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문화⑥] 인도 다음 베트남, 남쪽 외교의 다음 장면
인도는 공급망·제조, 베트남은 교역·인프라…순방 동선에 담긴 이재명 정부 남쪽 외교 확장판
[KtN 박준식기자]4월 19일 뉴델리로 시작해 24일 하노이에서 끝나는 5박 6일 순방은 나라 두 곳을 차례로 도는 일정 이상이었다. 인도와 베트남은 지도에서 가깝지 않다. 산업 구조와 시장의 성격도 다르다. 그런데 대통령실은 두 나라를 한 순방 안에 묶었다. 출국 전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이번 일정을 “글로벌 사우스 외교의 본격 가동”이라고 설명했다. 인도 방문에서 경제협정과 기업인 전면 배치, 문화 일정이 동시에 올라왔다면, 베트남 일정은 그 흐름을 동남아로 잇는 후속 장면에 가깝다. 이번 순방은 한 나라와의 회담을 넘어 남아시아와 동남아를 한 축으로 묶어 보려는 외교 구상이 실제 일정표 위에 올라온 사례로 읽힌다.
인도와 베트남은 이번 순방에서 서로 다른 역할을 맡았다. 인도는 세계 4위 경제, 14억 인구, 높은 성장률을 앞세운 거대 시장이다. 한국 정부는 인도를 두고 글로벌 사우스의 선도국이라고 규정했다. 정상회담에서는 CEPA 개선협상 재개·가속, 산업협력위원회 신설, 에너지 자원 안보 협력 공동성명, 디지털 브릿지 프레임워크, 금융·전자결제·문화창조산업 MOU가 나왔다. 회담장 밖에서는 기업인 오찬과 비즈니스 포럼이 이어졌다. 조선과 철강, AI와 반도체, 청정에너지, 콘텐츠까지 협력 범위를 넓히는 그림이 인도 일정에서 드러났다. 인도는 정부가 공급망과 제조, 기술 협력의 폭을 크게 넓혀 보려는 무대로 놓였다.
베트남은 결이 조금 다르다. 위성락 실장 브리핑에 따르면 이번 방문은 이달 초 출범한 베트남 신지도부의 첫 국빈 행사로 잡혔다. 지난해 8월 또 럼 당 서기장이 한국을 국빈 방문한 뒤 8개월 만에 이뤄지는 답방 성격도 있다. 첫 국빈, 첫 답방이라는 표현이 겹치는 만큼 관계의 속도와 밀도가 함께 강조됐다. 인도 방문이 8년 만의 국빈방문이라는 상징성과 함께 공급망·제조 협력의 판을 키우는 일정이었다면, 베트남 방문은 이미 두터운 교역과 인적 교류 위에서 관계를 한 단계 더 끌어올리는 성격이 강하다. 대통령실은 베트남과의 관계를 두고 “최상의 파트너십 구축”이라는 표현까지 썼다.
실제 의제도 그렇게 갈린다. 인도에서 정부가 힘을 실은 분야가 CEPA와 공급망, 디지털과 산업협력위원회였다면, 베트남에선 2030년까지 양국 교역액 1500억 달러 달성, 인프라와 원전, 에너지 전환, 핵심 광물 협력, 전략적 경제 협력 고도화가 중심에 놓였다. 베트남은 이미 한국 기업 진출이 깊고, 교역과 투자 기반도 넓다. 정부가 이번 방문에서 강조한 것도 새로운 시장 개척보다 이미 쌓인 경제관계를 더 높은 단계로 끌어올리는 일이었다. 경제와 행정을 총괄하는 베트남 총리와의 면담, 국회의장과의 면담, 한-베트남 비즈니스 포럼이 별도로 배치된 것도 이런 맥락으로 읽힌다. 시장 진입보다는 제도 정비와 협력 고도화, 기업 애로 해소에 초점이 놓인 셈이다.
두 나라를 한 순방 안에 넣은 배치가 의미를 갖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인도는 아직 넓게 열려 있는 시장이고, 베트남은 이미 깊게 들어가 있는 시장이다. 인도에선 새로운 협력 틀과 산업 지형을 넓히는 작업이 두드러졌고, 베트남에선 기존 관계를 더 촘촘히 다지는 과제가 전면에 놓였다. 하나는 확장의 외교에 가깝고, 다른 하나는 고도화의 외교에 가깝다. 두 나라를 연속 방문한 것은 정부가 남쪽 외교를 단순한 상징 방문이 아니라 단계별 전략으로 보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아직 덜 들어간 곳에선 길을 넓히고, 이미 깊게 들어간 곳에선 관계의 밀도를 높이는 방식이다.
