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문화③] 추념식장을 나온 역사, 극장으로 들어갔다

제주 4·3 영화 ‘내 이름은’ 관람에 담긴 변화…국가의 기억은 이제 문화의 형식으로도 움직인다 기념사와 추도식의 문장을 넘어 생활 공간으로 들어온 현대사…이재명정부 첫 문화 장면이 비춘 새로운 장면

2026-04-17     박준식 기자
내 이름은(My Name) 사진=영화, 내 이름은(My Name) 스틸,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박준식기자]4월 15일 저녁 서울 용산 CGV 상영관에 이재명 대통령과 김혜경 여사가 들어섰다. 이날 상영된 작품은 제주 4·3을 다룬 영화 ‘내 이름은’이었다. 일반 관객 165명도 같은 상영관에 앉았다. 상영관 안팎에서는 악수와 사진 촬영이 이어졌고, 영화가 끝난 뒤에는 정지영 감독과 배우들의 무대인사도 진행됐다. 대통령 부부는 엔딩 크레딧까지 자리를 지켰다.

이날 극장 풍경에서 먼저 보인 것은 대통령의 문화 일정이라기보다 역사 의제가 놓인 자리의 변화였다. 제주 4·3은 오랫동안 추념식장과 기념관, 기념사와 국가보고서의 언어 안에서 다뤄져 왔다. 국가폭력의 진실을 밝히고 희생자의 명예를 회복하는 일은 당연히 그런 공적 형식을 필요로 했다. 다만 그 기억은 대체로 의례의 공간 안에서 불렸고, 일상으로 내려오는 데에는 시간이 걸렸다.

용산의 상영관은 그 흐름이 달라졌음을 보여줬다. 추념식장이 아니라 극장에서, 국가기관의 행사가 아니라 영화 관람의 형식으로 제주 4·3이 다시 불렸다. 대통령과 시민이 같은 공간에서 같은 작품을 보는 방식으로 현대사가 현재의 장면 안으로 들어왔다. 국가가 기억해야 할 사건이 문화의 언어를 타고 생활 공간으로 옮겨온 것이다.

내 이름은(My Name) 사진=영화, 내 이름은(My Name) 스틸,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내 이름은’은 그런 변화와 맞물리는 작품이다. 영화는 1949년 제주와 1998년을 오가며 제주 4·3의 상처를 개인과 가족의 기억 속으로 끌어들인다. 거대한 역사적 비극을 구호와 개념으로 밀어붙이기보다, 이름과 기억, 모자의 삶과 상처를 따라가며 보여준다. 국가폭력이라는 큰 사건을 생활의 시간 안으로 옮겨 놓은 셈이다. 기록으로 남아 있던 비극이 인물의 얼굴과 관계, 감정의 흐름으로 다시 살아나는 방식이다.

이런 형식은 지금 한국 사회에서 점점 더 힘을 얻고 있다. 현대사의 비극은 더 이상 기념식과 추도사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 영화와 드라마, 전시와 공연, 다큐멘터리와 온라인 영상이 사건을 다시 서사화하고 다시 유통한다. 국가가 기억해야 할 사건은 문화산업의 언어를 통해 더 넓은 대중과 만나고, 다른 세대의 감각 속으로 들어간다. 공적 기억의 무대가 넓어진 것이다.

제주 4·3처럼 상처가 깊고 층위가 많은 사건일수록 이런 문화적 번역은 더 절실하다. 추념의 언어는 사건의 무게를 바로 세우는 데 강하다. 반면 영화는 사건을 한 인물의 얼굴과 한 가족의 상처, 한 시대의 공기 속으로 풀어 넣는다. 관객은 그 안에서 사건을 배우는 데 그치지 않고, 사건의 무게를 자기 감정으로 건너 받는다. 현대사가 생활의 감각 안으로 들어오는 방식이다.

이재명 대통령, 영화 '내 이름은' 관람. 사진=청와대,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이재명정부 출범 직후 나온 첫 문화 장면이 제주 4·3 영화 관람이었다는 사실도 그런 맥락에서 가볍지 않다. 추념식장에 가서 기념사를 낭독하는 방식이 아니라, 극장에서 일반 관객과 나란히 앉아 같은 영화를 보는 방식으로 역사 의제를 만났기 때문이다. 연단 위에서 과거사를 선언하는 장면과 객석 안에서 시민과 함께 상영을 지켜보는 장면은 결이 다르다. 전자는 국가의 목소리를 앞세우고, 후자는 국가가 문화의 장면 안으로 들어가는 형식에 가깝다.

이 변화에는 시민의 기억 방식이 달라진 현실도 겹친다. 시민은 더 이상 현대사를 교과서와 기념사로만 접하지 않는다. 드라마와 영화, 온라인 영상과 전시, 짧은 클립과 후기 글을 통해 사건을 만난다. 기억의 경로가 바뀐 셈이다. 과거에는 국가가 기념일과 공식 행사를 통해 기억의 형식을 주도했다면, 이제는 문화 콘텐츠가 그 역할을 함께 나눠 맡는다. 정치 역시 그 변화를 외면하기 어렵다.

