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문화③] 한-인도 2+2 대화 추진, 전략 신뢰의 시험대 오른다
인도태평양·경제안보·방산 협의 확대…동맹 아닌 협력 관계에서 속도 조절이 관건
[KtN 최기형기자]뉴델리에서 발표된 한-인도 공동 전략 비전에는 외교·안보 협의체 확대가 별도 축으로 들어갔다. 이재명 대통령과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법치에 기반한 자유롭고 개방적이며 평화롭고 번영하는 인도태평양 지역에 대한 양국의 비전이 유사하다고 밝혔다. 양측은 2026년 2월 열린 한-인도 외교정책안보대화에 이어 방산군수 공동위원회와 제1차 외교·국방 2+2 차관회의 개최를 추진하기로 했다. 공급망 회복력과 시장 다변화, 첨단기술 협력을 다루는 한-인도 경제안보대화 출범도 공동 전략 비전에 포함됐다. 정상회담 정례화가 양국 관계의 외형을 세웠다면, 2+2 대화와 경제안보대화는 안보·산업·기술 의제를 어디까지 함께 관리할 수 있는지 가늠하는 시험대다.
한-인도 관계에서 안보 의제는 오래전부터 존재했지만, 경제 협력만큼 전면에 놓이지는 않았다. 자동차, 전자, 철강, 정보기술, 인력 교류가 양국 관계의 익숙한 표면이었다. 이번 공동 전략 비전은 외교정책안보대화, 방산군수 공동위원회, 외교·국방 2+2 차관회의, 경제안보대화를 한꺼번에 적었다. 외교와 국방, 공급망과 첨단기술을 분리해 다루기 어려운 국제 환경이 양국 관계의 의제 배열을 바꾼 셈이다.
인도태평양의 안보 환경은 해상 교통로, 에너지 수송, 핵심 광물, 첨단 제조 공급망을 동시에 흔들고 있다. 중동 전쟁의 여파로 에너지 안보와 해상 운송 위험이 커졌고, 미중 경쟁은 반도체·배터리·희토류·인공지능 등 전략 산업의 공급망을 외교 쟁점으로 끌어올렸다. 로이터는 최근 중동 전쟁의 파장이 중국의 에너지 안보와 기술 자립 우선순위를 더 높였다고 보도했다. 역내 주요국들이 에너지와 기술, 공급망을 국가안보의 언어로 다루는 흐름이 뚜렷해진 것이다.
한국과 인도가 공동 전략 비전에서 ‘경제안보대화’를 명시한 배경도 이 흐름과 맞닿아 있다. 문서는 한-인도 경제안보대화가 상호 전략적 신뢰를 바탕으로 공급망 회복력을 강화하고, 시장 다변화를 촉진하며, 첨단기술 분야 협력을 증진하기 위한 것이라고 적었다. 경제안보는 더 이상 통상 부처만의 의제가 아니다. 핵심 광물 확보, 반도체와 배터리 공급망, 방산 기술, 우주 협력, 해양 물류가 한꺼번에 연결된다. 한국과 인도 모두 수입 의존도와 시장 다변화의 압박을 안고 있다는 점에서 협의 필요성은 커졌다.
다만 필요성이 곧 협력의 속도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한국은 한반도 안보, 한미동맹, 대중 경제 의존, 동북아 군사 긴장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인도는 전략적 자율성을 중시해 왔고, 미국·러시아·유럽·일본·동남아와의 관계를 병행하면서 중국과의 국경 문제, 인도양 안보, 글로벌 사우스 외교를 함께 관리한다. 양국이 인도태평양과 규칙 기반 질서라는 표현을 공유하더라도 특정 현안에서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2+2 차관회의는 입장을 맞추는 장치라기보다 차이를 확인하고 관리하는 장치에 가깝다.
공동 전략 비전은 한국의 인도태평양 해양 이니셔티브 참여도 명시했다. 인도는 한국의 참여를 환영했다. 한국이 인도 주도의 인도태평양 구상에 이름을 올린 것은 해양 안보와 해양 협력 의제를 넓히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참여의 강도와 범위는 앞으로 정해질 부분이 많다. 공동 순찰, 군사훈련, 해양 상황 인식, 항만·물류 협력, 해양환경, 해양과학 가운데 어느 영역에 무게가 실릴지에 따라 협력의 성격은 달라진다. 현재 문서가 확인한 내용은 참여와 환영이지, 구체 사업의 규모까지는 아니다.
