 설명하지는 않는다. 접촉의 장면은 늘 실제 참여보다 앞서간다.
이 점에서 오늘의 정치문화는 두 겹으로 움직인다. 하나는 시민이 실제로 더 많은 공간에서 권력과 만나는 경험이다. 예전보다 더 자주, 더 가까이, 더 직접적으로 지도자의 얼굴을 본다. 다른 하나는 그 경험이 정교하게 설계된 이미지로도 기능한다는 사실이다. 일정은 치밀하게 짜이고, 장면은 의도된 순서로 배치되며, 무엇이 먼저 노출될지도 계산된다. 실제 접촉과 연출된 접촉이 분리되지 않은 채 같은 화면 안에 들어가는 시대다.
이재명정부의 경우 이런 양면성은 더 세게 읽힌다. 시민의 힘으로 들어선 정부라는 정당성은 ‘시민과 가까운 권력’의 장면과 잘 맞는다. 동시에 그 정당성을 계속 확인받으려면, 권력은 끊임없이 시민 곁에 있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출범 초기일수록 더욱 그렇다. 정책의 성과는 시간이 걸리지만, 권력의 태도는 장면으로 곧바로 남기 때문이다. 시민과 함께 보는 영화, 시민과 맞잡는 손, 시민과 같은 프레임에 들어가는 사진은 그런 맥락에서 매우 효율적인 정치 언어가 된다.
한국 정치문화에서 흥미로운 대목은 이런 친밀함이 더는 낮은 급의 이벤트가 아니라는 점이다. 과거에는 권력의 품격을 해칠 수 있다는 이유로 거리 유지가 당연한 규범처럼 여겨지던 장면들이 지금은 오히려 긍정적 자산이 된다. 시민 옆 의자에 앉는 대통령, 격의 없이 사진을 찍는 대통령, 현장 요청을 바로 받는 대통령의 모습이 ‘소통’과 ‘민주성’의 징표처럼 소비된다. 권력의 상징 체계가 바뀌고 있는 셈이다. 높이보다 접근성이, 장중함보다 생활감각이 더 강한 힘을 얻는다.
그 변화는 정치가 시민을 대하는 태도만 바꾸지 않았다. 시민이 권력을 바라보는 눈도 바꿨다. 시민은 이제 권력이 얼마나 높은 말을 하는지보다 얼마나 가까이 와 있는지를 더 민감하게 본다. 말의 품격보다 동선의 방향, 메시지의 정교함보다 접촉의 방식이 더 큰 인상을 남기는 경우가 많다. 정치는 점점 정책 문장만으로 평가되지 않는다. 어느 현장에 있었는지, 누구 옆에 섰는지, 누가 그 장면에 들어왔는지가 함께 평가된다. 정치인의 몸짓과 표정, 거리 조절이 메시지의 일부가 되는 이유다.
빛의 혁명으로 불린 시민의 정치 경험도 이 흐름에 힘을 보탰다. 광장은 멀리 있는 권력을 호출하는 공간이 아니라, 시민이 직접 정치의 무대에 올라서는 공간이었다. 그 경험을 지나 탄생한 정부가 다시 높은 장벽 뒤로 숨는다면 곧바로 거부감이 생길 수밖에 없다. 광장의 기억은 제도권 정치에도 시민과의 거리 재조정을 요구한다. 권력은 시민과 더 가까이 있어야 하고, 적어도 그렇게 보여야 한다. 이재명정부의 초반 장면들이 자꾸 접촉과 동석, 생활 공간을 향하는 것도 그 요구와 무관하지 않다.
그렇지만 접촉의 이미지가 커질수록 피로도도 함께 쌓인다. 모든 현장이 셀카와 악수로 귀결되고, 모든 메시지가 ‘가까운 권력’의 장면으로 포장되면 진부해질 수 있다. 정치가 생활 속으로 들어오는 일과, 생활 장면을 끝없이 정치 홍보로 바꾸는 일은 종이 한 장 차이다. 친밀함의 정치가 힘을 얻는 이유는 그것이 여전히 낯선 감각을 주기 때문이다. 그 감각이 반복으로 닳아버리면 오히려 공허한 연출로 보일 위험이 커진다. 가까운 권력의 문법도 결국 내용과 성과가 따라붙어야 오래 간다.
4월 15일 용산 CGV 상영관에서 나온 풍경은 그래서 더 많은 것을 보여준다. 대통령 부부가 시민과 함께 영화를 봤다는 사실만 남지 않았다. 권력은 어디에 서야 하는가, 시민은 어떤 거리의 정치를 원하고 있는가, 장면은 어떻게 메시지를 대신하고 있는가가 한꺼번에 드러났다. 상영관 안에서 나란히 놓인 좌석과 상영관 밖에서 이어진 셀카 촬영은 지금 한국 정치문화가 어디로 움직이고 있는지 압축해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이재명정부의 정치문화가 특별히 새롭다는 뜻만은 아니다. 오히려 한국 정치 전체가 이미 그런 흐름으로 깊이 들어와 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 다만 시민의 참여와 광장의 에너지 위에서 출범한 정부일수록 그 흐름은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권력은 자신을 높이는 방식보다 가까이 보이는 방식으로 설명하고, 시민은 그런 장면 속에서 정치의 진정성과 감각을 읽어낸다. 용산의 극장은 그 새로운 규칙이 작동하는 현장이었다.
시민 곁으로 내려온 권력의 장면은 앞으로도 더 자주 등장할 가능성이 크다. 영화관일 수도 있고, 공연장일 수도 있고, 경기장이나 시장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장소 자체보다 그 장소 안에서 권력이 어떤 거리로 배치되는가다. 한국 정치문화는 지금 그 거리를 놓고 다시 쓰이고 있다. 이재명정부 출범 국면에서 포착된 극장의 풍경은 그 변화의 한복판에 놓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