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트렌드③] 음반 이후의 돈, K-pop 수익구조를 뒤바꾼 새 시장
투어·굿즈·팬플랫폼·초대형 페스티벌, 앨범 밖에서 커지는 K-pop의 매출판
[KtN 신미희기자]하이브가 지난해 전 세계에서 연 공연은 279회였다. 같은 해 하이브의 공연 매출은 69.4% 늘었고, MD·라이선싱 매출은 35.8% 증가했다. 반면 음반·음원 매출은 10.2% 줄었다. 숫자만 놓고 보면 이미 답은 나와 있다. K-pop의 돈은 여전히 음악에서 출발하지만, 가장 가파르게 불어나는 곳은 음반 진열대가 아니라 공연장과 굿즈 매장, 팬 플랫폼이다. 외형은 더 커졌는데 무게중심은 옮겨갔다. 한때 음반 판매량이 흥행의 거의 전부처럼 읽히던 시장이 이제는 투어와 MD, 팬클럽과 플랫폼 수익을 중심으로 다시 짜이고 있다.
이 변화는 하이브 한 회사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JYP는 2025년 연간 매출 8219억원으로 사상 최대 실적을 냈다. 세부 항목은 더 선명하다. 공연 매출은 1889억원으로 82.4% 뛰었고, MD 매출은 1885억원으로 42.1% 늘었다. 음반 매출도 2066억원으로 컸지만, 이제는 공연과 MD가 음반과 나란히 회사를 떠받치는 구조가 됐다. 스트레이 키즈의 대형 월드투어, 북미와 유럽 지역 정산 이익, 해외 공연장 MD, 캐릭터 상품과 협업 라이선스가 한꺼번에 붙으면서 벌어진 변화다. K-pop 산업에서 ‘얼마나 팔았나’라는 질문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그 ‘판매’의 뜻이 앨범에서 경험과 상품으로 넓어졌다는 점이 더 중요해졌다.
SM의 2025년 4분기 실적은 그 흐름을 더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별도 기준으로 4분기 음반·디지털음악 매출은 648억원으로 1년 전보다 22.8% 줄었다. 새 앨범 판매량도 367만장에서 272만장으로 감소했다. 그런데 같은 기간 콘서트 매출은 53.6% 늘어 345억원, MD·라이선싱 매출은 50.6% 증가해 781억원을 기록했다. 음반은 줄었는데 회사 매출은 늘었다. 슈퍼주니어, NCT DREAM, 에스파, NCT WISH의 투어 확대와 응원봉·기획 MD 판매, 협업 라이선스가 앨범 감소분을 메운 것이다. 연결 자회사 쪽에서는 디어유의 구독료 인상 효과도 실적 개선에 힘을 보탰다. K-pop 회사의 손익계산서에서 ‘음악을 파는 회사’라는 설명만으로는 이미 절반밖에 설명이 되지 않는 장면이다.
산업 전체로 넓혀 보면 변화는 더 분명하다. 국내 주요 엔터사 합산 MD·라이선싱 매출은 2025년 1조705억원으로 1년 전보다 33% 늘었다. 같은 자료에서 주요 엔터사의 음반·음원 외 매출 비중은 68.6%에서 80.9% 수준까지 올라와 있다. 회사마다 차이는 있지만 공통 방향은 같다. 매출의 주된 버팀목이 음반·음원 바깥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음반은 여전히 팬덤의 결집을 보여주는 핵심 지표지만, 실제 이익을 길게 끌고 가는 축은 공연과 MD, 라이선싱, 팬미팅, 플랫폼 구독 같은 반복형 수익으로 바뀌고 있다. 지금 K-pop 회사들이 집중하는 것은 히트곡 한 곡보다 오래 돈을 만드는 지식재산권의 체력이다.
