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문화④] 삼성·현대차·포스코, 인도 전략 다시 짠다

공장·R&D·철강·조선·게임까지…한국 기업 인도 구상이 넓어졌다

2026-04-21     박준식 기자
이재명 대통령 인도 국빈 방문. 사진=청와대 & KTV 이매진 갈무리,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박준식기자]뉴델리 국빈방문 일정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 장면 가운데 하나는 한국 기업 이름이 정상외교의 한복판에서 잇따라 불렸다는 점이다. 삼성전자와 현대차, LG, 포스코는 물론이고 HD현대, 효성, 크래프톤까지 각기 다른 업종의 기업들이 같은 테이블에 올랐다. 자동차와 가전처럼 이미 익숙한 분야만이 아니었다. 철강과 조선, 인공지능과 게임, 전력망과 펌프, 연구개발과 디지털까지 범위가 넓었다. 이번 인도 방문은 정부 간 합의만 확인한 자리가 아니라, 한국 기업들이 인도를 어떤 시장으로 보고 있는지 드러낸 무대이기도 했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인도를 바라보는 시야가 한층 넓어졌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자동차 생산기지, 가전 판매시장, 휴대전화 생산거점 같은 단어로 인도를 설명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에는 결이 달랐다. 생산과 판매를 넘어 연구개발, 소재와 기반 산업, 조선, 게임과 디지털 생태계까지 한꺼번에 언급됐다. 한국 기업들이 인도를 단순한 수출 대상이나 값싼 생산 거점으로만 보지 않고, 장기적으로 사업 구조를 넓힐 공간으로 다시 계산하고 있다는 흐름이 읽혔다.

이재명 대통령 인도 국빈 방문. 사진=청와대 & KTV 이매진 갈무리,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삼성의 발언은 그 방향을 압축했다. 삼성은 현지 기업이 되겠다는 자세로 인도에 진출했다고 밝히면서, 앞으로 첨단 제품 생산과 혁신 연구개발을 인도 현지에서 함께하겠다고 말했다. 단순한 생산 확대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간 표현이다. 현지 생산은 이미 익숙한 이야기지만, 혁신 연구개발까지 같은 문장 안에 올려놓은 것은 의미가 다르다. 인도를 단지 대규모 소비시장으로만 보지 않고 제품과 기술을 함께 설계하고 시험하는 거점으로 다루겠다는 신호에 가깝다. 세계 최대 인구를 가진 시장이자 디지털 인력이 풍부한 나라라는 인도의 조건을 함께 고려한 접근으로 읽힌다.

이재명 대통령 인도 국빈 방문. 사진=청와대 & KTV 이매진 갈무리,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현대차가 꺼낸 메시지도 비슷한 흐름을 보여준다. 현대차는 신흥시장 종합 R&D 센터를 2028년 말 인도 완공 목표로 짓고 있다고 소개했다. 여기에 이번 달 푸네 제3공장 준공식에 모디 총리를 초청했다는 사실까지 더했다. 생산기지와 연구개발 거점을 한 묶음으로 올린 셈이다. 자동차 기업의 인도 전략이 조립과 판매에 머물지 않고, 신흥시장 전체를 겨냥한 연구개발 축으로 넓어지고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인도 시장 자체의 규모도 크지만, 그보다 더 눈에 들어오는 것은 인도를 다른 신흥시장으로 뻗어 나가기 위한 거점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현대차의 인도 구상은 더 이상 한 나라 공장 계획으로만 설명하기 어렵다.

포스코는 이번 방문에서 인도 측의 관심을 가장 직접적으로 받은 기업 가운데 하나였다. 대통령실 브리핑에 따르면 인도 측은 특히 철강을 중요하게 보고 있었다. 포스코는 인도 JSW그룹과 함께 연 600만톤 규모의 고기능성 강재 생산을 위한 일관제철소 합작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추진’이다. 아직 완결된 투자로 단정할 단계는 아니지만, 인도 제조업 고도화와 직결된 사업이라는 점에서 무게가 실린다. 자동차와 가전 산업이 커질수록 고기능성 강재 수요도 함께 늘어난다. 포스코가 제철소 합작을 통해 노리는 것은 단순한 철강 판매가 아니라 인도 제조업 밸류체인 한복판으로 들어가는 일에 가깝다.

이재명 대통령 인도 국빈 방문. 사진=청와대 & KTV 이매진 갈무리,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HD현대가 언급한 중형 조선소 건설 투자 검토도 이번 방문에서 주목할 만한 대목이었다. 인도는 조선 강국으로 바로 떠오르는 나라가 아니다. 그렇다고 가능성이 낮다고만 볼 수도 없다. 항만과 해운, 제조업 기반 확대를 동시에 추진하는 나라에서 조선은 언제든 전략 산업으로 부상할 수 있다. HD현대가 중형 조선소 투자를 검토하고 있다는 소개는 인도 시장에서 조선이 새로운 협력 분야로 올라왔다는 사실 자체를 보여준다. 아직 검토 단계라는 점은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 다만 자동차와 철강에 이어 조선까지 협력 의제에 오른 장면은 한국 기업의 인도 전략이 어디까지 넓어질 수 있는지 가늠하게 한다.

