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일드 씽④] 익숙한 배우를 낯선 무대에 세운 ‘와일드 씽’의 이미지 전복
강동원·엄태구·박지현·오정세, 기존 이미지와 배역의 간극으로 코미디 설계 손재곤 감독 신작, 복고 콘셉트보다 인물의 어긋남이 관건
[KtN 김동희기자]7일 서울 광진구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에서 열린 영화 ‘와일드 씽’ 제작보고회는 캐스팅의 낯선 조합을 먼저 앞세운 자리였다. 강동원은 분홍색 니트에 대형 흰색 리본을 단 모습으로 포토월에 섰고, 엄태구와 박지현도 영화 속 혼성 댄스 그룹 ‘트라이앵글’의 멤버라는 설정을 드러내는 의상으로 무대에 올랐다. 오정세와 손재곤 감독도 함께 참석했다.
‘와일드 씽’은 해체된 3인조 혼성 댄스 그룹 트라이앵글이 20여 년 만에 다시 무대에 서려는 과정을 그린 코미디 영화다. 강동원은 과거의 댄스머신, 엄태구는 빚더미에 앉은 래퍼, 박지현은 재벌가 며느리가 된 센터, 오정세는 라이벌 발라드 가수로 등장한다. 배우들이 기존에 쌓아온 이미지와 극 중 인물 사이에 놓인 거리가 이 영화의 첫 번째 코미디 장치다.
강동원이 연기하는 황현우는 트라이앵글의 리더다. 과거에는 ‘댄스머신’으로 불렸지만, 현재는 생계형 방송인으로 살아가는 인물이다. 강동원의 기존 이미지는 정제된 외형, 장르 영화 속 중심 인물, 쉽게 흐트러지지 않는 스타성에 가까웠다. ‘와일드 씽’은 그 이미지를 지우기보다, 전성기를 지나 생활의 압박을 받는 과거 아이돌이라는 설정 위에 겹쳐 놓는다.
현우의 분홍색 니트와 대형 리본은 단순한 분장이 아니다. 완성된 외형의 배우가 지나간 아이돌 리더의 옷을 입고 생계형 방송인의 현재를 연기할 때, 웃음은 외형의 낯섦에서만 나오지 않는다. 과거의 무대 이미지와 현재의 처지가 한 인물 안에서 어긋나는 지점이 더 중요하다. 현우가 다시 무대에 서려는 이유가 추억에 머물면 캐릭터는 가벼워진다. 생계와 인정 욕구, 지나간 이름을 다시 붙잡으려는 절박함이 붙어야 강동원의 변신도 장면 이상의 의미를 얻는다.
엄태구가 맡은 구상구는 더 큰 간극 위에 놓인다. 상구는 트라이앵글의 막내이자 ‘폭풍래퍼’로 불렸던 인물이다. 해체 이후 솔로 앨범에 실패했고, 현재는 빚을 떠안고 있다. 엄태구가 여러 작품에서 보여준 낮은 발성, 눌린 표정, 무거운 정서는 래퍼라는 포지션의 과시적 태도와 쉽게 맞물리지 않는다. 이 맞지 않음이 상구라는 인물의 출발점이다.
상구가 단순히 “엄태구가 래퍼를 한다”는 의외성에 머물면 효과는 짧다. 래퍼였던 과거와 빚에 눌린 현재가 한 인물 안에서 부딪혀야 한다. 래퍼의 외형에는 자신감과 허세가 필요하지만, 상구의 현재에는 실패와 부채가 놓여 있다. 그 간극이 살아날 때 상구는 웃음을 위한 장식이 아니라, 무대 위 자아를 아직 버리지 못한 실패한 인물로 설 수 있다.
