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문화④] 참여는 내용이었나, 장면이었나

시민 후원 영화, 일반 관객 165명 동석, 공개 신청 방식까지…이재명정부 첫 문화 장면에 겹쳐진 참여의 문법 광장에서 제도로 옮겨온 정치, 생활 공간으로 내려온 권력…대한민국 정치문화는 ‘함께 있음’으로 정당성을 만든다

2026-04-18     박준식 기자
내 이름은(My Name) 사진=영화, 내 이름은(My Name) 스틸,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박준식기자] 제주 4·3을 다룬 영화 ‘내 이름은’이었다. 대통령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신청한 시민들이 추첨으로 자리를 함께했고, 상영 전후에는 악수와 사진 촬영이 이어졌다. 영화가 끝난 뒤에는 감독과 배우들의 무대인사가 진행됐다. 시민이 힘을 보탠 영화, 시민이 신청해 들어온 상영관, 시민과 한 공간에 앉은 대통령 부부라는 구도가 한 장면 안에 잡혔다.

이날 극장 풍경에서 가장 또렷했던 것은 ‘참여’였다. 영화는 시민 참여로 제작 기반을 마련했고, 관람은 일반 관객 공개 신청 방식으로 꾸려졌으며, 대통령 부부는 그 시민들과 같은 공간에서 상영을 지켜봤다. 참여는 작품의 바깥에 덧붙은 장식이 아니었다. 제작과 관람, 현장 분위기와 정치적 상징까지 관통하는 핵심 언어로 놓였다. 이재명정부 출범 국면에서 나온 첫 문화 장면이 이 언어를 중심에 세웠다는 점은 가볍지 않다.

최근 한국 정치에서 ‘참여’는 단순한 절차를 넘어 정당성의 말이 됐다. 누가 결정했는가 못지않게 누가 함께했는가가 더 큰 의미를 얻는다. 시민이 들어와 있었는지, 공개 신청이 있었는지, 현장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함께했는지, 그 자리에 권력이 얼마나 가까이 배치됐는지가 정치적 메시지의 일부가 된다. 참여는 더 이상 정책 설명서 뒤쪽에 적히는 절차 항목이 아니다. 권력의 태도와 방향을 보여주는 앞줄의 장면이 됐다.

이 변화에는 광장의 기억이 깊게 깔려 있다. 거리와 광장에서 쌓인 시민의 집단적 경험은 정치의 정당성을 다시 쓰기 시작했다. 닫힌 권력, 정해진 사람끼리만 순환하는 권력, 시민을 설명의 대상으로만 두는 권력은 빠르게 낡은 것으로 읽히게 됐다. 그 자리를 시민 참여, 공개성, 현장 접촉, 생활 공간에서의 만남이 대신 채우고 있다. 빛의 혁명으로 불린 정치 변화가 제도권 정부를 세운 뒤에도 그 기억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새 정부가 스스로를 설명하는 방식 안으로 들어왔다.

내 이름은(My Name) 사진=영화, 내 이름은(My Name) 스틸,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용산 CGV 상영관에서 나온 풍경은 그 흐름을 압축해 보여줬다. 일반 관객 165명이 같은 공간에 있었고, 대통령 부부는 그 안으로 들어갔다. 이 영화는 시민이 힘을 보탠 작품이었고, 관람 자체도 공개 신청을 통해 이뤄졌다. 참여는 상징으로만 배치되지 않았다. 상영관의 좌석 배치와 입장 동선, 현장 분위기 전체를 감싸는 형식이 됐다. 시민은 구경꾼이 아니라 장면의 일부였고, 대통령 부부는 그 장면을 설명하는 중심이면서도 동시에 그 안에 놓인 한 요소처럼 보였다.

이런 배치는 새삼스럽지 않으면서도 지금의 정치문화에서는 더 큰 의미를 띤다. 과거의 권력은 참여를 허용하는 주체처럼 보이려 했다. 지금의 권력은 참여 속에 들어가 있는 주체처럼 보이려 한다. 둘 사이의 차이는 적지 않다. 전자는 권력이 중심이고 시민이 초대받는 구조에 가깝다. 후자는 시민이 만들어낸 공간 안에 권력이 들어가는 모양새를 띤다. 물론 실제 권력관계까지 바뀌었는지는 따로 따져야 한다. 다만 장면의 문법만 놓고 보면, 한국 정치문화는 분명 후자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문화 공간은 이 문법을 구현하기에 특히 유리하다. 영화관은 애초에 시민이 자발적으로 들어오는 장소다. 상영관 안에서는 모두가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같은 시간을 보낸다. 국정 브리핑이나 공식 행사장보다 참여의 감각을 만들기 쉽다. 대통령이 그 공간 안으로 들어가면 메시지도 달라진다. 권력은 설명하는 자리보다 함께 보는 자리에서 더 부드럽게 읽힌다. 정책 언어보다 장면 언어가 먼저 남는 시대일수록, 이런 공간의 힘은 더 커진다.

‘내 이름은’이 시민 후원 제작 영화라는 점은 이 장면의 의미를 한층 키웠다. 영화 한 편의 제작 과정에 시민이 힘을 보탰다는 사실은 단순한 모금 내역이 아니다. 작품의 정체성과 유통 방식, 관객과의 관계를 함께 규정한다. 누군가의 투자 상품이기 이전에 시민이 뜻을 모아 세운 문화적 결과물이라는 인식이 붙는다. 그런 작품을 대통령이 일반 관객과 함께 본다는 구성은 참여의 서사를 더욱 단단하게 만든다. 참여는 영화의 제작 방식이면서 동시에 정치적 상징으로도 읽히게 된다.

