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리스크④] K콘텐츠는 예외인가…관세·석유·비자가 바꾼 세계화 이후의 문화질서

미국 시장 접근 비용 오르고 중동 해상로 흔들려…K콘텐츠 경쟁력도 인기보다 리스크 관리가 좌우

2026-05-07     최기형 기자
BTS '아리랑'에 세계가 응답했다.. 빌보드 정상 탈환 후 롱런 가속도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정규 5집 '아리랑(ARIRANG)'으로 미국 '빌보드 200' 정상 자리를 2주 연속 수성하며, K팝을 넘어 세계 음악 시장의 중심임을 다시 한번 증명했다.  사진=2026. 04.06 빅히트뮤직 (하이브)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최기형기자]2026년 5월 7일 현재 K콘텐츠의 세계 시장은 성장세와 비용 충격을 동시에 마주하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표한 2025년 콘텐츠산업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콘텐츠산업 매출은 161조4800억원, 수출은 149억1000만달러로 전년보다 각각 2.6%, 5.9% 증가했다. 음악, 영화, 캐릭터 분야가 수출 증가를 이끌었다. 그러나 같은 시기 미국의 보편 관세, 호르무즈 해협 차질, 항공·해운 비용 상승, 현지 세금과 정산 구조는 K콘텐츠의 해외 진출 비용을 높이는 변수로 떠올랐다.

K콘텐츠는 더 이상 한국에서 만든 작품을 해외 플랫폼에 올리거나, 음반과 굿즈를 외국 팬에게 판매하는 산업에 머물지 않는다. 드라마와 영화는 글로벌 플랫폼의 투자와 배급망을 거치고, K팝은 월드투어와 현지 프로모션, 팝업스토어, 팬 이벤트를 결합한다. 게임과 웹툰은 디지털 서비스처럼 보이지만 캐릭터 상품, 전시, 오프라인 행사, 애니메이션과 영상화로 확장된다. 콘텐츠의 수익은 국경을 넘을수록 커졌지만, 비용도 같은 속도로 국경을 넘기 시작했다.

미국 시장은 여전히 핵심 무대다. K팝 공연, OTT 공개, 게임 수출, 웹툰 IP 협업, 캐릭터 상품 판매가 모두 북미 시장의 소비력과 플랫폼 영향력에 기대고 있다. 그러나 미국 시장 접근 비용은 낮아지지 않았다. 트럼프 행정부는 2025년 이후 수입품에 대한 보편 관세와 국가별 관세를 압박 수단으로 사용했고, 한국도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로이터는 한국이 미국과의 무역 합의 이행을 위해 3500억달러 규모 대미 투자 특별법을 추진했고, 미국이 관세 인상 가능성을 압박 수단으로 사용했다고 보도했다.

통상 압박은 자동차와 반도체에만 머물지 않는다. K콘텐츠 기업이 사용하는 촬영 장비, 음향·조명 장비, 무대 설비, 전자부품, 굿즈 원자재와 포장재는 모두 관세와 원산지 규정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디지털 콘텐츠 자체가 곧바로 관세 대상이라는 뜻은 아니다. 다만 콘텐츠 산업이 실물 장비와 상품, 현지 법인, 공연장, 항공·해운 운송, 플랫폼 정산망에 얹혀 움직이는 순간 통상정책의 영향권으로 들어간다.

 호르무즈 해협을 사실상 봉쇄 중인 이란이 척당 약 30억  원에 달하는 고액의 통행료 징수를 공식화하며 국제 해운 질서에 유례없는 파장을 예고했다. 사진=2026. 03.26  자료화면 갈무리/ 편집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중동 리스크는 또 다른 경로로 한국 콘텐츠 산업을 압박한다. 로이터는 5월 6일 한국 대통령실이 미국 주도의 호르무즈 해협 선박 호위 작전인 ‘프로젝트 프리덤’ 참여 검토를 중단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해당 계획을 보류한 데 따른 조치였다. 호르무즈 문제는 에너지 가격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의 외교·안보 선택과 해상 물류 비용까지 묶는 변수로 부상했다.

K팝 월드투어는 이 변화를 가장 빨리 체감하는 분야다. 대형 투어는 무대 구조물, LED, 음향·조명 장비, 의상, 굿즈를 도시마다 이동시킨다. 아티스트와 스태프는 항공편으로 움직이고, 장비는 해상 운송과 보험을 거친다. 항공유와 디젤 가격이 오르면 투어 도시 선정, 공연장 규모, 티켓 가격, 현지 프로모션 예산이 모두 달라진다. 팬덤이 커도 비용 구조가 흔들리면 수익성은 자동으로 따라오지 않는다.