효성은 생활과 산업 인프라를 함께 건드리는 방식으로 인도 사업을 설명했다. 효성은 세계 1위 스판덱스 공장을 가동 중이라고 밝히는 한편, 인도 전력망 구축에 앞장서고 산업용·가정용 펌프 공장을 건설해 깨끗한 물 공급에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여기에는 두 층위가 겹쳐 있다. 하나는 이미 자리 잡은 제조업 기반이고, 다른 하나는 인도 사회가 안고 있는 생활 인프라 수요다. 전력망과 물 공급은 성장하는 시장에서 가장 기본적인 기반 시설이다. 효성의 인도 전략은 생산 공장 운영에 머물지 않고, 산업 인프라와 생활 기반으로 손을 뻗는 형태에 가깝다.

이재명 대통령 인도 국빈 방문. 사진=청와대 & KTV 이매진 갈무리,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크래프톤은 이번 기업 명단에서 가장 다른 색깔을 띤다. 자동차나 철강, 조선처럼 눈에 보이는 공장과 설비 대신 게임 제작 생태계를 앞세웠기 때문이다. 크래프톤은 인도 게임 제작 생태계를 지원하고 있다면서, 이를 통해 한-인도 콘텐츠 시장 확산의 계기가 마련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제조업 중심으로 읽히기 쉬운 인도 전략에 콘텐츠와 플랫폼 산업이 함께 들어왔다는 점이 눈에 띈다. 인도는 젊은 인구가 많고 모바일 이용층이 두텁다. 게임은 단순한 오락 산업이 아니라 디지털 소비와 창작, 결제와 플랫폼이 맞물린 시장이다. 크래프톤의 발언은 한국 기업의 인도 진출이 이제 공장과 설비만이 아니라 문화와 디지털 산업으로도 뻗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번 방문에서 기업별 구상이 더 또렷하게 읽힌 배경에는 인도 측의 반응도 있다. 모디 총리는 현대차와 LG, 삼성, 포스코, 효성을 언급하며 인도인들이 잘 아는 기업이라고 말했다. 이어 HD현대의 조선, 삼성의 디스플레이, 네이버의 디지털, 크래프톤의 게임, GS의 청정에너지까지 따로 짚었다. 인도 정부가 한국 기업을 어떤 분야에서 필요로 하는지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제조업과 디지털, 청정에너지, 콘텐츠가 동시에 언급된 것은 인도 산업정책의 방향과 한국 기업의 강점이 만나는 지점이 그만큼 넓어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재명 대통령 인도 국빈 방문. 사진=청와대 & KTV 이매진 갈무리,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이 흐름을 보면 이번 인도 방문에서 한국 기업들은 같은 시장을 보고도 서로 다른 길을 꺼내 들었다. 삼성과 현대차는 생산과 연구개발을 함께 묶었고, 포스코는 소재와 제조업 기반으로 접근했다. HD현대는 조선이라는 새 의제를 올렸고, 효성은 전력망과 물 공급처럼 생활 인프라 수요를 건드렸다. 크래프톤은 디지털 콘텐츠 생태계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업종은 다르지만 공통점도 있다. 인도를 단일 품목 수출시장으로 보지 않고, 각자 강점을 살려 현지 산업과 소비 구조 안으로 더 깊게 들어가려 한다는 점이다.

물론 이번 방문에서 나온 기업 발언을 같은 무게로 놓고 읽을 수는 없다. 삼성과 현대차는 이미 인도 시장에서 존재감이 크다. 포스코의 제철소 합작은 추진 단계이고, HD현대는 투자 검토 단계다. 효성과 크래프톤의 발언도 각자의 사업 확대 방향을 보여준 것이지 당장 확정된 투자 발표로 읽어선 곤란하다. 기사에서 구분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번 순방은 기업 이름을 많이 나열한 자리가 아니라, 각 기업이 인도에서 어떤 다음 수를 보고 있는지 드러낸 자리였다.

이재명 대통령 인도 국빈 방문. 사진=청와대 & KTV 이매진 갈무리,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이번 국빈방문에서 한국 기업의 인도 전략은 한 장면으로 정리되기 어렵다. 공장과 연구개발, 철강과 조선, 전력망과 게임이 한꺼번에 놓여 있었다. 그만큼 인도라는 시장도 복합적으로 변하고 있다. 제조업만 중요한 나라가 아니고, 디지털과 콘텐츠만 보는 나라로도 설명되지 않는다. 거대한 내수시장, 성장하는 산업기반, 풍부한 IT 인력, 생활 인프라 수요가 한꺼번에 존재하는 공간이다. 이번 방문에서 드러난 한국 기업들의 구상은 바로 그 복합성을 향해 있었다.

그래서 이번 순방을 기업 기사로만 좁혀 읽으면 오히려 절반만 보게 된다. 뉴델리에서 나온 기업 발언은 각사의 사업 설명인 동시에 한국 경제가 인도를 대하는 방식의 변화도 보여줬다. 자동차와 가전 중심이던 오래된 인도 서사에 철강과 조선, 연구개발과 디지털, 콘텐츠와 생활 인프라가 새로 들어왔다. 정부가 외교의 문을 열고, 기업이 그 안에서 각자의 언어로 사업 지도를 펼쳐 보인 셈이다. 이번 인도 방문은 그런 장면이 한꺼번에 포착된 자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