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리스크②] 세계 물가의 목줄 된 ‘호르무즈’…에너지·물류비가 덮친 실물경제
미·이스라엘·이란 충돌에 석유·LNG 통로 차질…보편 관세에 에너지 비용 겹친 ‘복합 충격’
[KtN 최기형기자]2025년 기준 하루 약 2,000만 배럴의 원유와 석유제품이 지나던 호르무즈 해협이 세계 물가의 목줄로 떠올랐다. 이란과 오만 사이에 놓인 이 바닷길은 가장 좁은 곳의 폭이 54㎞에 불과하지만, 세계 해상 석유 교역의 약 25%가 통과하는 핵심 에너지 통로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석유 흐름의 80%가 아시아로 향한다고 집계했다. 중동의 군사 충돌은 좁은 해상로를 넘어 원유 선물시장, LNG 운송망, 항공유 가격, 해운 보험료, 식품 물가로 번졌다.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에너지 시장의 가장 예민한 병목 지점이다. 이란, 이라크, 쿠웨이트, 카타르, 바레인은 원유 수출의 상당 부분을 이 통로에 의존한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는 일부 우회 수출 경로를 갖고 있지만, 해협을 지나는 전체 물량을 대체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IEA는 호르무즈 해협을 우회할 수 있는 원유 수송 여력을 하루 350만~550만 배럴 수준으로 봤다. 평상시 해협을 지나는 하루 약 2,000만 배럴의 석유 흐름과 비교하면 제한적인 규모다.
원유뿐 아니라 천연가스 공급망도 같은 통로에 묶여 있다. IEA는 카타르 LNG 수출의 약 93%, 아랍에미리트 LNG 수출의 약 96%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며, 이는 세계 LNG 교역의 19%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해협 차질이 원유 가격에 그치지 않고 가스 가격, 전력 비용, 산업용 연료비까지 흔드는 이유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충돌은 에너지 병목을 실제 가격 충격으로 바꿨다. IEA는 2026년 3월 석유시장 보고서에서 중동전쟁이 세계 석유시장 역사상 최대 규모의 공급 차질을 만들고 있다고 평가했다. 전쟁 전 하루 약 2,000만 배럴이던 호르무즈 해협의 원유·석유제품 흐름은 급감했고, 제한된 우회 능력과 저장공간 압박이 겹치면서 걸프 산유국들은 하루 최소 1,000만 배럴의 생산을 줄인 것으로 추정됐다.
4월 들어 충격은 현물시장으로 더 뚜렷하게 번졌다. IEA 4월 보고서는 3월 세계 석유 공급이 하루 1,010만 배럴 줄어 9,700만 배럴로 떨어졌다고 밝혔다. 중동 에너지 인프라 공격과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유조선 이동 제한이 맞물린 결과였다. 보고서는 원유 가격이 3월 사상 최대 월간 상승을 보였고, 북해산 현물 원유가 배럴당 130달러 안팎에서 거래됐다고 적었다. 싱가포르 중간유분 가격도 배럴당 290달러를 넘어서며 사상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
석유제품 시장의 체감 속도는 원유보다 빠르다. 디젤과 항공유 가격 상승은 트럭, 선박, 항공기, 농기계, 발전 비용으로 바로 이어진다. IEA는 전쟁 이후 디젤과 항공유 기준가격이 두 배 이상 올랐고, 걸프 지역에서 하루 약 300만 배럴의 정제 능력이 공격과 수출 통로 부족으로 멈췄다고 설명했다. 항공, 해운, 화물, 농업이 동시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석유파동은 주유소 전광판에서 끝나지 않는다. 항공유 가격 상승은 항공권과 항공화물 운임을 밀어 올린다. 디젤 가격 상승은 트럭 운송비와 항만 물류비, 농업 생산비를 자극한다. LPG와 석유화학 원료 가격이 오르면 플라스틱, 포장재, 합성섬유, 비료 가격도 움직인다. 원유 공급 충격은 해운 운임, 보험료, 식품 가격, 공장 가동 비용, 전력 요금으로 번진다.
트럼프 행정부의 보편 관세가 미국 시장 진입을 위한 제도적 장벽이라면, 호르무즈 해협의 차질은 생산과 이동을 가로막는 물리적 장벽이다. 하나는 백악관의 통보에서 왔고, 다른 하나는 해상로의 병목에서 왔다. 기업 손익계산서에서는 둘 다 비용으로 합쳐진다. 관세는 수입품 가격을 밀어 올리고, 유가는 생산과 운송의 기본 비용을 끌어올린다.
5월 6일 외교 변수는 시장의 방향을 다시 흔들었다. 로이터는 이란이 미국의 종전 제안을 검토하고 있으며, 해당 제안이 전쟁을 공식적으로 끝낼 수 있지만 이란의 핵 프로그램 중단과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이라는 미국의 핵심 요구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상태라고 보도했다. 같은 보도에서 종전 가능성은 유가를 끌어내려 브렌트유가 한때 약 11% 하락해 배럴당 98달러 안팎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100달러 위로 올라섰다고 전했다.
