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문화①] 한-인도 정상회담, ‘매년 정례 개최’ 합의…5년 단위 운영 체계 시험대

공동 전략 비전 발표·4개 장관급 협의체 연내 개최 추진…공급망·경제안보 불확실성 속 실행력은 아직 검증 전

2026-05-04     최기형 기자
이재명 대통령 인도 국빈 방문. 사진=청와대 & KTV 이매진 갈무리,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최기형기자]2026년 4월 20일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한-인도 정상회담에서 양국은 2026년부터 2030년까지 적용될 ‘한-인도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위한 공동 전략 비전’을 발표했다. 이재명 대통령과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양국 또는 다자회의 계기에 매년 정상회담을 개최하기로 합의했다. 외교장관 공동위, 재무장관 회의, 과학기술 공동위와 신설되는 산업협력위원회까지 장관급 협의체 4개도 연내 소집하기로 했다. 2015년 격상된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계가 10년을 넘긴 뒤, 양국은 관계의 이름값을 회의 일정과 후속 사업으로 검증받는 단계에 들어섰다.

이 대통령은 2026년 4월 19일부터 21일까지 사흘간 인도를 국빈 방문했다. 청와대가 공개한 공동 전략 비전 비공식 국문 번역본은 이번 방문을 “역대 대한민국 대통령 중 취임 후 가장 이른 시기에 성사된” 인도 방문이라고 적었다. 수행단에는 각 부처 장관, 고위 공직자, 한국 주요 기업 총수들이 포함됐다. 정상회담의 외형은 양국 정상 간 회동이었지만, 의제는 외교·안보, 산업, 금융, 과학기술, 문화, 교육, 인적 교류 전반으로 넓게 펼쳐졌다.

뉴델리 회담은 국제 질서의 불확실성이 커진 시점에 열렸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026년 4월 세계경제전망에서 중동 전쟁이 제한적 범위에 머문다는 전제 아래 세계 성장률을 2026년 3.1%, 2027년 3.2%로 제시했다. IMF는 세계 경제가 지난해 높은 무역장벽과 불확실성을 견뎌냈지만, 중동 전쟁 발발로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고 진단했다. 성장률 전망 자체보다 중요한 대목은 에너지, 물류, 물가, 금융 여건이 동시에 외교 변수로 올라섰다는 점이다.

세계 교역 환경도 느슨하지 않다. 세계무역기구(WTO)는 2026년 세계 교역 전망에서 중동 분쟁이 운송과 연료 비용, 해상·항공 경로에 부담을 줄 수 있다고 봤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각국 정부가 2026년에도 산업·전략 목표를 위해 관세와 무역정책 수단을 활용할 가능성이 크고, 잦은 정책 변화가 투자와 공급망을 흔들 수 있다고 분석했다. 양국 정상회담에서 ‘경제안보’와 ‘공급망 회복력’이 별도 의제로 등장한 배경이다.

에너지 안보는 한-인도 관계에서 추상적 구호가 아니라 실물경제의 문제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26년 4월 석유시장보고서에서 중동 에너지 인프라 공격과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탱커 이동 제한으로 3월 세계 석유 공급이 전월보다 하루 1,010만 배럴 줄었다고 밝혔다. 한국은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제조업 국가이고, 인도는 고성장에 필요한 에너지 수요를 계속 관리해야 하는 국가다. 양국이 에너지 자원 안보 공동성명에서 개방된 시장과 규칙 기반 무역, 에너지 자원 공급망 회복력을 함께 언급한 것도 이런 압박과 무관하지 않다.

공동 전략 비전에 담긴 ‘인도태평양’, ‘경제안보대화’, ‘공급망 회복력’, ‘시장 다변화’, ‘첨단기술 협력’이라는 표현은 국제 정세의 변화와 맞물려 있다. 양국은 법치에 기반한 자유롭고 개방적이며 평화롭고 번영하는 인도태평양 지역에 대한 비전이 유사하다고 밝혔다. 동시에 공급망 회복력을 강화하고 시장 다변화를 촉진하며 첨단기술 협력을 진전시키기 위한 ‘한-인도 경제안보대화’ 출범을 환영했다. 다만 이런 표현이 곧바로 공동 대응 능력을 뜻하지는 않는다. 회의체가 만들어져도 실제 조정 능력은 의제의 우선순위, 부처 간 협업, 기업 참여, 예산 반영을 거쳐 확인된다.

