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OTT 전장 속 한국영화, 편리함 넘어서는 ‘극장성’으로 버틸 수 있을까

2025년 관객·매출 동반 하락 속 특수상영 시장은 성장 극장은 더 늦게 보는 곳이 아니라 다르게 보는 곳이 돼야 한다

2026-05-08     김동희 기자
영화관.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김동희기자]2025년 한국 극장가는 버텼지만 회복하지 못했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산업 결산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극장 전체 관객 수는 1억609만 명으로 전년 대비 13.8% 줄었다. 한국영화 매출액은 4191억 원으로 39.4% 감소했다. 전체 시장의 위축보다 한국영화의 타격이 더 컸다. 관객이 영화를 떠났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관객은 극장 밖의 더 편한 자리로 이동했다.

그 자리를 넷플릭스, 티빙, 디즈니+, 쿠팡플레이, 유튜브 같은 플랫폼이 채웠다. 저녁 두 시간을 두고 극장 영화와 OTT 콘텐츠가 경쟁하는 구조는 이미 일상이 됐다. 극장 영화는 이제 같은 날 개봉한 다른 영화만 상대하지 않는다. 새로 공개된 시리즈, 숏폼 영상, 스포츠 중계, 예능, 과거 흥행작의 알고리즘 추천까지 한꺼번에 상대한다. 관객은 티켓값만 계산하지 않는다. 이동 시간, 식사 비용, 동행자의 일정, 집에서 볼 수 있는 대체 콘텐츠까지 함께 저울질한다.

극장 영화가 가장 먼저 넘어야 할 장벽은 “놓쳐도 된다”는 감각이다. 과거에는 개봉작을 극장에서 보는 일이 자연스러운 순서였다. 스타 배우, 유명 감독, 주말 약속, 예고편만으로도 관객은 움직였다. 지금은 다르다. 관객은 개봉작이 몇 달 뒤 OTT에 올라올 가능성을 안다. 극장에서 보지 않아도 언젠가 볼 수 있다는 생각이 극장 영화의 긴급성을 지운다. 한국영화의 위기는 단순한 관객 감소가 아니라, 극장에서 봐야 할 이유가 약해진 데서 시작됐다.

'구글세' 논란 속 넷플릭스 판정승…법원, 687억 법인세 취소 판결  사진=2026. 04.28 넷플리스 홈페이지 갈무리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극장은 OTT보다 편할 수 없다. 가격 경쟁에서도 우위에 서기 어렵다. 한 달 구독료 안에서 여러 편의 영화와 시리즈를 볼 수 있는 관객에게 극장 티켓 한 장은 더 무거운 선택이 됐다. 극장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역설적으로 불편함을 감수하게 만드는 것이다. 큰 화면, 강한 사운드, 같은 장면에서 함께 웃고 놀라는 공기, 개봉 첫 주에만 생기는 대화, 팬덤이 한 공간에 모이는 감각이 극장의 남은 무기다.

수치도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2025년 전체 관객 수는 줄었지만 특수상영 매출은 전년 대비 46.3% 증가한 1110억 원을 기록했다. 특수상영 관객도 52.4% 늘어난 739만 명으로 집계됐다. 관객이 지갑을 닫은 것이 아니다. 극장에서만 가능한 체험에는 여전히 돈을 쓴다. 대형 액션, 애니메이션, 콘서트 실황, 팬덤형 영화가 극장에서 힘을 얻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집에서 봐도 무방한 콘텐츠라는 인식이 붙는 순간 극장 영화는 밀린다.

코미디 장르도 같은 시험대에 올라 있다. 웃음은 극장에서 여전히 힘을 가질 수 있다. 여러 사람이 한 장면에서 동시에 웃는 경험은 OTT가 완전히 대체하기 어렵다. 그러나 설정만 가볍고 장면이 헐거운 코미디는 더 빨리 외면받는다. 관객은 집에서도 충분히 웃을 수 있다. 극장 코미디가 살아남으려면 배우의 몸, 현장의 리듬, 대사의 밀도, 관객이 함께 반응할 수 있는 장면을 만들어야 한다.

영화 ‘와일드 씽’ 제작보고회. 사진=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6월 개봉을 앞둔 영화 ‘와일드 씽’은 그런 흐름 속에서 볼 수 있는 사례다. 작품은 해체된 3인조 혼성 댄스 그룹 ‘트라이앵글’의 재결합을 다룬다. 강동원, 엄태구, 박지현이 각각 아이돌 리더, 래퍼, 센터로 나서는 설정은 단순한 배역 소개가 아니다. 가상 아이돌 콘셉트, 복고풍 무대, 배우의 이미지 전복을 묶어 극장에서 확인해야 할 장면을 만들려는 시도에 가깝다.

