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트렌드⑥] 노래보다 세계관, K-pop의 판을 키운 OST와 서사의 힘

‘Golden’ 장기 1위·사운드트랙 장기 체류·작품 전체 동반 흥행, 음악 밖에서 시작된 새 히트의 경로

2026-04-20     신미희 기자
넷플릭스가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속편 제작을 확정했다. 메기 강, 크리스 애펄헌즈 감독이 다시 연출을 맡는다.  사진=2026. 03.13  넷플릭스 넷플릭스, ‘케데헌2’ 공식화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신미희기자]2026년 K-pop 시장에서 가장 낯선 장면 가운데 하나는 실존 그룹이 아닌 작품 속 가수들이 차트를 흔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KPop Demon Hunters’의 OST ‘Golden’은 2025년 7월 국내 월간 디지털 차트 1위에 오른 뒤 10월까지 넉 달 연속 정상을 지켰다. 같은 작품의 ‘Soda Pop’과 ‘Your Idol’도 상위권에 함께 들어왔다. 4월 18일자 빌보드 200에서도 이 사운드트랙은 13위에 올라 있다. 노래 몇 곡이 잠시 주목받은 정도로 보기 어렵다. K-pop 시장이 이제는 가수와 앨범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뜻에 가깝다. 이야기와 캐릭터, 영상과 음악이 한 덩어리로 묶여 돌아가는 흐름이 본격화하고 있다.

2025년 글로벌 앨범 차트에서 ‘KPop Demon Hunters’ 사운드트랙은 3위에 올랐다. 스트레이 키즈 ‘KARMA’보다 높은 자리였다. 이 순위는 음반 판매만이 아니라 스트리밍까지 합쳐 집계한 결과다. 팬덤의 집중 구매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세계 시장에서 실제로 오래 소비됐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K-pop이 글로벌 차트에서 강하다는 말은 익숙하지만, 애니메이션 사운드트랙이 그 한복판까지 치고 들어온 장면은 이전의 공식으로는 잘 설명되지 않는다. 이제 세계 시장은 노래만 듣는 것이 아니라, 노래가 붙은 장면과 캐릭터, 이야기를 함께 소비한다.

국내 차트에서도 흔적은 뚜렷했다. 2025년 7월 디지털 차트에서 OST 점유율은 전달보다 6.6%포인트 오른 14.8%를 기록했다. ‘Golden’은 그달 월간 1위였고, ‘Soda Pop’과 ‘Your Idol’을 포함해 ‘KPop Demon Hunters’ 관련 곡 9곡이 TOP400에 들어왔다. 8월에는 OST 점유율이 15.7%까지 더 올랐다. 작품 한 편이 차트 한 칸을 차지한 것이 아니라, 시장 안에서 OST가 차지하는 몫 자체를 키운 셈이다. 예전에도 드라마 OST 강세는 있었다. 그러나 한 작품이 여러 트랙으로 동시에 진입하고, 그것도 K-pop을 앞세운 애니메이션이 국내 차트와 글로벌 차트를 함께 흔든 경우는 결이 다르다. 작품과 음악의 관계가 보조가 아니라 중심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얘기다.

여기서 눈여겨볼 대목은 OST의 자리가 달라졌다는 점이다. 한때 OST는 드라마나 영화의 감정을 덧대는 부속물에 가까웠다. 지금은 다르다. 작품을 본 사람이 노래를 다시 듣고, 노래를 들은 사람이 장면을 다시 찾고, 짧은 영상과 커버 콘텐츠가 다시 음악 소비를 불러오는 구조가 생겼다. ‘Golden’의 힘도 멜로디와 훅의 완성도에만 있지 않았다. 이야기의 절정에 붙은 노래가 작품 바깥으로 빠져나와 독자적인 곡으로 서는 순간, 작품은 음악의 홍보판이 되고 음악은 작품의 확장판이 된다. K-pop이 영상 산업과 만날 때 얻는 힘은 바로 이 교차 소비에 있다.

‘케데헌’, 주제가상까지 품었다…美 아카데미 2관왕  사진=2026. 03.16  ‘케데헌’은 이날 장편 애니메이션상(Best Animated Feature) 부문에서 ‘주토피아 2(Zootopia 2)’, ‘엘리오(Elio)’, ‘리틀 아멜리(Little Amélie)’, ‘아르코(Arco)’를 제치고 수상작으로 호명됐다.  /편집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미국 시장의 반응도 눈에 띈다. ‘KPop Demon Hunters’ 사운드트랙은 2025년 9월 빌보드 200 정상에 올랐고, ‘Golden’은 빌보드 글로벌 200과 글로벌 익스클루시브 U.S.에서 장기 1위를 이어 갔다. 팝 라디오 차트 상위권까지 들어간 점도 이례적이다. K-pop의 미국 성과를 말할 때 흔히 떠올리는 것은 실존 아이돌의 앨범 판매나 대형 투어다. 그런데 이번에는 가상의 걸그룹 HUNTR/X와 작품 속 노래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K-pop이 더 이상 사람만 파는 산업이 아니라는 뜻이다. 실존 아티스트의 얼굴과 기존 팬덤이 없어도, 설득력 있는 서사와 강한 노래가 붙으면 세계 시장은 충분히 반응할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이 흐름은 K-pop 회사들에도 낯설지 않다. 이미 몇 해 전부터 업계는 앨범과 음원만으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다는 점을 확인해 왔다. 투어와 MD, 팬 플랫폼이 수익의 중심으로 옮겨가는 동안, 이제는 여기에 영상 서사와 캐릭터 산업까지 본격적으로 붙기 시작했다. 실제 아티스트의 세계관을 키우는 수준을 넘어, 처음부터 작품과 사운드트랙을 한 몸처럼 기획하는 흐름이 커질 가능성이 높다. ‘KPop Demon Hunters’의 성공은 K-pop이 음악 장르인 동시에 이야기 산업이라는 점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 사례다. 음반이 아니라 장면을 팔고, 노래가 아니라 세계를 파는 방식이 힘을 얻고 있는 셈이다.

물론 이 공식을 그대로 옮긴다고 같은 결과가 나오지는 않는다. 모든 애니메이션이, 모든 드라마가, 모든 OST가 같은 성과를 내는 것은 아니다. 작품의 완성도와 노래 자체의 경쟁력이 함께 서야 하고, 한두 곡이 아니라 여러 트랙이 반복 소비될 만한 힘을 가져야 한다. 국내 차트에서 ‘Golden’이 오래 버틴 배경에도 곡 자체의 힘과 경쟁 신곡의 부재가 함께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야기가 있다고 해서 음악이 저절로 뜨는 것은 아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이제 음악이 혼자 싸우는 시대는 아니라는 점이다. 차트는 더 이상 음원 플랫폼 안에서만 결정되지 않는다. OTT와 숏폼, 캐릭터와 팬 참여가 모두 차트의 배경이 된다.

2026년 4월 19일 기준 K-pop 시장이 보여주는 변화는 이제 K-pop은 가수와 곡만으로 움직이는 산업이 아니다. 노래가 장면을 만들고, 장면이 다시 노래를 밀어 올리는 구조가 시장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Golden’의 넉 달 연속 1위, OST 점유율 확대, 글로벌 앨범 차트 상위권 진입, 빌보드 장기 체류는 한 작품의 흥행 기록으로만 보기 어렵다. K-pop이 수출하는 것이 이제는 음반 한 장이 아니라 세계관과 감정선, 캐릭터와 장면까지 묶인 패키지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음악시장의 새 승부처는 무대 바깥, 화면 안쪽에서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