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문화④] 한-인도 ‘우호의 해’ 지정…문화외교, 행사보다 실행계획이 관건

2028~2029년 문화 활동 추진·문화교류계획서 재연장…공동제작·상호 문화행사·불교 유산 교류는 세부 사업 확인 필요

2026-05-04     최기형 기자
이재명 대통령 인도 국빈 방문. 사진=청와대 & KTV 이매진 갈무리,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최기형기자]20일 인도 뉴델리에서 발표된 ‘한-인도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위한 공동 전략 비전’은 안보와 산업 협력만 다루지 않았다. 이재명 대통령과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2026년부터 2030년까지 적용될 문화교류계획서 재연장을 환영하고, 2028~2029년을 ‘한-인도 우호의 해’로 지정해 일련의 문화 활동으로 기념하기로 했다. 한국 내 ‘인도의 날’과 인도 내 ‘한국의 날’ 행사 지원도 문서에 포함됐다. 정상외교와 장관급 협의체가 양국 관계의 윗단을 세우는 장치라면, 문화외교는 그 관계가 시민 사회와 대중의 일상으로 내려갈 수 있는지를 가르는 통로다. 다만 공동 전략 비전은 방향을 제시했을 뿐, 행사 규모와 예산, 도시, 주관 기관, 세부 프로그램까지 확정해 공개하지는 않았다.

공동 전략 비전에서 문화 분야는 ‘소프트 파워의 증폭’이라는 항목 아래 배치됐다. 양국 정상은 “풍부하고 공유된 문화적 전통”을 바탕으로 양국 내 기관 간 문화 분야 협력 강화를 지지했다. 2026~2030년 문화교류계획서 재연장을 환영하고, 이를 이행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하도록 관련 기관을 독려했다. 2028~2029년 ‘한-인도 우호의 해’ 지정은 이 계획의 중간 지점에 놓인다. 5년짜리 문화교류계획 안에서 특정 2년을 상징 일정으로 설정한 셈이다.

‘우호의 해’라는 이름은 외교 문서에서 낯설지 않다. 국가 간 수교 기념, 전략적 동반자 관계 기념, 문화 교류 확대를 위해 자주 쓰이는 형식이다. 문제는 이름 자체가 아니라 운영 방식이다. 우호의 해가 공연 몇 차례와 전시 개막식, 고위급 축사로 끝나면 대중에게 남는 효과는 제한적이다. 반대로 전시, 공연, 영화제, 출판, 번역, 학술행사, 청년 교류, 지방정부 행사, 학교 교육 프로그램이 연중 일정으로 이어지면 관계의 밀도는 달라진다. 한-인도 문화외교의 성패는 2028년이 되기 전까지 얼마나 구체적인 일정표를 만들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한국과 인도는 모두 문화적 자산을 외교 자원으로 활용해 온 국가다. 한국은 음악, 드라마, 영화, 웹툰, 게임, 음식, 뷰티 산업을 통해 대중문화의 국제적 확산을 경험했다. 인도는 영화, 음악, 고전무용, 요가, 종교·철학 전통, 축제 문화, 언어 다양성을 가진 거대 문화권이다. 양국의 문화외교가 의미를 가지려면 한류 확산과 인도 전통문화 소개를 병렬로 나열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양국 문화가 서로의 시장과 교육 현장, 창작 생태계 안에서 어떤 방식으로 번역되고 소비되는지까지 살펴야 한다.

공동 전략 비전은 상호 문화행사도 명시했다. 양국 정상은 한국 내 ‘인도의 날’과 인도 내 ‘한국의 날’ 행사를 포함해 서로의 문화적 전통과 소프트 파워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활동을 지원하기로 했다. 이 문구는 상호성을 강조한다. 한국에서 인도 문화를 소개하고, 인도에서 한국 문화를 알리는 양방향 행사 구조다. 그러나 상호성은 행사 이름만으로 확보되지 않는다. 한국 내 인도 문화행사가 특정 도시와 외교 행사장에 머물지 않는지, 인도 내 한국 문화행사가 대도시 한류 소비층에만 집중되지 않는지, 지역과 세대의 폭을 어떻게 넓힐지가 관건이다.