이재명 대통령, 영화 '내 이름은' 관람. 사진=청와대,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이재명정부의 첫 문화 장면이 바로 이 방식으로 포착됐다는 점도 눈에 남는다. 새 정부는 출범 초반부터 시민과의 거리, 참여의 형식, 공개된 장면의 힘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 정책과 제도는 시간이 걸리지만, 장면은 곧바로 남는다. 시민이 함께한 자리, 시민이 만든 영화, 시민과 같은 좌석에 앉은 대통령이라는 풍경은 새 정부의 성격을 한 장면으로 요약해 보여준다. 권력이 자신을 누구의 정부로 설명하려 하는지, 어떤 정당성의 언어를 앞세우는지가 그 안에 들어 있다.

그렇다고 참여라는 말이 곧바로 실질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장면 속 참여와 제도 속 참여는 다르다. 공개 신청으로 관객을 들이고, 같은 상영관에 앉고, 악수와 사진 촬영을 하는 것은 분명 참여의 인상을 만든다. 그러나 그것이 곧 의사결정 구조의 개방이나 정치 과정의 실질적 공동 참여를 뜻하지는 않는다. 지금의 정치문화에서 참여는 실제 내용인 동시에, 설득력 있는 장면의 재료이기도 하다. 두 층위가 겹쳐 있는 셈이다.

이 지점에서 한국 정치문화의 특징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참여는 이제 절차로만 남지 않는다. 참여의 흔적이 보여야 하고, 장면으로 확인돼야 하며, 유통될 수 있어야 한다. 시민이 함께 있었다는 사실은 사진과 영상으로 남아야 하고, 공개 신청의 형식은 기사 제목이 돼야 하며, 동석과 접촉의 장면은 짧은 영상으로 퍼져야 한다. 참여가 제도적 언어를 넘어 시각적 언어가 된 셈이다. 참여가 없으면 안 되는 시대인 동시에, 참여가 보여야 하는 시대이기도 하다.

이재명 대통령, 영화 '내 이름은' 관람. 사진=청와대,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미디어 환경은 이런 흐름을 더욱 강하게 만든다. 긴 설명보다 한 장의 사진, 한 번의 동석, 몇 초짜리 영상이 더 빠르게 퍼진다. 대통령의 문화 일정도 마찬가지다. 영화 관람의 취지나 작품 해석보다 일반 관객 165명과 한 상영관에 앉았다는 사실, 관객과 악수하고 사진을 찍는 장면이 더 넓게 소비된다. 참여의 실질이 아니라 참여의 형식만 남는 위험도 여기서 커진다. 그러나 동시에 그 형식 자체가 정치적 정당성을 만들어내는 힘으로도 작동한다. 지금의 정치는 그 두 갈래를 함께 안고 간다.

빛의 혁명 이후의 정치문화는 특히 이 문제를 피해가기 어렵다. 광장은 참여의 공간이었다. 목소리를 내고, 몸을 모으고, 함께 장면을 만드는 공간이었다. 그 경험을 지나 출범한 정부는 시민 없는 장면으로는 스스로를 설명하기 어렵다. 시민이 만든 변화의 산물이라는 정당성을 붙들려면, 권력은 끊임없이 시민과 함께 있는 장면을 만들어야 한다. 이재명정부의 첫 문화 장면이 시민 참여의 서사를 품은 영화와 일반 관객 동석 형식 위에서 나왔다는 점은 그래서 자연스럽다. 새 정부가 어디에서 자신의 정통성을 찾고 있는지 드러내는 풍경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가 참여의 형식에만 머물면 금세 닳아버린다. 모든 장면이 참여를 내세우고, 모든 일정이 공개 신청과 셀카, 동석으로 채워지면 감각은 빠르게 무뎌진다. 참여의 언어가 힘을 얻는 이유는 그것이 실제 정치 변화의 기억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그 기억을 유지하려면 장면 뒤에서 실질도 함께 움직여야 한다. 시민이 함께 있었다는 풍경이 반복될수록, 시민이 실제로 무엇에 참여했는가에 대한 물음도 커질 수밖에 없다.

 

4월 15일 용산 CGV 상영관은 그런 점에서 두 겹의 현실을 함께 보여줬다. 참여는 분명한 내용이었다. 시민이 힘을 보탠 영화였고, 시민이 공개 신청으로 관람에 들어왔으며, 대통령 부부는 그 시민들과 같은 공간에 앉았다. 동시에 참여는 강력한 장면이기도 했다. 그 풍경은 사진과 영상, 기사와 화면을 타고 퍼졌고, 새 정부의 정치문화를 설명하는 이미지가 됐다. 내용과 장면이 한자리에서 포개진 셈이다.

이재명정부 출범 국면에서 드러난 정치문화의 한 특징도 여기에 있다. 권력은 스스로를 시민과 떨어진 자리에서 설명하지 않는다. 시민이 들어와 있는 장면 속에서 스스로를 비춘다. 참여는 절차의 언어이면서 동시에 상징의 언어가 됐다. 광장에서 시작된 정치의 감각이 생활 공간의 문화 장면 안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용산의 상영관에 놓였던 것은 단순한 영화 좌석이 아니었다. 권력과 시민, 참여와 정당성이 나란히 배치된 정치문화의 좌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