외교·국방 2+2 대화는 양국 관계의 민감한 층위다. 미국, 일본, 호주 등 안보 협력이 깊은 국가들이 장관급 또는 차관급 2+2 대화를 운영해 왔지만, 한-인도는 곧바로 그 틀과 같은 의미로 해석하기 어렵다. 공동 전략 비전은 제1차 외교·국방 2+2 차관회의를 “상호 편리한 시기”에 개최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적었다. 장관급이 아니라 차관급에서 시작한다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협력의 문은 열되, 속도와 수위를 조정하겠다는 신호로 읽힌다. 인도 외교부가 공개한 영문 공동 전략 비전도 같은 취지로 외교·국방 2+2 차관회의 추진을 명시했다.
방산 협력은 상대적으로 구체성이 있다. 공동 전략 비전은 2020년 체결된 방산협력 로드맵 양해각서의 재활성화를 언급했다. K9 자주포의 성공적인 합작 생산과 2차 사업 생산 진행도 문서에 들어갔다. 비호복합체계 등 상호 관심 분야에서 같은 모델을 재현하기 위한 노력을 환영한다는 표현도 담겼다. 양국은 기업, 인큐베이터, 투자자, 방산 스타트업, 대학을 연결하는 한-인도 방산혁신가속플랫폼, KIND-X 출범에도 합의했다. 방산 협력이 단순 완제품 거래에서 공동 생산, 기술 협력, 스타트업 생태계 연결로 넓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방산 협력에는 기회와 부담이 함께 있다. 한국 방산업계는 가격 경쟁력과 납기, 실전 운용 경험을 앞세워 수출 시장을 넓혀 왔다. 인도는 ‘메이크 인 인디아’ 기조 아래 현지 생산과 기술 이전, 자국 산업 기반 확대를 중시한다. K9 자주포 협력은 양국 방산 협력의 대표 사례로 남았지만, 다른 분야에서 같은 모델이 반복되려면 기술 이전 범위, 현지화 비율, 지식재산권, 생산 책임, 제3국 수출 문제를 조정해야 한다. 방산은 산업 협력인 동시에 안보 협력이다. 계약 조건 하나가 양국 정부의 전략 판단과 연결된다.
테러 대응도 공동 전략 비전에 들어간 안보 의제다. 두 정상은 국경 간 테러를 포함한 모든 형태와 양상의 테러 및 폭력적 극단주의를 강하게 규탄했다. 2025년 4월 22일 잠무 카슈미르 파할감에서 발생한 테러 공격도 공동 문서에서 언급됐다. 모디 총리는 이 대통령에게 저항전선(TRF)이 공격의 배후를 자처했다고 설명했고, 이 대통령은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인도 정부가 공개한 공동 전략 비전도 테러리스트의 은신처, 자금 조달 경로, 초국가범죄와의 연계 차단을 위한 협력 강화를 담았다.
한국 입장에서 테러 대응 의제는 조심스럽다. 한국은 국제 테러 대응과 비확산, 해상 안전, 사이버 안보에서 협력할 수 있지만, 남아시아의 국경·종교·분쟁 의제에 깊이 들어가는 데는 외교적 부담이 있다. 인도 입장에서는 파할감 공격과 국경 간 테러가 핵심 안보 현안이다. 공동성명에 테러 규탄 문구가 강하게 들어간 만큼, 앞으로 관련 정보 공유나 국제무대 공조가 논의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이 인도와 같은 강도로 남아시아 안보 의제에 관여할지는 별도의 문제다.
한반도 의제도 공동 전략 비전의 한 축이다. 두 정상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인 평화에 대한 의지를 재확인했다. 인도는 대화 재개와 관계 정상화, 단계적 비핵화를 통한 한반도의 평화적 공존과 공동 성장을 목표로 하는 한국의 긴장 완화 및 신뢰 구축 조치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대량살상무기와 운반체계가 테러리스트와 비국가행위자에게 확산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함께 노력하겠다는 문구도 포함됐다. 인도는 핵보유국이지만 핵확산금지조약 체제 밖에 있는 국가이고, 한국은 북핵 위협을 직접 마주한 비핵보유 동맹국이다. 비확산과 한반도 문구는 양국의 전략적 위치 차이를 드러내면서도 협력 가능한 최소 공통분모를 보여준다.