이 전략에는 장점과 위험이 함께 있다. 낯선 의상, 예상 밖의 캐스팅, 음악과 무대는 개봉 전 화제를 만들 수 있다. 제작보고회와 짧은 영상에서는 강한 인상을 남긴다. 그러나 본편의 서사가 받쳐주지 못하면 콘셉트는 빠르게 소모된다. 관객은 이제 낯선 설정만으로 오래 머물지 않는다. 107분의 러닝타임 안에서 인물의 동기, 대사의 리듬, 장면의 밀도가 따라붙어야 한다. 극장형 콘셉트는 문 앞까지 관객을 데려올 수 있지만, 좌석에 붙잡아두는 힘은 결국 영화 안에서 나온다.

산업의 체질도 바뀌어야 한다. 모든 영화를 극장에 먼저 걸고, 성과가 나쁘면 OTT로 넘기는 방식은 더 이상 충분하지 않다. 제작 단계에서부터 극장형 영화와 플랫폼형 콘텐츠를 구분해야 한다. 압도적인 화면과 사운드, 집단 관람의 반응을 요구하는 작품은 극장 경험을 중심으로 설계돼야 한다. 긴 호흡의 서사, 인물 중심 드라마, 실험적 장르, 중소 규모 이야기는 플랫폼과 더 잘 맞을 수 있다. 창구의 순서보다 작품의 성격을 먼저 따져야 하는 시대다.

제주4·3은 오랫동안 '이름 없는 사건'이었다. 학살이라 불러야 하는지, 항쟁이라 불러야 하는지, 혹은 그 어느 단어도 온전히 담을 수 없는 무언가인지...영화 '내 이름은'은 그 본질적인 질문 앞에 정면으로 선다. /사진=@acefactory.official 인스타그램.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중간 규모 영화의 위축도 가볍게 볼 문제가 아니다. 초대형 상업영화와 저예산 독립영화 사이에서 허리를 맡던 작품들이 줄어들면 산업은 얇아진다. 배우와 감독은 안전한 대작이나 OTT 시리즈로 이동하고, 관객은 다양한 한국영화를 만날 기회를 잃는다. 극장에 걸리는 한국영화가 줄고, 그마저 특정 장르와 흥행 공식에 몰리면 시장은 더 좁아진다. 한국영화의 미래는 몇 편의 대박으로만 유지될 수 없다.

정부 지원은 필요하다. 4월 국회 본회의에서 확정된 영화산업 긴급지원 추경 예산 655억9000만 원은 관람 활성화와 제작 지원에 투입된다. 6000원 할인권 450만 장 배포는 관객의 가격 부담을 낮출 수 있다. 제작지원 예산은 산업의 숨통을 틔울 수 있다. 그러나 할인권이 작품의 힘을 대신할 수는 없다. 보고 싶은 영화가 없으면 관객은 할인권이 있어도 움직이지 않는다. 정책은 시간을 벌어줄 수 있지만, 극장의 이유를 만들어주지는 못한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역대 천만 사극들을 압도하는 흥행 속도로 900만 관객을 돌파하며, 3월 한국 영화 시장에 거대한 박스오피스(Box Office) 기록을 세웠다. 사진=2026. 03.02  쇼박스/  편집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한국영화의 미래는 극장과 OTT의 이분법에 갇혀 있지 않다. 극장은 대중이 한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는 사건의 장소가 돼야 한다. OTT는 접근성과 다양성을 바탕으로 더 넓은 서사와 장르 실험을 품을 수 있다. 두 창구가 서로를 잠식하는 구조가 아니라, 각자의 역할을 분명히 할 때 산업의 두께도 회복된다. 극장 영화는 더 극장다워져야 하고, 플랫폼 콘텐츠는 더 플랫폼다워져야 한다.

관객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른 곳에 앉아 있을 뿐이다. 한국영화가 OTT의 전장에서 살아남으려면 플랫폼을 탓하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된다. 관객이 집을 나설 만큼의 이유를 영화 안에 심어야 한다. 큰 화면에서 살아나는 장면, 함께 봐야 커지는 웃음, 극장에서만 완성되는 사운드와 리듬, 개봉 첫 주에 공유되는 대화가 필요하다. 극장 영화의 생존로는 편리함의 모방이 아니라 극장성의 회복에 있다.