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트렌드⑦] 커진 시장의 그늘, AI 음원과 팬덤 과금의 역습
부정 스트리밍·과잉 앨범·플랫폼 락인, K-pop 흥행 뒤편에 쌓이는 새로운 비용
[KtN 신미희기자]2026년 4월 19일 기준 세계 음악시장은 겉으로 보면 호황이다. 지난해 세계 음반시장 매출은 317억달러로 늘었고, 스트리밍 수입은 220억달러를 넘겼다. 전체 매출의 약 70%가 스트리밍에서 나왔다. K-pop도 이 흐름 위에서 몸집을 키웠다. 차트는 높아졌고, 투어는 커졌고, 플랫폼과 굿즈 매출도 불어났다. 그런데 시장이 커질수록 함께 커지는 그림자도 있다. 지금 음악산업이 가장 예민하게 보는 쪽은 AI 음원과 부정 스트리밍, 그리고 팬덤 과금에 기대는 수익 구조다.
AI 음원은 이제 먼 얘기가 아니다. 디저는 2025년 한 해 자사 플랫폼에서 AI로 만든 음원을 이용한 부정 스트림 가운데 최대 85%를 적발해 로열티 풀에서 제외했다고 밝혔다. 같은 해 표시한 AI 생성 트랙은 1340만곡이 넘었다. 하루에 새로 들어오는 완전 AI 제작 음원만 6만곡, 전체 일일 업로드의 39% 수준이다. 사람 귀로는 구분하기 어려운 노래를 대량으로 올리고, 알고리즘 추천과 자동 재생을 노려 재생 수를 불리는 방식이 이미 산업의 실제 문제가 됐다는 뜻이다. 음악 플랫폼이 더는 노래만 거르는 곳이 아니라, 가짜 청취를 솎아내는 곳이 됐다는 얘기다.
이 문제는 K-pop과도 거리가 멀지 않다. K-pop은 차트와 재생 수, 팬덤 동원력이 산업의 중요한 언어다. 순위가 곧 화제성이 되고, 화제성이 다시 소비를 부르는 구조가 강하다. 이런 시장일수록 가짜 재생과 조작된 지표가 끼어들 여지도 크다. 국제음반산업협회가 올해 보고서에서 스트리밍 사기를 산업의 큰 위협으로 따로 짚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가짜 콘텐츠에 인위적으로 재생 수를 붙이면 정작 실제 아티스트와 제작자에게 돌아가야 할 돈이 다른 곳으로 새기 때문이다. 차트의 신뢰가 흔들리면 시장 전체의 기준도 함께 흔들린다.
팬덤 과금 구조도 다른 쪽의 부담으로 쌓이고 있다. 2025년 국내 연간차트 기준 음원 이용량은 전년보다 5.0% 줄었고, 앨범 판매량도 7.4% 감소했다. 그런데 같은 해 플랫폼 앨범 비중은 2.3%포인트 늘었고, 판매량도 약 97만장 증가했다. 시장 전체 파이는 줄었는데, 더 깊게 돈을 쓰는 팬층을 붙잡는 상품은 늘어난 셈이다. 여러 버전 앨범, 응모형 판매, 플랫폼 전용 상품, 팬클럽과 구독 서비스가 한꺼번에 붙는 이유도 여기서 읽힌다. 더 넓은 대중 소비가 줄어드는 자리를 더 강한 팬덤 소비로 메우는 구조가 짙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실물 앨범을 둘러싼 피로도 이 흐름과 맞물린다. 한국에서 실물 음반으로 실제 음악을 듣는 비율은 8% 수준인데도 앨범 판매는 포토카드와 응모권, 소장 수요를 타고 급증해 왔다. 그 결과 플라스틱 사용과 폐기물 문제가 커졌고, 환경단체와 팬들 사이에서도 비판이 이어졌다. 앨범을 듣는 상품이 아니라 이벤트 응모권과 수집품으로 팔수록 숫자는 부풀 수 있어도 피로는 함께 쌓인다. 판매량이 흥행의 전부였던 시절에는 잘 드러나지 않던 부담이다. 지금은 과잉 생산과 과잉 구매가 시장의 취약한 곳을 드러내는 징후처럼 보인다.
회사들의 실적은 이 구조가 어디까지 왔는지 보여준다. 하이브는 2025년 공연 매출이 69.4%, MD·라이선싱 매출이 35.8% 늘었지만 음반·음원 매출은 10.2% 줄었다. JYP는 연간 공연 매출이 82.4%, MD 매출이 42.1% 뛰었다. SM도 2025년 4분기 새 앨범 판매량이 줄었는데, 콘서트와 MD·라이선싱 매출은 두 자릿수 증가를 기록했다. 음반이 꺾인 자리를 공연과 굿즈, 플랫폼이 메우고 있다는 뜻이다. 문제는 이 구조가 팬덤의 반복 구매와 현장 소비에 더 강하게 기대게 만든다는 점이다. 시장은 커졌지만, 그 성장의 하중이 점점 좁은 층에 실리는 셈이다.
이런 국면에서는 산업이 두 가지 부담을 동시에 안게 된다. 하나는 AI와 부정 스트리밍이 차트와 로열티를 흔드는 바깥의 위협이다. 다른 하나는 더 많은 매출을 만들기 위해 팬덤 안쪽에서 지출을 거듭 끌어올리는 안쪽의 압박이다. 앞쪽에서는 가짜 재생이 문제이고, 뒤쪽에서는 과잉 구매와 피로 누적이 문제다. 둘은 전혀 다른 듯 보이지만, 결국 같은 곳을 건드린다. 음악시장이 얼마나 믿을 만한 숫자 위에 서 있는가, 그리고 그 숫자를 떠받치는 소비가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다.
지금 K-pop 산업이 마주한 과제는 단순히 더 많이 파는 일이 아니다. 어떤 방식의 매출이 오래 갈 수 있는지, 어느 지점부터 팬덤의 부담이 산업의 위험으로 바뀌는지 가늠하는 일에 가깝다. AI 음원을 걸러내지 못하면 차트의 믿음이 무너지고, 과도한 팬덤 과금에만 기대면 시장의 바닥이 얇아진다. 2026년 4월 19일 기준 K-pop의 마지막 장면은 성장의 환호보다 성장의 조건을 묻는 쪽에 더 가깝다. 시장은 커졌지만, 그 커진 시장을 지탱할 질서와 한계선은 아직 다시 그어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