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트렌드④] 일본 독주 퇴조와 중국 재부상, 다시 짜인 K-pop 수출지도
일본 27%·중국 23%·미국 21%, 한 축에서 세 축으로 갈라진 해외 판매의 판
[KtN 신미희기자]K-pop 수출시장을 읽는 데 가장 먼저 봐야 할 숫자는 총액이 아니라 비중이다. 지난해 K-pop 실물 앨범 수출액은 처음 3억달러를 넘어섰다. 겉으로만 보면 또 한 번 기록을 갈아치운 해다. 그런데 시장의 안쪽 결은 예전과 달라졌다. 일본 비중은 27%로 내려앉았고, 중국은 23%로 올라섰다. 미국은 21%를 기록했다. 일본·중국·미국 상위 3개국 비중은 71%로 낮아졌다. K-pop 해외시장이 더 커졌다는 말보다 더 중요한 대목은, 어느 한 나라가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던 구도가 흐려졌다는 점이다. 지난해는 많이 판 해이기도 했지만, 더 정확히 말하면 시장의 지도가 바뀐 해였다.
오랫동안 K-pop 수출은 일본으로 설명됐다. 일본은 안정적인 팬덤, 높은 음반 구매력, 촘촘한 공연 시장을 함께 갖춘 대표 무대였다. 새 앨범이 나오면 일본 판매량부터 보고, 일본 투어 일정이 잡히면 흥행의 윤곽이 어느 정도 읽히던 시기가 있었다. 실물 음반, 팬클럽, 현장 판매, 투어, 방송 출연이 서로 맞물리며 일본은 가장 익숙하고 가장 큰 시장으로 자리해 왔다. 그래서 일본 비중 27%라는 숫자는 단순한 감소가 아니다. K-pop 해외 판세를 오랫동안 떠받쳐 온 중심축이 예전과 다른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신호에 가깝다.
물론 일본의 존재감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여전히 가장 큰 시장이고, 현장 소비와 장기 투어의 힘도 크다. 다만 예전처럼 일본 하나가 해외 매출의 중심을 자연스럽게 책임지는 구조는 아니다. 시장은 성숙했고 경쟁은 더 치열해졌다. 엔화 약세와 소비 둔화, 반복된 활동 방식에 대한 피로감도 무시하기 어렵다. 일본 시장이 줄어들었다기보다, 더 이상 손쉬운 성장판이 아닌 시장이 됐다고 보는 쪽이 맞다. 큰 시장인 만큼 더 정교한 전략을 요구하는 단계로 들어섰다. 일본어 음반 몇 장과 현지 방송 출연만으로 결과가 따라오던 시기는 지나갔다. 공연 운영과 팬클럽 관리, 현장 MD와 장기 체류형 소비까지 함께 설계해야 성과가 난다.
그 빈자리를 가장 먼저 메운 곳은 중국이다. 지난해 중국 비중은 23%로 올라 미국 21%를 제쳤다. 이 숫자는 K-pop 업계가 가장 오래 기다리면서도 가장 조심스럽게 다뤄 온 변화와 맞닿아 있다. 중국은 팬덤 구매력이 워낙 큰 시장이지만, 실물 유통과 공연, 방송 노출은 늘 정치·외교 변수에 흔들려 왔다. 한동안 업계에서는 중국을 기대 섞인 변수로 말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지난해 수출 통계는 최소한 실물 앨범 소비만 놓고 보면 중국 비중이 다시 커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팬덤의 지갑은 여전히 두텁고, 특정 팀의 중국향 판매량은 전체 실적을 흔들 수 있을 만큼 크다.
다만 여기서 선을 그어야 한다. 실물 앨범 수출 비중이 올라간 것과 중국 시장이 완전히 열렸다고 말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다. 지난해와 올해 초를 거치며 중국 쪽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관측은 이어졌지만, 이를 곧바로 본토 공연시장 전면 회복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 실제로 업계에서도 기대와 확인을 구분해 말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홍콩에서 열리는 K-pop 공연의 중국 본토 송출, 중국 플랫폼 기업의 투자 확대 같은 움직임은 분명 눈에 띄지만, 그것만으로 규제 환경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쓰기에는 아직 이르다. 지금 확인되는 것은 중국 소비의 재상승이지, 전면적 해빙이라고 단정할 만한 장면은 아니다.
미국의 21%는 또 다른 의미를 갖는다. 중국에 밀려 3위가 됐다고 해서 미국 시장의 무게가 줄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미국은 K-pop이 단순한 수출 품목을 넘어 세계 주류 음악시장 안에서 체급을 입증하는 무대다. 일본이 오랫동안 안정적 소비 시장이었다면, 미국은 차트와 스트리밍, 현지 투어, 글로벌 화제성을 한꺼번에 시험하는 자리다. 빌보드 200과 핫100, 대형 스타디움 공연, 라이브뷰잉, 현지 유통과 플랫폼 반응이 함께 엮인다. 수출액 순위로만 보면 3위일 수 있지만, K-pop의 국제적 위상을 가늠하는 상징성에서는 여전히 가장 민감한 시장 가운데 하나다. 숫자의 순위와 시장의 체급은 꼭 같은 뜻이 아니다.