뉴델리 합의의 첫 번째 골자는 고위급 소통의 제도화다. 두 정상은 2025년 6월 캐나다 카나나스키스 G7 정상회의와 같은 해 11월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 G20 정상회의 계기에 가진 두 차례 회담을 공동 전략 비전에 담았다. 이어 양국에서 또는 다자회의 계기에 매년 정상회담을 개최하기로 했다. 정상 간 만남을 순방 일정이나 국제회의 부대 행사에만 맡기지 않고, 해마다 양국 관계를 점검하는 고정 일정으로 만들겠다는 합의다.

정상회담 정례화는 외교 문서에서 짧은 문장으로 처리됐지만, 양국 관계의 작동 방식을 바꿀 수 있는 대목이다. 한국과 인도는 이미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계’라는 높은 외교적 명칭을 공유하고 있다. 공동 전략 비전은 2025년이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계 10주년이라는 점도 확인했다. 그러나 외교 관계에서 명칭의 높이와 운영의 밀도는 별개다. 정상 간 합의가 다음 회담까지 관리되지 않거나, 장관급 협의가 불규칙하게 열리거나, 부처별 의제가 따로 움직이면 관계는 넓어 보여도 축적되기 어렵다.

정상회담을 뒷받침할 실행 기구도 구체화됐다. 양국은 한-인도 외교장관 공동위, 재무장관 회의, 과학기술 공동위를 연내 개최하기로 했다. 산업 담당 장관 사이에는 새로운 대화체인 한-인도 산업협력위원회를 출범시키고 첫 회의를 열기로 합의했다. 외교장관 공동위는 정무·안보 현안을, 재무장관 회의는 금융과 투자 환경을, 과학기술 공동위는 연구개발과 첨단기술 협력을 다루는 통로가 된다. 산업협력위원회는 자동차, 조선, 화학, 반도체, 통신 장비, 디스플레이, 이차전지, 핵심 광물 같은 실물경제 의제를 장관급 논의로 끌어올리는 장치다.

한-인도 관계가 경제 협력으로만 설명되지 않는다는 점도 공동 전략 비전에 담겼다. 문서는 한국과 인도를 “아시아의 역동적이고 회복력 있는 민주주의 국가”이자 “세계 주요 경제”로 표현했다. 인도는 한국을 자국의 신동방정책, Act East Policy의 필수적인 파트너로 간주했고, 한국은 인도를 실용외교와 신남방정책 계승 및 발전의 핵심축으로 본다고 밝혔다. 양국은 한-인도 파트너십이 인도태평양 지역의 평화, 안정, 안보 증진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도 인정했다.

양국의 필요는 서로 다른 방향에서 맞물린다. 한국에 인도는 거대 시장이자 공급망 다변화, 첨단기술 협력, 인도태평양 외교의 주요 축이다. 인도에 한국은 제조업, 조선, 반도체, 배터리, 방산, 디지털 분야의 경험을 가진 파트너다. 한-인도 관계는 그동안 자동차, 전자, 철강, 정보기술, 인력 교류 같은 경제 의제의 비중이 컸다. 이번 공동 전략 비전은 경제 의제를 정치적 관리 체계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문서다. 그러나 의제를 올리는 것과 실제 성과를 내는 것은 다른 문제다. 기업 투자, 기술 이전, 시장 접근, 규제 조정은 정상 간 합의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안보와 국방 분야의 일정도 함께 제시됐다. 공동 전략 비전은 인도 국방장관이 2026년 5월 한국을 방문해 인도군의 한국전쟁 참전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 중인 기념물 공동 개소식에 참석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한국전쟁 참전 기억은 양국 관계에서 역사적 연결고리로 활용될 수 있다. 동시에 방산과 안보 협력으로 이어질 수 있는 상징 자산이기도 하다. 다만 공동 전략 비전에 적힌 표현만으로 한-인도 관계가 군사동맹 수준으로 이동한다고 해석하기는 어렵다. 문서가 제시한 범위는 정기 협의, 전략적 신뢰, 방산 협력 확대에 가깝다.