해외 매출이 늘어도 국내로 돌아오는 이익이 같은 비율로 늘지 않는 문제도 커졌다. 아시아경제는 K팝의 해외 공연이 커질수록 현지 인력, 홍보, 법무·회계, 공연장 임대료, 운송비, 보험료, 보안비, 현지 세금이 먼저 발생한다고 분석했다. HYBE의 2025년 매출과 글로벌 공연 수는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크게 줄었다는 사례도 제시됐다. 해외 성장이 곧 본사 이익 증가로 직결되지 않는 구조가 드러난 셈이다.

게임 산업도 안전지대가 아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간한 2025 대한민국 게임백서는 2024년 국내 게임산업 매출을 23조8515억원, 수출을 85억3046만달러로 집계했다. 북미 시장은 게임 수출의 19.5%를 차지했다. 게임은 디지털 상품이지만 결제망, 서버, 현지 마케팅, 앱마켓 수수료, 지식재산권 라이선스, 오프라인 e스포츠 행사와 결합한다. 글로벌 서비스가 커질수록 환율, 현지 규제, 데이터 비용, 결제 수수료, 행사 물류가 수익성을 가른다.

‘코피 투혼’ 고윤정·구교환의 비루한 질주…‘모자무싸’, 넷플릭스 1위 점령  사진=2026. 04.22 JTBC 토일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이하 모자무싸)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영화와 드라마의 북미 진출도 더 복잡해졌다. 한국콘텐츠진흥원 미국 LA비즈니스센터의 CinemaCon 2026 자료는 미국 극장산업의 핵심 리스크가 관객 회복보다 콘텐츠 공급 안정성으로 이동했다고 정리했다. 제작 편수 감소, 프랜차이즈 중심 라인업 집중, 상영 윈도우 재조정, 프리미엄 포맷과 부가 소비 확대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영화 유통은 단일 기준이 아니라 작품별로 설계되는 구조로 바뀌고 있다. 한국 영화가 북미 극장에 진입하려면 작품성뿐 아니라 개봉 시점, 상영 기간, 프리미엄 포맷 적합성, 팬덤 동원력, 플랫폼 후속 공개 전략까지 함께 설계해야 한다.

대형 프랜차이즈 중심으로 재편되는 미국 영화시장은 K콘텐츠에 기회와 장벽을 동시에 만든다. 할리우드가 대형 IP와 검증된 팬덤에 더 많은 자본을 집중하면, 한국 콘텐츠는 새로운 장르와 이야기로 틈새를 만들 수 있다. 반대로 극장 스크린과 플랫폼 투자금이 대형 프로젝트에 더 몰리면 중간 규모 한국 영화와 독립 콘텐츠가 북미 시장에서 얻을 수 있는 상영·홍보 공간은 줄어들 수 있다. 인기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현지 배급 파트너, 마케팅 비용, 상영 윈도우, 플랫폼 계약 조건이 함께 맞아야 한다.

K콘텐츠의 강점은 여전히 분명하다. 음악, 영화, 게임, 웹툰, 캐릭터, 뷰티와 패션을 잇는 IP 확장 능력은 다른 국가가 쉽게 복제하기 어렵다. 팬덤은 언어 장벽을 낮추고, 플랫폼은 시장 진입 속도를 높인다. 그러나 세계화 이후의 문화질서에서는 창작력만으로 산업 전체를 지키기 어렵다. 제작사는 환율과 보험, 운송비, 현지 세금, 비자, 관세 가능성을 작품 기획 단계부터 계산해야 한다.

미국 시장에 대한 의존도도 다시 봐야 한다. 미국은 세계 최대 소비시장 가운데 하나지만, 정치 리스크와 규제 비용이 함께 커지는 시장이기도 하다. 한국 기업은 북미를 포기할 수 없지만 북미만 보고 움직일 수도 없다. 일본, 동남아, 유럽, 중동, 남미 시장을 나누고, 투어 동선을 짧게 재설계하며, 굿즈 생산과 보관 거점을 다변화하는 방식이 필요해진다. 한 번에 전 세계를 도는 전략보다 지역별 비용과 수요를 따지는 전략이 중요해졌다.