인도는 단일한 문화 시장으로 보기 어렵다. 힌디어권과 비힌디어권, 북부와 남부, 대도시와 지방, 영화 산업별 언어권이 다르다. 한국 문화가 인도에서 확산된다고 해도 뉴델리, 뭄바이, 벵갈루루, 첸나이, 콜카타 등 도시별 수용 방식은 다를 수밖에 없다. 한국 역시 인도 문화를 하나의 이미지로 받아들이기 쉽다. 요가, 카레, 발리우드, 불교, 정보기술 강국이라는 몇몇 표상만으로는 인도의 문화적 복합성을 설명하기 어렵다. 우호의 해가 의미를 가지려면 양국이 서로를 단순한 문화 이미지가 아니라 복수의 지역과 언어, 세대가 공존하는 사회로 소개해야 한다.

문화창조산업 협력은 우호의 해와 별도로 주목할 대목이다. 공동 전략 비전은 ‘문화창조산업에 관한 양해각서’ 체결을 환영하고, 공동제작, 훈련 교류, 애니메이션 및 시각효과(VFX) 분야의 기술 공유를 포함한 영화 분야 협력을 증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는 단순한 문화행사보다 산업적 성격이 강하다. 공연과 전시는 외교 행사로 기획될 수 있지만, 공동제작과 VFX 협력은 제작사, 투자자, 플랫폼, 인력, 저작권, 배급망이 움직여야 가능한 영역이다.

한국 콘텐츠 산업과 인도 영화 산업은 규모와 구조가 다르다. 한국은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 음악 플랫폼, 영화제, 팬덤 네트워크를 통해 국제 시장을 넓혀 왔다. 인도는 세계 최대권 영화 제작 생태계와 복수의 언어권 영화 시장을 갖고 있다. 양국 협력이 가능해 보이는 분야는 분명하다. 애니메이션, VFX, 후반작업, 공동 로케이션, 인력 훈련, 온라인 플랫폼용 콘텐츠, 청년 창작자 교류가 후보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공개된 공동 전략 비전만으로는 구체적인 공동제작 작품, 참여 제작사, 투자 규모, 공개 일정이 확인되지 않는다. 문화창조산업 MOU의 실효성은 후속 사업 명단이 나와야 판단할 수 있다.

공동제작은 문화외교의 성과로 보이기 쉽지만, 실제로는 이해관계 조정이 까다롭다. 어느 언어로 제작할지, 어느 시장을 1차 목표로 삼을지, 제작비를 어떻게 나눌지, 저작권과 수익 배분을 어떻게 정할지, 검열과 등급 심사, 종교·역사·사회적 민감성을 어떻게 다룰지 모두 쟁점이다. 한-인도 공동제작이 성과를 내려면 외교부와 문화부의 선언보다 업계가 받아들일 수 있는 계약 구조와 인력 교류 프로그램이 먼저 필요하다. VFX와 애니메이션 협력도 기술 공유라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하다. 교육 과정, 공동 워크숍, 스튜디오 간 협약, 인턴십, 장비와 소프트웨어 접근, 결과물의 유통 경로가 함께 설계돼야 한다.

문화외교의 또 다른 축은 역사와 종교적 연결이다. 공동 전략 비전은 양국이 공유하는 불교적 전통을 상기하고, 한국과 인도 간 역사적·문명적 연계를 심화한다는 목표를 언급했다. 인도의 한국에 대한 유물 200점 기증을 환영했고, 양국 간 문화 교류를 증진하기 위한 김해시의 노력도 환영했다. 이 대목은 한-인도 문화외교가 대중문화와 콘텐츠 산업만으로 구성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고대 교류, 불교 전통, 지역 문화, 박물관·학술 교류가 함께 들어온다.

다만 역사·문명 서사는 더 조심스럽게 다뤄야 한다. 불교 전통은 양국을 연결하는 확인 가능한 문화 자산이지만, 특정 고대 교류 서사를 현대 외교의 근거로 과장하면 학술 검증과 대중적 상징이 뒤섞일 수 있다. 공동 전략 비전에서 확인되는 사실은 공유된 불교적 전통, 인도의 유물 200점 기증, 김해시의 문화 교류 노력 환영이다. 그 이상의 세부 내용, 유물의 종류, 기증 방식, 전시 장소, 시기, 김해시 사업의 구체 일정은 별도 확인이 필요하다. 문화외교 기사는 상징을 쓰되, 상징이 사실을 대신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우호의 해가 지방정부 교류와 연결될 가능성도 있다. 앞선 회차에서 다룬 부산-뭄바이, 인천-콜카타, 울산-첸나이 자매·우호도시 관계는 문화행사를 지역으로 확장할 수 있는 기반이다. 중앙정부가 기념식을 열고 수도에서 공연을 하는 방식만으로는 문화외교의 저변이 넓어지기 어렵다. 도시 간 영화제, 항만도시 문화행사, 대학 교류, 청년 예술가 레지던시, 박물관 협력, 음식·축제 교류 같은 프로그램이 붙을 때 시민 체감도가 생긴다. 그러나 공동 전략 비전은 도시 관계를 언급했을 뿐, 우호의 해와 도시별 행사를 어떻게 연결할지는 밝히지 않았다.