대통령의 영화 관람은 바로 그런 변화 위에 놓인 장면이었다. 국가가 기억해야 할 사건을 문화의 형식 속에서 다시 불러내고, 시민과 같은 공간 안에서 그 기억을 공유하는 방식이었다. 빛의 혁명으로 불린 시민의 정치 경험 위에서 출범한 정부가 역사 의제를 다루는 자리에서도 시민과의 거리, 생활 공간과의 접점을 앞세운 셈이다. 권력은 높은 연단보다 생활의 공간 안에서 스스로를 드러냈고, 기억은 의례의 문장보다 문화의 장면 속에서 다시 움직였다.

이재명 대통령, 영화 '내 이름은' 관람. 사진=청와대,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이런 흐름이 반가운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역사가 문화 콘텐츠의 형식으로 옮겨가는 순간, 기억은 더 넓게 퍼지지만 동시에 더 빠르게 소비되기도 한다. 한 사건의 비극과 무게가 배우의 연기, 감정의 파동, 화제성 있는 장면에 묻힐 수 있다. 상영관 안에서의 울림이 곧바로 사건의 구조와 국가 책임에 대한 이해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넓게 퍼지는 기억과 얕게 소비되는 기억이 함께 생겨나는 구조다.

정치가 그 장면 안으로 들어오면 긴장은 더 커진다. 대통령의 관람은 역사 의제를 더 넓은 공론장으로 끌어올리는 효과를 낼 수 있다. 동시에 영화 자체보다 대통령의 동선과 정권의 메시지가 먼저 소비될 수도 있다. 작품이 던지는 문제의식보다 누가 와서 봤는지, 현장에서 무슨 반응이 나왔는지, 그 장면이 어떤 정치적 이미지로 읽히는지가 더 빨리 퍼질 수도 있다. 역사와 문화, 정치가 한자리에서 만날 때 생기는 양면성이다.

‘내 이름은’ 관람 장면에도 그런 긴장이 함께 들어 있었다. 한쪽에서는 제주 4·3이 극장이라는 생활 공간 안으로 들어왔고, 일반 관객과 대통령이 같은 상영관에서 같은 영화를 보는 풍경이 만들어졌다. 다른 한쪽에서는 그 장면이 곧바로 정치적 이미지로 유통됐다. 일반 관객 165명 동석, 시민 후원 제작, 상영관 안팎의 악수와 사진 촬영은 모두 기억의 확장 장면이면서 동시에 정치적 상징의 장면이 됐다.

이재명 대통령, 영화 '내 이름은' 관람. 사진=청와대,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그렇다고 문화의 형식이 국가의 책임을 대신할 수는 없다. 영화가 기억의 접점을 넓히고, 대통령의 관람이 공론장을 키우는 데 도움을 줄 수는 있다. 그러나 과거사 문제는 여전히 진상 규명과 기록 보존, 교육과 명예 회복, 국가 책임의 언어를 필요로 한다. 문화 콘텐츠는 그 과정을 살아 있는 감각으로 번역할 수 있지만, 국가가 해야 할 몫 자체를 대신할 수는 없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두 형식이 맞물리는 방식이다. 추념식장의 언어가 사건의 무게를 붙들고, 극장의 언어가 그 기억을 넓히는 구조가 필요하다. 국가가 해야 할 일은 기념식에만 머물지 않고, 문화적 번역이 얕은 소비로 흐르지 않도록 공적 기반을 함께 세우는 데 있다. 역사 의제가 생활 공간으로 내려왔다면, 그 기억을 지탱할 제도와 교육, 기록과 공론장의 토대도 더 단단해야 한다.

 

4월 15일 용산 CGV 상영관은 그런 변화를 한눈에 보여준 장소였다. 제주 4·3이라는 역사적 비극은 추념식장 밖으로 나와 상영관에 들어왔고, 대통령과 시민은 같은 작품을 함께 봤다. 기억의 형식이 달라지고 있고, 정치 역시 그 변화 안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 그 장면 안에 또렷하게 드러났다. 기념사의 문장만으로는 닿지 않던 자리까지, 역사는 이제 문화의 언어를 타고 움직인다.

이재명정부 출범 국면에서 나온 첫 문화 장면은 그 흐름의 한복판에 놓여 있었다. 국가가 기억해야 할 사건, 시민이 일상 속에서 만나는 콘텐츠, 대통령의 문화 일정이 한 공간 안에서 만났다. 추념식장의 엄숙함과 극장의 생활감각이 등을 지지 않고 같은 의제를 비추는 시대가 열린 셈이다. 역사는 더 이상 기록 보관소와 추도식장에만 머물지 않는다. 극장 안으로 들어와 시민의 감정과 만나고, 정치 역시 그 장면 속에서 새로운 형식을 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