6만 관객 홀린 탬파의 ‘뱁새’, BTS 지민이 쓴 프리스타일 무대의 정석  。。。 방탄소년단(BTS) 지민이 미국 플로리다주 탬파에서 열린 대규모 스타디움 공연을 성공적으로 이끌며 북미 지역 내 독보적인 영향력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사진=2026. 05.01 방탄소년단 지민, 인스타그램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공연산업은 지역화 전략을 더 강하게 요구받는다. 과거에는 팬덤 규모가 큰 도시를 최대한 많이 도는 방식이 성장 전략이었다. 앞으로는 항공 노선, 장비 이동 거리, 보험료, 현지 프로모터의 정산 안정성, 환율, 공연장 대관료가 도시 선정의 핵심 기준으로 들어간다. 같은 매출을 올려도 장비를 적게 이동시키고 체류 기간을 줄이는 투어가 더 높은 수익을 낼 수 있다.

굿즈와 캐릭터 상품은 공급망 재편의 직접 대상이다. 응원봉, 의류, 앨범 패키지, 포토카드, 피규어, 캐릭터 상품은 전자부품, 플라스틱, 섬유, 종이, 포장재를 쓴다. 팬덤 소비는 가격 저항을 어느 정도 흡수하지만 한계가 있다. 관세와 해상 운임, 원자재 가격 상승이 겹치면 기업은 생산지, 재고 위치, 판매가, 배송비, 현지 물류 파트너를 다시 정해야 한다.

OTT와 플랫폼 기업도 전략을 바꿔야 한다. 콘텐츠 공개만으로는 부족하다. 극장 이벤트, 팬 상영회, 팝업스토어, 라이브 커머스, 라이선스 상품, 게임화, 웹툰·영상 연계가 함께 움직인다. 이 확장 전략은 수익을 키우지만 비용과 리스크도 키운다. 플랫폼이 어느 지역에서 먼저 공개할지, 어느 시장에서 오프라인 행사를 열지, 어느 국가에 굿즈 재고를 둘지는 더 이상 마케팅 판단만이 아니다.

정부의 역할도 문화홍보를 넘어선다. K콘텐츠 수출은 이제 통상, 에너지, 외교, 금융 리스크와 함께 관리해야 하는 산업정책 영역이다. 관세 협상은 제조업만의 문제가 아니고, 호르무즈 해협 통항은 정유·석유화학만의 문제가 아니다. 콘텐츠 기업이 해외 공연과 촬영, 전시, 플랫폼 사업을 이어가려면 비자, 세금, 현지 법률, 보험, 물류 정보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케데헌'· '오징어 게임', 美크리틱스초이스 휩쓴 K콘텐츠 위상  사진=2026. 01.05  넷플릭스   매기 강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2026년 5월 7일 현재 K콘텐츠가 직면한 질문은 “인기가 계속될 것인가”가 아니다. 인기는 이미 시장에서 확인됐다. 질문은 성장한 인기를 어떤 비용 구조 안에서 지킬 것인가다. 해외 매출이 늘어도 현지 비용과 세금, 운송비, 보험료, 환율이 이익을 갉아먹으면 산업의 체력은 약해진다. 글로벌 팬덤을 가진 기업일수록 공급망과 정산 구조를 더 세밀하게 설계해야 한다.

K콘텐츠는 트럼프 리스크의 예외가 아니다. 다만 위기는 단순한 후퇴만을 뜻하지 않는다. 미국 중심 질서가 흔들릴수록 비미국 시장의 중요성은 커지고, 콘텐츠 기업은 지역별 팬덤을 더 정교하게 나눌 수 있다. 아시아와 유럽, 중동, 남미의 현지 파트너십을 넓히고, 제작·공연·굿즈 공급망을 분산하는 기업에는 새로운 협상력이 생긴다.

세계화의 이전 단계에서 K콘텐츠의 경쟁력은 빠른 확산이었다. 앞으로의 경쟁력은 흔들리지 않는 운영이다. 작품을 잘 만드는 능력, 팬덤을 모으는 능력, 플랫폼을 활용하는 능력에 더해 촬영지와 투어 도시, 물류 거점, 보험, 환율, 세금, 관세를 관리하는 능력이 필요해졌다. 문화상품은 여전히 감정과 취향을 움직이지만, 그 상품을 세계 시장에 올려놓는 과정은 점점 더 정치적이고 비용이 큰 작업이 되고 있다.

트럼프 관세는 미국 시장의 통행료를 바꿨고, 호르무즈 해협 리스크는 에너지와 물류의 기본 비용을 바꿨다. CinemaCon 2026이 보여준 미국 영화산업의 재편은 콘텐츠 공급 안정성이 새 경쟁 기준으로 떠올랐음을 드러냈다. K콘텐츠의 다음 단계도 같은 질문 앞에 있다. 더 많이 팔리는 콘텐츠가 아니라, 흔들리는 세계경제 속에서도 제작·유통·공연·정산을 견딜 수 있는 콘텐츠가 살아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