정치 일정의 결도 묘하게 다르다. 인도에선 공식환영식과 간디 추모공원 헌화, 공동식수, 소인수·확대회담, 총리 주최 오찬, 비즈니스 포럼, 국빈 만찬으로 이어지는 일정이 눈에 띄었다. 외교 의전과 산업 협력, 문화 일정이 한 화면 안에 들어왔다. 베트남에선 또 럼 당 서기장 겸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 레 민 흥 총리, 쩐 타인 먼 국회의장과의 연쇄 면담, 비즈니스 포럼, 탕롱 황성 친교 일정이 배치됐다. 인도가 거대한 시장과 산업 기회를 상대로 관계의 틀을 새로 세우는 무대였다면, 베트남은 지도부 전반과의 접촉을 통해 관계를 촘촘히 묶는 무대에 가깝다. 순방 동선 안에 각 나라의 성격이 그대로 반영된 셈이다.
경제와 문화, 사람의 이동을 함께 보는 시선도 두 방문을 묶는 공통분모다. 인도에선 K-Dream Stage, 한국어 학습 분위기, 뭄바이 코리아센터, 전자결제 연계가 경제 의제와 나란히 놓였다. 베트남에선 450만 방문객, 20만 재외동포, 10만 한-베트남 다문화 가정이라는 숫자가 브리핑에 올랐다. 관광과 재외동포, 다문화 가정, 문화산업과 인재 양성까지 함께 언급된 점을 보면 이번 순방은 수출과 투자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남쪽 외교라는 말 안에는 공급망과 제조, 에너지와 디지털뿐 아니라 사람의 이동과 생활, 언어와 문화까지 함께 들어 있다. 인도와 베트남이 각각 다른 얼굴로 그 지점을 보여줬다.
이재명 정부가 이번 순방에서 보여준 방식은 익숙한 강대국 외교 문법과도 결이 다르다. 인도와 베트남은 모두 미국·중국·일본 같은 전통적 중심축 바깥에 놓인 나라가 아니다. 이미 세계 경제와 공급망, 지정학에서 무게가 커진 국가들이다. 정부는 그 변화를 뒤늦게 따라가는 대신, 출범 초기에 국빈방문 형식으로 먼저 들어갔다. 인도에선 8년 만의 방문, 베트남에선 신지도부 첫 국빈이라는 상징을 함께 챙겼다. 형식과 시점을 모두 활용해 외교적 우선순위를 선명하게 드러낸 셈이다. 어떤 나라를 먼저 찾느냐는 곧 어떤 지역을 다음 성장축으로 보느냐와 연결된다. 이번 순방은 그 답을 남쪽에서 찾겠다는 신호로 읽힌다.
물론 이번 순방을 곧바로 완성된 성과로 단정하긴 어렵다. 인도에선 CEPA 개선협상과 산업협력위원회, 디지털 브릿지 같은 틀이 이제 막 돌아가기 시작했고, 베트남에선 교역 1500억 달러 목표와 인프라·원전·에너지 전환 협력 구상이 실제 사업으로 이어져야 한다. 한국 기업 애로 해소와 공급망 안정, 핵심 광물 협력, 문화·인적 교류 확대도 결국 후속 협의와 이행 속도에 달려 있다. 다만 이번 순방이 던진 방향은 분명하다. 남쪽 외교를 선언에 그치게 하지 않고, 나라별 성격에 맞춰 다른 의제와 다른 속도로 접근하겠다는 점이다.
인도와 베트남은 같은 남쪽에 있지만, 정부가 두 나라를 대하는 방식은 같지 않았다. 인도에선 “왜 지금 인도인가”라는 질문에 공급망과 제조, 기술 협력, 문화 접점 확대로 답했다. 베트남에선 이미 큰 교역과 투자 관계를 어떻게 더 높일지, 신지도부와 어떤 속도로 관계를 다질지를 보여줬다. 하나는 문을 넓히는 일정이었고, 다른 하나는 연결을 깊게 하는 일정이었다. 이번 순방의 핵심은 바로 그 차이를 한 동선 안에 담았다는 데 있다.
뉴델리와 하노이를 한 줄로 잇는 이번 5박 6일은 이재명 정부가 남쪽을 향해 어떤 지도를 그리고 있는지 보여준 첫 장면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인도에서 공급망과 산업 협력의 폭을 넓히고, 베트남에서 교역과 인프라, 사람의 이동이 얽힌 관계를 더 단단히 묶는 방식이다. 순방의 성패는 앞으로 후속 협상과 투자, 교역 확대, 문화 교류에서 가려지겠지만, 적어도 방향은 뚜렷하다. 남아시아와 동남아를 따로 보지 않고, 하나의 확장된 외교 공간으로 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