전략·안보 분야의 후속 협의도 예고됐다. 2026년 2월 양국 외교부 간 한-인도 외교정책안보대화가 열린 데 이어, 양측은 방산군수 공동위원회와 제1차 외교·국방 2+2 차관회의 개최를 추진하기로 했다. 공급망 회복력, 시장 다변화, 첨단기술 협력을 다루기 위한 한-인도 경제안보대화 출범도 공동 전략 비전에 포함됐다. 외교와 안보, 산업과 공급망이 별도 영역으로 움직이지 않는 국제 환경에서 양국도 경제 협력을 전략적 신뢰의 언어로 다시 묶고 있다.

양국의 외교적 지향점 차이는 회의체가 관리해야 할 과제다. 한국은 한반도 문제, 한미동맹, 대중 경제 관계, 동북아 안보 환경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인도는 전략적 자율성을 중시해 왔고, 남아시아와 인도양, 중국과의 국경 문제, 글로벌 사우스 외교를 동시에 관리한다. 양국이 인도태평양, 법치, 규칙 기반 질서라는 표현을 공유한다고 해서 모든 지역 현안에서 같은 속도와 방식으로 움직인다고 볼 수는 없다. 정상회담 정례화는 차이를 없애는 장치가 아니라 차이를 상시 조율하는 장치에 가깝다.

문화와 인적 교류 분야도 같은 관리 체계 안에 놓였다. 공동 전략 비전에는 2026~2030년 문화교류계획서 재연장, 2028~2029년 ‘한-인도 우호의 해’ 지정, 문화창조산업 협력, 불교 전통, 언어 교육, 장학금, 비자·항공 연결성 강화가 포함됐다. 이 대목은 정치·안보 의제보다 성과 확인이 더 늦게 나타날 수 있다. 공연과 전시, 공동제작, 학생 교류가 지속 사업으로 이어지려면 주관 기관, 예산, 세부 일정, 참여자 규모가 확인돼야 한다. 현재 공동 전략 비전은 방향을 제시했을 뿐, 구체적 프로그램의 규모와 집행 방식까지 담고 있지는 않다.

정상회담 정례화가 실제 성과로 이어지려면 회의 개최보다 의제 관리가 중요하다. 공동 전략 비전에는 외교·안보, 조선, 에너지 자원, 핵심 광물, 디지털 결제, 인공지능, 방산, 우주, 문화, 교육, 비자, 항공 연결성까지 들어 있다. 의제가 넓을수록 정상외교의 역할은 커지지만, 동시에 성과가 흩어질 가능성도 커진다. 일정, 의제, 예산, 담당 부처, 민간 참여가 맞물리지 않으면 회의체의 숫자만 늘어날 수 있다. 한-인도 관계의 다음 평가는 합의문의 표현보다 연내 협의체가 실제로 무엇을 결정하는지에 달려 있다.

뉴델리 공동 전략 비전은 한-인도 관계를 5년 단위로 운영하겠다는 일정표를 제시했다. 첫 관문은 2026년 남은 기간에 예정된 외교장관 공동위, 재무장관 회의, 과학기술 공동위, 산업협력위원회 첫 회의의 실제 개최 여부다. 회의가 열리더라도 의제가 분산되고 후속 예산과 사업이 뒤따르지 않으면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계는 다시 선언의 수준에 머물 수 있다. 중동 전쟁, 에너지 공급 불안, 무역정책 불확실성, 공급망 재편이 겹친 2026년 한-인도 외교는 관계 확대보다 운영 능력을 먼저 검증받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