해양 안보는 2+2 대화와 경제안보대화가 만나는 지점이다. 인도양과 서태평양을 잇는 해상 교통로는 한국 제조업과 에너지 수입, 인도의 성장 전략 모두에 중요하다. 별도 공동성명에서 양국은 조선, 해운, 해양물류 분야 포괄적 파트너십 프레임워크를 채택했다. 인도는 대규모 그린필드 조선 클러스터 조성 기회를 설명했고, 한국 조선 기업의 기술적·전략적 참여를 요청했다. 조선소, 항만, 해양물류, 해기사 인력, 해양 교육 협력이 안보와 산업의 경계에 놓인 이유다.
에너지 자원 안보 공동성명도 같은 흐름에 있다. 양국은 개방된 시장과 규칙 기반 무역을 장기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경제·에너지 자원 파트너십의 기반으로 제시했다. 인도는 한국에 나프타와 기타 석유 원료를 공급하는 주요 공급국이고, 한국은 인도에 석유 제품과 윤활기유를 공급하는 선도적 공급국이라고 문서에 적혔다. 양국은 LNG 소비국 간 협력, 조선 분야 협력, 안정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에너지 자원 공급을 함께 언급했다. 해양 운송과 조선 생태계는 에너지 안보의 하부 구조가 됐다.
2+2 대화가 가동되면 첫 의제는 군사 현안만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인도태평양 해양 협력, 방산 공동 생산, 공급망 안정, 경제안보, 테러 대응, 사이버와 우주, 비확산, 에너지 운송로가 한 테이블에 오를 수 있다. 바로 그 지점에서 회의체의 부담도 커진다. 의제가 넓어질수록 결론은 모호해질 수 있고, 각 부처의 우선순위가 충돌할 수 있다. 외교부와 국방부가 조율하고, 산업·통상·과학기술 부처가 뒤따라야 한다. 2+2 회의가 상징적 출범에 그치지 않으려면 첫 회의부터 의제를 좁혀야 한다.
양국이 다자무대에서 어느 정도까지 보조를 맞출지도 관찰 대상이다. 공동 전략 비전은 WTO를 중심으로 하는 규칙 기반 다자무역체제, 유엔 안보리 개혁, 항행과 상공비행의 자유, 중동 정세, 우크라이나 평화, 한반도 비핵화까지 폭넓은 국제 의제를 담았다. 문구는 넓지만, 각 사안에서 양국의 이해관계는 같지 않다. 인도는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오래 추진해 왔고, 러시아와의 관계도 유지한다. 한국은 한미동맹과 대북 억제, 글로벌 공급망 참여를 외교의 중심에 둔다. 다자무대의 협력은 표현보다 표결, 공동 발언, 제재 동참, 실무 프로젝트에서 확인된다.
한국과 인도 모두 중국이라는 변수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은 최대 교역 상대였던 중국과 경제적으로 깊게 얽혀 있고, 한반도 문제에서도 중국의 역할을 고려해야 한다. 인도는 중국과 국경 충돌의 기억을 안고 있으며 인도양과 남아시아에서 영향력 경쟁을 벌인다. 그러나 한-인도 공동 전략 비전은 특정 국가를 겨냥한 표현을 쓰지 않았다. 법치,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도태평양, 공급망 회복력, 시장 다변화라는 우회적 언어를 택했다. 기사에서 이 합의를 ‘대중국 포위’로 단정하기 어려운 이유다.
전략 신뢰는 선언보다 반복에서 만들어진다. 한 번의 정상회담, 한 번의 2+2 회의, 한 건의 방산 협력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정보 공유의 범위, 민감 기술의 이전 수준, 해양 협력의 실제 방식, 테러 대응 공조의 깊이, 다자무대에서의 투표와 발언이 쌓여야 한다. 한-인도 관계는 동맹이 아니며, 양국 모두 외교적 여지를 중시한다. 협력의 폭이 넓어질수록 각자의 선을 확인하는 작업도 함께 진행될 수밖에 없다.
뉴델리 공동 전략 비전은 한-인도 안보 협력을 한 단계 제도화하겠다는 일정을 제시했다. 첫 관문은 방산군수 공동위원회와 제1차 외교·국방 2+2 차관회의가 실제로 열리는지다. 회의가 열리더라도 성과는 공동성명 문구가 아니라 후속 사업에서 판가름난다. 방산 공동 생산이 어디까지 확대되는지, 경제안보대화가 공급망과 핵심 광물 협력으로 연결되는지, 인도태평양 해양 협력이 구체 프로그램을 갖는지 확인돼야 한다. 한-인도 전략 신뢰는 밀착을 선언하는 속도가 아니라, 서로 다른 외교 노선을 관리하면서 반복 가능한 협력 의제를 만드는 능력으로 검증될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