프랑스도 호르무즈 문제를 외교 의제로 끌어올렸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5월 6일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과 통화하고 호르무즈 해협의 자유롭고 안전한 통항 필요성을 재확인했다고 밝혔다. 마크롱 대통령은 프랑스와 영국이 해협 안전 통항을 위한 국제 임무를 준비하고 있다는 점도 설명했다. 호르무즈 문제가 더 이상 중동 지역의 군사 현안에 머물지 않고 유럽과 아시아, 미국이 동시에 주시하는 세계경제 현안으로 이동한 셈이다.
가격은 현재 생산량만 보고 움직이지 않는다. 해협이 언제 열릴지, 선박 보험료가 내려갈지, 정유시설이 다시 돌 수 있을지, 각국이 비축유를 얼마나 풀지, 여름철 항공·운전·농업 수요가 얼마나 늘어날지까지 한꺼번에 반영한다. 전쟁이 멈춘다는 소식만으로도 가격은 흔들리지만, 생산과 물류가 전쟁 전 수준으로 돌아가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한국 경제도 예외가 아니다. IEA는 2025년 호르무즈 해협을 지난 원유 수출의 대부분이 아시아로 향했고, 일본과 한국이 이 해협을 지나는 원유 흐름에 특히 의존한다고 설명했다. 한국은 원유와 LNG를 수입해 정유, 석유화학, 전력, 제조업을 돌린다. 호르무즈 차질은 원유 도입 비용, LNG 가격, 항공·해운 운임, 정유제품 가격을 거쳐 산업 전반의 원가 압박으로 이어질 수 있다.
문화산업도 에너지 충격에서 떨어져 있지 않다. 영화 촬영 현장의 발전차, 로케이션 이동, 조명과 음향 장비 운송, 해외 스태프 항공권은 에너지 가격과 물류비에 노출돼 있다. K팝 월드투어와 뮤지컬, 페스티벌은 무대 장비를 배로 보내고, 아티스트와 스태프는 항공편으로 이동한다. 굿즈는 플라스틱, 섬유, 포장재, 해상 운송을 거친다. 석유파동은 티켓 가격, 제작비, 공연 도시 선정까지 밀고 들어간다.
한국콘텐츠진흥원 미국 LA비즈니스센터의 CinemaCon 2026 자료는 미국 극장산업의 핵심 리스크가 관객 회복 여부보다 콘텐츠 공급 안정성으로 옮겨갔다고 정리했다. 제작 편수 감소, 프랜차이즈 중심 라인업 집중, 상영 윈도우 재조정, 프리미엄 포맷과 부가 소비 확대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영화 유통은 단일 기준이 아니라 작품별로 설계되는 구조로 바뀌고 있다는 분석이다. 에너지와 물류비 상승은 이런 재편 위에 추가 부담으로 얹힌다.
대형 스튜디오는 비용 상승을 감당하기 위해 검증된 지식재산권과 프랜차이즈 대작에 자본을 더 집중할 수 있다. 중간 규모 영화와 독립영화는 제작비와 배급비 상승을 더 크게 체감할 수 있다. 스트리밍 플랫폼도 글로벌 제작비 증가와 가입자의 소비심리 위축을 동시에 계산해야 한다. 플라스틱과 섬유, 포장재를 쓰는 굿즈 산업은 원자재 가격과 해상 운임 상승을 동시에 맞는다.
글로벌 공급망의 기준도 바뀌고 있다. 과거 공급망은 최저 비용과 적기 생산을 중심으로 설계됐다. 관세와 호르무즈 차질이 겹친 뒤 기업들은 가장 싼 생산지보다 가장 덜 흔들릴 공급망을 찾고 있다. 원산지 규정, 관세 유예, 보복 조치, 선박 보험료, 해상로 안전, 에너지 가격이 함께 의사결정 변수로 들어간다.
호르무즈 해협의 병목은 특정 지역의 해상로 차질에 머물지 않았다. 트럼프 관세가 미국 시장의 통행료를 높였다면, 중동 충돌은 에너지와 물류라는 실물경제의 엔진 비용을 끌어올렸다. 5월 6일 종전 협상 가능성이 부상했지만 시장이 곧바로 전쟁 전 상태로 돌아가기는 어렵다. 해상로 재개방, 선박 보험료 안정, 정유시설 복구, 재고 회복, 소비심리 회복은 각각 다른 속도로 움직인다.
세계경제의 두 번째 충격은 전쟁의 포성만이 아니었다. 관세는 규칙을 흔들고, 전쟁은 통로를 막았으며, 유가는 비용을 끌어올렸다. 호르무즈 해협은 중동의 좁은 바다였지만, 그 병목은 각국의 물가와 기업의 공급망, 항공과 해운, 문화산업의 제작비까지 다시 계산하게 만든 실물경제의 관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