교육과 언어도 문화외교의 하부 구조다. 공동 전략 비전은 인도 내 한국어 교육과 한국 내 인도 언어, 특히 힌디어 교육을 지원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학술 커리큘럼, 디지털 도구, 교사 연수, 제도적 프레임워크를 통한 지원도 언급했다. 2026년 1월 인도 내 최초의 한국교육원 개원을 환영했다는 문구도 포함됐다. 문화행사가 일시적 관심을 만들 수 있다면, 언어 교육은 관계를 오래 끌고 가는 인력 기반을 만든다.

한국어와 인도 언어 교육은 균형이 중요하다. 인도 내 한국어 수요가 한류와 취업, 유학, 기업 진출과 맞물려 커질 수 있지만, 한국 내 인도 언어 교육은 아직 대중적 기반이 넓다고 보기 어렵다. 힌디어뿐 아니라 타밀어, 벵골어, 텔루구어, 마라티어 등 인도 주요 언어의 다양성을 고려하면 ‘인도 언어’ 교육은 단순한 교양 강좌가 아니라 지역·산업·학술 수요와 연결돼야 한다. 문화외교가 지속되려면 언어 교육과 장학금, 대학 협력, 비자 제도, 항공 연결성이 함께 움직여야 한다.

문화 분야의 성과는 숫자로만 측정하기 어렵다. 공연 횟수, 전시 관람객, 영화제 상영작, 공동제작 건수, 교환학생 수, 언어 강좌 수 같은 지표는 필요하다. 그러나 문화외교의 실제 효과는 상대국을 얼마나 입체적으로 이해하게 되었는지, 지속적 협업 네트워크가 생겼는지, 다음 세대 창작자와 연구자가 서로의 시장과 사회를 이해하게 되었는지에서 드러난다. 이 때문에 우호의 해 준비 과정은 행사 수보다 프로그램의 구조를 봐야 한다.

정치적 변수도 있다. 문화외교는 비교적 부드러운 분야로 보이지만, 예산과 우선순위, 국내 여론, 콘텐츠의 민감성에 영향을 받는다. 인도는 종교, 언어, 지역, 역사 문제가 복잡한 국가이고, 한국 역시 외국인 노동, 유학생, 이민, 종교·문화 다양성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계속되는 나라다. 양국 문화행사가 상대국 이미지를 소비하는 방식에 머물거나, 특정 계층과 도시만 대상으로 삼으면 오히려 거리감을 남길 수 있다. 문화외교는 부드러운 의제이지만, 설계가 부실하면 형식적 행사로 끝나기 쉽다.

한-인도 우호의 해는 아직 결과가 아니라 일정이다. 공동 전략 비전은 2028~2029년이라는 시간을 제시했고, 2026~2030년 문화교류계획서라는 틀을 놓았다. 앞으로 확인해야 할 것은 주관 기관, 예산, 도시별 행사, 공동제작 사업, 교육 프로그램, 유물 기증 후속 전시, 지방정부 참여 여부다. 정상 간 합의가 문화 현장으로 내려가려면 중앙정부, 지방정부, 문화기관, 대학, 제작사, 언론, 시민단체가 각자의 역할을 가져야 한다.

뉴델리 공동 전략 비전은 한-인도 문화외교의 다음 일정을 열어놓았다. 그러나 우호의 해라는 이름은 출발점일 뿐이다. 2028년이 되기 전 세부 프로그램이 공개되고, 문화창조산업 MOU가 실제 공동제작과 인력 훈련으로 이어지며, 유물 기증과 불교 전통 교류가 학술·전시 사업으로 구체화돼야 한다. 한국 내 인도의 날과 인도 내 한국의 날이 일회성 무대에 그치지 않고 학교, 지역, 영화관, 박물관, 대학, 창작 현장으로 확장될 때 문화외교는 외교 문서의 문장을 넘어 시민이 체감하는 교류가 된다. 지금 단계에서 한-인도 문화외교의 과제는 성과를 자축하는 일이 아니라, 2028~2029년을 채울 실행계획을 얼마나 투명하고 촘촘하게 내놓을 수 있는지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