상위 3개국 비중이 71%까지 내려간 점은 오히려 더 중요하다. 이는 K-pop 해외시장이 일본·중국·미국 세 나라에만 매달려 있지 않다는 뜻이다. 특정 국가 의존도가 낮아진다는 것은 산업 전체로 보면 위험 분산 효과가 커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 나라의 경기 둔화나 규제 변화, 외교 갈등이 곧바로 전체 판을 흔드는 충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그만큼 줄어든다. 실제로 대만과 홍콩, 동남아, 일부 유럽 시장은 절대 규모는 아직 작아도 꾸준히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예전에는 일본에서 본전을 만들고, 중국에서 폭발력을 기대하고, 미국에서 상징성을 챙긴다는 식으로 해외전략을 비교적 단순하게 설명할 수 있었다. 지금은 그렇게 정리하기 어렵다. 시장마다 역할이 갈리고, 소비 방식도 제각각이다.
실물 수출 흐름을 조금 더 들여다보면 이 변화는 더 또렷해진다. 지난해 상반기 기준으로 일본과 미국은 전년 동기보다 줄었고, 중국은 늘었다. 상반기 상위 3개국 비중도 68.7%로 더 낮아졌다. 연간 통계까지 놓고 보면 흐름의 방향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일본은 여전히 가장 크지만 예전만큼 독주하지 못하고, 중국은 다시 힘을 키우고, 미국은 다른 기능을 맡은 채 버티고 있다. 숫자들이 한꺼번에 가리키는 지점은 분명하다. K-pop 해외시장은 커지는 동시에 흩어지고 있다. 매출은 늘어도 중심은 한곳에 고정되지 않는다.
중국을 둘러싼 업계의 기대는 실제 움직임으로도 나타났다. 중국 플랫폼 기업의 한국 엔터사 투자, 현지 유통과 사업 협력 확대 가능성, 본토 노출 회복 기대 같은 장면이 이어졌다. 다만 기대가 시장을 먼저 움직인다고 해서 제도와 정책이 같은 속도로 따라오는 것은 아니다. 이 차이를 놓치면 기사도 쉽게 과장된다. 지금 K-pop 기업들이 중국을 대하는 태도는 그래서 이중적이다. 숫자만 보면 다시 중요한 시장이 맞지만, 사업 계획을 짤 때는 여전히 가장 조심스러운 변수이기도 하다. 커진 기대와 남아 있는 불확실성이 함께 붙어 있는 시장, 그것이 현재 중국의 자리다.
이 변화는 일본 시장의 성격도 다시 묻게 만든다. 예전에는 일본이 K-pop의 가장 확실한 해외 수익처라는 인식이 강했다. 지금은 일본이 여전히 큰 시장이되, 예전처럼 자동으로 매출을 보장하는 시장은 아니다. 현지화 전략이 더 세밀해져야 하고, 단기 판매보다 장기 체류형 소비를 어떻게 붙잡을지가 더 중요해졌다. 공연 한 번, 음반 한 장으로 끝나지 않고 팬클럽, 굿즈, 협업 상품, 오프라인 이벤트, 지역 투어가 길게 이어져야 한다. 일본이 약해졌다기보다, 일본 공략 방식이 더 어려워졌다고 보는 편이 가깝다.
미국도 비슷하다. 미국은 실물 수출액만으로 읽을 시장이 아니다. K-pop이 현지 차트와 스트리밍 시장에서 얼마나 오래 버티는지, 투어를 얼마나 큰 규모로 돌리는지, 현지 미디어와 플랫폼에서 얼마나 주류에 가까운 반응을 얻는지가 함께 중요하다. 그래서 미국은 수출 통계에서 3위로 내려가도, 산업 전체의 전략에서는 결코 뒤로 밀리지 않는다. K-pop이 ‘해외에서 잘 팔린다’는 말이 예전에는 일본 판매량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미국에서 어떤 방식으로 존재감을 넓히는지도 똑같이 중요해졌다.
지난해 수출 통계가 말하는 것은 단순한 성장이나 둔화가 아니다. 중심 이동과 역할 분화다. 일본은 여전히 최대 시장이지만 예전처럼 독주하지 않는다. 중국은 소비 비중을 끌어올리며 다시 핵심 변수로 떠올랐다. 미국은 주류성의 시험장으로서 다른 무게를 지닌다. 그리고 그 바깥에서는 여러 나라가 조금씩 판을 넓힌다. K-pop 해외시장은 이제 한 나라에 기대는 구조가 아니라 여러 시장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돌아가는 다핵 구조에 가깝다.
그래서 2025년 K-pop 수출 통계의 핵심은 총액이 아니다. 일본 27%, 중국 23%, 미국 21%라는 숫자가 보여주는 지형 변화다. 한 시장이 독주하던 시대가 옅어지고, 여러 시장이 나눠 드는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 산업 입장에서는 기회이자 부담이다. 어느 한 나라에 휘둘릴 위험은 줄었지만, 그만큼 더 많은 시장을 동시에 읽어야 한다. 지난해 K-pop 수출의 진짜 변화는 많이 팔았다는 사실보다, 어디에 어떻게 팔렸는가에 있었다. 판은 이미 다시 그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