박지현이 맡은 변도미는 트라이앵글의 센터다. 과거에는 ‘절대매력’으로 불렸고, 현재는 재벌가 며느리로 살아간다. 도미는 세 멤버 가운데 가장 쉽게 이미지로 소비될 수 있는 캐릭터다. 센터, 매력, 재벌가 며느리라는 설정은 겉으로 보기에는 선명하지만, 자칫 표면적인 대비에 그칠 수도 있다.
도미가 살아나려면 재결합이 그의 현재 삶을 흔드는 사건으로 작동해야 한다. 과거의 도미는 무대 위 시선을 받던 인물이다. 현재의 도미는 다른 규칙과 체면 속에 놓인 인물이다. 다시 트라이앵글의 이름으로 무대에 선다는 것은 과거의 이미지를 되풀이하는 일이 아니라, 현재의 삶이 요구하는 질서와 충돌하는 일이다. 박지현의 역할은 트라이앵글의 화려했던 시절을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재결합이 개인의 현재를 어떻게 흔드는지 드러내는 데 있다.
오정세의 성곤은 트라이앵글 바깥에 서 있는 인물이다. 성곤은 과거 트라이앵글의 라이벌이었던 발라드 가수이며, 자칭 ‘고막남친’으로 불린다. 트라이앵글이 퍼포먼스 중심의 혼성 그룹이라면 성곤은 감성과 목소리, 자의식의 영역에 놓인 인물이다. 댄스 그룹과 발라드 가수의 대비는 2000년대 가요계의 서로 다른 장르 문법을 영화 안으로 끌어들이는 장치다.
오정세는 과장된 설정을 현실의 표정으로 눌러주는 데 강점을 보여온 배우다. 성곤 역시 이름과 설정만 놓고 보면 희극적 인물에 가깝다. 다만 단순한 방해꾼으로 쓰이면 역할의 폭은 좁아진다. 트라이앵글의 재결합을 흔드는 라이벌이면서, 과거의 경쟁과 현재의 자의식을 함께 끌고 오는 인물로 기능해야 영화의 리듬이 넓어진다.
손재곤 감독의 코미디는 비현실적인 상황을 인물들이 진지하게 수행할 때 힘을 얻는 방식에 가깝다. ‘와일드 씽’의 설정도 과장돼 있다. 20여 년 전 해체된 혼성 그룹, 갑작스러운 공연 제안, 멤버 재소집, 라이벌 발라드 가수, 전 소속사와의 악연은 모두 코미디에 적합한 재료다. 다만 웃음이 유지되려면 인물들이 이 상황을 장난처럼 통과해서는 어렵다. 각자가 무대에 서야 하는 이유를 붙잡고 움직일 때 설정은 장식이 아니라 이야기의 동력이 된다.
제작사 어바웃필름의 참여는 기대와 부담을 동시에 만든다. 어바웃필름은 ‘극한직업’을 제작한 회사로 알려져 있다. 이 이력은 ‘와일드 씽’에 코미디 장르의 경험이라는 장점을 더하지만, 동시에 비교의 기준도 만든다. ‘극한직업’의 흥행이 ‘와일드 씽’의 성과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코미디는 설정보다 리듬에 민감하고, 배우 조합보다 인물 관계와 대사의 밀도가 중요하게 작용하는 장르다. 특별출연 명단에는 신하균도 이름을 올렸다. 다만 현재까지 공개된 정보의 중심은 트라이앵글 세 멤버와 라이벌 성곤에 맞춰져 있다.
‘와일드 씽’의 4차 관전 지점은 사람에 있다. 가상 그룹 콘셉트와 복고 무대는 개봉 전 화제를 만들 수 있지만, 107분을 끌고 가야 하는 것은 배우들의 호흡과 인물의 설득력이다. 강동원, 엄태구, 박지현, 오정세의 익숙한 얼굴이 낯선 역할 안에서 얼마나 오래 버티는지, 손재곤 감독이 그 어긋남을 순간의 볼거리보다 지속되는 코미디 리듬으로 바꿀 수 있는지가 마지막 시험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