팬 플랫폼은 이 구조 전환의 한복판에 있다. 위버스는 2025년 월간활성이용자 1200만명을 기록했고, 178개 아티스트 커뮤니티가 돌아갔다. 지난 2년간 3000만명 이용자 활동을 분석한 위버스 보고서는 팬의 움직임이 단순 청취와 감상에서 소통, 구매, 현장 참여로 깊어지는 과정을 보여줬다. 평균 월 이용시간은 263분으로 늘었고, BTS 커뮤니티는 플랫폼 내 처음으로 3000만 팔로어를 넘겼다. 팬 플랫폼은 이제 공지 게시판이나 팬카페의 연장선이 아니다. 아티스트가 글을 올리고, 라이브를 켜고, 상품을 팔고, 유료 서비스를 붙이고, 공연 수요를 모으는 영업 창구에 가깝다. 음반 한 장을 팔고 끝나는 구조보다, 오래 머무르는 팬 한 사람을 붙잡아 두는 구조가 더 값비싸진 것이다.
이런 이동은 음반의 의미가 달라졌기 때문에 가능했다. 스트리밍이 일상화되면서 음악은 언제든 들을 수 있는 서비스가 됐고, CD는 듣는 매체보다 소장품과 응모권, 팬덤 인증물의 성격이 강해졌다. 실제로 2025년 연간 리뷰에서 앨범 판매량은 줄었지만 플랫폼 앨범 비중은 2.3%포인트 늘고 판매량도 약 97만장 증가했다. 한편 K-pop 산업의 과잉 CD 생산은 환경 부담을 키운다는 비판도 꾸준히 받아왔다. 한국에서 실물 음반으로 실제 음악을 듣는 비율이 낮은데도 팬사인회 응모와 포토카드 수집을 위해 CD 생산이 급증하고 있다는 지적은 오래 이어져 왔다. 업계가 ‘앨범을 더 많이 찍는 방식’만으로는 오래 버티기 어렵다는 사실을 점점 더 분명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렇다고 투어와 MD, 플랫폼이 만능 열쇠인 것은 아니다. 수익 구조가 옮겨갈수록 초대형 아티스트 의존도는 더 커질 수 있다. 월드투어는 흥행하면 매출이 급증하지만, 제작비와 인건비, 무대 설비, 해외 정산, 환율 변수까지 함께 따라붙는다. 하이브가 지난해 사상 최대 매출을 냈는데도 영업이익이 크게 줄어든 이유도 신규 아티스트 투자와 사업 재편 비용이 컸기 때문이다. 공연과 플랫폼, MD 중심 구조는 외형을 키우는 데 유리하지만, 동시에 큰 선투자와 높은 변동성을 감수해야 하는 구조이기도 하다. 팬덤의 충성도가 높을수록 수익은 커지지만, 특정 팀의 공백이나 계약 변수, 투어 차질이 곧바로 실적에 반영될 위험도 함께 커진다.
그래서 업계는 이제 개별 컴백을 넘어 더 큰 판을 만들려 한다. 하이브·SM·YG·JYP 4사는 최근 손잡고 대형 글로벌 페스티벌 ‘파노메논’을 논의하고 있다. 2027년 한국 개최, 2028년 해외 확장을 염두에 둔 구상이다. 한 회사의 앨범 발매나 단독 콘서트가 아니라, 산업 전체가 힘을 모아 K-pop과 한국 대중문화를 한꺼번에 파는 거대한 장터를 만들겠다는 시도다. 이것은 이벤트 하나의 문제가 아니다. K-pop 산업이 돈을 버는 방식을 ‘컴백-음반-차트’ 중심에서 ‘현장-체류-굿즈-플랫폼-축제’ 중심으로 더 넓게 옮기고 있다는 신호에 가깝다.
2026년 K-pop 산업을 읽는 핵심은 앨범 판매량 하나가 아니다. 돈이 모이는 자리가 어디로 옮겨갔는지 봐야 한다. 공연 279회, 하이브 공연 매출 69.4% 증가, JYP 공연 매출 82.4% 증가, SM의 음반 감소 속 MD·라이선싱 50.6% 증가, 주요 엔터사 합산 MD·라이선싱 1조705억원. 이 숫자들이 가리키는 방향은 한 곳이다. K-pop은 여전히 음악산업이지만, 돈을 버는 방식은 이미 경험산업과 플랫폼산업의 문법으로 넘어갔다. 앨범은 시작점으로 남겠지만, 수익의 중심은 점점 더 무대와 굿즈, 커뮤니티와 구독 쪽으로 기울고 있다. 지금 K-pop 회사들이 키우는 것은 히트곡 그 자체보다, 히트곡 바깥에서 오래 돈이 도는 구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